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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 저금리 시대와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어쩔 수 없이 저금리를 유지한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경제성장률이 낮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명제로부터 두 가지 질문을 떠올려보겠다.


첫째, 왜 경제성장률은 낮은가
둘째, 그런 상황에서 왜 기준금리는 낮게 유지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통해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더 풀어보겠다.


먼저 첫 번째 질문. 낮은 경제성장률에 대해선 이전에 살펴본 적이 있다.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거시적인 크레딧 사이클을 통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경제활동에서 크레딧, 즉 ‘빚’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크레딧은 더 많은 소비를 가능하게 하고, 소비가 늘어나면 더 많이 생산한다. 생산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일자리가 늘고, 소비자들의 소비능력은 더더욱 늘어나 또 생산능력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이어진다. 경제성장기 때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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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렇게 이어져온 거시적 크레딧 사이클의 방향이 반대로 갈 때다. 크레딧이 지나치게 빨리 늘어나면, 소비보다 생산능력이 훨씬 빠르게 늘어나 과잉생산된다. 과잉생산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준다. 재고가 많기 때문에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실직자가 발생한다. 실직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가계의 수입은 줄고, 이는 소비감소로 이어져 더 큰 생산 감소로 이어진다.


레이 달리오 등에 따르면, 거시적 크레딧 사이클은 70년에서 100년 주기로 이어지는데,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거품이 꺼졌던 게 1920년대 대공황이었다. 이후 경제는 회복기를 거쳐 꾸준히 성장해왔으나 2008년도 서브프라임 사태를 기점으로 하락주기로 접어들었다. 거시적 사이클 안에는 10년 단위의 소규모 사이클이 존재하는 바, 2008년 이후 주식 등을 비롯한 금융자산이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이나, 일시적인 반등일 뿐 경제는 하락기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소비심리나 투자심리가 이미 얼어붙었으므로, 크레딧이 감소하는 시기에는 아무리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기업들은 직접투자나 일자리를 늘리지 않고, 가계 역시 적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금리가 아무리 내려가도 돈을 빌려 투자하기보다 현금을 쌓아둘 뿐 기업은 생산을 늘리지 않는다. 근본적인 경제 자체는 성장하지 않고 금융자산에 버블이 생길뿐이다. 대공황급 폭락을 앞두고 실물경제 자체는 계속해서 얼어붙는 세기말적 상황이 이어진다는 게 그의 관측이다.


여기에는 기술의 발전도 한몫을 하고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인공지능과 IT관련 분야에 기업들이 많은 투자를 하지만, 이 분야는 제조업 등에 비하면 훨씬 적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구글차가 전면 도입되면 많은 운송업 일자리들이 줄 것이고, 이미 딥러닝을 탑재한 인공지능은 대부분의 사무직을 대체할 능력을 갖췄다.


이런 일이 인류역사의 처음 있었던 건 아니다. 산업화 시기, 수많은 수공예 공방들이 자동화된 공장으로 대체되어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이들은 서비스 직군으로 흡수될 수 있었다. 지금의 IT혁명 역시 당장은 일자리를 많이 앗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 인간 본연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새로운 직군이 생겨서, 노동구조가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적인 예측으로, 그렇게 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아예 새로운 가치가 정립될 지 모른다. 문제는 지금 과도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갑작스런 기술발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고, 당장 일자리를 잃고 나앉게 생겼다는 거다.


크레딧 사이클, 기술의 발전 등으로 경제위기가 닥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두 번째 질문과 맞닿아있다.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일차적으로 나설 조직이 연준을 위시한 각국의 중앙은행이기 때문이다. 저금리와 같은 금리 정책은 가장 강력하게 국가가 거시경제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통화정책이 언제나 경제문제 관리의 최선봉에 섰던 것은 아니다. 1920년대 대공황 때 세계경제를 구원했던 건 시장주의 이론이 아니라 여기에 수정을 가한 케인즈 학파였다.


위에서 언급한 크레딧 사이클에 대입해서 설명하면, 케인즈의 주장은 이렇다. 크레딧 사이클이 떨어지면, 즉 수요가 계속 공급보다 줄어들어 경기가 더 위축되면,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 시장에 개입해 수요를 창출하여 경제침체를 극복해야 한다. 정부가 지갑을 열어서라도 각종 공공사업을 펼친다면 불경기의 신음하는 기업과 가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돈을 풀어서 위기를 극복한다’

 

매우 직관적인 생각이지만, 케인즈는 여기에 계수효과 등으로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정부의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침체 극복은 주류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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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재정정책이란, 직접소비를 발생시키는 방식, 즉 지출을 늘리는 방식(공공사업투자, 인프라 구축 등)과 세금감면 등을 통해 국민 개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을 늘려주는 방식으로 나뉜다. 어느 쪽이든 간에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가 돈을 푸는 정책이니, 인기도 꽤 있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치인들 또한 적극 수용했다. 뉴딜정책처럼 현실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통화정책이 주류자리를 내려놓게 된 것은 1970년대 스태그 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오일쇼크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치솟는데, 경제는 불황이었다. 이는 케인즈 학파에게 어려운 문제를 안겨주었다. 경제불황이 닥쳤으니 하던 대로 정부가 돈을 풀어 수요를 늘려야했지만, 물가상승율이 경기성장속도보다 늘어날 경우 시장에 돈을 부어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건 통화주의자(신자유주의)와 이를 받아들인 전설적인 연준 의장 폴 볼커다. 폴 볼커는 재정정책이 아닌 통화정책에 의한 경제문제 해결을 주장했는데, 볼커는 15%까지 치솟은 인플레의 불길을 잡기위해 먼저 기준금리를 20% 가까이 올렸다. 단기자금에 적용되는 기준금리가 엄청나게 치솟자 기업들은 도산했고 실업율은 더 높아졌지만, 볼커는 뚝심 있게 고금리 정책을 밀어붙였다. 인플레이션은 멈추었고, 인플레가 멈추자 장기투자 자체가 늘어난 덕에 미국경제는 서서히 살아났다.


이후 정부 중심이 아닌, 연준(중앙은행)의 중심의 경제위기극복이 주류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인들에 의한 재정정책이 주를 이뤘을 땐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거나 자기 지역구, 일가 친척 등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연준 의원들이 칼자루를 쥐면서부터 차츰 안정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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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준이 통화정책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제가 정상적일 때, 즉 10년짜리 단기 사이클일 때뿐이다. 지금처럼 전 세계가 서서히 하강기에 접어드는 것까지 건져낼 수는 없다. 전에 살펴본 대로 제로금리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썼는데도, 직접투자나 경제성장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불완전한 통화정책에 의지한 채 다음 불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다음 경제위기가 닥친다면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가장 쉽게 떠오르는 건 재정정책에 다시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제로금리 상태에 양적완화까지 강화해서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통화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재정정책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의 인프라 안전도는 D등급이다. 그만큼 심각하게 낙후되었고, 대대적인 재투자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이걸 B등급으로 되돌리는 데만 3.2조에서 4조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미국 Civil Engineering 학회 통계). 만약 21세기 수준에 맞추어 미국을 다시 선진국 수준으로 되돌리려면 여기에 몇 배에 해당하는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필요한 곳에 정부가 투자를 하면서 재정정책을 확대하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재정정책을 확대할 때 진행된 사업이 상식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되는가 하는 것과 가뜩이나 전 세계가 빚의 문제 때문에 허덕이는데 정부가 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미국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다음 경제위기를 맞이할 모든 나라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앓아온 일본의 경우, 영구채 발행이라던지 일본은행 주도의 재정확대정책 등의 새로운 해답이 논의되고 있는 추세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정쟁에 휘말려 제대로 시행조차 되지 못했을 때 생긴다. 경제위기가 닥치고, 기존에 통용되던 정책과 지식이 더 이상 답을 제시하지 못할 때 인류는 대혼란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한 국가 내에서 가진 자와 없는 자와의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은 물론, 기존 질서에서 수혜를 보던 국가와 억눌려있던 국가 간의 마찰 등으로 더욱 빈번해질 수 있다. 지난 대공황 이후 세계 곳곳에서 혁명과 전쟁이 잇달았던 것처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안정과 평화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미 테러는 빈번해지고 있고 영국 등에선 브렉시트와 같이 이민정책과 세계화를 되돌리려는 시도 또한 일어나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양극화와 소득격차가 가장 심각한데다가 초강대국인 중국과 미국이 격돌한다면 꽤 높은 확률로 부딪힐 분쟁지역에서 살고 있다. 당장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이 자국의 국익을 우선시한 전쟁에 동원될 수도 있다(개인적으로는 클린턴 행정부보다 차기 행정부가 적극적인 군사적인 개입을 통해 북핵 리스크를 제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여러 의미에서 우리는 경제로부터 시작된 정치적 혼란의 최전선에 서있다.


이 와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별로 없다. 현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각자 잘 판단하는 것, 그리고 이를 투표 등의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뿐이다. 항상 정치가 모든 경제적 문제를 선행하기 때문에.




씻퐈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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