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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노트7 vs 아이폰7 관전뽀인트를 디빈 게 9월 19일.(지난 기사 링크)  약 한 달 새에 결국 갤럭시노트7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빠르게 단종된 모델임과 동시에, 아마도 가장 시끌벅적했던 모델로 남게 됐다. 갤럭시 브랜드가 망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섞인 전망도 있긴 하다만, 지난 기사의 댓글에도 있듯, 이 나라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과 삼성 걱정이라 했거늘.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힘들거니와, 일어난다 해도 우리네가 그보다 먼저 걱정할 일은 산재해있다.


다만, 싸움구경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아쉽다면 아쉬운 것은, 기대했던 싸움이 너무 싱겁게 끝났다는 것. 기대할 수 있었던 가장 박진감 넘치는 싸움의 형태는, 삼성에서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발화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서 재출시하고, 그간 리콜을 기다렸던 소비자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적 자세’로 서비스를 막 퍼줘서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두터이 쌓아 나가는 와중에, 아이폰 7의 무선 이어폰이 겁나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스마트폰의 사용양태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다주는 거였다. 그렇게 되면 안드로이드와 아이폰 진영이 서로 다른 비교우위를 쌓아나가면서, 양 진영의 빠들이 만수산 드렁칡마냥 얽히고 섥켜 백 년까지 누릴 기세로 싸우는 그런 진풍경이 연출될 수 있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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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측의 공식 공지사항 https://news.samsung.com


하지만 실상은, 언론을 통제하려는 정황이 마구 삐져나옴과 동시에, 재출시한 제품도 연이어 불타오르면서, 이미지와 제품 자체 모두의 신뢰가 떨어져버린 채 TKO로 끝나고 만다. 아직 상대방은 화제의 에어팟이 출시되지 않은, 말하자면 펀치 한 방 제대로 날리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맥빠진 쌈구경꾼은 그 아쉬움을 풀고 싶기 마련이다. 왜 그렇게 어이없이 수건을 던지는 상황이 벌어졌는지 따지고 싶어진다. 출시 직후 역대 가장 많은 칭찬을 들었던 이 모델이, 사용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 왜 그리 허술하게 시장에 나와야 했는가 말이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두루뭉술 하면서도 가장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은 이거다.



"아이폰 7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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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애플스토어의 아이폰 7 첫 구매자

출처 : cnet.com


아이폰 7이 곧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빨리 출시해야 했다든가, 이미 아이폰 7이 팔리고 있기 때문에 더 빨리 재출시를 해야 했다든가. 그렇게 시간에 쫓기다 보니 당연히 허술한 상태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든가. 이러한 생각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암리에 공유하고 있는 생각일게다.


그만큼, 스마트폰에 있어서 애플의 존재감은 크다. 마치 학창시절 ‘우리 동네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애’의 딱지처럼, 온동네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 동네 부모들은 그 아이가 다닌다는 학원, 읽고 있다는 책, 하고 있다는 생활패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들을 레퍼런스로 삼아 자기 집 아이의 교육환경을 구성한다. 수많은 가정들이 같은 컴플렉스에 휩싸이는 셈이다.


이 컴플렉스 속에서, 그 '동네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애'를 이기고 싶은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그 아이가 하는 모든 것에 더해 ‘ 플러스 알파’를 얹어서 강요한다. 자기 아이가 머리나쁜 편은 아니니, 이렇게 더 얹어서 시키면 그 아이를 이길 거라 생각한 채, 그 아이가 5시간을 잔다면 4시간을 재우고, 그 아이가 다니는 학원은 다 보내면서 따로 과외를 시키는 식이다. 갤럭시노트 7이 허술했던 이유에 대해 ‘아이폰 7 때문에’라는 대답을 한다면, 그건 간접적으로 삼성전자가 애플에 대해 이런 형태의 컴플렉스를 지닌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비단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수많은 크고작은 기업들이, 애플의 제품과 애플의 행동을 염두에 둔다. 애플은 현 시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대부분의 제품 분야에서, 수많은 기업들로 하여금 이런 컴플렉스를 만들어내는 게다. 컴퓨터용 OS, 모바일 OS, 데스크탑, 일체형 컴퓨터, 랩탑, 스마트폰, 각종 주변기기들에 이어, 하다못해 제품을 발표하는 방식이나 광고영상이나 제품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까지.


왜, 유독 애플은 손을 대는 곳마다 이런 컴플렉스를 만들어내는가. 쌈구경이 파토난 이 마당에, 이거나 함 디벼보자.




1. 배경 하나 : 서구식 과학적 사고의 특징


이게 갑자기 뭔소리냐. 애플 컴플렉스를 디빈다면서 서구식 과학적 사고의 특징이라니. 제목과 도입부는 미끼에 불과하고 나는 그거슬 냉큼 물어버린 거신가, 생각하시겠지만 이게 다 관련이 있다.


‘과학’이라고 하면 학문분야가 되지만 ‘과학적’이라고 하면 일종의 ‘태도’가 된다. 이 태도는 사실을 찾는 데에 있어 귀납적 추리를 사용하고, 결과를 예상하는 데에 있어 연역적 추리를 사용하는 태도이다. 너무 말이 어려우니 좀 풀어서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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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태도는, 반복적인 현상으로부터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는 그 가설을 검증한다. 그 가설이 맞다면 필연적으로 따라와야만 할 결과가 실제로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벼락은 전기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렇다면 쇠철사를 단 연에 전기가 흐르게 될 것이다’라는 결과를 확인하는 식이다. 그리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분히 확인이 되면 조심스럽게 그 가설을 사실이라고 여긴다. 여기까지는 귀납적인 방식이다.


이제 그 사실로부터 논리적으로 새로운 결과를 예상한다. 즉, 귀납적으로 얻어낸 결론을 연역적으로 활용한다. 벼락이 전기라면, 높은 탑에 뾰족한 금속 침을 세우고, 땅속으로 접지를 시키면 벼락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식이다. 결과를 보고 그 예상이 틀리다면 가설을 의심하고 수정한다. 예상이 맞다면, 그 가설은 더욱더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현대에 벼락이 전기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흔히 말하는 비과학적인 사고나 태도는, 보통 그 시작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직관에 기댄 어떤 가설을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별다른 검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을 그냥 무시한다. 가뭄이 드는 건 신이 노한 것이다. 그 노여움을 풀려면 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런데도 비가 안 오면 제물이 맘에 안 드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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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은, 사실 비과학적 사고를 가장한 정치적 행위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과학적 사고방식은, 동서양 할 거 없이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고, 실제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에 기여해 왔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학문 분야’로써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성을 쌓아온 것은, 아무래도 서양사회에 그 사례가 더 많다.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에 적용한 심리학, 사회의 상호작용에 적용한 사회과학 등등.


그리고 사실, 학문의 이름에 ‘과학’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있지 않더라도, 서양에서 시작된 학문 대부분은 이러한 과학적 사고를 기반에 둔다. 말하자면 ‘경제학’이 그렇다. 시장의 현상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상을 하고, 틀리면 수정하고를 반복한다. 학교에서 배웠던 아담 스미스, 리카르도, 케인즈, 프랑크푸르트학파 등등은 다 이런 ‘틀리면 수정’을 반복한 결과이다.


이런 과학적 사고는, 기업의 경영에도 그대로 확장되어 적용된다. 소위 ‘경영학’이라 불리는 학문분과로 여겨지기도 하고, 꼭 학교나 연구기관이 아니더라도 기업의 경영 방식과 전략에 대한 과학적 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때 유명했던 ‘식스시그마’, ‘Good to Great’과 같은 책들은 모두 기업 경영 사례에 이런 과학적 사고를 적용한 결과다. 즉, 성공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어떤 반복적인 사실을 찾아내고, 그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워서 이를 검증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기업의 장래를 예상하는 식이다. 틀리면 수정하고, 맞으면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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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중요한 것은 이런 사고가 지니는 맹점이다. 과학적 사고만으로는 역사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예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경영 이론들은 대부분 ‘뒷북’이 되는 숙명을 지닌다. 일단 누군가가 어떤 걸로 큰 돈을 벌어 놔야, ‘왜 이 것이 성공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과학적 사고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떼돈을 벌어들여야, 주커버그의 방식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다. 아직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것은, 시도되지 않았으므로 검증할 수 없는, 그저 하나의 가설에 머무를 뿐이다.


자, 이러한 특징을 지니는 사고방식의 팽배. 애플 컴플렉스의 첫번째 배경이다.




2. 배경 둘 : 락스타에 대한 동경


이런 급작스런 전개에 당황하지마시라. 결국은 뻔한 얘기로 귀결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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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우드스탁에서의 지미 헨드릭스


락 음악은 독특한 지위를 지닌다. 분명 음악 장르 중 하나이지만, 역사적인 맥락을 지니기 때문이다. 락 음악은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레드 제플린, 크림 등등 시대적 아이콘을 배출해내며, 가장 인기있는 장르 중 하나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같은 시기, ‘68혁명’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문화/사회적 소용돌이와 함께 성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68혁명과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관계로 기억한다.


80년대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이 혁명적인 사회문화적 소용돌이는 점차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락 음악의 정신은 함께 퇴색된다. 그러다가 90년대에, 68혁명의 주역들이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면서, 이제는 그 기득권층의 퇴색에 반발하는 새로운 세대들이 고개를 들었으나, 이내 새 밀레니엄을 앞두면서 그 고개는 숙여진다. 그리고 같은시기, 커트 코베인은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이슬과 같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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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것부터가 반칙이었던 커트코베인의 눈빛은 아직도 아재 락팬들의 마음을 울린다


이렇게, 사회문화적인 역사적 맥락과 그 흐름을 같이 한 음악 장르는 흔치 않다. 스탠다드 재즈나 컨트리 같은 장르는 다소 제한적인 특정 계층에 어필하는 면이 있고, 최근 대세라고 할 수 있는 힙합이나 EDM은 아무래도 그 역사가 비교적 짧다는 점에서 굵직한 역사적 파도를 함께 탄 경험이 부족하다.


바로 그런면에서, ‘락스타’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힙합스타’, ‘팝스타’, ‘재즈스타’ 같은 말과는 뭔가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락스타는, 새롭고, 강하고, 반항적이고, 기성 기득권에 반대하고, 그러면서도 섹시하고, 멋진 모습으로, 그 시대의 대중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지닌다.


커트 코베인이 떠난 즈음부터, 대중들은 그런 락스타를 만나지 못한다. 메인스트림 락음악은 그저 음악장르로써 팝 시장에 편입돼 버리고, 인디 락 씬은 힙스터들의 전유물이 되거나, 로컬 씬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에 머문다. 가끔씩 삐져나오는 락 뮤지션들도, 대형 매지니먼트사 때문인지 그냥 사람이 원래 그런 거였는지, 한 명의 셀러브리티가 돼 버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90년대의 락스타들의 해체나 은퇴, 또는 이상한 모습으로의 변화를 씁쓸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사실, 락스타를 없앤 건 대중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거칠고 반항적이었던 락스타에게, 더 화려한 것을 요구하고, 더 큰 성공을 기대하고, 그 성공한 모습을 소비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매지니먼트사로 하여금 어떠한 경영 전략을 낳게 된다. 그러한 전략들이 오랜 시간 고도화되면서, 어느 순간 락스타는 반드시 모순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젊은 천재 뮤지션들이 유독 마약이나 알콜 중독으로 요절하는 경우가 많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중의 본능과 이를 이용하는 자본은, 락스타의 멸종상태를 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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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인 Maroon 5의 보컬 애덤 리바인의 광고.

락밴드 보컬이고, 스타이지만, 지금 얘기하고 있는 락스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여전히 락스타를 동경한다. 그 시대의 정신을 대변하면서도 사회적인 성공을 거머쥔 상징. 어른들의 콧방귀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보란듯이 여왕으로 부터 작위를 받는, 그러면서도 뉴스 앵커 앞에서 여전히 다리를 꼬고 앉고서,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싸구려 병맥주를 입대고 마실듯한 그 락스타의 모습을. 그게 실제와 거리가 먼, 멋대로의 환상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리울 뿐이다.


이러한 동경에의 갈증. 애플 컴플렉스의 두번째 배경이다.




3. 시작 : 잡스의 귀환


애플의 1984 광고


스티브잡스와 애플은 분명 시작부터 남다른 냄새를 풍겼다. 70년대 PC의 등장에 한 자리를 차지했던 애플 II부터, 애플 특유의 GUI에서도, 제품의 디자인에서도, 그 유명한 1984년도의 광고에서도, 애플은 '뭔가 다른’ 느낌을 꾸준히 줘왔다. 하지만 어떤 시점 이전의 애플은, 지금의 수식어인 ‘혁신’보다는 ‘반항아’라는 키워드에 어울렸다. 90년대에 들어 MS의 윈도우와 오피스가 국제 표준처럼 되어버리면서, 애플은 예술가나 디자이너, 혹은 그러한 삶의 모습을 동경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굳이 다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떤 특정한 면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그런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의 이미지였다. 말하자면 동네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애가 아니라, 전체 성적은 별거 없는데 유독 국어성적만큼은 한번도 전교1등을 놓치지 않는, 그런 아이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자본주의 시대의 주주들은 극성맞은 부모와도 같아서, 이렇게 한 과목만 유독 잘하는 아이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그나마 국어성적마저 떨어진 1985년도에 그렇게 잡스는 쫓겨났고, 갈피를 잃은 제품전략으로 애플은 국어마저도 못하는 아이가 돼 버린다.


쫓겨난 잡스는 그 특유의 ‘뭔가 다른’ 이미지를 더욱더 두텁게 쌓았다. NeXT를 설립해서 상업적으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GUI와 객체지향적 프로그래밍의 성장에 굵직한 기여를 한다. 또한, 소 뒷걸음질이냐 아니냐 말이 많긴 하지만, 어쨌든 PIXAR를 인수했고 그 이후 발표한 토이스토리는 대박이 났다. 이러한 12년간의 행보는, 그의 복귀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기 충분했다.


결국 12년만인 97년도에, 잡스는 다시 애플에 복귀한다. 자신에 대한 시장과 대중의 기대감을 모두 알고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는지, 잡스는 복귀와 거의 동시에 그 유명한 ‘Think Different’ 캠페인을 시작한다.



이 광고는, 사람들이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해 갖고 있던 그 ‘뭔가 다른’ 이미지를 스스로 정의해낸다. 아인슈타인, 밥 딜런, 마틴 루터 킹, 리처드 브랜슨, 존 레논, 아멜리아 에어하트, 알프레드 히치콕, 피카소,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적 한 획을 그었으면서, 동시에 일관적인 ‘뭔가 다른’ 그 느낌을 지닌 인물들을 활용한다. 그들에 대해 미치광이, 부적응자, 반항아 같은 수식어를 붙이면서 막강한 펀치라인을 내민다.


(전략) But the only thing you can't do is ignore them. Because they change things. (후략)


(이 사람들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뭐든 할 수 있지만, )단 하나는 할 수 없다. 그것은 이들을 무시하는 것. 이들이 뭔가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의 메시지는, 스티브 잡스가 스스로의 존재감을 정의함과 동시에, 숱한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애플 제품의 어떤 특정 기능을 사용해야했던 소수의 소비자들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신호이기도 했다. 동시에, 아직 애플 컴퓨터를 쓰고 있지는 않지만, 자기 스스로를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능도 수행한다.


이 캠페인은 1984광고부터 애플의 굵직한 캠페인을 함께한 유명 마케팅 에이전시 TBWA와의 합작으로, 이후 Get a Mac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애플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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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a Mac 광고 시리즈

인사말은 “Hello I’m a Mac. And I’m a PC.”


잡스의 복귀 이후 이어진 광고 캠페인들은 대체로 큰 성공을 거둔다. 대중들과 업계에도 ‘역시 잡스’라는 느낌을 주면서, 잡스와 애플의 이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구성한다. 경영자의 이미지와 제품의 이미지, 그리고 그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이미지, 여기에 그 제품 광고의 메시지가 모두 일치하게 된 셈이다. 이러한 앙상블은, 이후 새로운 제품의 기획, 그 제품의 타겟 설정, 그리고 그 제품의 광고 전략이 계속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낳기 때문에, 그 이미지는 점차 두텁게 강화된다. 그렇게 근 20년간 애플은, 반항아, 미치광이, 뭔가 다른 사람, 주머니에서 삐져나오는 송곳, 그러면서 뭔가 새로운 걸 추구하고, 뭔가를 바꿔나가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존재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이런 이미지만으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는 못한다. 동네에서 제일 잘나가는 날라리 아이는 동네 부모들의 눈총을 받을지언정, 덜 잘나가는 날라리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아이의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을 추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 아이가 다른 모든 모범생들을 제치고 동네에서 공부를 제일 잘해버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4. 반란 : ‘숫자’


애플의 설립 이후 잡스가 12년 만에 돌아와 Think Different 캠페인을 성공시키는 과정은,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로 치면 Bleach 앨범 활동을 하면서 상업화된 락 씬의 새로운 기대주가 되어가던 시기에 빗댈 수 있다. 애플의 제품들은, PC답지 않은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긴 하지만, 아직은 ‘소수를 위한 특이한’ 제품에 머물러 있는 상태. 동네 어른들의 추종을 이끌어내려면 ‘성적’이 필요하듯, 경영 이론가들의 눈을 뒤집으려면 ‘숫자’가 필요했다.


그 숫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는 잡스 복귀 이후 꾸준히 쌓여왔지만, 그 토대가 수면 위로 올라온 한 해를 꼽으라면 2005년도를 꼽을 수 있다. 그 해에 애플에서는 2번의 이벤트를 연다. 6월의 WWDC(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그리고 9월의 미디어 이벤트. 6월에는 애플이 고집하던 자체 프로세서 PPC의 마지막을 알리면서, 인텔 맥의 시대를 선포했다. 그리고 9월에는, 잡스의 청바지 티켓주머니에서 아이팟 나노를 처음 꺼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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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WWDC, 인텔 기반 CPU로의 전환을 발표하는 스티브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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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미디어이벤트, 아이팟 나노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는 스티브잡스


본격적인 애플의 성장 기원을 어디로 보느냐는 분명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그 중 유독 2005년의 이 두가지 발표내용을 그 시발점을 삼는 이유는 단순하다. 애플이 보여준 이미지는 늘 꾸준했더라도, 이 한 회사가 보여준 ‘숫자’의 변화는 바로 이 두가지 발표내용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우선 인텔 맥부터 보자. 이전 애플의 맥 시리즈는 PPC(Power PC RISC) 기반 칩셋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윈도우 기반 PC들이 인텔 x86 기반 칩셋을 사용한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 말하자면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처럼 전혀 다른 기계에서 전혀 다른 OS를 구동시켰던 셈이다. 하지만 2005년에 발표한 인텔 맥은, 앞으로 애플의 맥 시리즈에서도 인텔의 x86 기반 칩셋을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윈도우 PC와 애플 제품의 하드웨어적 차이점이 매우 적어진 게다.


이는 디테일하게 파고들자면 매우 다양한 차이점을 만들어내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뚜렷한 2가지 차이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윈도우 PC와 새로운 맥의 사양을 있는 그대로 비교할 수 있게 됐다는 점. 두 번째 차이점은, 맥북에서 윈도우를 실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의미하는 바는, 이제 윈도우용 PC제품과 애플의 맥 시리즈가 동등한 차원에서의 비교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애플 스스로가 제공한 ‘부트캠프(BootCamp)’라는 기능이나, 가상머신 서비스들을 사용하면, 일반인들도 정식으로 한 PC에서 윈도우와 맥OS를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시장에 출시돼 있는 수많은 PC들과 같은 칩셋을 사용했으므로 사양을 비교하기가 용이해졌다.


이렇게 되면, 비슷한 가격에 비슷한 성능을 보이는 두 제품 중, ‘하나는 맥OS를 쓸 수 없고 다른 하나는 윈도우와 맥OS를 모두 쓸 수 있다.’는 식의 비교가 성립된다. 전혀 별개의 시장을 구성하던 제품군이, 주류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결국 이는, 맥 시리즈의 사용자층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2006년에 출시된 맥프로, 아이맥, 맥북 라인업은, 이후 맥 시리즈의 판매량 증가의 기반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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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복귀 이후 맥의 판매량

2006년 이후, 이전과는 구분되는 상승곡선을 그린다

출처 SixColors


아이팟 나노 역시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전에 발표된 아이팟(이후의 아이팟 클래식), 그리고 아이팟 미니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지만, 이 제품들은 당시 판매되던 mp3플레이어에 비해, 비교적 높은 사양과 비싼 가격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2005년에 발표된 아이팟 나노는 아이팟 특유의 터치휠을 그대로 계승한 채, 크기나 디자인면에서 독보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1GB 용량 최저사양 모델 가격이 $149로 책정됐다. 당시 1GB 용량의 타사 제품들 중 3~40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있었고, 1GB에 10만원대인 다른 제품들에 비해 뛰어나게 유려했던 디자인으로, 아이팟 나노는 충격적인 가성비로 시장의 판도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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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별 아이팟 판매량

2005년 4분기부터 갑툭튀하는 판매량을 볼 수 있다


마치 너바나의 Never Mind 앨범에서 Smells Like Teen Spirit이 첫 싱글컷으로 출시된 것처럼, 애플은 메인스트림 시장에 굵직한 발자국을 내기 시작했다. 인텔맥을 통해 새로이 등장한 맥북, 아이맥, 맥프로는 각각 고유한 포지션을 확실히 하면서, 오히려 다른 PC 제조사들의 제품 트렌드에 영향을 끼친다. 아이팟 나노가 한국, 일본 등의 mp3 플레이어 제조사들을 압살하다시피 하면서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재편해버린다.


그리고, Never Mind 앨범이, 커트코베인을 락스타로 만들어버리듯,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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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이폰 키노트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애플 컴플렉스 하나 : 외양


아이폰 등장 이후 애플의 활약상은, 굳이 따로 쓸 필요가 없겠다. 한 마디로, 기존의 주류시장에 발을 디딘 수준을 넘어서, 한 시대의 주류 시장을 개척하는 데에 이르렀다. 97년도 잡스의 복귀와 함께 Think Different 캠페인을 통해 ‘우리는 같은 편이야’라는 메시지를 받았던 대중들은, 끝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반항아가 결국 주류 기득권을 재편해내는, 락스타의 재림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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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의 경영자가, 마치 연예인처럼 뉴발란스 99X 시리즈와 리바이스 501에 패션 상징성을 부여한다. 존 레논의 신곡 가사와 인터뷰 어록처럼, 잡스의 어록과 애플 제품 카피문구가 회자된다. 락스타의 투어를 기다리듯, 애플의 신제품 발표 이벤트를 기다리며, 공연장에 줄을 서듯, 애플 스토어 앞에 밤을 지새우며 줄을 선다. 이에 반응하듯, 애플은 앞서 언급한 Get a Mac 광고 캠페인과 키노트에서의 경쟁제품 깎아내리기로, 기성 제품과 문화를 ‘고리타분한 것’으로 만들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건 이런 게 아니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애플의 이러한 낯선 태도를 기성 기업들이 비난하고 깎아내릴 수록, 애플이라는 락스타의 팬들은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고 팬심을 더해만 간다. 그렇게, 애플의 철옹성이 높이 쌓아올려진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과 소비자층의 관계를 뛰어 넘는다. 애플의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충성도는 기존 전자제품의 영역이 아니라, 락스타-팬 간의 관계에 가까워지고, 매년 발표되는 신제품은 마치 매년 발표되는 새 앨범과도 같은 현상을 낳는다. 이 것이 단순하게 문화적 현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매출 성장곡선으로 이어진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기업 경영 이론가들이 가설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가설은 몇 해에 거쳐 검증될 기회를 갖는다.


바로 이 과정에서, 잡스와 애플의 특징들은 체계화된다. CEO가 직접 무대에 올라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의 키노트는 사용자에게 높은 신뢰를 준다든가, 디자인의 부분적 요소들의 기능이 아닌 전반적 경험을 중심으로 제품을 구성하는 사용자경험론(UX, User eXperience), 제품 자체를 부각시키는 광고방식, 잡스가 주로 사용하는 awesome, breath-taking과 같은 수사적 단어의 사용이 주는 직관성, 팟캐스트/아이튠스 스토어/앱스토어와 같은 생태계(Eco System)의 조성 등등.


이 체계화된 정보들은 곧바로 ‘이렇게 하면 돈을 잘 번다’는 가설을 구성하고, 아이폰, 아이패드, 맥 시리즈의 꾸준한 성공으로 인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면, 다른 기업들은 그 기법을 활용한다. 이제 CEO가 직접 제품을 발표하는 키노트는 IT 업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계의 기업들 사이의 유행이 된다. UX는 제품 기획의 필수요소가 됐고, 잡스가 쓰는 단어나 네이밍 방식은 유행어처럼 번진다. 스토어를 내재화하는 에코 시스템 형성 전략이 범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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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레퍼런스가 분명한, 중국 샤오미사의 제품 발표 이벤트


이러한 분석 속에서, 애플은 거의 10년 가까이, 출시하는 대부분의 제품들이, 단일 모델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의 지위를 얻는다. 또한, 다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인 재구매율을 기록하기도 한다. 결국 2011년 8월 11일, 애플은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이 된다. 반항아, 부적응자, 미치광이의 상징인 회사가 명실공히 세계 1위의 타이틀을 거머쥔, 국어만 잘하고 춤추고 머리 물들이던 날라리가 세계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과 같이, 객관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한 획이 그어져버린 것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락스타의 탄생이다. 애플 컴플렉스가 동네 수준을 넘어 전세계 산업으로 확장되었음이 증명된 순간이다. 소수의 반항적 정체성이, IT 업계나 비즈니스의 세계를 넘어 육아나 교육, 일상생활에서도 모두에게 강요되는 진풍경을 낳는다.


이러한 신드롬을 뒤로한 채 이 락스타의 리더는, 세계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지 2달을 채 채우지 못하고, 2011년 10월 5일, 가장 화려한 박수 속에서 홀연히 세상을 떠난다.




6. 애플 컴플렉스 둘 :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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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타계일, 애플 공식 홈페이지


잡스가 췌장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건 이미 오래전이었다. 행여 그 사실이 알려져있지 않았더라도, 2011년도에 부쩍 수척해진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건강의 문제를 인지할 수 있었다.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는, 이미 잡스가 타계하기 이전부터 그의 사후 애플의 행보에 수없이 많은 추측을 낳는다. 잡스 특유의 존재감이 워낙 크기 때문에, 비관적인 추측이 우세를 이룬다. 실제로, 2013년도에 애플은 10년만에 처음으로 순이익이 11% 감소하는 결과를 맞는다. 애플의 주가 역시, 2012년 9월부터 2013년 중반까지 급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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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주가 변동

2005년 이후 보이던 무서운 성장세가 꺾인 건 2012년


리더가 떠난 락밴드는 이전의 이미지를 완전히 이어가진 못한다. ‘혁신은 끝났다’는 수식어는 애플의 거의 모든 제품 발표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됐고, 팀 쿡-필 쉴러-크레이그 페더리기-조나단 아이브-에디 큐-제프 윌리암스 등 임원들이 키노트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스티브 잡스식 키노트를 흉내내는 다른 기업들의 중역들과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애플은 2014년부터 다시 기존의 성장곡선을 잇는 영업이익을 보이고, 주가 역시 다시 상승한다. 2013년 발표한 신형 맥 프로나, 신형 맥북은 스티브 잡스식 제품 철학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형태였다. 게다가 20% 후반대에서 30%를 넘나드는 애플 특유의 영업이익률은,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온다.


이렇게, 잡스 없이 쓰러지는 줄 알았던 애플이 보인 2014년도의 재기는, 호사가들에겐 놀라운 일이었지만 꾸준히 연구를 이어온 기업 경영 이론가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2005년도부터 시작된 애플의 반란은, 그 드라마틱했던 외양만큼이나 내면에서의 변화도 남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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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O(최고 디자인 책임자) 조나단 아이브가 직접 보여주는 맥북 에어의 유니바디


애플은 앞서 언급한 2005년을 기점으로, 대외적인 제품전략 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생산관리체계 자체를 개선한다. 팀 쿡이 이끈 이 개선작업은, 결국 2007년도에 SCM(공급망 관리) 효율성 세계 2위, 이후 현재까지 넘사벽 1위를 유지하게 한다. 이 애플 특유의 생산관리체계는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일단 애플 제품의 한 세대 모델은 세계적으로 수백 수천만대씩 팔려나간다. 고등학교에서도 배우는 ‘규모의 경제’ 이론을 대충만 들이대봐도, 수만대에서 수십만대 정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다른 제조사들에 비해 대당 제조원가가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절감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한 세대의 모델 종류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애플은 금형이나 부품의 호환성에 대해 다른 기업에 비해 매우 자유롭다. 이 자유도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애플 특유의 ‘유니바디’라는, 최소한의 금형으로 제품을 구성하는 과감한 시도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유니바디는 제조효율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디자인이나 성능면에서의 진입장벽을 쌓아올린다. 애플 정도로 팔아재낄 배짱이 있지 않으면 이런 유니바디 방식의 금형은 원가가 지나치게 비싸지기 때문에 어지간한 중소기업은 흉내내기 힘들다. 하물며 대기업들도 대부분은 제조하는 제품들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기 힘들다. 그래서, 유니바디 맥북이 출시된 지 10년이 지났고 그 이점이 명백하지만, 비슷한 방식의 유니바디 방식을 적용한 제품은 제한적이며 최근에 들어서야 종류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동안 소비자들의 눈은 높아져만 가고, 전자제품에 이음새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단점으로 여겨진다.


또한 애플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사실상 스마트폰-태블릿-스마트워치를 한 묶음으로, 맥 제품군을 또 하나의 묶음으로 볼 수 있고, 이 같은 묶음 내에서 사용하는 부품들은 상당부분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부품을 주문 할 때에 천문학적인 수량의 주문이 가능하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부품 개당 단가는 줄어든다. 항간에는 농담스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공급받는 부품 가격보다, 애플이 공급받는 가격이  더 싸다는 말이 돌 정도. 이에 더해 해외 공장에서의 노동착취 문제를, 본사 차원에서 회피할 수 있는 구조를 미리 확립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지만 재무적으로나 법적인 리스크를 사전에 제거한다.


이에 더해, 단순히 부품을 공급받는 게 아니라 라이센스가 필요한 핵심 부품은 애플이 자체적으로 개발한다. 아이폰의 핵심인 A 프로세서, 왓치에 들어가는 S 프로세서, 곧 출시될 에어팟에 들어가는 W 프로세서는 모두 애플에서 연구개발한 제품이다. 이렇게 핵심 프로세서를 독자적으로 설계하는 경우, 프로세서 라이센스비를 지불해야하는 대부분의 경쟁사들과 원가에서의 차이가 발생함과 동시에, 경쟁사에서는 제공할 수 없는 기능을 독점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애플은 모든 제품의 운영체제를 스스로 개발한다. 전 세계 수도 없이 많은 단말기들과의 호환성을 고려해야하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와는 달리, iOS는 오직 애플에서 만든 기기에서만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에 걸치게 되는 수많은 기능들이 애플에서만 제공 가능한 진입장벽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아이폰, 애플왓치, 맥북 등에서 사용되는 포스터치나, 아이패드 프로의 애플 펜슬 같은 경우, OS레벨에서 이 기능들을 직접 받아준다. 경쟁사에서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려할 경우 서로 다른 회사와 공동개발을 하거나, OS레벨이 아닌 별도의 인터페이스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경험하는 작동성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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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포스터치 트랙패드

윈도우 랩탑에 붙여봤자 같은 성능을 내려면 더 많은 개발자를 갈아넣어야한다


이러한 애플 특유의 생산관리체계는, 2007~2008년도만 해도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의 얘깃거리 정도였지만, 2010년이 넘어 아이폰이 완전히 스마트폰 업계를 뒤흔든 이후부터는 수많은 경영 이론가들의 필수상식이 된다. 그렇다면, 잡스의 키노트나 어록을 따라하듯, 이러한 생산관리체계 자체가 유행이 되었어야 했겠다. 하지만, 소수의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이 특유의 체계를 따라해보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체계 자체가 연속적인 대히트를 기반으로 수년간 켜켜이 쌓아올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직관적으로 축약하자면, ‘애플이니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플이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는 소리다. 이제와서 누군가가, 세계적으로 수천만대 이상 판매될거라는 가정하에, OS와 하드웨어를 모두 연구개발해서 부품을 대량 공급받고 유니바디 생산공정을 만들기 위해 수조원의 자금을 투자받으려 한다면, 그 계획이 아무리 확실하다 한들 투자받을 가능성이 없다. 그 사람은 그런 복합적인 연구개발/생산/영업/마케팅/판매를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는 회사는, 아직까지 애플밖에 없다.


국어만 잘하던 날라리가, 춤추고 머리에 물들이고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니더니, 어느 순간 세계 레벨의 1등 학생이 되었고, 이에 전세계 학부모들이 이 아이의 모든 것을 파해쳤더니, 결국 그 아이의 공부 비결은 ‘그 아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 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되면 극성 부모들은 허탈과 분노에 휩싸이며, 자식에게 해선 안될 말을 던진다.


넌 왜 그 모양이냐고. 왜 그 아이가 아니냐고.


실상 모든 아이들은, 부모의 유전자를 반반씩 받을 뿐인데 말이다.




7. 마무리 : 남겨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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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부모들이 그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했던 아이가, 사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아이로 결정나고나면, 이를 좇던 학부모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그래, 우리 애는 우리 애니까, 라고 생각하고 나름의 교육열을 불사르거나, 끝까지 이기고야 말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거나.


전자의 좋은 예로, 잡스 이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CEO들 중 2명인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와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를 들 수 있다. 마크 주커버그는 스티브 잡스 생전에도 ‘제 2의 잡스’라는 수식을 받았어서인지, ‘특이하다’는 사실 자체를 제외하면 사업 전략이나 행보에서 나름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역시 잡스 생전에도 나름의 캐릭터로 유명했던 엘론 머스크는, 특유의 마구 내지르는 첨단 산업의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오히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와 더 자주 비교되는 입지를 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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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론 머스크의 발표장면. 절대 유려하다고는 할 수 없는 언변도 언변이지만, 저 3단 분할 키노트는 애플 따라쟁이 일변도인 제품 발표들 안에서 나름의 특징을 쌓아가고 있다. 특히 사진의 2015년  Powerwall 발표는, 잡스식 키노트와 일반적인 프레젠테이션 기법을 적절히 계승하여 발전시켰다는 호평을 받는다.)


또한 중국 기업들의 약진도 나름의 영역을 개척한다. 애플과 같이 내재적인 역량을 기반으로 하진 않았더라도, 중국 특유의 국가적 산업 구조 특성과 내수시장의 규모 등 부분적으로 애플의 생산체계의 기반이 된 특성들을 재구성할 수 있는 환경을 활용함으로써, 다른 국가의 기업들이 따라하기 어려운 전략을 수립 중인 게다. 이로 인해 대규모 자본이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투자되고 있고,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IoT, VR 등의 신산업은 점차 그 중심이 중국쪽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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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I사의 신제품 드론 Mavic. DJI는 중국 기업이지만 세콰이어, 악셀파트너스와 같은 유명 미국 투자자본의 투자를 받았다. 사진의 Mavic은 미국 기업인 GoPro의 경쟁품 출시 직후 발표되어, 거의 모든면의 성능을 압도하면서 GoPro를 실의에 빠지게 했다. 사진 출처는 Verge)


이렇게, 애플 컴플렉스는 서서히, 경영 기법의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나가는 셈이다. 사회의 모든 면은 변증법적인 발전을 해 나가듯, 반(反)이었던 애플의 전략이 어느덧 합(合)을 이뤄 새로운 정(正)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 물론 애플식 전략의 핵심은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들이 따라할 수 없는, 절대적 양의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다소 힘빠지는 측면이 있지만, 반대로 애플의 외양적 특징들은 수많은 스타트업들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되는 중이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끝내 이기고 말겠다’는 태도의 학부모들이다. 이자식의 미래나 가족의 행복한 삶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저 우리 아이가 그 아이를 이기는 꼴을 봐야만 속이 풀린다는 식의 고집으로 뭉친 케이스 말이다. 그런 태도는 결국 이기기라도 할지 불투명할 뿐더러, 이겨낸다 한들, 아이에게든 그 학부모 본인들에게든, 나아가 그 누구에게든 아무런 보탬이 될 리 만무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 2016년 현재 국내 산업 전반은 다방면에서의 큰 위협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나라 꼴도 엉망이거니와, 그동안 묵과해오던 국내 기업문화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고개를 들고 있으며, 중국 기업들은 치고 올라오고 그나마 한국 기업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미국 시장마저 중국 및 미국 자체 기업들에게 뺏기는 중이다. 흔히 말하는 ‘국가경쟁력’이 끝도 모르게 추락하는 판이다.


이런 시국에, 그 오랜 세월동안 ‘낙수효과’라는 미신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덩치를 키워온 대기업들이 국가 기반을 이끌어주는 건 기대도 안 한다만, 그나마 하던 일도 제대로 못하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는 건 국민이자 소비자로서 졸라게 열받을 일이다. 숨가쁘게 발전하는 산업계에서는 이미 ‘잡스식 경영’, ‘애플식 전략’은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고전이 되어간다. 애플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이 아니라, 애플식 패러다임 마저도 곧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갈 기세다. 이 와중에 우리네 대기업들을 보자니, 떠밀려오는 서양 문물에 어쩔줄을 몰라하던 조선 말 양반네들을 다시 보는 듯한 것이, 찜질방에서 고구마 삼만톤은 물없이 삼키는 심정인 터.


이 답답함으로 두서없이 긴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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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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