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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8. 01. 목요일

SamuelSeong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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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나는 다큐멘터리 촬영팀의 일원으로 인도 뭄바이에 있었다. 인도의 7월 역시 몬순, 그러니까 엄청난 폭우 속에서 촬영하느라 다들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었다. 결국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꼴까따에서의 촬영을 우선 진행하고 뭄바이는 몬순 이후에 촬영하는 걸로... 그리고 꼴까따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도착한 다음날 TV를 틀었더니 뭄바이의 통근 열차가 폭탄 테러로 날아가 200여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촬영했던 그 열차였다.


여튼, 그때 비행기 보안검색이 강화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시원한 곳에서 좀 놀다가 육로로 네팔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특히 꼴까따 공항의 공항 보안원이 물건 훔쳐가는 꼴을 목격했던 상태에서 공항의 보안검색을 강화 한다는 건 도둑질 강화라고 밖엔 안 보였거든.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놔 봐야 30도 밑으로는 절대 안 내려가는 곳들만 돌아다니다가 온수 없이는 밤에 샤워하기도 힘든 다르질링에 올라가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다르질링에서 며칠 한가하게 놀던 어느 날, 아침에 별 생각 없이 신문을 줏어들었더니 ‘보안 강화가 불충분 하다’며 노트북 등 전자장비의 객실 반입을 금지한다는 황당한 뉴스가 실려 있었다. 가방이 뜯기는 일이 잦아 랩핑까지 해야되는 나라에서 고가의 전자장비를 객실 안으로 갖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인도에 딱 1주일 있어 본 사람들도 예측할 수 있는 일. 유럽과 미주 구간에서 단 하루 동안 8천 대가 넘는 랩탑이 분실(?)된다. 그래서 인도정부는 딱 하루 반 만에 이 조치를 철회했다. 물론 말 많고 냉소적인 외국인 여행자들은 ‘팔자 고치는 데 필요한 충분히 많은 물건’들을 확보했나보다고 비웃었지만.


2.

이게 연이었는지, 지금까지도 남아시아 대륙을 휘젓고 돌아다니면서 밥 벌고 있다. 이 대륙에 처음 왔을 때부터 영어 고생시켰던 죄로, 영어 졸라 고생시키면서 이 대륙의 관료들과 거의 매일 부대끼고 있다. 그런데 7, 8년쯤 되면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전혀 익숙해질 기미가 없다. 영사님께서 노동환경 개선 투쟁을 하시겠다고 하루 비자 발급 건수를 획기적으로 줄여버리는 것 쯤은 그냥 별 일도 아니다. 


정작 이 나라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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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포장도로 카테고리야...


대한민국 정부가 전자결제 시스템을 사용하던 시절, 그러니까 한 6~7년쯤 전에 개발도상국가들에 개발원조 한다고 뿌렸던 것 중에 하나가 ‘전자정부시스템’이었다. 한없이 느린 시스템으로 돌아가던 나라들의 '빠른 행정'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거품 물고 깔아줬는데... 다른 곳은 몰라도 이 나라들에선 보기 좋게 외면당했다.


왜? 디지털 포린직을 시행한다고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해버리기 시작한 우리 가카 이후와 똑같지 뭐. 기록들이 남으면 해 드실 수가 없잖아? 그때 그거 보고 낄낄거리면서 ‘쟤들 좀 어렵겠다’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뭐...


3.

순전히 밥벌이 때문에 얼마전 KDI의 논문들을 볼 일이 있었다. 본 기자 이제 마흔 중반의 나이에, 논문 읽는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관료들이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몇 가지 코스 중에 한가지 비밀을 발견했으니.


국민연금은 1986년 12월 31일에 국민연금법이 만들어져 1988년 1월 1일, 근로자 10인 이상의 기업에 적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주욱~ 확대되어 왔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해인 1989년에 KDI의 연구원 하나가 ‘연금 고갈 시 대응방안’이라는 논문을 썼더라. 그러니까 국가정책결정에 맞춰서 다양한 대응방안에 대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정책결정권자가 어떤 일을 어떻게 추진할 것이냐고 물으면 그런 연구결과물들을 아래아 한글로 열심히 요약정리해서 가져다 올리는 거다. 이거 회사들에서 벤치마킹 PT하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이런 방식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일반회사의 의사 결정과는 다르게 국가의 정책은, 정책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충돌이 크다.


예를 들어 생활 폐기물 처리시설을 보자. 이게 아파트 근처에 있으면 효율이 좋을텐데,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대한민국 중산층의 절대적인 가치인 ‘아파트 값’이 떨어질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업자들은 실제로 필요한 시설보다 부대시설을 과대하게 만들어서 ‘휴식공간’이라고 포장해준다. 300억이면 될 공사가 천 억을 가뿐하게 넘기게 되고, 이 돈은 아파트 주민들의 폐기물 처리비용, 즉 관리비의 형태로 부담하게 된다. 아파트 값을 지키기 위해 몇 배의 관리비를 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우리가 앞에 나서면 베낄 사례가 없다.


3등, 4등이 1등이 하는 방식을 베끼면 어떻게 뭐 해 보겠다고 갈 수 있겠지만, 어쩌다보니 우리가 일등이 되어버리면?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정책’의 기본이 ‘이해관계’의 조정인데, 이해관계의 조정에서 수십 년 전의 남의 사례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4.

사실 한국은 많은 영역에서 배낄 대상이 사라진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델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다.


대한민국 우파들의 국가모델은 싱가포르다.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라는 개드립으로 포장된 일당독재체제 + 경제성장. 그런데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다. 농업, 임업, 수산업 등은 아예 고려할 필요가 없는 국가라고... 걔네들 모델이 우리에게 적용 가능하다고 보는 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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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한 리콴유(좌)와 그에 대해 반박한 김대중 전 대통령(우)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좌파들에겐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강력한 로망이 작용한다. 그런데... 그 나라들의 사이즈를놓고 보자면, 대충 경남 정도만 따로 놓고 생각해야 인구수가 딱이다. 그리고 경남 주요 도시들의 지역총생산은 북유럽 부럽지 않다. 역시 사이즈를 놓고 보면 배끼는데 난감한 부분이 꽤 많다.


아니, 무엇보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서의 사회적 이견 조정 능력인데, 이건 거의 유니콘 찾기 수준이다.


2005년 쯤, 지금은 폐지된 모 시사프로그램에서 식용견 집단 사육 시설 앞에 있는 아파트 단지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개를 도축할 때 털을 태웠는데, 그 악취가 지독했던 것. 그래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이 문제는 당장 해결해야 할 1순위의 문제였다. 지자체 선거를 할 때 마다 공약도 이러한 개 사육시설의 이주였고, 관계기관에 들어오는 제1의 민원도 이 문제 해결이었단다. 그런데, 그 시사프로그램의 PD가 하천 건너편에 있는 개 사육주들을 만나서 말을 걸어 봤을 때의 반응은, 


“어 그래요? 그럼 저희 안 할게요” 였던 것.


그러니까 아파트 대표가 직접 찾아가서 문제를 논의했다면 진작 해결될 수 있었던 사안이 그냥 그렇게 방치만 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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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년쯤 흐른 지금, 이 사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나아졌는가?


5.

꽤 많은 이들이 국정원의 공작이 없었다면 대선의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오차율이 5%라고 하면 스무 차례의 조사 중, 한 번은 꼭 틀린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추적했던 여론조사의 결과는 계속 지는 걸로 나왔던 것이 현실. 물론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행위지만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 보진 않는다.


무엇보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는 세대별로 경험의 내용 자체가 다르다. 보릿고개를 넘어섰다는 것에 대한 기억만 있는 이들과, 한국의 드라마와 예능이 한류라는 이름아래 다른 나라들과 공유되는 지금을 사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기억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특히 지난 정권부터 열심히 애국활동하시는 영감님들, 평생 자신의 언어를 가져본 적이 없는 분들이다. 그리고 이 양반들의 숫자가 더 많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 며칠 이야기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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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행위이며, 사회 전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이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우리의 생활현장에 상존하는 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모호하지? 하지만 안 가본 길 가자고 하는 건데 모호하지 않다면 그건 사기다. 대한민국은 영도자 한 분께서 끌고 가시기엔 너무 큰 나라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러니 누구를 지지한다고, 누구는 그래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떠드는 거 그만들 두시고,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리스트부터 만들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야당들 하는 꼴로 봐선 쟤네들 자체동력으론 내년 지자체 선거도 텄다. 의병의 나라에서 태어난 업보 뭐 어디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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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uel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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