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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아주 묘한 일에 휘말렸다. 그의 영찰 발언이 군의 명예를 훼손이켰다며,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이 그를 국감에 불러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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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은 아주 특수한 위치에 선 연예인이다. 다른 연예인들이 100원짜리를 내놓으면 100원에 팔리고 1000원짜리를 내놓으면 1000원에 팔린다. 트렌드에 뒤쳐진 아이돌에게는 광고 제안이 들어오지 않고, 홀쭉하고 잘 먹지 못하는 김준현을 불러주는 곳은 없다. 그에 비해 김제동은 얼마에 내놓든 사는 사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재미없어도 찾는 사람은 찾고, 외면하는 사람은 외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유재선이나 이휘재처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윤석처럼 흐리멍텅하지도 않다. 아주 선명하고 강력하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새누리당 지지자는 그냥 줘도 안 가질 것이고, 반대쪽에서는 있는 돈 다 털어서 구매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꽤나 안타깝다. 왜 그는 그냥 웃기는 사람으로 살지 못할까? 유들유들 살고는 못 배기는 내 케릭터와 비슷한 동질감이 있어서 그런가. 김제동 스스로가 그런 상황을 즐긴다면 문제없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거 같아서 늘 좀 그렇다.



대구에 대한 나의 기억과 기묘한 기시감 


<채널A>에서 김제동과 함께 군 생활을 했다는 간부의 증언을 듣고 이 사태의 과거 배경이 대구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군 생활을 한 곳이다. 병과는 군악대였다. 김제동이 말한 '문선대'가 군악대의 전신인 것 같다. 나는 군사령부 직속 군악대 소속이었다. 김제동이 속한 50사단 군악대와는 영역이 달랐지만 가끔 만날 일도 있었다.


한번은 50사단 군악대의 사정으로 대구의 현충원 행사에 땜빵을 간 일이 있었다. 끝나고 인근 중국집 코스요리를 먹었다. 우리는 사령부 내에서 잡일만 하는데, 50사단 이것들은 이런 외부행사에 다니면서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박탈감을 느꼈었다.


<채널A>의 보도로는 김제동의 영창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우선 객관적인 영창 기록이 없고, 간부의 증언도 그렇다. 2군사령부 전속 군악대가 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김제동이 사령부 행사에 갔을 리 없다는 간부의 발언은 그럴싸하지만, 순전히 기억에 의존한 발언이고 내가 복무하던 시절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김제동처럼 날고 기는 진행자가 인근의 군사령관 행사에 불려간 것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일이다.


내 복무기간 중에도 군사령관이 주재하는 행사, 그러니까 "연회를 베풀라"는 일은 자주 있었다. 한번은 인근 군단이나 사단장까지 모인 제법 큰 연회가 열렸다. 계급장에 박힌 별 갯수가 15개랬는지 17개랬는지. 하필 그날 사령부 군악대의 장비가 문제를 일으켰다. 별들이 은하수처럼 출동한 현장에서 흥을 올려야 할 군악대가 템포를 깨먹고 버벅대고 있었으니 대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사령관 부인을 아줌마라 불러서 영창에 갔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 군대인데 장군님들 기분을 망쳤으니 무슨 피바람이 불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단이 일어난 다음 날 나는 우연히 군악대장실에 들어갈 일이 있었다. 부대 분위기가 말이 아닌 상황에서 군악대장은 표정이 밝았다. 일개 일병인 나에게, 군악대장은 서슬 퍼런 투스타 참모장이 지시한 시말서를 내게 보여줬다. 온갖 사죄와 재발방지대책, 그리고 다시 사죄와 송구한 마음으로 가득했어야 할 종이는 고작 한 장이었다. 낙후된 장비에 대해 설명하다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무려 수천 만 원에 달하는 예산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다소 아연한 내 표정을 보더니 군악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껄껄 웃으며 "원래 이런 일일수록 더 세게 나가야 하는 거야"라고 읊조렸다. 마치 그 군악대의 과거와 미래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사태는 참 닮아있다.



김제동의 "선방"


김제동의 대응은 훌륭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닳고 닳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다. 쑥스러운 진실보다는 뻔뻔한 게 낫다. 이 아수라장에서 "사실 영창 안 가긴 했는데요"같은 말을 했다면 아주 작은 흠집이지만 댐의 붕괴로 이어지는 균열의 시발점을 제공했을 것이다. 정치적인 발언을 아끼지 않는 그의 행보에 아주 큰 지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블랙리스트 위에 올라서며 그가 반대급부로 얻어낸 것들이 빛을 잃었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 "저 거짓말쟁이가 그러는데"라는 토가 달린다면 어떻겠는가?


사실 '사령관 부인 아줌마라고 불렀다가 영창 간 이야기"는 시시하다. 별로 재미가 없다. 영창에서 나올 때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복창했다는 억지스러운 설정이 달린 것도 그런 탓일 것이다. 김제동이 좋아하는 야구에 비유하자면 주자 없는 투아웃 상황에서 친 내야 땅볼 같다. 김제동에게도 수비수에게도 관객에게도 별 임팩트 없는, 그러나 야구가 시작하고 끝나기 위해 있어야 할 하나의 연결고리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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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이 실책을 저질렀다. 공은 빠졌다. 그때 김제동은 민주주의를 마음에 새긴 햄릿이 아니라 지독한 마키아벨리처럼 상황을 돌파했다. 영리한 역공격이었다. "웃자고 한 소리"라든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일갈은 논란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교과서가 있다면 꼭 실어야 할 만큼 멋진 사례다. 그는 단숨에 3루까지 내달린 셈이다.


그 주루플레이를 하기 전에 김제동은 새누리당의 보수 우파가 부담 없이 노리기 좋은 블랙리스트 연예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고위 공직자들이 마른 장작을 잘 쌓아놓은 초가집에 튈 불똥임을 과시했다. 3루에 있으니 뭐 하나면 홈으로 들어온다. 그가 국정감사에 출석해서 고관대작들이 여흥을 즐기기 위해 한 짓들을 국방부 수뇌부 앞에서 퍼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현안이 많아 국정감사에 부르지 않는다"는 결정은 여당이 그의 기세에 결국 꼬리를 내린 셈이 되었다. 총선 이후 정치판이라는 게임에서 새누리당은 역전을 허용할 분위기인데 김제동한테 한점을 잃어선 안 된다.


김제동의 지지자들에게 "역시 김제동! 썩은 국방부! 무능한 새누리"라는 카타르시스는 황홀했다. 어쨌든 앞으로도 김제동을 찾는 사람들은 더 그를 찾을 것이다.

 

 

김제동의 실수

 

그렇게 끝났으면 좋았을 테지만, 내야 땅볼과 실책에 3루까지 내달린 것은 누가 봐도 정상적인 플레이는 아니었다. 그는 발을 접질렀다. 누가 수비를 잘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아직 루상에 남아있는 주자가 다리가 성치 않으니 3루에 있다고 해도 큰 근심 하나를 얻고 있는 셈이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달려들면 할 말이 없다'는 말로는 영창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 이는 오히려 '안 갔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 발언이다. 그는 "그게 뭐?" 고작 그걸 가지고 국정감사에 부르겠다는 상대방을 바보로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쓸데없는 말을 또 했다.

 


“15일 이하 군기교육대에 가거나 영창에 가면 원래 기록에 남기지 않는 게 법”


“기록에 남기지 않으니 기록에 없는데 잘못됐다고 저한테 얘기하면 곤란하다. 그 기록은 제가 한 게 아니다”

 


이 말은 실제 영창에 다녀 왔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영창에 다녀왔다고 자신 있게 말했으면 진실을 까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었다. 기껏 멋진 대응으로 좋은 상황을 만들었는데 과욕을 부렸다. 위 발언이 “군기교육대와 영창이 다르냐고 하는데 제가 근무한 사단에서는 사단 군기교육대를 사단 영창이라고도 하고 영창을 군기 교육대라고도 했다”는 전제 하에서 한 말이긴 하지만, 과욕으로 자칫 주루사를 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검찰은 김제동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김제동의 앞날

 

나는 김제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연예인도 정치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김제동의 방송 출연에 외압이 자주 들어온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이회창을 지지하던 개그맨 심현섭을 떠올린다. 물론 그 사람들의 개그감이 예전 같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정치적 이벤트 이후로 그들을 만나는 게 어려워진 것은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사태 이후 김제동의 일갈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 오랜만에 그의 육성을 듣게 되었다. 심히 당황스러웠다. 과거 공중파에서 보던 김제동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독기가 어리고 쇳소리가 났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거친 외침은 사실 조금 위태롭게 느껴졌다. 목소리에 여유가 없으니 북한 핵실험 횟수를 지적하는 모습은 다소 궁색하게 느껴졌다.



네이버 뉴스에서 글로 읽은 "감당할 수 있으면 불러봐라"는 캥기는 것 없는 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런데 실제 동영상 속 김제동에게서는 그렇지 않았다. 나중에 주저앉아 "아이고 또 집에 가서 괜한 소리 했다고…"라며 약한 말을 하는 모습에선 내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김제동이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이 이번 사태에서 내가 가장 슬프게 생각하는 점이다. 차라리 국정감사에 나가서 자기가 본 더러운 꼴들을 폭로하고 군 문화가 개선된다면 긍정적인 효과라도 보겠지만 이건 누구도 별로 얻은 게 없는 헤프닝이다.



진정한 군인

 

내 개인의 군 생활 이야기를 꺼낸 김에 한 가지 더 해 본다. 어느 날 행사가 끝나고 음향장비를 옮기러 간 일이 있다. 처음에 말한 그놈들이 고장 나기 전의 일이다. 군사령부이다 보니 미군들도 자주 들락거렸는데, 평범한 사복을 입은 백인 아저씨 몇몇이 있었다. 내가 무거운 짐을 옮길 때 방해가 될까 봐 허둥지둥 몸을 옮기는 모습이 참 소탈했다. 그중에 한 명이 내게 자기소개를 시작할 때까지는.


영어가 짧은 나는 그 젊은 백인 남성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중간 한 마디는 명확하게 들렸다. "Major General". 우리나라로 따지면 투스타다. 나는 원스타도 포스타도 영어로 뭔지 몰랐고 우연히 아는 유일한 계급이 투스타였다. 투스타는 메이저 제네럴인데 원스타가 마이너 제네럴이 아니라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로 군 생활을 하는 이라면 사단장에 해당하는 투스타를 자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단독 연대나 대대급에서는 대령만 출몰한다고 해도 사전에 모든 미화 작업을 마친 채 병사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감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군대도 아니고 세계 최강 미군의 투스타가 내게 오바마에게 할 것처럼 정중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선임 하나가 말해주기를 내가 장비 옮길 때 허둥대며 피해 준 아저씨는 별이 세 개였다. 기억이 불분명하니 네 개였을 수도 있다. 여튼 두 개보다는 많았다.


군사령관 사모님한테 아줌마라고 해서 영창에 갔다는 말이 군에 대한 모독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 말을 진짜라고 그냥 믿어버리는 이 상황이 당신들에 대한 모독인지, 김제동의 말 자체가 모독인지 분명하게 가를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이 나면 뭘 할 수 있을 것인지 심각하게 의문이 드는 이 나라 군대의 민낯을 볼 때면, 속국이나 다름없는 나라의 징집병에 대해 최강국의 장성이 보여준 정중한 태도가 진정한 강함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무성한그곳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