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社의 부도덕한 행위를 더 묵과할 수 없다...”
라며 광분했던 N의 부장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지 벌써다.
“무슨일이야?”
“N 광고국 부장인데, 세금계산서가...”
“세금계산서가 뭐?”
“550으로 끊어서 날아왔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때...”
김과장에게 고개를 돌리자 김과장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때 N의 부장이랑 300에 합의를 봤다. 상반기, 하반기 한 번씩 집행하는 걸로 퉁치겠다고 정리했는데... 김과장의 끄덕임은 내 무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쪽에서 뭐래?”
“광고국 부장이랑 통화했는데, 자기네는 H부장에게 그렇게 전달받았다고...광고비 500에 부가세 50 붙여서 보냈는데, 뭐가 잘못됐냐고...”
“씨발”
낮게 욕이 튀어나왔다. 마케팅팀 전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게 느껴졌다.
“이 새끼들이 네다바이 치는 것도 아니고, 광고국 연결해!”
“예? 예!”
미스 홍이 재발신을 눌러 전화를 거는 걸 보자마자 수화기를 낚아챘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낯선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A의 O차장입니다. 세금계산서가 잘못 발행된 것 같은데요?”
“무슨 소리시죠? H부장 말로는 A社가 상반기, 하반기 해서 500만원씩 광고집행하기로...”
“삼.백.입.니.다.”
“아닌데... H부장 말로는 5백이라고...”
광고국 부장은 정말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모르는 척을 하는 건가? 언론이라고 자처하는 것들은 믿을 수가 없다. 온 세상에 JTBC같은 언론만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가? 분명 말하는데 손석희는 한 명 뿐이다.
“삼백입니다. 이 세금계산서 받을 수 없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 한 번 확인해 보시고...”
“저희 쪽엔 착오 없습니다. N에서 확인해 보시고, 세금 계산서 다시 보내십시오.”
전화 돌리기를 하려는 광고국 부장을 막았다. 전화 돌리다가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수화기를 끊자마자 김과장을 바라본다. 반사적으로 입이 열렸다.
“삼백 맞습니다! 그, 그때 기자도 같이 있었습니다.”
“너한테 뭐라 하는 거 아냐. (사이) 그때 기자한테 받은 명함 있지? 혹시 모르니까 전화번호 확인하고, (사무실 둘러보며) N에서 연락 오면 무조건 나한테 전화 돌려. 그리고 앞으로 홍보 마케팅 계속하고 싶으면 잘 들어. 돈 몇 푼 안 된다고 대충 뭉개고 넘기고,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 같은 생각 아예 하지 마. 합의 된 상황에서 찐빠 내는 기자 새끼들은 기자가 아니라 양아치야. 그런 새끼들은 이쪽에서 약한 모습 보이면 앓는 소리, 우는 소리, 징징거리다가 결국 우리 입에서 곡소리가 나게 만드는 새끼들이야.”
“예”
양아치가 너무 많아졌다. 이러다 정말 기자들 미팅 할 때마다 녹취 뜨고, 회의록 작성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번 최순실 사건 터지면서 얻은 교훈 한 가지. 이제는 무조건 증거가 만들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마케팅 하는 쪽들도 녹취가 필수가 된 시절이 된 걸까?
긴 한숨. 그 숨이 채 다 나오기도 전에 날 찾는다.
“팀장님! N 광고국입니다.”
‘젠장’ 숨 돌릴 틈도 없군.
“전화 바꿨습니다. O차장입니다.”
“예, 확인해 봤는데, H부장이 500이라는데요? 그쪽에서 어떤 착오가...”
“착오 아닙니다. 이런 식이면 곤란 합니다.”
“아니, 업무상 일을 하다보면 커뮤니케이션에 혼선도 빚고 하는 건데, 이렇게 정색을 하시면...”
“혼선이 아니라는 건 부장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광고 집행하는 쪽에서 금액을 착각할 리가 없고, 우리 쪽에서 저 혼자 갔으면 모르겠지만 저희 과장이랑 같이 갔습니다. 상하반기 각1회 3백 집행으로 이미 품의가 올라간 상황입니다.”
“(곤혹) 아니, 상황은 잘 알겠는데 저희 쪽도 오늘 중으로 집행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어서...”
“이건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신의의 문제입니다.”
“...그럼 두 분이서 오해를 푸시고 다시 연락 주십시오.”
광고부장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양아치 새끼들’
속에서 욕이 치밀어 올랐다. 기자 새끼들이 아무리 양아치라지만, 이렇게까지 쓰레기가 됐나?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것이고, 처리해야 할 건 처리해야 한다.
“홍XX 답장 보내. 잘못된 세금 계산서라고, 착오가 있으니 받을 수 없다고 정중하게 보내. 김과장! 그때 함께했던 기자한테 연락해. 우리 쪽 착오인지 그쪽 착오인지 정확한 액수 확인해. 상황 다 말하고.”
“예”
“예”
남았던 한숨을 다시 토해내고, 인터넷 포털을 열었다. N에서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 터트린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독’이라고 박혀 있는 기사들... 기사의 진실? 기자 정신? 내 기준에서 그들은 최순실과 다름없는 것들이다.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 기업과 협잡해 먹고 살고, 온갖 양아치 짓을 해 연명하는 것들. 또다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적어도 최순실은,
“원래 500억 주기로 했잖아? 나머지 200억 어딨어?”
라면서 재벌 뒤통수를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자 정신? 개나 갖다 주라고 그래. 언제부터 너희들이 참 언론이고, 정의로운 기자들이었나? 손석희는 한 명 뿐이다.
“팀장님, 기자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삼백인지, 사백인지... 기자도 난처해 하는데요. 어쩌죠?”
헛웃음이 났다. 지금 청문회를 하는 건가? 넉넉하게 잡아도 삼십대 초반이 안 돼 보였는데, 벌써 난청인가? 어쨌든 5백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이번 세금 계산서는 잘못 끊은 것이다. 착오? 착오는 절대적으로 아니다. 광고국으로 연락한 건 H부장일 것이다. 그렇다는 건 5백으로 찔러보고 그대로 집행하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눈알 부라리면서 원래 5백인데, 4백으로 깎아 준 거라고 주장하겠지... 그 사이 양념으로 온갖 협박과 압박을 치겠지? 기자들은 늘 그런식이다.
“팀장님! N의 H부장이랍니다.”
미스 홍의 목소리에 가벼운 흥분이 섞여 있다. 그녀도 화가 난 거 같다.
“전화 바꿨습니다. O팀장입니다.”
“O팀장! 지금 누굴 호구로 보는 거야? 원래 5백이라고 합의 봤잖아! 그래도 A社 사정 봐줘서 내가 선의로 4백으로 깎아줬는데, 지금 돈 1~2백으로 누굴 양아치 사기꾼으로 만드는 거야? 회사에서 날 뭐로 보겠어? 좋게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A가 원래 그런 회사야? 사장부터 사원까지 다 썪었어! 누굴 알로 보고...”
좋게좋게 넘어가지 않으면? 기사로 조지게? 너희가 최순실 보고 조폭처럼 광고회사 강탈했다면서? 지금 너희들이 하는 짓은 노점상하는 상인들 자릿세 받는 거랑 뭐가 다른데?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상념들이 오갔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까? 아니, 이렇게까지 하며 먹고 사는 H부장에 대한 측은지심이 더 컸다.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지금 H부장은 양아치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자기가 스스로 삼백이라고 합의를 봤고, 그 자리에 네 사람이 배석했었다는 걸. 앞으로 기자들 만날 때, 녹취를 해야겠구나... ‘녹취앱 하나 깔아야겠다’란 생각도 들었다.
N... 차마 말은 못하겠지만, N이란 회사가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한다면(그 이름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나름 그쪽에서는 빅3 안에 들어가는 회사이다), 그 나머지 언론사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 걸까? 그네들도 이렇게 먹고 살까? 아니, 이런 식의 막무가내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H부장만의 돌발적인 케이스인 걸까? 어디에도 블랙스완은 있는 건가?
“여보세요? 여보세요! 사람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목소리가 큰 놈이 이기는 걸까? 그렇다면, 성악가 출신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겠군.
“백보 양보해 4백이라고 치죠. 그런데 우리 쪽(저희란 존칭이 어느새 빠졌고, 은근슬쩍 하대가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자는 조폭의 다름이란 걸 이렇게 다시 확인할 줄은 몰랐다)에 넘어 온 세금 계산서는 5백이었습니다.”
“광고국 착오겠지! 그걸 못 알아먹나? 그리고 꼴랑 100만원 더 넣는다고, A가 휘청이나?”
“2백입니다.”
(상하반기 2번 집행하는 거였다)
“1백이나 2백이나! 그 돈이 없어? 그래서 지금 우리랑 척지겠다는 소리야?”
이제 그날 있었던 모임에서 합의된 금액은 ‘4백’으로 확정됐다. 이 정도면 기억 왜곡이 아니라 기억 조작이다.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그깟 돈 백 만원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다(어차피 내 돈도 아니다). 이게 우리나라 언론 수준이구나. 돈 백 만원에 때문에 사기를 치는... H부장도 N의 다른 기자들도 그러겠지?
“몇 백억씩 해먹는 놈들도 많은데, 그런 놈들 감시 하는 우리가 푼 돈 좀 챙기는 게 무슨 대수인가? 오히려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들이 앞 다투어 ‘단독’, ‘특종’을 붙여가며 최순실과 박근혜의 일상을 파헤친 기사를 쏟아낼 때 그들의 뒤에선 그들의 취재비와 월급을 챙겨주기 위해 그들이 욕하는 이들과 똑같은 짓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른다면 그 자체가 거짓말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억울해서도, 분해서도, 화가 나서도 아니다.
이게 우리나라 기자들 수준이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지난 10여 년 간 겪을 만큼 겪었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겨우 돈 백 만 원에 그들은 자신의 존재이유 자체를 부정해 버린 것이다. 새털만큼도 안 되는 기자들의 자존심. 그들의 기자정신.
난 그걸 백 만 원에 사기로 했다. 아니면,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내가 너무 불쌍해 질 거 같아서 말이다.
“4백이군요. 그렇게 합의하죠.”
“합의는 무슨! 처음부터 그렇게 했잖아. 이 사람이 지금 누굴 사기꾼으로 만들려고...”
“아닙니다. 4백이네요. 제 착오였습니다.”
“조심해! 내가 지켜보겠어.”
전화는 끊어졌다. 팀원들 모두 날 바라봤다. 얼마 전 대행사 시절 동기들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그때 나온 말... 아니, 우리끼리 합의한 말이 하나 있다.
팀원들을 보며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한 마디였다.
“손석희는 한 명이다.”
얼마 후 홍XX PC로 N 광고국이 보낸 세금계산서 한 장이 날아왔다. 부가세 포함 440만원.
난 100만원에 우리나라 기자정신과 그들이 굳게 사수하는 기자 곤조를 샀다. 비약이라고? 의미과잉이라고? 내 앞에 서서 당당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해보길 바란다. 아니라고 말할 증거가 내 USB에는 차고 넘치도록 쌓여있다(24기가짜리다).
고백하건데, 회사 앞을 지나가는 촛불의 행진을 보면서도 무덤덤했었다. 애인의 성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2월 9일 야근을 하다 말고 LED 초 두 개를 사들고 찾아간 청와대 앞에서도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세상... 아니, 우리 동기들이 같이 보아온 세상은 늘 그랬으니 말이다. 세상은 몇 겹의 포장지로 쌓여 있지만, 그걸 하나씩 뜯어보면 결국 남는 알맹이는 다 거기서 거기다. 결국은 ‘누굴 만나느냐’가 그 인생의 성취(사회적 기준에서의)를 결정한다고... 포장지를 뜯어봤는데, 정말 괜찮은 물건이다 하는 건 100개 중 1개가 될까말까 하다는 걸.
이 촛불정국 내내 내가, 우리가 봤을 때 우리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던 건 손석희였다.
우리 직업의 특성상 ‘특이한’ 언론인들을 만날 때 흥분하는 이상한 ‘성벽(性癖)’이 있다. 한 때는 그게 주진우였고, 또 한 때는 최승호였으며, 긴가민가하며 이상호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손석희다. 우리의 성적 취향은 지극히 정상이지만, 손석희를 보며 우리는 흥분했다.
“같이 밥을 먹어도 대리비 줄 타이밍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우리 스스로가 ‘취재비’하세요 하고, 찔러주고 싶어 애달파 할 사람이다(물론, 안 받겠지만). 그렇지만, 손석희는 한 사람이다.
우리가 만나는 거의 대부분의 기자들은 H부장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언제부터인가 손석희 코스프레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비웃었다. 우리 앞에서도 그들이 당당히 기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
그때 우리와 함께 했던 N의 기자 한 명이 김과장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통화의 요지는 간단했다. H부장이 원래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해하라는... 완곡한 사과였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내가 김과장에게 해 준 말이 있다.
“어설프게 감동하지 마. 그 놈이 10년 뒤 할 짓을 지금 H부장이 보여주는 거야.”
추신
이 시리즈를 투고하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내부자의 안전과 비밀보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딴지일보를 믿으나
이 연재가 중단되면 나에게 클레임이 들어왔거나 딴지 편집부가 쫄았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하시라.
아참, 이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리 없는 소설이구나.
지난 기사 |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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