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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정상적인 국가였던 것은 러일전쟁 때까지였다. 그 후로는 특히 다이쇼(大正) 7년의 시베리아 출병부터는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달리는 여우와 같은 나라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의 패전으로 여우의 환상은 무너졌다.”

- 일본의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발언 中 발췌


1941년 일본은 늘 그래왔듯 전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러일전쟁 승리 이후 일본 국민과 일본의 정치 지도자, 군부의 장성들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휩싸여 있었다. 아니, 어느 정도의 근거는 있었다. 바로 러일전쟁이었다. 당대의 초강대국이었던 러시아와 싸워 이긴 이후 일본인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기세로 치솟았고, 이후 그 자신감의 재료들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국 건국까지 일본은 거칠 것 없이 나아갔고, 어느덧 일본은 강대국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그런 그들이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일본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만든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겠다고 결심한다. 무모함의 극치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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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기준으로 일본의 국민 총생산은 90억 달러 내외였다. 그렇다면, 당시 일본이 상대하려 했던 미국의 국민 총생산은 얼마였을까? 무려 1천 1백억 달러에 달했다. 한 마디로 일본은 자국 경제규모보다 12배나 거대한 국가와 전쟁을 치르겠다고 덤벼든 것이다. 개별적인 지표들은 더 참담했다. 미일 양국의 격차를 하나씩 살펴보면,


철강은 20배, 석탄은 10배, 전력은 6배, 알루미늄은 6배 정도의 생산력 격차를 보였고, 비행기 생산력은 5배, 자동차 생산력은 450배, 공업 노동력은 5배의 차이를 보였다. 더욱 더 암담한 건 석유 비축량인데, 개전 당시 미국의 성유 비축량은 약 14억 배럴로 이는 당시 일본의 석유비축량의 700배였다. 당시 일본이 계획했던 남방작전의 핵심이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유전지대를 확보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안전하게 확보한다 하더라도 연간 300만 킬로리터의 석유를 확보하는 게 고작이었다(일본은 이 정도면 숨통이 틔일 것이라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의 격차를 확인할 수 있겠는가?


경제력의 차이가 군사력의 차이를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전에서 경제력은 군사력의 선행지표이다. 즉, 부자나라 군대가 전투력이 더 높을 것이란 건 누구라도 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미군의 보병 1명이 착용하는 각종 장구류의 가격이 11,000달러 정도 한다. 얼추 따져 봐도 병사 1명당 1,200만 원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물론, 꼭 비싼 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잘 싸운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비싼 장비가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1세기 일본을 기준으로 미국과 상대해도 게임이 안 되는 마당에 1940년의 일본이 미국을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당시 일본은 미국 경제 규모의 8.2%에 불과했다. 1980년대 버블이 터지기 전에 미국을 점령할 듯이 덤벼든 일본의 경제규모를 생각해 보라)


그런데도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을 결심한다. 그들의 낙관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일본은 진무덴노(神武天皇 - 일본 개국신화의 주인공으로서 현 천황 가문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제1대 천황) 이래로 2,600년간 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본 적이 없다.”


당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은 이야기다. 이는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에도 잘 표현돼 있다. 지금까지 진 적이 없기에 앞으로도 지지 않을 것이다란 비논리적인 주장.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볼까 한다.



“왜 일본인들은 미국과 전쟁을 하려고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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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굳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만 해결하려고 했던 이유가 뭘까? 아니, 그 이전에 전쟁까지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어디서 시작됐느냐는 것이다.


적의(敵意)의 뿌리는 의외로 깊었다. 러일전쟁 이후로 미국과 일본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키워나갔다. 미국의 경우는 ‘만주’라는 신세계를 일본이 차지하는 것을 보며 인상을 찡그려야 했고, 일본의 경우는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미국이 방해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에서 ‘도쿄일보’의 주필이 ‘아국의 정당한 권리’를 계속해서 말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식민지를 지배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받아야 하는 것인가?”


일본인들은 분노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차지했고, 만주로의 교두보를 확보했을 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영일동맹을 핑계로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참전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중국에 있던 독일의 조차지로 밀고 들어가게 된다. 그리곤 당시 중국의 실권자인 원세개에게 ‘21개조 요구사항’을 강요한다(이에 대해선 2부에서 설명했다). 처음엔 반항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원세개는 이 21개조 요구사항을 들어줬고, 이로 인해 중국인들의 반일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중국도 참전을 했던 것이다. 승전국이 된 중국은 1919년 파리 평화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해 21개 요구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때 일본은 이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서방 세계는 일본을 압박하기에 이른다. 결국 1919년 4월 21일 강화 회의에서 ‘장래 중국으로 반환하는 것을 전제로’ 산둥 반도의 이권을 일본에 양도한다는 타협을 보게 됐고, 1922년 워싱턴 회의에서 일본은 21개조 조항 중 하나인 산둥 반도의 이권 부분을 포기하게 된다(당시 산둥 반도의 이권은 그 의미가 없었기에 일본은 이를 포기했다).


외교적으로 ‘21개조 요구사항’은 무리가 있었다. 제국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뭐가 문제일까 싶지만, 상식의 수준에서 보자면 이건 침략의 다른 표현이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게 뭐가 문제인가? 서방국가들이 18세기부터 지배한 수많은 식민지들을 보라. 그들의 행동은 정당하고, 우리의 요구는 부당한 것인가? 우리와 그들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본과 이를 방해하는 서방세력이라고 봐야 할까? 이야기는 점점 복잡해지는데, 베르사유 평화협정에서 인종 차별 금지와 국가 간의 법률적 평등권을 주장한 일본이지만, 서구 제국들은 이를 거부했다.


“일본이 아무리 흉내를 낸다고 하지만, 그들은 원숭이일 뿐이다.”


일견 이렇게 무시를 하면서, 마음 한 켠에서는 ‘황화론(黃禍論)’을 들먹이며 일본을 견제하고 있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는데, 이후 미국 연방최고법원이 하나의 결정을 내린다.


“일본인은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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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나라,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이 일본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뒤이어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일본인들의 이민을 엄격히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서구 세력들이 일본은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당시 일본인들의 마음을 대변했던 책이 한권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만약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면> 이라는 책이다. 1921년 일본의 예비역 중장이었던 사토 고지로가 쓴 책이다.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기 20년 전에 일본에서는 미국과 전쟁을 하는 걸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군 특수부대가 미군 전략기지에 대해 ‘가벼운’ 기습 공습을 하면 미국의 일본에 대한 자세가 부드러워 질 수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 중 일부다. 망상과 같은 이야기지만, 문제는 이 책이 당시 베스트셀러로 팔려나갔다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3년 뒤 오카와 슈메이(大川周明) 박사가 <아시아, 유럽 그리고 일본>이라는 책을 쓰게 된다.


“그리스가 페르시아, 로마 그리고 카르타고와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미국과 일본도 싸울 수밖에 없다. 일본이여! 그것이 1년 안에 있을지, 10년 후에 있을지, 그렇지 않으면 30년 후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부름에 대비하라.”


이 책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일본의 극우 사상가이자 민족주의자인 그는 수많은 저서를 통해 극우파 지식인으로 명성을 날린 인물이다. 이런 활약(?) 덕분에 그는 도쿄 전범재판에서 민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A급 전범으로 분류 돼 기소됐던 인물이다.


문제는 이 인물이 당시 히로히토 일본 덴노가 직접 만든 두뇌집단 양성소(일본 황실 기상관측소를 거점으로 만들어 졌는데, 그 명칭은 분분했다. ‘사회문제연구소’, ‘대학 하숙집’ 등등으로 불렸다)의 핵심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적 사고를 가진 육군과 해군의 엘리트 장교 30명을 모아서 만든 이 모임에서 오카와 박사는 자신의 이론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의 주장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덴노의 개인 돈으로 만든 이 연구소는 덴노의 사적인 씽크탱크였고, 이후 일본 군부의 요직에 앉을 리더들의 교육 기관이었다.


이미 일본은 1920년대부터 미국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고 당시 분위기 상으로 보면 실현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전쟁을 고려했다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당시 일본의 분위기는 미국과의 전쟁도 고려 대상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일반 대중이나 일부 지식인들의 감정적인 접근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가의 의사결정권자들의 경우는 국내외의 정보와 국제사회의 동향을 접하지 않았는가? 이들이라면, 미국과의 전쟁이 얼마나 무모한지 알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전쟁을 선택한 것일까?”


합리적인 질문이다. 일반 대중들의 경우는 정보가 통제돼 있기에 감정적인 발언과 행동을 할 수 있다지만, 국가의 의사결정권자들의 경우는 다르다. 어째서 1941년의 일본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자신들보다 12배 이상의 경제력과 산업잠재력을 가진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생각을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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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일본 정치체제의 ‘시스템적인 오류’가 개입돼 있었다. 바로 일본 특유의 ‘이중권력체계’가 문제였다. 다들 알다시피 일본은 덴노라는 상징 군주와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총리가 통치하는 일종의 ‘입헌군주제’와 같은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다(지금의 일본을 명확한 의미에서의 입헌군주제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명목상으로 보자면, 일본의 권력은 국민들이 선출한 ‘총리’의 손에서 나와야 하지만 지금도 일본 총리의 힘은 지극히 제한적이다(대통령제 국가뿐만 아니라 내각책임제를 하는 국가와 비교해도). 그나마 제대로 그 힘을 사용했던 예는 87대 총리를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郎)총리 정도가 고작이다. 물론, 역사상에 기록된 총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헌법 안에서 혹은 헌법을 초월한 권력을 행사한 총리들이 있지만, 그들의 권력은 명목상 ‘덴노’의 권한을 위임 받은 형태였고, 권력 사용 이후의 ‘책임문제’에 있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즉,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고, 이후의 책임 소재도 명확하지 않다.”



라는 것이다. 현대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간단히 말해 4대강 사업을 한 주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시작했고, 이후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그 책임소재를 물을 사람이 없다는 것과 같다. 4대강 사업과 같은 국내 문제라면 어떻게든 수습을 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문제는 국가의 운명을 건 ‘외교’ 더 나아가 ‘전쟁’이라는 극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전쟁이라는 분위기로 나라를 이끌고 간다는 건 너무도 무책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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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서는 일본을 전쟁으로 몰고 간 일본의 책임지지 않는 정치체제에 관해서 이야기 하겠다.




참고자료


1. 전쟁국가 일본/ 살림출판사/ 이성환

2. 호호당 선생의 ‘프리스타일’

3. 세계전쟁사/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황금알

4. 러일전쟁과 을사보호조약/ 이북스펍/ 이윤섭

5. 조선역사 바로잡기/ 가람기획/ 이상태

6. 다시 쓰는 한국근대사/ 평단문화사/ 이윤섭

7. 대본영의 참모들/ 나남/ 위텐런 지음, 박윤식 옮김  

8. 나모위키

9.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추수밭/ 이노세 나오키 지음

10. 『중일 전쟁』 용, 사무라이를 꺾다/ 미지북스/ 권성욱 지음

11.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 서해문집/ 김효순 지음

12. 석유전쟁/ 매일경제신문사/ 정기종 지음

13.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 흥망사/ 궁리/ 이창위 지음

14. 연합함대 그 출범에서 침몰까지/ 가람기획/ 박재석, 남창훈 지음

15.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4246

16. 일본의 이중권력, 쇼군과 천황/ 살림출판사/ 다카시로 고이치

17. 히로히토 신화의 뒤편/ 을유문화사/ 에드워드 베르 지음

18. 일본의 가장 긴 하루/ 가람기획/ 한도 가즈토시 지음





1부 

[러일전쟁]


2부

드레드노트의 탄생

1차 세계대전, 뒤바뀐 국제정치의 주도권

일본의 데모크라시(デモクラシー)

최악의 대통령, 최고의 조약을 성사시키다

각자의 계산1

8년 의 회, 던 축 

일본은 어떻게 실패했나2

만주국, 어떻게 탄생했나



외전

군사 역사상 가장 멍청한 짓

2차대전의 불씨

그리고, 히틀러

실패한 외교, 히틀러를 완성시키다

국제정치의 본질



3부

태평양 전쟁의 씨앗1

태평양 전쟁의 씨앗2

도조 히데키, 그리고 또 하나의 괴물

일본을 늪에 빠트린 4명의 '미친놈'

대륙의 각성완료, 다급해진 일본

대동아(大東亞)의 환상에 눈 먼 일본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1

일본,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2

일본의 패배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1

일소중립조약이 파기되던 순간 2

천조국, 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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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가 디비주는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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