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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8. 09. 금요일

Ath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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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거 생각하시는 분들.... 분명있다. 이거 아님;;;


봄 기운이 콧잔등에 묻는다 싶을 무렵 남도에 내려가면 훈훈함이 느껴지고 차창을 열면 춥지 않은 바람을 맞게 됩니다.


그래서 남도구나...


이 바람을 맞으며 남도의 끄트머리 진도에 들어서면 넓은 초록 들판을 만날 수 있는데, 파 밭 입니다.

 

진도파밭.JPG


언제부터 진도의 대파가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진도의 겨울 대파를 반드시 맛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는 김훈 선생의 어떤 글에서 읽었던 몇 마디 글귀 때문이었습니다.


'이 무렵 진도의 대파는 날로 먹어도 달고 맛있다.'

 

달랑 이 말 하나 들고 진도를 찾았었습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진도에 들어서 파밭 인근 식당에 무턱대고 들어갔습니다.


"밥 주세요."


"혼자?"


"네. 혼자."


왜 혼자냐 묻는지 알겠더군요. 둘이 먹어도 못 다 먹을 만큼 차려내 주는데 하나 같이 허튼 반찬 없이 입에 잘 맞고 맛이 좋았습니다.


그 밥상 한 켠에 생 대파가 있었습니다. 엄지 손가락 만한 대파의 하얀 밑둥만 잘라 접시에 담아 내주더군요. 몇 가지 젓갈과 된장이 함께 나왔는데 갈치속젓에 대파를 찍어 먹으니 알싸하게 맵고 달달한 뒷맛이 향긋하니 좋았습니다.

 

이것 맛보러 진도에 왔다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했더니, 사실 막걸리 먹을 때 안주 없이 먹기 뭐해 술안주로나 먹었던 것인데 육지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해서 밥상에도 올리기 시작했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밥 잘 먹고 나와 진도를 그냥 빠져나올 수 없어 운림산방에 들렀지만 기억에 남는 건 운림산방의 초가집 한 채와 대파의 맛 뿐 이었습니다.


이렇게 진도를 다녀와 저의 대표작(??ㅋㅋ) 대파전을 만들어 냈습니다. 생으로 먹어도 이리 달고 맛난데 전을 하면 또 얼마나 맛날까 하고 만들어 봤지요.


진도에 다녀오기 얼마 전에 전주의 유명한 한정식 집에서 철질(지짐)을 담당하며 오랫동안 일을 했었습니다. 밤 시간에 술안주로 파전 주문이 많이 들어오던 곳이었는데 하룻밤 사,오십 장의 파전을 부쳐 내주는 일을 오랫동안 하다보니 파전의 달인이 되어 있었던 거죠.


그 집에선 가을, 겨울엔 중파, 봄에는 쪽파, 여름엔 실파로 파전을 해서 내줬었는데 얇은 파 보다는 두꺼운 파로 파전을 하는 것이 맛이 좋았고 겨울에 나는 파로 파전을 할 때 가장 맛이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정식집에서 배운 반죽법과 진도에서 맛본 겨울 대파의 단 맛이 어우러진 대파전은 겨울에 가장 맛있는 훌륭한 술안주입니다.

 

계절에 따라 활용 방법이 달라지는 파는 재배 과정을 이해해야 철에 따라 제대로 음식에 활용할 수 있으니 재배과정을 통해 파를 알아봅시다.

 

겨울을 이겨낸 파는 4월이 되면 꽃을 피웁니다.

 

파꽃.JPG

<파꽃>

 

이때의 파는 겨울을 이겨낸 힘으로 몸집을 불려내는데, 두껍고 단단합니다. 파 안에 액즙이 많이 담겨 있긴 하지만 이때의 파는 질기고 맛도 독해서 대파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 하품입니다. 하지만 꽃만 잘라내면 보기에는 매우 좋아 보입니다. 1m 가까이 되는 억세고 단단한 대파는 주로 어디에 쓰일까요?


파 후레이크에 쓰입니다. 소출량으로 봤을 때 가장 많은 양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다져서 냉동 건조 시켰을 때 가장 많은 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파가 짱!


간혹 라면을 먹다 파를 씹었는데 이게 나뭇잎인가 하고 뱉어 볼 때가 있는데 파긴 파더군요. 네. 4월말, 5월초의 파는 그냥 꽃을 피우게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때는 <마늘편>에서 말 했듯이 마늘대를 드시라~


꽃을 피우고 한 달 여가 지나면 파씨가 생깁니다.

 

파씨.JPG

<파씨>


파씨도 마늘처럼 쪽파의 ‘파씨’와 구분 짖기 위해서 ‘파의 씨앗’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파 꽃봉우리에 파의 씨앗 200여 개가 맺힙니다. 깨알 보다 작은 까만색 파의 씨앗을 잘 말려 털어내면 마치 흑임자처럼 보이지만 모양은 흑임자와 달리 납작하고 동그랗습니다.


<아멜리에>를 보면 아멜리에가 주인이 없는 야채가게의 콩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는 놀이를 하잖아요.


아멜리에.jpg


이짓 하는 걸 보면서 ‘저것들도 저러고 노는구나’하고 키득키득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곡물이나 씨앗을 탈곡해 모아두면 이상하게 그짓을 하고 싶어집디다. 혹시 안 해 보신 분 있다면 꼭 해 보시길. ㅋㅋㅋ


곡물마다 그 느낌이 다른데, 우선 당장 할 게 없다면 쌀통에 손을 밀어 넣어 보시라능. 파의 씨앗을 털어내도 꼭 그짓을 하고 싶어했는데 파의 씨앗 느낌은 여느 곡물들하고 매우 다릅니다. 열매가 납작해서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 간질간질 멜롱멜롱 합니다. ㅎㅎ


파의 씨앗을 꽃에서 털어내 잘 말리고 나면 바로 파종을 할 수 있습니다. 계절로도 파종을 하기에 좋은 5월 중순 이죠. 5월 중순에 파의 씨앗을 파종 합니다. 파종을 할 때는 좁은 밭에 촘촘히 흩뿌리고 그 위에 얇게 흙을 덮어 줍니다. 이렇게 파종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토토로>의 밭처럼 빼곡하게 실파들이 자라 올라오게 됩니다.


올 봄에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지만 어느 해든 파 밭을 보면 토토로의 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정말 귀엽고 예쁜 파순이 파릇파릇 올라 옵니다.


토토로밭.jpg 


일본에서는 이렇게 자란 어린 실파를 많이 사용합니다. 살짝 데쳐 초밥에 얹거나 구이요리의 바닥에 깔아 모양도 살리고 구이와 함께 먹으면 맛과 향을 더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어린 실파는 별로 사용하지 않고 조금 더 자란 실파로 김치를 담아 먹거나 여러 가지 양념으로 사용합니다. 이 때 담은 파 김치는 라면 먹을 때 절대 갑입니다. 어떤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파와 밀가루는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지요. 무튼 파 김치가 있으면 라면이 주식이 됩니다.


5월에 파종한 파는 6월에 이식을 합니다. 너무 빼곡하게 심은 파를 옮겨 심지 않으면 모두가 말라죽거나 쭉정이가 되고 맙니다. 벼나 마찬가지죠. 말하자면 ‘파 모내기’입니다.


마늘편에서 한지형 마늘을 6월에 수확했었습니다. 마늘을 수확한 그 자리에 파를 옮겨 심습니다. 5월에 수확한 난지형 마늘 자리엔 참깨가 한창 기를 펴고 있습니다. 마늘을 캐 내고 쇠스랑으로 땅을 파고 이랑을 돋워 올립니다. 고추, 감자, 가지 등 대부분의 작물은 이랑의 봉우리를 파고 그곳에 묘목을 이식하는 반면 파는 이랑과 이랑 사이에 이식합니다.

이랑의 오목한 곳에 파를 심는 이유는 한 여름 동안 바람을 피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겨울나기를 준비할 때 이랑을 헐어 파의 줄기를 덮어주기 위함입니다. 이랑 사이 사이에 파 묘목을 4~5개 정도 한 묶음으로 가지런히 심어줍니다.

 

이렇게 파를 이식하고부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6월 말부터 가을에 이르는 동안에는 병충해가 극심합니다. 파도 병충해를 피해갈 수 없죠. 파는 고추 다음으로 병충해를 많이 입는 작물입니다. 살충제를 주지 않으면 한 줄기도 빠짐없이 파밤나방이 알을 낳거나 진딧물이 진을 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파밤나방의 알입니다.파 표면에 나방이 알을 낳으면 알을 까고 나온 파밤나방의 유충이 파를 뚫고 파 안으로 들어가 성충이 될 때까지 먹고 마시고 까불다 보니 잎마름 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렇게 잎마름 병에 걸리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됩니다. 그렇다고 파가 죽는 것도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엔 먹을 수는 있어 보입니다. 단지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파 안으로 들어간 유충은 잡아낼 길이 없는데... 색도 파와 같은 초록색 애벌레니 파와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고, 뭐. 그냥 잘 다져 국에 넣고 먹어야 할까요?

 

파밤나방.JPG

 

먹는 방법이야 소비자에게 달려 있지만 농작물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농민들에겐 생계의 문제입니다.

 

완주군 용진면은 상추로 유명한 곳입니다. 하루 동안 상추를 곱게 따서 박스에 담아 가락동으로 올려 보내면 다음날 새벽 경매가 이뤄집니다. 아침 6시면 경매가를 알리는 전화가 걸려 오지요. A급 한 상자에 3만 원이라고 할 때 B급은 2만 원입니다. 그런데 A급과 B급을 판정하는 기준이 오묘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언성이 높아집니다.

 

"아니, 상추 딸 때 그렇게 흙 좀 잘 털어서 따라고 말을 해도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뭔 흙이 묻었다고 그런댜."


"흙 묻었다고 B받았다 잖여. B!!! 니미럴. 그노메 흙 좀 묻었다고 B가 뭐여 B가!!"

 

최상품으로 올려 보낸 상추가 흙이 묻어 B를 맞았습니다. 경매를 할 때 전량을 개봉해 경매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별로 한 박스만 개봉해 경매에 붙이기 때문에 나머지 박스에 흙이 묻었건 말았건 모두 B입니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막걸리는 땡기고 개하고 시비 붙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상추에 흙 좀 묻었다고 B인데 잎마름병에 걸린 파는 어떨까요? C...? D...???

 

무엇을 개선해야 올바른 농업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최근에 판매되는 농약은 중금속 성분도 덜 들어가고 친환경적으로 만든다지만 신뢰수준은 미약합니다. 신뢰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친환경’이라뇨?!! ‘친인간’ 이겠지요.


한가지 살충제는 잎마름병을 일으키는 파밤나방의 유충만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대에 살아있는 모든 벌레들을 죽이게 되는 것이죠. 파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지렁이, 쥐며느리까지 말이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순의 극치입니다.

 

유기농 제품을 먹자니 소비자는 가난합니다. 많이들 유기농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서민들에게 유기농 제품은 사치품에 불과합니다. 생산자인 농민의 입장은 어떨까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라굽쇼? 젊은이 하나 없는 시골에서 20kg 퇴비 한 포대도 들마시 하기 힘들어 주말에 자식들 오기만 눈빠지게 기다립니다. 땅에 코를 박고 잡초를 매는 일이야 평생을 해 온 일이라 치더라도 지심을 길러 작물의 면역력을 높이자는 말은 늙은 농민들에게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의미있는 변화도 일어나고는 있습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화학비료와 생석회를 밭에 뿌려 농사를 지었지만 최근엔 농가에서 음식물 발효퇴비나 닭똥퇴비를 많이 사용합니다. 특히 농민들 사이에서 닭똥이 최고라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봄철에는 대부분의 농가에서 닭똥을 밭에 미리 뿌리고 농사를 시작합니다.

 

조류는 기본적으로 석회질을 섭취해야 튼튼한 알을 낳고 깃털과 뼈를 튼튼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닭 사료에는 조개껍대기와 같은 석회질이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소화시킨 닭똥에는 석회질이 풍부합니다. 따라서 독성이 강한 생석회 대신에 닭똥을 뿌리면 토양을 온전하게 알칼리성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죠. 여기다 닭의 분뇨는 인과 질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화학비료를 따로 주지 않아도 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닭똥이 훌륭한 퇴비라는 것은 90년대 중반부터 많이 이야기 되어오던 것이었지만 닭똥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이미 90년대부터 농진청은 닭똥을 퇴비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들을 시도 했었지만 처음에는 농민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었습니다. 왜일까요?


농민들이 그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새로 만든 좋은 씨앗이라고 홍보는 유별나게 했지만 막상 논에 심어 놨더니 별 것도 아닌 바람에 픽픽 넘어져 농사를 망쳤는데도 보상은 커녕 잘못했다 소리 한마디 없었습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요? 지난주에 시골집 오이 밭에 갔더니 열려있는 백오이가 하나 같이 형편없었습니다. 오이가 다 왜 이모양이냐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같은 묘목 사다 심은 집들은 하나 같이 그모양이라더군요. 오이 묘목 10개 정도 사다 심고 잘났네 못났네 할 것 없이 뽑아내고 다시 심으면 그만이지만 오이 농사를 전업으로 삼고 100개, 1000개 사다 심은 전업농들에겐 불벼락이 떨어질 일입니다.

 

백오이.jpg

 

"어매. 살다 이런 꼴 얼매나 봤소?"


"오이뿐이냐. 고추가 그 모양인 해도 있었고, 옥수수가 그런 해도 있고, 어느 핸가는 메주콩 종자를 죄다 쥐가 파먹어서 사다 심었더니 깡탱이뿐인 해도 있었어."


"그렇게 됐을 때 누가 와서 미안하단 소리 한마디라도 하던가?"


"어느 시래비 아덜놈이 와서 미안하단 소릴 하냐. 그거 사다 심은 나나 폭폭하고(속상하고) 말지."

 

농사가 무슨 베타 테스트도 아니고 농민들이 마루타도 아닌데 매번 이런 일을 겪고 사과의 제스춰 한마디 없는 그들의 말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대통령 노무현보다 자연인 노무현에 걸었던 기대가 컸었습니다. 그는 봉하로 내려가 실패를 견디며 실천했고 농민들에게 성과가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자연인 노무현은 그 뜻마저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만한 공신력을 가진 사람은 이 나라에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계를 은퇴하고 고향으로 농사지으러 내려간 강기갑 선생에게도 그만한 공신력과 역량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심을 헤아릴 수 있는 김두관 선생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됩니다. 잠룡으로서의 야심이 있을 줄 압니다만 뒤돌아 민심이 무엇인지 헤아려 본다면 스스로 용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네.

 

또한 농림부나 농진청의 관리들은 농민들의 신뢰를 더 이상 잃지 않길 바랍니다. 투명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서로간의 신뢰를 쌓아 당신들이 주장하는 선진화된 정책을 시민들이 따르고 공감하게 하기 위함일 텐데 그토록 불투명하고 불공정해서야 그 누가 당신들의 말을 믿고 새로운 시도를 모색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시도되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연구결과들이 당신들 책상위 A4 용지더미에 가득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노력한 연구들에 대한 결실은 결국 신뢰가 쌓여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래비 아덜놈’ 소리를 내일도 듣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농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1년 농사를 건 도박입니다. 따라서 농사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천적인 자세로 몸소 신뢰를 쌓으십시오.

 

식신불패 밥상머리 앞에서 이런 이야기 하면 숟가락 들기 난감하겠죠. 이런 이야기는 음주불패 술상머리 앞에서 다시 하기로 하고 맛있는 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농약을 주고 풀을 매 주고 이랑에 거름을 주고 키우면 추석무렵에 중파로 자라게 됩니다. 중파는 추석에 산적용으로 많이 팔리기 때문에 이 시기를 목표로 파를 키워온 것입니다. 파는 생장환경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 작물이기 때문에 봄철에 일찍 씨를 뿌려 여름에 대파를 키워내기도 하지만 중파의 소비시기를 고려해 5월에 파종을 하는 것입니다. 추석 이후 대파의 수요가 많은 김장철까지 중파를 대파로 키워냅니다.

 

음력 7월 초가 되면 쪽파를 심습니다. 쪽파는 마늘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파씨를 심어 파를 얻습니다.

 

쪽파씨.JPG

<쪽파씨>

 

파씨를 심으면 마늘처럼 쪽을 나누며 자라는데, 파씨 하나를 심었을 때 7~10개의 쪽을 나눕니다. 12월 김장철이 되면 쪽파도 20~30cm 정도 자라납니다. 쪽파는 대파와 함께 김장 김치의 맛을 살리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쪽파보다는 실파를 많이 먹고 쪽파의 잎보다는 파씨를 락교로 만들어 먹습니다. 락교는 ‘파씨 피클’입니다. 피클을 담을 때처럼 피클링 스파이스를 넣어 만들어도 맛이 좋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식초와 설탕 소금으로만 피클을 만들어도 맛이 좋습니다. 일식집에 가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반찬이 락교지요. 피클과 초절임에 대해서는 단무지를 이야기하며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

 

쪽파 또한 대파와 마찬가지로 어느 때 심어도 잘 자라지만 음력 7월에 심는 이유는 김장철의 수요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나가보면 대파, 쪽파는 사철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1월, 12월에 가장 많이 출하되고 값이 저렴한 이유는 많은 농가에서 김장철을 대비해 재배하기 때문입니다.

 

쪽파.JPG

쪽파는 대파와 달리 가늘고 뿌리 부분이 뭉툭하다. 

뭉툭한 뿌리는 봄이되면 마늘처럼 하나의 파씨가 된다.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파는 이렇게 대파와 쪽파 두 가지 입니다만 우리가 차이브라고 부르는 허브도 파의 일종입니다. 우리말로 ‘산파’입니다. 파는 주로 동아시아 3국에서 식용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대파와 쪽파를 이르는 말이지 동아시아 3국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차이브를 파 대신에 사용합니다. 차이브는 정서와 입맛에 맞지 않아 주로 이용하지 않았던 것뿐이지 산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산채 중 하나입니다.


저는 종종 달래를 먹으면서 차이브의 맛을 떠올리는데요, 달래는 좋아하는데 차이브는 싫어하는 그 입맛, 이상하다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차이브.jpg

<차이브>

 

파는 줄기와 잎을 주로 식용으로 사용하지만 파뿌리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면 고기의 누린내를 잡는데 탁월합니다. 생 파뿌리를 고기 삶을 때 바로 넣어도 좋고 잘 말려 가루를 내 고기 요리에 넣어도 좋습니다.

 

김장철에 대파를 사용하고 나면 이랑의 흙을 내려 파의 줄기를 덮어줍니다. 겨울을 나며 얼어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죠. 한겨울에 파 밭을 보면 땅이 꽁꽁 얼었는데도 흙 밖으로 손가락만한 초록 잎을 건사하고 있고 흙 아래로는 하얗고 건실한 줄기를 동토에 묻고 추위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동토를 견뎌내고 봄을 기다리는 녀석들이 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장철 포기가 잘 든 배추는 김장 김치를 담는데 사용하지만 포기가 차지 않고 잎이 벌어진 녀석들은 버림을 받습니다. 대파도 마찬가지로 굵고 실한 놈들은 초겨울에 김장 김치로 활용되지만 별 볼일 없는 녀석들은 밭에 남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배추와 파 옆에서 버림 받은 시금치도 땅에 찰싹 달라붙어 온 몸으로 겨울을 견뎌냅니다. 이 배추가 봄동이고, 알싸한 겨울파고 달달한 노지시금치입니다.

 

겨울철 노지파, 노지배추, 노지시금치는 생긴 것 부터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어 나온 녀석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노지파는 파란 잎이 짧고 하얀줄기가 길고 굵습니다. 노지배추인 봄동은 하우스 봄동에 비해 붉은 빛을 띕니다. 노지시금치는 땅바닥에 낮게 깔려 자라 넓고 동그랗게 잎을 펼치고 있고, 색은 봄동과 비슷하게 붉은 빛을 띱니다.


이렇게 추위를 견딘 녀석들은 달고 아삭합니다. 이럴 때 사람의 혀바닥은 참으로 사악하단 생각이 듭니다. 어찌 그렇게 독하게 견뎌낸 녀석들을 달게 먹는 것인지... 이 달고 맛있는 것들은 설날이 되면 전과 나물, 겉절이로 밥상에 오릅니다.

 

어찌저찌 알게 된 탈북자 형을 볼 때 마다 겨울파가 생각나서 “형은 겨울파나 봄동같은 사람에요”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형은 “나는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눈 덮인 백두산을 넘어 왔으니 이제는 야자수라 불러다오” 라나 뭐라나... 췟.


눈빛만 봐도 독기가 넘쳐흘러 범접하기조차 힘든 사람. 겨우 술이나 한 잔 주고 받아야 달달하다 싶은 사람이 무슨 야자수?? 겨울파처럼 굳건히 이 땅에서 살아가시라.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생산되는 노지채소들은 농약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안심하고 드셔도 좋습니다. 날것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겨울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풍요의 계절인가 봅니다. 눈이 시리게 푸른 이 여름에 겨울을 찬미하는 몽매한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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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