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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0.25%다. 그나마 작년에 한번 올라서 이 정도고, 오랫동안 제로금리였다. 옵션시장 기준 66%의 확률로 미국 연준이 올해 한 차례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하는데, 올린다고 하더라도 0.5% 수준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낮은 금리를 유지했고, 우리나라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 질문, 9년전 미국의 기준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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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25%이다.


차이가 와 닿지 않는다면 이자를 계산해보라. 2007년엔 1억을 넣어두면 1년에 525만 원이 이자로 나왔는데, 이제는 25만 원이 나온다. 이는 동시에 돈 빌리기는 쉬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기준금리 전체 역사를 놓고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초저금리 시대’가 얼마나 예외적인 상황이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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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가 19% 수준이던 80년대는 빼고, 지난 50년을 놓고 봤을 때 기준금리는 5%를 상회했다. 지금과 같이 초저금리가 장기화된 건 전무후무하다.


금리가 낮은 게 좋은 걸까? 대부분의 경제문제가 그렇듯 일부에겐 좋을 수도 있고, 일부에겐 나쁠 수도 있다.


금리가 이렇게 낮으면, 이론 상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의 가격은 올라간다.


현금흐름을 발생시키는 모든 자산의 현재가치는 아래의 공식으로 계산할 수 있는데, 분자에는 미래에 창출된 현금흐름이, 분모에는 이를 현재가치로 환산하기 위한 이자율이 포함된다. 기준금리가 내려가서 이자율이 떨어지면 분모가 감소하여 현재가치, 즉 자산의 가격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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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주식을 예로 들어보자. 주식을 산다는 건 위험을 감수하고 그 회사가 벌어다줄 미래수익에 배팅을 하는 행위다. 그 회사 실적이 나빠질 위험, 그 회사가 망할 위험 등 온갖 리스크를 다 감수해야 한다. 당연히 은행에 넣어두는 것보다는 훨씬 위험하다.


현대 투자이론에서 ‘수익’은 투자로 얻는 리스크에 대한 보상이다. 따라서 은행금리가 5%고 기대되는 수익도 5%라면 주식을 살 사람은 없다.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만약 주식은 매년 5% 오르는데(S&P500 지수는 지난 100년 간 연평균 6%에서 8%씩 꾸준히 올랐다. 기준금리보다는 항상 수익율이 높았단 소리다), 은행에 넣어봐야 받는 이자는 0.25%라면? 이자율이 5%였을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주식을 살 거다. 주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주식의 가격도 올라간다.


같은 논리로 더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시장에도 투자한다. 이자가 낮을 땐 월세내는 것보다 빚내서 내 집사는 게 저렴할 테니까. 혹은 남는 목돈으로 아파트 한 채 더 사서 월세를 받으려고 할 수도 있다.


자산가격이 올라가면 다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투기자본의 유입으로 급격하게 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건 일종의 거품이라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다시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것도 때론 아주 급격하게. 아파트 100채 씩 산 사람들은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은행이자는 어떻게 내나? 못 견디고 파산하면 투기를 기대하고 매입한 매물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고, 급매물이 몰리면 순식간에 부동산 가격 전체가 내려앉을 수도 있다.


투기 심리를 유도하기 때문에 기준금리가 장시간 낮은 것은 경제에 좋지 않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을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의 붕괴로 주식시장이 폭락했을 때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지나치게 오래 낮췄던 데서 찾는 분석가가 많다.
 

꼭 투자를 하는 사람들만 영향을 받는 건 아니다. 당장 은퇴를 고민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생각해보자. 5% 금리를 생각하고 은퇴를 준비했던 사람들은 예전처럼 은행에만 돈을 넣어둬서는 (이자 소득이 매우 낮기 때문에) 생활하기가 어렵다. 이들의 연금 대부분도 금융자산에 묶여있는데, 이자율이 낮은 시장에서는 과거처럼 국채나 CD같은 안전한 상품만 사가지고는 늘어나는 연금지급액을 마련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위험을 감수하고 지금의 도박판에 끼던지, 아니면 낮은 이자수익을 받아들여야 한다.


저금리 정책에 대해, ‘은퇴자들의 노후자금에서 돈 빼다가 금융시장과 부동산에 투기하는 투자자들의 배를 불려주는 거’란 비판이 인다. 미 대선토론회에서 공화당 측 대선후보 도날드 트럼프는 연준의 저금리정책을 오바마 정권을 보조하기위한 정치적인 처사였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연준이 안 올리려고 안 올린 게 아니다. 못 올린 부분도 있다. 애초의 기준금리를 5%를 순식간에 제로를 만든 것 자체가 2008년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고, 이후로도 경제지표가 더디게 올라갔기 때문에 연준은 기준금리를 제자리로 올리지 못했다.


실제로 금융시장은 기준금리 인상설이 돌 때마다 크게 요동쳤다. 인플레이션과 같은 수치가 제대로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지나치게 빨리 기준금리를 올리다가는 경기침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유럽이 기준금리를 한번 올렸다가 되돌린 적이 있다).


게다가 미국을 제외한 유럽, 일본 등은 오래된 경제침체로 인해 기준금리를 추가인하,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인상이라는 역주행을 했다간, 전 세계 자금이 안전하고 금리도 많이 주는 미국으로 지나치게 몰릴 거다.
 

장기화된 저금리 문제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다달이 착실하게 저축만 하는 사람들은 저금리 시대에 호구되기 십상이다. 적금 들어봐야 이자도 제대로 안주는데다가, 투기가 극성을 부려서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집도 없다.


2. 은퇴 생활자 역시 모아둔 돈으로, 안전한 국채나 사서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익을 얻기 힘들다. 또한 이들에게 돈을 줘야하는 연기금과 보험 등은 저금리로 인해 기존의 안정적인 이자수입을 얻기 힘들어 매우 부실해진다.


3.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로 투기자본이 결국 금융시장‧자본시장에 유입, 경제 거품을 만든다.


4. 발생한 거품이 붕괴 되서 경기침체가 찾아왔을 때,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2008년도에 경제위기가 터졌을 때 연준은 기준금리를 5% 이상 빠르게 깎았다. 시장의 자산을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감행, 마치 가뭄 속에 수문이 열리듯 시장에 유동성을 불어넣었고, 빠르게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깎을 금리가 없다는 점이다. 예외적으로 일본과 유럽이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하는 새로운 실험을 했지만, 0.25%에서 기준금리를 4% 내려서 기준금리가 -3.75%가 된다면 어떨까? 은행은 마이너스 이자인 보관료를 받을 거다.


이런 통화정책을 취하는 의도는 놀고 있는 돈, 즉 저축에 일종의 징벌을 가함으로써 소비나 투자 등의 지출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경기침체 때 더 많은 돈이 투자로 몰려야 경제성장이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각 개인들은?


불행히도, 개인은 절대 투자를 할 리가 없다. 요즘은 경제성장 자체가 둔화되는 추세인데다가,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가 평생 동안 모은 돈으로 소비나 투자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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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예금자들은 예금을 빼서 100달러 짜리 지폐로 바꾸고 집안 금고에다가 넣을 거다. 합리적인 개인은 마이너스 금리에서 비싼 보관료를 내가며 은행에 돈을 넣을 리가 없다. 또, 무한정 대출을 받아서 빌린 돈만큼 마이너스 이자를 받아먹음과 동시에 현금과 금에 투기를 하는 왜곡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기준금리를 낮추면 고용과 성장을 늘어난다는 기존의 경제학적 지식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거다.


지난 8월 캔터키 연준이 주최한 경제학 정책회의인 잭슨홀미팅에서 ‘다음 경제위기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낮은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높일 수도 없는 현재의 경제환경에서 과연 중앙은행들은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경제 분야 최고 석학들과 연준의장을 비롯한 최고결정권자들이 토론을 하였다.


이렇다할 결론이 나오지도,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지도 못한 회의였지만(성격상 해결책을 찾는 것보다는 전 세계 경제문제 의사결정자들을 한곳에 모아 토론을 한다는 자체가 더 의미있다), 한 가지 명확해졌다. 최소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여전히 통화정책에 의한 경제위기 극복이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글이 조금 길어진 관계로 여기서 맺겠다. 다음 편에서는 통화정책이 발달하게 된 역사와 앞으로 바뀌어나갈 미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씻퐈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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