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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어떤 사람은 근대화를, 어떤 사람은 식민주의와 제국의 약탈을, 어떤 사람은 여행과 낭만을 떠올릴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철도에서 만남과 이별이나 전쟁을 연상할 수도 있다. 그만큼 철도는 우리에게 천의 얼굴로 다가온다. 인간이 만든 것들 중 철도만큼 다양하고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것도 그리 많지 않다. 무수한 영화가 철도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미국 서부영화에서 열차강도는 거의 단골 메뉴 중 하나였다. 달리는 기차에서 벌이는 추격 장면은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기에 충분했다.


철도하면 영화 <애수>(원제 Waterloo Bridge)(1940)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두 주인공이 역에서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애잔한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는 1939년이다. 발레리나인 마이라 레스터(비비안 리 역)와 현역 대위인 로이 크로닌(로버트 테일러 역)은 공습경보가 울리는 워털루 다리에서 우연히 만나 금방 사랑에 빠지고 하루 만에 결혼까지 약속한다. 그러나 운명은 결국 그들을 비켜간다. 결혼을 몇 시간 앞둔 저녁에 로이는 프랑스 전선으로 떠난다. 마이라가 공연을 박차고 역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기차는 출발해서 그들은 멀리서 얼굴만 바라보며 안타깝게 헤어진다.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로이를 바라보는 마이라의 심정은 어땠을까?


로이와 헤어진 마이라는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친구와 함께 발레단에서 쫓겨나고 우연히 신문에서 로이가 전사했다는 기사를 본다. 결국 마이라는 생계를 위해 매춘부로 전락한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날 그녀는 매춘을 하기 위해 워털루 역에서 돌아다니다가 뜻밖에도 전사한 것으로 보도된 로이를 꿈처럼 만난다. 잠시 갈등하다가 눈앞에 다가온 행복을 잡기 위해 마이라는 결국 로이를 속이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로이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 가서 멋진 파티를 열고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한 마이라는 로이의 어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몰래 새벽 일찍 떠난다. 멀리 마이라가 탄 기차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장면이 잠시 비치고 마이라는 워털루 다리에서 지나가는 트럭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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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흑백영화는 많은 우연이 겹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영화에서 계속 들려오는 ‘올드랭사인’이라는 노래는 애잔하게 흐르면서 우리에게 진한 애수와 비극적인 종말을 전해준다. 그 운명의 반전에 기차역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삶에서 우연이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우리의 삶은 무수한 우연이 중첩되어 만들어내는 한 편의 서사시이다. 모든 만남은 우연이다. 근대 리얼리즘 문학과 예술이 우연을 기피하는 것은 어쩌면 부르주아 예술의 필연인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고 출세한 부르주아들에게 ‘우연’이라는 말만큼 듣기 싫은 말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노력의 정당한 대가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우연’이라는 한 마디는 그들의 모든 소망을 한 순간에 무너뜨려 버린다. 이 영화는 그런 우연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두 사람의 비극을 필연으로 만든다. 그 우연이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진행될 때 우리는 그것을 더욱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철도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작품은 <은하철도 999>이다. 워낙 유명한 애니메이션이기에 굳이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몇 마디 덧붙이자면, 애니메이션 작품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소설을 린타로 감독이 텔레비전 시리즈로 만든 것이다. 기계인간이 지배하는 미래의 어떤 시대에 주인공 데츠로[우리나라에서는 철이]는 어머니를 인간사냥꾼들에게 살해당하고 기계인간이 되어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메텔이라는 미모의 금발 여자를 만나 함께 우주여행을 떠난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은하철도 999'는 영생에 대한 인간의 갈망, 무한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향수, 사춘기 소년이 지닌 여인에 대한 욕망, 어머니로 대변되는 목가적 과거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오이디푸스적인 집착, 극단적인 과학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의 위기 같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사춘기 소년 데츠로는 바로 인간의 이런 욕망들의 복합체이며, 메텔은 그런 데츠로에게 순수한 사랑의 화신인 어머니이자 그가 성인남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교사인 동시에 그의 잠재된 성적 욕망의 배출구인 애인이다. 또한 이 영화는 서양에 대한 일본인의 콤플렉스, 철도에 대한 일본인의 강박적인 집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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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시간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나타낸다. 인간이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그만큼 시간은 느려진다. 만약 인간이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면 시간은 정지한다. 만약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면 인간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황홀하지 않은가? 17세기 영국시인 앤드루 마블은 <수줍은 애인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나는 항상 듣는다,

시간의 날개 돋친 전차가 달려오는 것을.

그리고 저기 우리 앞에는 온통

광막한 영원의 사막이 놓여 있다.


그 시대 인간에게 가장 빠른 교통수단은 전차였다. 그런 전차에 날개까지 달렸으니 오죽 빨랐을까? 그것이 시인 마블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속도였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오늘날의 우리에겐 애교로 들린다.


영화 <벤허>는 어떤가? 그 영화에 나오는 로마의 목숨을 건 전차경주를 상상해보라. 오늘날의 자동차 경주 못지않게 스릴이 넘치는 경기이다. 그런 경주는 속도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잘 보여준다. 인간은 발이 지닌 속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말을 이용하고, 전차를 만들고, 마침내 기차를 발명하고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을 차례로 만들어냈다. 그 중 철도야 말로 산업화의 출발점이며 그 상징이다. 그런 철도의 역사는 영국에서 시작된다. 1765년 왓슨이 증기기관을 발명한 이래 조지 스티븐슨이 1814년에 증기기관차를 발명했다. 그리고 1825년 9월에 영국 중부의 스톡턴과 달링턴 간 약 40km를 그가 제작한 증기 기관차 ‘로커모션’호가 달리면서 인류 역사에서 철도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이 태어났다.


그러나 철도하면 역시 미국이다. 미국의 철도 역사는 볼티모어-오하이오 철도회사가 1830년 볼티모어에서 엘리코트밀(Ellicott's Mill)까지 약 21km의 철도를 개통해 증기기관차 탐텀(Tom Thumb)호를 운행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철도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 1836년에는 이미 11개주에서 총 1600km 이상 건설되었다.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한 주요한 요인들 중 하나도 철도망이었다. 북부는 발달된 철도망을 이용해 보급품과 군 병력을 신속하게 전방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반면에 남부는 철도의 거리가 짧고 지역별로 분할되어 있어서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나마 북부는 남부를 점령하면서 철도망을 장악하고 마비시켰다.


철도건설의 초기에는 운송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노선도 짧아 철도는 수로운송의 보조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남북전쟁 이후 철도건설이 가파른 속도로 증가해 1900년까지 전국에 걸쳐 약 32만km를 건설했다. 전 세계 철도망의 약 40%를 차지한 것이다. 그야말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철도로 거미줄처럼 연결했다. 미국의 이런 광적인 철도 건설은 당연히 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급격하게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전국의 물적,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동할 필요성에 의해 수로를 대신할 철도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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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 개척에 광분한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유럽 대륙은 척박하다. 그곳에는 천연자원이 빈약하므로 산업화에 절대 필요한 석유와 석탄을 비롯, 막대한 천연자원을 해외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제 값을 주고 사온다면 무슨 이문이 남겠는가? 가장 간단한 방법이 힘없는 나라에 쳐들어가서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뺏어오는 것이다. 식민주의는 그렇게 생겨났다. 영국 역시 그런 식민주의 약탈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을 뿐이다.


이런 유럽의 상황에 비한다면 미국은 산업화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미국은 러시아를 뺀 유럽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광활한 국토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국토에서는 석유와 석탄을 비롯한 온갖 천연자원이 깔려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침탈하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강에 증기선을 띄우고 운하를 파고 땅에 철도를 깔고 도로를 뚫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미국은 분명 축복받은 나라였다. 미국은 바로 그 축복받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운반할 철도와 증기선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1869년에 완성된 대륙횡단철도는 미국산업화의 한 상징적 사건이자 미국의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남북전쟁 중인 1862년에 유니언퍼시픽 회사와 센트럴퍼시픽 회사가 설립되어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착수했다. 유니언퍼시픽 회사는 네브라스카의 오마하로부터 서쪽으로 공사를 해나가고, 센트럴퍼시픽 회사는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로부터 동쪽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두 회사는 마침내 1869년에 유타의 프로몬트리 포인트에서 합류했다.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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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도의 건설에는 남북전쟁에서 퇴역한 군인들과 아일랜드인과 중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피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 광활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동안 더위와 추위 및 제 땅을 지키려는 인디언의 공격에 무수한 노동자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특히 거대한 로키산맥을 가로지르는 철도 건설은 상상을 초월하는 난공사로 중국인 노동자들의 혹독한 노동이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노고에 대한 보답은 무엇이었을까? 대륙횡단철도 건설이 끝나자 미국은 1882년에 중국인 이민금지법(Chinese Exclusion Act)을 제정했다.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고는 더 이상 필요가 없자 천대하고 새로운 이민조차 막아버린 것이다.


이 철도 건설은 미국 산업화의 상징적 사건인 동시에 정경유착과 부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이 철도는 정부의 막대한 특혜를 받아 이루어졌다. 정부는 철도회사들에게 철도 부지를 포함한 온갖 특혜를 베풀었으며, 철도 회사들은 국회의원들을 매수하고 관료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회계장부 조작으로 건설비용을 부풀리기가 다반사였다. 또한 미국의 철도망은 이 철도 건설 후 전국에 걸쳐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다. 그런 가운데 철도는 과잉 건설과 영업이익 감소로 인해 구조조정을 맞게 되어 전국의 수많은 철도들이 몇몇 신흥재벌들의 수중에 장악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철도왕이라고 불리는 코넬리우스 벤더빌트였다.


호손이 184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천국행 철도>는 영국 작가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패러디한 것으로 철도를 배경으로 당대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천로역정>에서는 주인공 크리스천이 온갖 역경을 견디며 천신만고 끝에 천국에 가는 여정을 담고 있지만 <천국행 철도>에서 새로운 시대의 크리스천은 기차를 타고 안락하게 천국으로 간다. 그런데 그를 천국으로 데려가는 기차와 기관사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다.


바로 그 순간 기관차가 객차들 앞에 자리 잡았는데 고백컨대 그 모습은 우리를 <천국의 도시>로 매끈하게 안내할 찬양할 만한 고안품이라기보다는 우리를 지옥으로 휘몰아갈 악마의 기계에 훨씬 더 가까워 보였다. 기관차의 꼭대기에는 연기와 불에 거의 싸인 채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연기와 불길은—독자들을 놀라게 하려는 게 아니다—기관차의 놋쇠로 만든 복부에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입과 배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호손의 눈에 비친 기관차는 입에서 불을 뿜는 거대한 악마와 같은 힘을 지닌 존재이다. 기관차의 기적소리는 “천 명이나 되는 악마들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것 같은 엄청난 고함소리”를 질러댄다. 또한 기차가 종착역에 도착할 때 “그 기적소리 안에서는 온갖 비탄과 슬픔의 울부짖음과 격렬한 분노의 외침이 따로따로 분명히 들리면서도 악마나 미치광이의 거친 웃음소리와 마구 뒤섞여 있는 듯했다.” 이런 묘사에서 우리는 기관차의 초월적인 힘에 대한 호손의 외경심 뿐만 아니라 그가 기관차를 거듭 ‘악마’로 비유하는 데서 그것이 지닌 함의를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기차는 산업화의 부정적 상징이다.


번연의 시대에는 천국으로 가려는 크리스천을 비웃던 상류층 사람들—명사들, 정치가들, 재벌들, 사교계의 여인들—이 이제는 천국행 열차를 타기 위해 정거장에 몰려든다. 그들은 마치 여름날 소풍을 가는 듯한 기분으로 기차에 오르며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종교가 아니라 사업이나 정치나 가벼운 잡담이다. 그들에게서 종교적 경건함은 찾기 힘들다. 번연 이후 허영의 도시에서 교회는 오히려 더 번창했지만 목사들은 타락했다. 기차로 대변되는 산업화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그들의 정신은 오히려 황폐해졌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인 강을 건너기 위해 증기선으로 옮겨 타지만 배가 전복되면서 차가운 물속에 처박히고 만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산업화 그 자체뿐만 아니라 산업사회에서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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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와 관련해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이 쓴 재미있는 시가 한 편 있다. 이 시는 호손의 소설과는 달리 산업문명의 상징으로서의 기차에 대해 훨씬 더 낙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문은 이렇다.


나는 그것이 몇 마일을 휘감고 돌아

계곡들을 핥고

물을 마시기 위해 급수대에서 멈추었다가

거대한 발걸음을 떼는 것을 보는 게 좋다.


그것은 첩첩 산을 휘감아 돌고

길가의 오두막들을

거만하게 들여다보고는

늑골 모양으로 잘라낸


돌산 사이를

불평하며 기어가는 내내

무시무시한 노래를 불러대곤

언덕 아래로 내닫는다.


그리고 보아너게처럼 울어대며

별처럼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유순하고도 전지전능하게

마구간 문 앞에 멈춘다.


그 당시 기관차가 연기를 뿜으며 돌산을 깎아 낸 협곡 사이를 지나고 마을들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겐 천지개벽 같은 사건이자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보아너게는 성경에 나오는 ‘천둥의 아들’로 사도 요한과 야고보를 가리키는 동시에 더 넓게는 모든 열렬한 설교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설교사가 열변을 토하듯이 달리는 기관차를 상상해보라. 이 시에서는 바로 그 기관차가 우리 눈앞에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 철도가 처음 개설된 것은 구한말이다. 1896년 미국인 모스가 경인철도 부설권을 조선정부로부터 획득했다. 그러나 자본주를 찾지 못한 그는 결국 1899년에 그 권리를 일본에 넘겼으며 그 해 일본은 경인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해 제물포와 노량진 사이에 33.2km의 철도를 건설했다. 그 후 일본은 1905년에 경부선을 건설하고 잇따라 경의선을 필두로 조선반도에 부지런히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조선을 통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철도 건설은 안타깝게도 근대화의 상징이 아니라 외세의 간섭과 식민지화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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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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