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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8. 06. 화요일

독투불패 esperan




 

 





수년째 딴지 일보를 사랑하고 가까이 하고는 있지만... '딴지스 체' 혹은 '딴지스 어투'로는 얘기를 잘 못하겠다. 하지만 노력은 하겠으니 구엽게 봐주길 바란다.


글 쓰고 있는 나는... 35살 먹은 내과 전문의(세부 전공은 심장내과) 아직 개업은 안하고 있고, 대학병원에서 펠로우(간단히 교수와 레지던트의 중간 레벨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다.)로 일하고 있는데, 평소에 와이프 전화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장모님, 장인어른 전화도 막 씹고 그런다...바빠서. 


사실 지금도 겁나 바빠서 논문 쓸 것도 쌓여있고, 잡일도 못 끝내놓은 상황인데... 이런 글 쓰는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마음 속으로 '네가 지금 미쳤구나...' 하면서 쓰고 있다. 바쁘다고 유세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쓰는 글이란 거다. (물론 raksumi님도 나와 같은 사명감으로 쓰셨을 거라고 믿고 있다.)



사명감...내 모습이 지금 이러진 않다..jpg

지금 내 모습... 이러하다. 믿거나 말거나



raksumi님의 글을 읽고...  퍼뜩 떠오른 사람이 4명 있다. 


Case 1

먼저, 소화기 내과 의사인 내 대학 선배님... 얼마전 방광암 진단 받으셨다. 이미 3기로 진단 받아서 조만간 방광 없앨 예정이시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들이 '자기에게 무관심하고 불성실한 의사들'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이상 증세가 생겨도, 병적인 상태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정상의 경우를 먼저 생각해 버리면서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분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작년 말부터 소변색깔이 진해졌었는데 그것이 혈뇨(피섞인오줌)라고 생각은 안하시고, 당신이 물을 좀 덜 마셔서 약간 탈수가 되었나 보다 생각하셨단다. 


작년 초에 대학생 아들내미 둘이 알바 뛰어서 모은 돈으로 생신 선물 한다고 근처 대학병원 검진센터 예약해놨었는데, 버럭하시면서 "내가 의산데... 딴 병원에 뭐하러 가냐"며 환불하셨던 분이다. 만약 작년에 검진으로 소변검사만 했어도 미세혈뇨(육안으로는 안보이고 현미경에만 보이는 피오줌)를 발견했을 것이고, 비교적 조기에 병을 발견해서 방광을 살릴 수도 있었을 케이스 되겠다. (물론 100% 장담은 못한다. 우리 일이 다 그렇다.)

 

Case 2

그 담으로, 내가 레지던트 할 때 의과대학 병원 교수님이 하시던 임상연구에 대조군으로 붙들려서 지원해서 복부 MRI 찍었다가 우연하게 췌장의 전암성병변(현재는 암이 아니지만 치료 안하고 놔두면, 스믈스믈 암으로 변신할 놈) 발견해서 수술받고, 현재 아들,딸 낳고 맘편히 잘살고 있는, 레지던트 선배. 


비록 수술하면서 개고생은 했지만... 이 사람 정말이지 천운이었다. 췌장암이란 넘은... 증상이 졸라게 없다. 증상이 나타나서 진단이 되면 그냥 몇달안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거의 100% 맞는다.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어쨌건... 겁나 조용하게 은근슬쩍 흉악한 넘으로 크게 될 넘을, 이놈이 아직 어려서 고분고분한 시기에 없애버린 것이다.

 

Case 3

세번째로,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느닷없이, 수시로 체하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살이 쫙쫙 빠지길래 위내시경 했더니 말기 위암으로 진단되서 몇 달만에 돌아가신, 내 둘째 외삼촌...(참고로 그 외삼촌 딸이... 의사다. 자기가 의사인데 아버지 건강검진 한번 안시켜드려서 그 꼴 났다고, 후회막급이었고, 아마도 평생 원통해 할 예정이시다.)


이분 젊으셨을 때 충청도에서 이름 날리던 장사셨다. 도내 씨름 대회 나가서 상으로 타온 소가 4~5 마리 정도이고, 평생동안 반주로 매끼니 소주 한병을 드시면서도 한번도 간수치가 오른 적이 없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이시며 우리 집안에서 '건강'의 대명사 이시던 분이다. 그런데 별 증상 없이 잘 지내시다가 말기 위암에 이르러서야 진단이 되셨고, 암것도 못하고 허무하게 가셨다. 


Case 4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의과대학 본과 1학년 다닐 때, 방학을 맞이하여 놀았어야 했으나, 어리석게도 기특하게도 병원 연구실에서 교수님 연구를 돕는 '연구도우미'하다가 우연히 공짜로 '내분비 검사' 했다가 당뇨병을 조기에 발견하게 된 케이스가 되겠다.


내가 그때 키 170센티에 몸무게 78킬로그램 나가던 비만쳥년이었으나 당뇨 진단받은 담날부터 식이요법과 운동치료를 시작하여, 방학 기간 동안 무려 15킬로그램을 감량해서 개강 하자마자 친구와 선배 및 교수님들을 겁나 놀라게 했더랬따. 그 후에 어땠을 것 같나? 내 혈당 수치가 확 내려가서 약없이 운동 만으로도 거의 정상인 수준으로 조절되기까지 했다. (비록 지금은 살이 좀더 붙어서 약에 조금씩 의존하고 있으나 여전히... 비교적 건전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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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런 변화를 기대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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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더라...



건강 검진의 의의는 병을 효율적으로 진단하는 것에 있지 않다. 경제 원리로 따진다면야 졸라 비효율적인 검사다. 

벗뜨 그러나, 이유없이 속이 안좋아서 병원에 찾아가서 내시경 검사 받고 (보험적용 받아서) 저렴하게 '진행성 위암'으로 진단 받는 것과 딱히 불편한 것은 없으나 남들이 하라니까 억지로 검진센터 가서(보험 적용 못 받아서) 비싼 돈내고 '조기 위암'으로 진단받아서 수술도 안하고 간단하게 '점막절제술'만 받고 완치되는 것... 둘 중 무엇을 선택하시겠는가?


내가 의사가 되고 나서 항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부분은 내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를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결과라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내가 내과 레지던트로 일하던 시절... 이유를 알 수 없이 사망한 환자가 몇 있는데, 아직까지도 돌이켜 생각할 때 마다 마음이 쓰리고 기분 드러워진다. 혹시 내가 뭔가 실수한 것이 없었나... 당시에 내가... 무식해서 환자의 어떤 징조를 아예 인지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 환자를 놓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괴로운 의심이 떠나지 않는다. (근데 빌어먹을 지금 내 전공이 심장내과라니...)


'죽음'


죽음이란 건 죽음의 당사자를 제외한 모든 존재들에겐 (내가 아닌) 다른 한 개의 생명이 꺼지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당사자에겐... 나를 둘러싸고 있고, 내가 느끼던, 모든 세계와 우주의 종말일 것이다. (뭐... 윤회설이 사실이거나, 천국과 지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명백한 증거는 없지 않은가?)


건강과 생명과 관련된 문제에서 경제 원리만 따지지는 말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고를 이용해서 장사 해쳐먹는 불량 의사들도 있긴 하겠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 의사들이 딴 나라 의사들하고 비교했을 때 심하게 양심이 뛰어날리도 없지만, 심하게 양심에 털난 족속들일 리도 없다. 특정집단의 양심 수준은 그 나라 전체의 양심의 수준에 비례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우리나라 의사들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그 일차적 원인은 우리 사회 전체의 타락에 있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생각이다.(애초에는 생각과 사고가 건전하던 넘이 의사가 되더니 타락하겠냐구?! 사회에서 건전한 사상을 체득하지 못한 채 의사가 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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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건강 검진의 운영과 관련해서, 큰 병원측의 나쁜 꼼수가 아주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근데 말이다. 마치 내부 고발을 해야 하는 수준의 꼼수는 없다. 최소한 내가 일했던 병원에서는. (참고로 나는 쫌 큰 대학병원에서 일해 봤으며, 현재는 매우 큰 기업형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뭐 외래 환자 느는 등의 부수적 효과가 있기는 하겠지. 그러나 원칙적으로건 실제적으로건 "당신 이러이러한 검사에서 비정상 나왔으니 꼭 우리 병원에서 2차 검사 받으십시오."라고 말하는 의사는 없다. 먼저 환자 연고지 물어봐서 "환자분 집에서 가까운 큰 병원으로 가셔도 되고 저희 병원 오셔도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말한단 말이다. 간혹... 특정 질환의 경우 우리 병원의 어떤 교수가 그 질환의 이름난 대가이고 치료성과가 다른 의사와 비교해서 현격하게 우월하다면... 아주 양심적으로 권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는 않더라. 만약 무조건 자기네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투로 말하는 의사가 있다면... 침 한번 시원하게 뱉어주고 나오시기 바란다.


그래도 물론 대부분은 그냥 같은 병원에서 검사 받기는 한다. 그러나 큰 병원측에서 어거지로 딴 병원 환자 뺏어갈 요량으로 검진을 운영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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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장비에 관해서 말해 보겠다. 


검진에 사용하는 검사 장비가 일반 입원환자들에게 사용하는 검사 장비와 같은지 다른지는 아마도 병원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설사 다르더라도, 정말로 영 수준이 떨어지는 장비를 쓰지는 않는다. 내가 종사하는 심장내과와 연관해서 말한다면, 심장초음파 검사의 경우, 달라 봤자 검사를 시행하는 의사 입장에서 조작이 다소 불편하다거나, 복잡한 계산 기능이 없어서 검사자가 손수 해야 한다거나 이런 정도여서 검사자가 쫌 불편할 수는 있지만, 영상의 퀄리티 자체가 심각하게 문제가 있어서 질환을 발견 할 수 있는 확률이 떨어지는 검사 장비를 쓰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최소한 내가 경험했던 병원들에선 그러했다.



검진 결과를 판독하는 의사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부분에서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검진에서 심전도에 이상 소견이 있어서 심장내과 전문인 나에게 진료 의뢰가 왔다면 환자를 보낸 의사보다, 심장 분야, 특히 심전도에 관해서는 내가 전문분야이니 당연히 실력이 있겠지...


그러나 심장 전문인 나는 다른 분야는 잘 모른다. 지금은 내가 내과전문의 자격증 취득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니 내과학 전반에 걸친 지식이 많이 남아 있지만, 단언컨데 앞으로 2-3년만 지나도 상당부분을 까먹을 것이고, 아까 나한테 환자를 보낸 그 의사보다 심장 이외의 분야에서는 최신 업데이트 된 지식이 부족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가정의학과 의사는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피부과, 기타 등등의 과에 대하여 폭 넓은(얕을지 모르나) 지식을 가진 의사들이다. 검진 결과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는 나같은 내과 전문의나 외과 전문의, 산부인과 전문의들 보다 나은 사람들이다. 


글고, 검진 결과를 판독하는 의사의 실력은... '교통 정리'만 잘 할 수 있는 실력만 돼면 족하다. 의료의 전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까지 필요하진 않으며 그런 의사는 실상 조올~~~~라게 희귀하다. (어쩌겠는가 사람의 머리가 한계가 있는 것을)


그냥 집으로 돌려 보내면 안 될 환자를 놓치지 않으면 일단은 된다. 이건 최소한의 조건이고,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그냥 경과관찰만 해도 될만한 환자를 가려내는 능력이 있으면 금상첨화겠지. 근데 솔직히 말해서 의사 된 지 10년 지났고, 내과 전문의 된 지 2년 지난 나도 "안심하셔도 됩니다. 걱정 말고 맘 편하게 집에 가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딴 넘들도 마찬가질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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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검진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 인정할 수 있다. 근데 지금 문제가 있으니까 아예 집어 치우란 말은... 절대적으로 동의 할 수가 없다. 건강 검진은 쫌 문제가 있으니까 버리면 되는 정도의 값어치를 지니지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수정해서 보완을 하면 될 일이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할 일은 아니다.



건강 검진이 모든 질환을 미리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애초에 종합건강 진단의 목적은 모든 병을 미리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1. 비교적 흔하며,


2. 질환의 발생 시점부터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증상이 없는 시기에 검사를 통하여 조기 진단을 할 수 있고, (*여기서 주목할 것!!! 병이 발생해도 초기에 증상 없는 질환 졸라게 많다. 대부분의 내과적 질환이 그러하다.)


3. 조기에 진단하여 조기에 치료를 시작한다면 훨씬 나은 결과를 기대 할 수 있으며 (치료 방법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4. 진단을 늦게 했을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는 질환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실... 정말 희귀하고, 고약한 병이긴 한데 일찍 진단해 봐야 별 차이가 없이 결국 안좋아지는 병들도 많다. 이런 병들까지는 건강검진이 카바할 필요가 없고, 또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검진에서 괜찮다는 말을 들었으나 암과 같은 무서운 질환이 발견되어 배신감을 느끼는 환자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현재로써는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대한민국 경제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전신 MRI 비용이 지금 물가로 1-2만원 정도 밖에 안되는 시기가 온다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검사를 통해서 많은 질환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영원히 해결 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 지금 그러하지 못하다고 해서 건강검진의 가치가 폄하될 수는 없는 것이다.


병원을 쇼핑하듯이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했던 검사를 반복해서 하는 이른바 '건강염려증 환자'처럼 하면 곤란하겠지만, 젊은 사람 일지라도 한번쯤 기본적인 상태를 체크해서 내 신체가 건강할 때의 상태를 알아 보는 것도 앞으로의 건강 관리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일이고, 전혀 모르고 있던 만성 질환을 조기에 발견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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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댓글 환영하며, 반론도 환영하며, 심지어는 욕도 허용하는 바이다.

2. 근데, 그에 대한 대답은 기대하지 마시라... 나 졸라 책임감 강한 사람인데 지금 너무 바쁘다.

3. 독자 제위께서 믿으실지 안 믿으실지 모르겠으나... 본인, 기본적으로 졸라게 비판적이고 진보 성향인 사람이다. 오늘날 의사들의 문제점들과 앞으로 개선 되어야 할 부분들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음을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믿으시라.









독투불패 espe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