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raksumi 추천4 비추천0

2013. 08. 30. 금요일

raksumi














수술의 과정


가끔씩 외래에 실밥을 제거하러 올 때 환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꼬매신 곳은 깨끗한 데 반대 쪽은 좀 별로에요"


마취 전에 제가 자신의 왼쪽에 있고 레지던트 선생님이 반대 쪽에 있는 것을 기억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수술을 하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아무리 졸리고 피곤해도 surgeon이 수술하다가 조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아주 당연하게도 긴장을 해야 합니다가끔씩 아주 쉬운 수술이라고 생각하고 긴장 하지 않고 수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정말 귀신 같이 피가 많이 납니다.


암튼, 그런데 또 아주 당연하게도 이런 긴장 상태를 수술 하는 내내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 과(산부인과)의 제왕절개술의 예를 들어 보면


1. 일단 피부를 절개하고

2. 근막을 제거하고

3. 복막에 구멍을 내서 장기를 확인하고

4. 수술 할 부위가 잘 보이게 셋팅을 하고

5. 자궁을 가르고 애기를 꺼냅니다

6. 자궁을 꼬맵니다

7. 복막을 꼬매주고

8. 근막을 꼬매주고

9. 피부를 꼬매 줍니다.


layersabdlatant.jpg

우리 몸의 절단면

[skin - 피부], [fascia - 근막], [peritoneum - 복막]


고동색은 근육입니다. 참고로 수술할 때 왠만하면 근육을 절개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사실 가장 집중을 해야 되고 긴장을 해야 되는 부분은 바로 5번과 6번 과정입니다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고 이게 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보통 배를 가르기 시작해서 애기가 나올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 안쪽입니다.


그 후 임신 중 커졌던 배가 작아지면서 출혈이 되는데 약 500ml 정도 나옵니다참고로 사람 피는 보통 5리터쯤 되니 얼마나 많은 양인지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평균이 500ml이고 뭐 2리터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여담입니다만(다른 과를 폄하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안과에서는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수술을 합니다그러다가 출혈이 되면 surgeon이 소리를 칩니다.


" massive bleeding(다량 출혈)이다면봉 가져와라"


우리 산부인과는 스케일이 다릅니다. 500ml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갑니다제 수술에 들어왔던 비뇨기과 선생님은 출혈이 되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저를 보고 너무 놀랐다고 하더군요(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ㅋ).


암튼 애가 무사히 나와서 잘 울고 6번 과정까지 끝나서 피가 멈추고 환자가 stable(마구간 아님)해 지면 긴장이 풀어집니다그러면 의사가 말을 합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환자가 왜 그렇게 수술방에서 의사들이 말이 많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이유로 그렇습니다.


환자가 전신 마취를 했다면 레지던트랑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하죠환자 이야기도 하고 개인적인 것도 많이 묻고... 인턴 선생님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말을 많이 겁니다특히 저희 과처럼 인기가 없는 과는 우리 과 오면 잘 해 주겠다는 당근성 멘트를 하거나 인턴 점수 빵점을 줘서 도저히 우리 과 아닌 다른 과에 지원 못 하게 하겠다는 채찍성 멘트를 막 날립니다.


그리고 아랫쪽 일 년차나 인턴 선생님들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막 졸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끝나면 저는 일부러 말을 걸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씩 환자들이 살짝 마취에서 깨어 있거나 혹은 척추 마취를 하면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그럼 사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죠. 자기 몸을 열어 놓고 수술하면서 집중 안 하고 농담 하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의 '완전히' 주관적 입장에서 보면... 그게 뭐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복막을 닫으면 주치의는 수술방을 나갑니다('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1년차와 4년차 이렇게 남아서 남은 근막을 꼬매고 피부를 닫습니다.


그냥 수술방에서 멍 때리고 있어 졸리웠던 1년차는 이제 일을 부여 받음으로써 잠에서 깹니다그리고 다시 윗년차와 이야기를 합니다환자 노티도 받고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환자들이 의사 욕 하듯이 레지던트들도 진상 환자 욕을 하기도 합니다그래야 좀 스트레스가 풀리겠죠암튼.


상황 1


제가 4년차 때 난소 암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그만 그 환자의 피부가 벌어졌습니다. 과장님은 대노하셨고 결국 재수술을 하고 말았습니다.


1.jpg2.JPG


욕은 바가지로 먹고 꽤 우울했었는데, 다음 수술에서는 본인이 직접 하신다고 첨부터 끝까지 다 하셨습니다그런데 이번에 상처가 더 벌어졌습니다그런데 과장님이 황당하게도 본인이 닫으시고도 제가 잘못해서 그랬다고 소문을 내셨습니다.


상황 2


제가 4년차 때는 당시 정권 실세이셨던 분의 사모님이 수술을 하러 오셨습니다. 그 때 우리 과장님이 확실하게 하신다고 본인이 직접 피부까지 다 닫으셨습니다.


결국 퇴원 3일만에 피부에 염증이 생겨서 응급실로 오셨습니다수술 해 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상처 절개 부위에 염증이 나면 정말 짜증이 납니다사모님은 정말 몹시 화가 나셨는데 꾹꾹 참고 있는 것이 보였고 의원님은(사람 좋게) 그냥 허허 웃으시더군요.


소독을 해 드리는 와중에 제가 '이라크 파병은 왜 하시냐'고 따지듯이 물었습니다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런 시절이 정말 있었습니다.


"그냥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요" 라시며 또 허허 웃으시더군요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분 얼굴에서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감지했었습니다암튼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레지던트 선생님이 피부는 더 잘한다는 사실.(다 그런 것은 아니고, 저는 제가 레지던트 보다 잘 합니다 ㅋㅋ)


옆 길로 많이 샜는데, 뭐 요새는 담당주치의가 하는 경우도 많고 병원 마다, 의사 마다 다르겠죠.


수술 방 arrange


저는 개인적으로 의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메디칼 드라마 <ER> 그런 거 탓인지 수술방에서 하는 수술은 모두 응급인 줄 알았습니다막 수술 할 때 피가 튀고 환자 vital 흔들리고(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이 빨라지고과장님은 소리 지르고 간호사들은 밖에서 몹시 바쁘게 움직이고 레지던트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과장님의 결정만 기다리며...


3.jpg

머 대충 이런...

 

하지만 대부분의 수술, 거의 95% 이상의 수술에서는 환자가 수술방에 그냥 걸어 들어옵니다. 멀쩡히 있다가 마취 받고 수술 끝나고 깨어납니다.


저희 병원은 수술방이 약 18개 정도 됩니다. 보통 하루에 전신 마취 수술은 50개 정도, 혹은 그 이상 하는데 각 방마다 수술 하는 과에서 처음부터 쭉 이어서 수술을 합니다이런 수술을 'elective operatio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끔씩 나머지 그 5%가 수술을 해야 될 경우가 있습니다.(이런 수술을 emergency operation 이라고 하지요)

 

여기서 그럼 문제.


가장 응급 수술이 많은 과는 어느 과일까요?

 

정답은 의외로 산부인과입니다정확히는 산과가 가장 많습니다.(물론 맹장염도 많기는 하지만 맹장염이 '급' 응급은 아닌지라. 교통사고로 갑자기 실려 들어오는 정형외과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질식 분만을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 혹은 분만실에서 애기의 심장 박동 수가  떨어지는 경우가 가장 많고, 또 갑자기 양수가 샌다던지 산모의 혈압이 조절이 안 된다던지 뭐 그런 경우입니다산모의 수술은 아시다시피 미룰 수 가 없고 특히 태반 조기 박리 같은 병은 촌각을 다투기 때문에 빨리 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방에서 자기 수술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과 수술이 들어 온다고 하면


4.jpg

"그래 그렇게 위험한 수술이고 빨리 해야하니까 착한 내가 양보하지."

 

뭐 이러는 부처님 같은 surgeon은 없습니다다 얼른 자기 수술 끝내고 일찍 집에 가고 싶어하고, 이런 경향은 나이가 많으신 교수님들이 더 심합니다.

 

그러면 레지던트 한 명이 마취과 그날 당직 선생님에게 가서 빌어야 합니다.(주로 수술방에 들어오지 않는 2년차가 합니다) 수술을 빨리 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 드리고 얼른 방을 받아야 합니다그러면 마취과 선생님은 일의 경중을 따지고 방 상황을 보아서 방을 배정(arrange)합니다응급이라고 해도 초응급은 그 5%에서도 정말 일부이므로 여러 가지 고려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 산모가 어제 아침부터 배가 아팠습니다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이 녀석이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산부인과 의사가 보니 산모의 골반도 별로 좋지 않고 질식 분만도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제왕절개를 결정합니다그래서 마취과에 연락을 했습니다18개의 수술방이 모두 돌아가고 있는데 이제 한 방이 곧 끝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부인과에 주려고 하는데 지금이 오후 4시 반이라고 가정합니다.

 

이 시간이면 오전에 출근한 직원들은 8시간 근무 시간이 이미 끝난 시간입니다. 만일 수술을 해야한다면 방을 더 열어야 되므로 직원들이 퇴근을 못하게 되죠이럴 때 사실 마취과 의사는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밤에는 3개 방 정도는 밤에도 원래 근무하는 당직 팀이 있어서 방을 더 열 수 있으므로 당직 시간에 수술을 할 수 있게 조절하는 것입니다.


물론 산모는 그 아픈 시간을 1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하지만 그리 급한 수술이 아니므로 저희도 그렇게 기다립니다. 하지만 태반 조기 박리나 태아의 건강이 정말 의심이 되는 응급 상황이면 방을 하나 더 만들어서라도 하는 게 당연하겠죠가끔씩은 elective op도 밀릴 때가 있습니다.


새벽에 흉부 외과에 심장 질환 환자가 왔는데 응급 수술을 들어 가는 경우 그게 아침 8시에 시작해야 하는 방에서 8시가 지나도록 계속될 수 있습니다. 밀린 수술이 운이 없게도 첫 수술을 10시 쯤 시작한 경우는 그날 자기 수술이 5개 쯤 된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수술을 늦게 시작 했으므로 5시 전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참고로 마취과는 오후 4시 넘어서는 elective 수술방은 잘 열어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방 arrange는 많이 복잡하고 마취과 의사들에게 잘 보여야 되므로 복잡합니다.

 

식사

 

수술방에는 식당이 있습니다. 언제나 식사는 즐겁고 좋습니다언젠가 과학이 발달하여 알약 하나로 식사가 가능해 진다고 하면 아마 몇몇 사장님들 빼 놓고는 모두 싫어 할 것 같습니다.


식사는 보통 가장 낮은 연차 레지던트부터 먹습니다. 왜냐하면 낮은 연차 레지던트는 마취 시작할 때(20-1시간)  마취 깨울 때(15환자 옆에 붙어 있어야 하므로 식사할 시간이 없습니다그래서 수술방에서 수술을 할 때 과장님이 제일 먼저 밥 먹으러 나가라고 합니다.


제가 1년차일 때였습니다. 그 날은 엄청 큰 암 수술을 하고 있었는데 4년차뿐 아니라 3년차도 들어왔습니다그러니까 교수님, 4년차, 3년차 그리고 제가 있었습니다전날 차트 정리를 하느라 2시간도 못잤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수술 스케줄이 계속 잡혀있어서 잠깐 눈 붙일 틈조차 없었습니다.


당시 수술을 할 때 저는 보통 뒷쪽에 서 있었는데, 그 암 수술을 할 때는 유독 수술장이 잘 안 보이는 것입니다. 평소에 자주 하던 수술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 수술을 하고 있는 구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윗동네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고 피곤해서 미칠 지경이고 피는 많이 나고 수술은 지지부진으로 진행되고...


결국 저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말았습니다.(졸다가 휘청거린 이야기를 이렇게 거창하게대개 이렇게 1년차가 조는 경우 교수님은 chief 레지던트가 잘못 했을 때처럼 소리지르거나 때리지 않습니다그냥 한심하게 쳐다 보십니다.


5.jpg


"어제 못 잤냐?"


사실대로 못 잤다고 그러면 윗년차에게 혼납니다.


"잤습니다."


"아침은 안 먹었냐?"


이 때도 사실대로 안 먹었다고 그러면 안 됩니다.


"먹었습니다.(어떻게 일 못하는 1년차가 아침 밥을 먹습니까? )


"나가서 밥이나 먹고 와라"


결국 저는 수술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너무 졸려서 그런지 별로 밥을 먹고 싶지도 않았습니다.(실제 시간도 11시 조금 넘어서 점심 때도 아니었고그 때만 해도 담배 사는 것을 끊지 않았을 때라 제 캐비넷에 담배가 있었습니다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를 피니 조금 살 것 같았습니다밥 대신 물을 많이 마신 것 같습니다.


수술장에 다시 들어가니 교수님은 이미 나가셨는데 윗년차들이 난리가 났습니다밥도 안 먹고 담배랑 커피만 하고 왔는데 왜 이리 늦게 들어왔냐고 윗년차가 막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억울하였으나 그때는 이미 다 죽은 성격이라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6.jpg

억울해!!!


결국 한 사람씩 밥을 먹고 들어오고 chief 레지던트는 조금 일찍 나갔습니다. 절개한 피부는 저와 3년차가 봉합을 했습니다그리고 마취중인 환자 깨우고 바로 그 다음 수술 준비. 결국 저는 점심밥을 먹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좀 괜찮은 것 같더니 급격한 저혈당으로 휘청 휘청, 정말 쓰러질 것 같더군요수술 중간에 밥 좀 먹겠다고 그러지도 못하고.


아마 병원일에 좀 익숙하였더라면 서큐레이팅 너스에게 도시락을 부탁했으면 됐을 텐데 그것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수술이 끝났을 때 약 4시 반 정도 되더군요물만 조금 마시고 마취과에서 환자 깨우길 기다리는데 왜 그렇게 슬픈지... 배고픈 설움이 무언지 알 것 같더군요이미 식당은 끝났고 빵 사 먹으러 가려고 하니 너무 멀고 귀찮고 밀린 일도 많고, 배도 몹시 고픈데 결정적으로 너무 졸려서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raks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