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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충격, 분노, 경악, 황당. 지금 국민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탄핵’, ‘하야’, ‘사이비’. 실시간 이슈 키워드다.

 

사이비종교의 후계자가 현몽(現夢)을 꾼다는 이유로 카탈로그에서 상품 고르듯 국가 인선을 결정했다는 사실은 이 정권을 견뎌온 사람이나 믿어온 사람이나 할 말을 잃게 한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는 천재지변이 아니다. 인재도 아니다. 말하자면 재앙이 아닐 수도 있다.


어차피 박근혜는 금치산자고, 최순실은 무당의 딸이다. 사이비종교 관련자들을 만나보면 알게 된다. 그들의 망상과 확신이 얼마나 공고한지. 탐욕은 얼마나 노골적이며 언행과 사고는 얼마나 기괴한 방식으로 현실과 유리돼 있는지. 화려한 성폭행 전력을 자랑하는 사이비교주의 다섯째 부인의 딸로 태어난 최순실이 건전한 가정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이 국가의 수뇌에 송유관을 꽂았을 때 벌어질 일은 명약관화하다.


17대 대통령 경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한국 정치 지형에서 급부상한 스타가 대권을 차지할 기회는 보통 단 한 번이다. 이명박과 친이계는 대통령 경선에서 자신들이 훤히 아는 지저분한 정보를 공익이 아닌 친박계 협박용으로 이용했다. 그들은 박근혜가 최태민과 벌인 일을 알게 되면 밥도 못 먹게 될 거라고 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최태민 일가가 국정을 농단할 것임을 확언하기도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이명박 세력은 박근혜를 둘러싼 문제를 교정할 생각이 없었다. 정권교체를 저지하는 데 사용할 아버지의 후광을 감가상각할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문제가 있으면 이용하거나 방치한다. 박근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 숨은 주범은 지난 정권이다

 

사람들이 죽는다.


바다에서 죽고 물대포를 맞고 죽고 마티즈에서도 죽는다. 죽지 않으면 사라지기도 하고 혹은 망가지기도 한다. 그걸 보는 유권자의 내장에 쌓이는 분과 독이 어느 정도인지 그들은 알까. 추측컨대 관심이 없을 것이다.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을 테니. 정의의 대변자인 검찰이 빈 박스를 왕창 들고 나오는 쇼를 펼쳤다. 거짓은 곧바로 적발됐다. 왜 연기가 저리도 어설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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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켜도 안 들켜도, 실은 상관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 위에서 춤을 추는 자들이 정신병자 몇과 남창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엄습하는 참혹함이 어떤 것인지는, 이명박이 알 바 아니다.


이명박과 그의 이익공동체는 정권재창출이 보장하는 이익이 정권교체의 그것보다 확고하다고 판단하자 주저 없이 국민에게 분뇨를 부었다. 사실은 금치산자인 대통령 후보가 국가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예고된 미래는 그들에게 아무런, 정말로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들은 이 미래를 위해 국가정보기관까지 움직여줬다. 국민이니 공익이니, 정의니 하는 것들은 진정 일말의 관심사도 아니었던 것이다. 다 알던 그들은 이제 몹시 놀란 척을 하고 있다.


친박과 비박, 그리고 보수 언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조선일보 기자들이 ‘최태민이 영애(박근혜)의 심신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CIA의 프레이저 보고서를 안 읽어봤을까. 김기춘이 포함된 정권 초의 ‘7인방’이 최순실을 몰랐을까. 모두 공범이다. 7인방은 일개 영매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패배할 경우 국가가 입을 손해는 전혀 그들의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이 백억에 팔려가고 나라의 10년 공력이 들어간 개성공단이 난데없이 폐쇄될 때, 국민들이 "대체 왜?"를 외칠 때 연유를 다 알고도 가만히 있던 자들이 지금 와서 앙다물던 입을 떡 벌리고 몹시, 몹시 놀랐다고 한다. 사람들이 속으면 장땡이고, 안 속아도 그만인 연극이다. 열연하는 공범들 가운데 유난히 느긋한 주범, 그는 이명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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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순실은 재앙이 아니라 대가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어떻게 나라를 망쳤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애초에 나라를 망칠 것이었다. <어쩌다 이명박이 17대 대통령이 되었는가?> 이것이 적절한 질문이다.


이명박의 17대 대통령 당선을 두고 ‘유권자들이 자신의 욕망에 투표했다’는 평이 있었다. 투기를 하고 전과가 있고 욕망의 비린내를 숨기는 데 실패해도, 자신도 그만한 부와 권력을 누리고픈 욕망 말이다. 이명박의 슬로건이었던 '모두가 성공하는 국민성공시대'는 사실 '나부터 살고 보는 내 성공시대'로 바꿔 불려야 한다. 욕망을 위해서는 썩은 사람이 국가의 대변자가 되어도 된다는 심리는 사실 내 자신부터 성공을 위해서는 썩을 준비가 돼 있다는 일그러진 탐욕을 기저로 삼는다.


BBK 동영상을 보고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신념, "주어가 없다"는 말에 역시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 그 굳은 심지가 모이고 모여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고,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법원의 무죄판결을 ‘눈 가리고 아웅’의 핑계가 아니라 진심으로 믿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병박 지지자들의 금과옥조였던 "그래도 경제를 위해서"가 "아무튼 잘살고 싶어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역설적으로 이명박의 대선 슬로건은 현실이 되었다. 저 기만적 문구의 속내 그대로, 그 자신만 성공하는 시대로. 박근혜와 최순실의 조합은 난데없이 떨어진 운석이 아니다. 유권자가 돌려받은 대가다. 불운이 아니라 정산이다. 세상에 우연은 많아도 민주주의 정치에 우연은 없다.



4 정산은 정확하다

 

지난 두 번의 대선을 돌이켜보자. 이명박은 경제대통령 컨셉을 내세웠다. ‘안보와 경제는 단연 보수’라는 환영을 만든 원조는 박정희다. 이명박은 ‘유사 박정희’다. 실제로 이명박은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 박정희의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차용했다. 나꼼수가 이명박을 ‘가카’라고 부르자 일베는 박정희를 ‘원조가카’라고 칭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나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인정한다.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 확산을 저지하는 데 실패하는 한편, 때로는 방치하기도 했고 조장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산만한 정권이었다고 본다. 물론 존재 자체가 비극인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자유로운 투표권을 지닌 우리는 어쩌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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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력에 비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판단하자 유사 박정희를 선택했다. 그 결과가 신통치 않자 이번에는 아예 박정희의 유전자를 소환했다. 애초에 박근혜에게 독재자의 딸이라는 위치는 극복의 대상이 아닌 후광이었고 정치적 자산 전부였다. 우리가 18대 대선에서 박정희를 부활시킨 그 정치성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경제는 역시 박정희’라는 믿음은 공과론과 함께 한다. 공과 과를 함께 보자는 논리는 사실 독재의 불가피성을 역설할 뿐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독재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다. 단순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 공산당 간부였어도, 쿠데타를 일으켰어도, 무고한 이들을 죽였어도 결과가 좋으면 상관없다는 심리의 반증이다.


박정희가 독재자이고, 독재는 악의 구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의 팬들도 인정한다. ‘박정희 덕에 이만큼 살게 됐다’는 말의 속내는 생각보다 끔찍하다. 그가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을 살해했어도, 유가족의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음에도, 특정지역이 경제발전에서 소외되었어도 내 잔에 단물이 있으면 그만이라는 사고. 이것은 결과주의가 아니라 섬뜩할 정도의 이기주의다. 그래서 ‘박정희 향수’라는 말에는 그 낭만성을 걷어내면 군부독재에 대한 후불제 공모(共謀)가 도사리고 있다.


플라톤은 논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대가는 가장 저질의 인간들에게 통치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는 무관심이 아닌 비겁의 결과다. 우리는 ‘최순실’을 정산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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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긴 뱀발 - 도덕과 현명은 대립항이 아니다


이 글을 쓰며 내 안의 계몽주의-날것으로 말하자면 ‘국개론’-와 싸우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선악의 이분법에 냉소적이고자 노력한다. 정치적 관점이 다른 유권자들을 적대시하거나 백안시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명박과 박근혜를 찍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선택을 한 이들을 다그치게 됐다. 반성한다. 내겐 그럴 만한 숭고함이 없다. 그러나 송고하는 데 죄책감을 느껴야 할 만큼, 이 기사의 주제는 싸가지 없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국민들은 도덕적 원칙 대신 실용을 선택했다. 도덕적이지 않은 선택은 결과적으로 현명하지도 못했다. 이런 말을 전하게 되어 보수 성향의 지지자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 심성이 자잘한 탓에 부탁이 또 있다. 나는 일부의 시각처럼 보수 유권자들이 멍청하고 눈가림 당했다고 믿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진보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인간들, 선동하고 선동당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이쪽’ 사람들이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경제사범은 안 된다고, 독재자의 딸만은 안 된다고 쌍심지를 켠 것은 결코 젠 체가 아니라 절규에 가까웠음을 알아주길 소망한다. 


이하 마지막 문단은 나 개인에게 전하는 반성문이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개념이 있다. 면도날처럼 보이는 것의 실체는 면도날이라는 말. 그랬다. 이상한 언어를 쓰고 상식 밖의 결정을 하면 그 기저에 괴상한 것이 있는 법이다. 대통령의 기괴함에 나는 왜 무덤덤했던가. 최순실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비리와 비상식을 나는 왜 그리 당연시했나. 더러운 세상의 더러운 법칙 정도로 치부하고 나 먹고 살기 바빴다. 어떤 나락까지 왔는지, 나는 문제를 직면하는 일을 유보했다. 이제는 거꾸로 시선 둘 곳이 없게 됐다. 거리에 나선 어린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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