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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9. 11. 수요일

이작가












5. 채권추심원의 탄생

 


이제 어떻게 하지? 그때 게시판에 붙어 있는 채용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채권관리 업무 신입사원 모집

 


자연스럽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갈 구실이 생겼다. 철수는 가까운 피씨방을 찾아가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이력서를 출력했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아침에 면도를 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검정색 점퍼에 체크 셔츠와 면바지 차림은 그런대로 깔끔해 보였지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구직자 같이 보일까? 그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모두 양복 차림이었는데….

 

철수는 이를 악물고 와이캐피탈의 문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철수에게 말을 건 사람은 개인회생과장 조황진이었다. 각진 얼굴에 굵직한 목, 아래로 딱 벌어진 어깨에 다부진 몸매를 가진 건장한 사내였다. 특전사 출신이라는 복무 경력을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다른 남자들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외모였다. 그런 남자와 마주치자 철수는 숨이 턱 막혔다. 상대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다짜고짜 이력서를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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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따로 인사관리 담당자를 두지 않고 자신이 신뢰하는 개인회생과장 조황진에게 이 일을 맡겼다. 그는 인터넷에 채용 공고를 올리고 이력서를 접수하고 면접 약속을 정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조황진은 철수가 마음에 들었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이력서를 내미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채용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첨부해 이메일 한 통 보내고 마는 구직자에 비하면 직접 회사를 찾아오는 노력이 가상하지 않은가?

 

조황진이 철수를 회의실로 데려갔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이라 사장과 박치훈 과장이 커피를 마시며 농담을 하고 있었다. 조황진이 사장에게 철수를 소개했다.

 

이 친구, 모집 공고 올리자마자 이력서 들고 찾아왔지 말입니다.”

 

사장이 철수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지?”

 

김철수입니다.”

 

김철수? 본명이 김철수야? 하하.”

 

으하하하.”

 

사장과 박치훈 과장이 동시에 웃어대자 철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장이 철수의 이력서를 들고 있는 조황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황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철수의 이력을 읊었다.

 

스물다섯 살이랍니다. 영등포에 살고, 영등포제일중학교 고등학교 나왔고, 경기경영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다 중퇴했습니다. 자격증은 운전면허증이 있습니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과장의 말을 듣다가 철수에게 질문했다.

 

대학은 왜 그만뒀나?”

 

벌려고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가보지?”

 

저기 보니까 고졸 이상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보잘 것 없는 이력이 거론되자 철수는 부끄러웠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대꾸했더니 사장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그래. 고졸이면 충분하지.”

 

사실 고등학교 졸업장도 필요 없지 않습니까?”

 

박치훈 과장이 끼어들자 사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얌마, 그래도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정직원을 뽑는데 '학력 중졸' 이렇게 써 놓으면 쪽팔리잖아. 요즘 세상에 고등학교는 나와야 이력서를 내밀지. 대졸자 취업 준비생이 쌔고 쌘 판국에 말야.”

 

사장은 조황진에게 철수의 이력서를 달라며 한 손을 내밀면서 뻐기듯이 말했다.

 

우리 회사에 나 말고 4년제 대학 나온 놈 있어? 없잖아? , 특공대는 4년이니까 조황진이 인정.”

 

조황진이 낮은 목소리로 킬킬 웃었다. 그러면서도 정중하게 양손으로 사장에게 철수의 이력서를 건네주었다. 사장은 철수의 이력서를 훑어보며 농담을 하던 표정을 바꾸었다. 입술을 가늘게 꾹 다물고 다시 면접관 자세로 질문을 시작했다.

 

김철수 씨, 대학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우리 회사는 금융 회사라서 신용에 문제가 있거나 범죄 사실 같은 게 있으면 곤란해.”

 

저 그런 거 없어요.”

 

학교는 어쩌다 그만두게 되었나?”

 

여자친구가

 

철수가 더듬거렸다. 여기에 온 이유가 다시 생각났다. 갑자기 수아가 걱정되었다. 지금쯤 잠에서 깼을까? 눈을 떴는데 방안에 아무도 없어서 외로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집을 나오면서 습관적으로 보일러를 외출 모드로 돌려놓지 않았던가? 추운 방에서 혼자서 뭘 하고 있을까? 나는 여기에 찾아와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철수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하는데, 박치훈 과장이 끼어들어 능글맞게 캐물었다.

 

오호, 여자친구 있어? 여자애가 왜? 뭘 어쨌길래?”

 

철수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여자친구가 꾸준히 빚을 갚아 나갔는데도 갑자기 통장이 압류되는 바람에 회사에 못 갔다고, 그 뒤로 빚쟁이가 찾아올까 두려워서 집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고,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만 있다고, 바로 당신들 때문에 수아가 아프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또박또박 말했다.

 

여자친구가 아파요. 지금도 아파서 누워 있어요.”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사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철수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여자친구랑 같이 살고 있나?”

 

. 작년부터 둘이 살아요.”

 

부모님 허락은 받았고?”

 

그럼요. 저희 집에서는 부모님 모두 허락하시고 집도 구해주셨고요. 여자친구 어머님도 다 알고 지내는데아버지는 집을 나간 지 오래 돼서그 애를 돌봐줄 사람이 저 말고 없어요.”

 

무거운 이야기가 나온 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장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박치훈이 고개를 돌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조황진이 큰 한숨을 내쉬며 침묵을 깨뜨렸다. 축축해진 눈으로 철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두꺼운 손으로 철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 녀석, 남자답지 말입니다.”

 

아까부터 빠르게 뛰고 있던 철수의 심장이 더 격하게 쿵쾅거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로부터 남자답다고 인정을 받았다. 내심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하필 이런 상황에서라니 곤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질문에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분을 생략했으니 마음이 켕겼다. 애초에 입사하기 위해 이력서를 들고 온 것이 아니었는데 얼결에 입사 면접을 보고 있는 꼴이 대체 뭐란 말인가?

 

사장이 차분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이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조립하는 일을 했어요. 지금도 일하고 있어요. 오늘 휴가 내고 왔고요.”

 

컴퓨터는 잘 다루겠군?”

 

조립피씨 맞추고 업그레이드나 수리도 하고 소프트웨어 설치관리도 해 드리고

 

사장이 반색을 하며 이력서에서 고개를 들고 철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회사 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무기기인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직원이 없었던 차였다. 컴퓨터에 사소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A/S 기사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업무가 늦어질 때가 많았다. 사장은 자기 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 학원 같은 곳에 다녀볼까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사장만이 아니라 두 명의 과장들도 철수의 이력을 좋게 보았다. 사장이 호쾌하게 말했다.

 

그러면 다음 주부터 출근하는 걸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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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철수는 와이캐피탈에 입사하게 되었다. 철수는 인근 경찰서에서 범죄사실증명서를 받아 제출했고, 근로계약서와 보안각서를 썼다. 조황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자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수아에게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관문이었다. 철수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수아에게 이로워진 점이 많다고 설득해보았다.

 

내가 거기서 일하다 보면 어떻게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월급도 지금보다 훨씬 많아. 앞으로는 나도 도와줄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러나 수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좋다고도 싫다고도 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철수에게는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일단 잘 다린 셔츠에 넥타이를 졸라매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강남역으로 출근하는 일이 좋았다. 구겨진 잠바에 운동화를 신고 용산으로 출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백수였던 시절 여의도의 고층 빌딩을 보고 기가 죽었던 기억도 났다. 이제 그만큼이나 고층 빌딩이 많은 강남을 누비게 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수는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와이캐피탈이라고 일본계 금융회사가 있어요. 모회사는 캐시앤머니라고 텔레비전에서 광고 많이 하잖아요. 거기서 일하게 됐어요.”

 

소식을 들은 철수의 부모도 몹시 기뻐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소개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급여가 이전보다 많아졌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매달 수입이 몇십만 원 더 생긴다고 생각하자 그동안 상상했던 소박한 바람들이 하나 둘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컴퓨터 그래픽카드를 업그레이드해서 최고 사양의 온라인게임이 쌩쌩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자리를 구할 때 유니폼을 지급하는지 꼭 확인해 보는 수아에게 반듯한 새 옷을 사주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릴 수도 있었다.

 

스물다섯 살이 되고서야 철수는 비로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돈이 좋았고 더 많은 돈은 더 좋았다. 그렇게 깨닫고 나자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전환점을 넘어버린 것 같았다.

 

수아도 새 일자리를 구했다.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수아는 그동안 경쟁사인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했는데 그때의 경력을 인정받아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 최저 시급에서 천오백 원이 더 붙었고 식대가 따로 나와서 수입이 늘었다. 가끔 야간이나 주말에 추가 근무를 하면 시급이 1.5배 더 나오고 주휴수당도 따로 받았다.

 

알바 생활 5년 만에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업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었다. 1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도 나온다고 했고, 4대보험 가입도 되었다. 수아의 건강보험에 어머니와 남동생이 피부양자로 등재되었다. 수아는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자기 집에 다니러 갔다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내준 우편물을 받아보았다. 이제 어머니도 안심하고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수아는 제 이름이 세대주로 적혀 있는 건강보험증이 자랑스러웠다.

 

돈많이벌어서.jpg


와이캐피탈에서 채권추심원 김철수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남에게 빚 독촉을 하는 것이었다. 철수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자신감이 없었다. 채무자에게서 돈을 받아내는 일은 정말로 어려웠다.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기기 전까지 철수는 실적을 달성하지 못해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다.

 

사장이나 과장이 심한 소리를 할 때마다 철수는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날을 회상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목 뒤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믿고 채용해 준 사장과 박치훈 과장, 특히 자신에게 남자답다고 말했던 특전사 조황진 과장을 속인 것 같아 미안했다. 절대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철수는 사장과 과장들에게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에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게 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사들은 철수의 그런 태도를 칭찬했다.







이작가


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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