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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한 외교관이 미성년자를 성추행 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외교관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 "나라 망신이다" 등등 다양한 반응들이 보이지만, 대사관에서 5년 남짓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교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존경의 대상도 있다. 분명) 폐쇄적인 분위기와 엘리트 의식이 얼마나 조직과 조직원들을 이기적으로 만드는지 5년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사관은,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해외에 주재하는 정부기관이지만 물리적으로 본국과 떨어져 있고 시차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아 감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각지대'이다.

 

때문에 '공관장의 재량'이라는 이름으로 대사관 자체적인 업무/행정 처리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일의 형태에 따라서 한국과 해당 국가의 법을 기회적으로 맞춰가며 공관이 운영이 되곤 한다. 한국의 조직문화는 갖고 있지만 한국에서 운용되는 법을 명확하게 따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현지법(?)을 따르는 것도 아니어서 '공관장 재량'으로 제멋대로(?)일 경우가 허다하다는 뜻.

 

2013년 포르투갈 대사의 관저 요리사 경질 사건을 기억한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거다. 사실 내가 근무했던 주영국대사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령, 근무시간이 짧은 것 같다고, 또 직원들이 칼퇴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사 마음대로 퇴근시간을 30분 연장하고 강제적으로 동의, 노동계약서를 재작성하게 하는 등의 일은 외교관들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외에도 그 '사각지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 많은 비상식적인 일들은 나열하자만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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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먼저, 성추행. 

 

'고위 공직자'라고 하는 사람이 직원들과의 회식 후 노래방 가서 여직원들 앞으로 나오게 한 뒤 노래에 맞춰 몸을 맞대고 블루스를 추는 일, 홀로 자취를 하는 여직원들에게 밤 늦게 단둘이 술을 마시자고 연락을 하는 일 등이 있다. 타지의 말단 여직원 입장에서는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기도 힘든 일이다.

 

성추행 당한 직원이 상담을 하면, "가해자가 술을 먹었느냐", "만약 그랬다면 정신이 돌아왔을 때 얘기를 나눠보라", "가해자와 화해를 해라",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 등의 답변을 듣게되기 때문이다. 2차 피해이다. 어떤 이들은 되려 "실망이다" 등등의 답변을 하기도 한다. 가해자 처벌? 그런 건 없다. 혹여라도 외부에 알려지면 앞날에 누가 될까, 어떻게든 쉬쉬하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번 칠레 사태도 대사관 내부에서 조사를 하지 않고 현지 언론이 조사를 했기 때문에 드러난 것이지 실상은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인사(Human Resources)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대사가 자신의 비서로 근무한 직원에게 인사평가를 높게 주는 일, 혹은 비서가 선호하는 부서로의 이동할 수 있도록 인사상 특혜를 주는 일 등이 해당된다. 그렇게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자리로 이동을 하고, 어떤 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했다는 말과 함께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 이동을 해야 한다. '공관장의 재량'이라는 권력에 눌려 피해를 입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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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1. 보안을 위해 설치한 CCTV 녹화 영상을 되돌려보고, 커피를 사러 나간 직원이 누군지 체크해 해당 직원들을 불러다가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겁박을 한다거나,

 

2. 자녀가 있는 직원들은 정시 퇴근을 해야하는 일들이 많은데, 대사가 정시 퇴근하는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혼의 여직원들을 불러, 출산 계획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이런 저질적인 질문을 하는게 외교관인가?) 하고 대사 비서로 자리를 이동하도록 한다든지,

 

3. 영사라는 사람이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에게 없는 일을 만들어주기 위해, 개인정보를 소중히 다뤄야 할 비자 심사 및 발급 업무를, 공관의 방문자 안내하는 리셉션에서 전화 안내, 방문자 안내를 함과 동시에 업무를 진행하라고 지시를 한다든지.

 

4. 처음 대사관에 취직한 직원에게, 환영하는 자리에서 첫 경험(성경험)이 언제냐고 묻고 대답하지 않으면 끝까지 물어 해당 직원이 자신의 성경험에 대해 토로하게 한다든지,

 

5. 새롭게 부임한 대사가, 자신은 지문인식도,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도 누르기 싫으니, 출근 전에 미리 공관 정문을 열어놓고 엘리베이터도 고정시켜 놓으라고 명령(?)한 일  

 

이런 여러가지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대사관(공관)의 대표, 공관장이라 불리는 사람이, 기업 회장들이나 요구할 법한 의전을 원하고 있는데, 무슨 외교를 운운할 수 있으랴.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어이가 없었던 건, 회의 시 행정직원들에게 커피와 차를 준비하게 하고, 냉난방기를 미리 작동하도록 하여 최적의 환경에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요구하며 이것은 업무 중 일부이고 이러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시에는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전체 메세지를 통해 겁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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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부분의 일들은 '공관장 재량'으로 결정되는 일들이라 집행하는 사람도 따르는 이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건, 누구나가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번에 밝혀진 칠레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은 어쩌다 우연히 밝혀진 것이 아니다. 꼬리가 길면 잡히 듯 '공관장 재량'으로 묵혀 왔던 일들이 외부에 의해 밝혀진 것 뿐이다. 사각지대에서 재량으로 운영되는 각 국의 대사관들도, 제대로 된 검증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BRYAN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