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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9. 24. 화요일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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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유주의자의 관점



여기 질문들이 있다.


자유주의, 국가보안법, 이념의 갈등, 북한과 통일, 사형제, 낙태, 안락사, 인간 복제, 성적소수자, 간통, 병역 거부, 학생 인권, 지식인의 사회 참여, 표현의 자유, 참정권 확대, 자살, 애국심, 육식, 신 사대주의, 복지와 성장...


어느 것 하나 쉽사리 대답하기 힘든 문제들이다. 지지와 반대 여부를 선택하기도 힘들 뿐더러 자신의 선택을 설득력 있게 해명하기도 힘든 문제들이다.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절필 작가 고종석씨의 답변을 모아 만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약간 뜬금없는 책 제목은 출판사의 작품이며, 모든 답변은 이메일을 통한 서면 인터뷰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참 쉽게 쓰여진 책인 것 같기도 하다.

 


가치관을 갖는다는 것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변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보통 그 기준을 가치관이라고 한다.


위에 나열된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각각의 문제에 대한 답변을 고르는 것은 어쩌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별다른 생각을 해 볼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대로, 자신의 기호와 감성에 맞는 대로 답을 선택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사형 제도는 반대하면서도 낙태의 자유를 옹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백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 마음이 있는 법이고, 각자의 선택은 각자의 맘일 뿐이다. 안 그런가?


어떤 사람은 질문을 들은 순간 그저 떠오르는 대로 답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교리에 맞춰서 답을 고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그저 어제 먹은 삼겹살이 소화가 안 된 탓에 육식을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조리 없이 선택한 답변들을 모아 보면 대개의 경우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선택된 답변들을 아무리 모아봤자 하나의 제대로 된 가치관을 드러낼 수는 없다. 역으로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일관된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어야지만 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서로 모순되지 않는 일관된 답변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툭하면 상호 모순이 되는 결과를 내어놓게 되는 비논리적 가치 기준을 가치관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 나아가 그 가치관의 품질은 바로 그 각각의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일관되게 배치되어 있는가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완벽하게 일관적이고 논리적인 답변을 항상 내놓을 수 있는 가치관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질문에 대해 일관성 있는 답변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세상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 가치관이다' 라고 세상에 내 보일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기본적인 일관성은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그러한 일관성을 갖춘 가치관이나 그러한 가치관을 얘기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세상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복잡해졌다는 것을 들 수 있고, 또 하나는 그만큼 사람들이 다양한 문제에 성의 있는 답변을 내어놓기는커녕 생각하기조차 꺼려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이런 세태는 위험하다. 수시로 발생하는 사회 현상과 그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일관된 가치 기준이 없이 즉흥적인 답변만을 내어 놓는 사회,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자신의 단순한 취향 대로 혹은 그 질문을 들은 순간의 자신의 감성 상태에 따라 일관성 없는 답변을 내어 놓는 사회는 당연히 위험하지 않겠는가. 바로 그 각 개인들의 선택이 내어 놓는 답변에 의해 사회 전체의 발전 방향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위 민주 사회라면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다수의 사람이 기본적인 일관성을 갖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 가치관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상관없이 최소한의 품질을 유지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다수인 사회를 만들어 가면 된다.


그래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일관되게 만들어 내고, 그 가치관에 비추어 제반 문제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는 아주 기본적인 행동 습관이 무척이나 중요해진다는 얘기인 것이다.

 


작가의 가치관


반쯤은 농담 삼아 스스로를 JS라 호칭하는 작가 고종석의 가치관을 이 짧은 책 한 권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위에 나열한 스무 개의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해 담담하게 자신의 선택을 얘기하고, 왜 자신이 그 답변을 선택했는가에 대해 그다지 어렵지 않은 말투로 순조롭게 설명을 하고 있다.


심지어 그 선택들에 대해 작가 스스로도 찬성하는 이들보다 반대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넘겨짚기까지 한다다. 그럴 수도 있다. 다수가 반대한다고 해서 그게 옳지 않은 선택일 수도 없고, 또 소수의 지지를 받는다 해서 그게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아니 그 이전에 어떤 가치관에 의한 선택의 결과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최소한도로 따져볼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이 특정한 문제에 대한 답변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다른 문제들에서 보여준 그의 주장과 모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정도일 뿐이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 답변이 우리가 속한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가 하는 것 정도만 따져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작가는 상당한 수준의 일관성을 가진 답변을 제시하고 있고, 이것을 조금 더 확대해석 해 보자면 작가가 만들어 놓은 그만의 가치관이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진 어떤 것이며,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독서와 고민의 결과로 쌓아 올려진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답변하는 과정에서 작가 스스로, 다른 질문에 대해 자신이 선택했던 답변들과 그 태도와 비교해 모순된 결과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끊임없이 다시 확인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스스로 자유주의자임을 강변하면서도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한 주장으로 간주되고 있는 우생학에 대한 언급과 함께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는 우생학적인 관점을 적용할 필요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 주장이 결코 자신이 앞서 주장한 자유주의적 관점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진지하게 설명한다.


난 이런 작가의 태도를 존중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좋아한다.


개별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변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를 떠나 자신의 결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청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설명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심함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특유의 언어 사용 능력과 함께 작가 고종석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세심함은 아마도 작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종석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에도 크게 관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수가 말하는 가치 체계, 당시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과도 같은 지적 사조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 해온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는 어쩌면 극단적으로 강화된 지적 우월감의 발로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가치관에 내부적인 자체 모순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가치관 설계자로서의 세심함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거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작가 고종석은 상당히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어냈고, 그 흔적들이 이 책에 상당히 많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가 제시하는 답변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점만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회색지대로의 도피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작가 고종석의 가치관에도 결점이 존재한다. 물론 그가 선택한 답변들에 동의하는가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동의와 반대의 문제는 다시 말하지만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예민한 문제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내부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이런 모순은 좀더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꼭 선택하고 싶은 답변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오로지 내 가치관의 일관성을 위해서 말이다. 그만큼 일관성이라는 것은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작가는 진실은 회색지대에 있다라는 클리셰(정확한 해석은 아니겠으나 진부한 표현, 상투적인 표현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에 동의한다고 한다. 이 언급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데, 하나는 운동권 논리가 지식인들에게 팽배했을 무렵에 회색분자라는 의미를 담아 ‘자유주의자’라고 비난 받았던 작가의 경험 고백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극단적인 판단, 극단적인 분류, 극단적인 편가름 등을 모두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작가의 태도와 연관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 모순되게 보이는 두 가지 결론 사이에서 일관된 선택을 하기 어려운 경우에 이 클리셰를 변명삼아 회색지대로 도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간혹 느껴진다. 어떤 면에서는 그게 꼭 회색지대로의 도피가 아니라, 스스로의 취향에 따른 결정을 합리화하는 수단인지도 모르겠다사람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레온 페스팅거의 말을 이용하면서 이 점을 슬그머니 고백하는 부분도 발견 된다.


평소 작가의 음주량이 많다는 점을 연결시켜 상상해 보자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지만 하고 싶은 공격은 모두 해내는 취권의 고수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결론을 자기 마음대로 모두 선택하면서 그 선택들 간에 벌어지는 상호 모순은 신경 쓰는 척하나 은근슬쩍 무마해 버리는 그런 노련한 태도가 연상되기도 한다.


관대하게 보자면, 원래 세상이 그렇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겠다. 뭐든지 확연하게 구분되고 명확하게 분류되는 일이라는 것은 없다. 그런 일은 실험실이나 머리 속에서만 벌어지는 것이지, 현실 세계에서는 언제든지 애매한 구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학술적 열정에 불타는 젊은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언어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언론계에 종사해오며 수많은 사건과 상황들 속에서 자신만의 판단을 담은 글을 써 오고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해온 작가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무모순한 체계를 만든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혹한 관점에서는 아직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치열한 고민 보다는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을 선택하는 것으로 마무리해 버리는 게으름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거나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모순 없이 설명해 낼 수 있는 완벽한 가치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 하자.

 


답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게 되면 간략하게나마 스무 개의 질문에 대한 작가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 질문들에 대한 나의 답변은 무엇일까? 아니 그 책을 읽은, 또 읽게 될 모든 독자들의 답변은 무엇일까? 작가의 관점에 모두 동의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른 각자의 답변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이 책의 저자만큼이나 긴 시간의 고민을 통해 비슷한 수준의 합리성을 가진 가치관을 만들어내고 그 가치관에 비추어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인가? 모든 사람이 철학자가 되고 모든 사람이 사회학자가 될 수는 없다. 생활인들에게 이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할뿐더러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 책에 실린 스무 개의 질문 중에서 열세 번째의 질문이 바로 ‘지식인의 사회 참여’ 라는 문제다.


작가는 지식인의 사회 참여, 즉 사회적 사안에 대한 발언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명한 지식인이라 해서 그런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을 바라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얘기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사회의 수많은 구성원들, 유권자들, 일반적인 생활인들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이런 문제에 관해 조금이라도 더 고민을 하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형성한 사람들,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발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발언이 늘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면책특권을 줄 수 있다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고, 롤스의 정의론을 독파하며, 조지 오웰의 소설과 비평을 읽을 수는 없다.(이 세 사람은 작가가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고백한 사람들이다.) 대신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의 여유 시간을 투자해서 가능한 한 많은 지식인들의 가능한 한 많은 답변들을 짧게 읽어 보고 비교할 수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들의 의견이 더욱 많이 나왔으면 한다. 깊은 이해나 진지한 고민이 첨가되면 더 좋긴 하지만 얕고 표면적인 이해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 서로 다른 여러가지 관점들을 비교해 가면서 상대적으로 자신한테 맞는 결과들을 선택할 수 있기만 해도 아예 무관심하거나 터무니 없는 결론을 내리는 위험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못하게 될 답변임을 알면서도 서슴없이 자신의 가치관과 그 가치관에 따른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성의껏 설명하는 작가의 자세는 존중 받아 마땅하다. 단지 정파적 입장이 다르다 해서, 또는 터무니없는 오해로 인해 실시간으로 무수히 쏟아지는 SNS 공간에서의 모욕을 누구보다도 많이 경험해 본 작가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더 나아가, 이런 민감한 질문들의 묶음을 그나마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알려진 모든 사람들에게 던져보고 싶어졌다. ‘당신들은 이런 민감한 질문에 대해 상호 모순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일관된 답변을 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 해답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말이다.


그 답변을 모두 모아 비교해 보면 좀 더 가치가 있는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아니 굳이 지식인일 필요도 없다. 나를 포함한 이 책의 모든 독자들이 소박하게나마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답변들을 서로 나눠 볼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오히려 더 가치가 있는 뭔가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책광고


그렇다. 이 글의 목적은 바로 이 책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사서 읽어 볼 것을 권하는 것이었다. 그럼으로 해서 이 책의 작가에게 계약금을 넘어서는 인세 수입을 올려주기를 바라면서 쓰는 글이다. 앞의 사설들은 모두 바람 잡는 얘기였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 의미 없이 책값 11,000(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면 더 싸게 구입할 수도 있다.)을 던져 달라고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사기이며 구걸이다. 그리고 그거 던져 줘 봐야 대부분 출판사(물론 출판사는 이 돈을 또 인쇄업자나 서점들, 광고 매체에 지불하게 된다.)가 먹지 작가에게 돌아가는 것은 10% 전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사서 읽어보라고 권하는 이유는 이미 앞에서 애기한 바와 같다.


누구에게나 가치관은 필요하다. 그 가치관은 장식품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 논란 거리들에 대해 최소한도의 합리성을 갖춘 답변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고, 그 답변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이게 부족하면 사회적 의사 결정 과정은 퇴행하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답변에 동의하길 바라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이런 복잡한 질문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답변을 구하고 있는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답변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어떻게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만약 나름대로 상당한 수준의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만의 답변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과연 자신의 답변과 작가의 답변이 어떻게 다르며, 왜 달라졌는가에 대한 비교 평가를 해 볼 수도 있겠다.


작가 역시 비슷한 부탁으로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아무리 튼튼한 논거를 갖춘 의견이라 할지라도 반대 의견자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같은 의견을 지닌 이들의 신념을 강화하는 데만 기여하기 십상이다. 이 인터뷰에서 펼친 내 의견도 결국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내 의견이 반대자들을 설득하지는 못할지라도, 그이들에게 어떤 이질적 사유의 실마리를 줄 수 있기 바란다.


이질적 사유를 수시로 접한다는 것은 반대하건 동의하건 상관없이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아주 중요한 단련이 될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은 그 단련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 남을 수 있는 책이다. 믿어도 된다.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