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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가 몸에 좋으리라는 것은 얼핏 다 아는 이야기다. 전신의 근력을 고루 발달시켜 주고 균형감각을 길러주며, 척추의 힘을 강하게 하고 허리를 펴지게 하여 자세가 곧아진다. 계속되는 진동으로 인해 심지어 장운동까지 좋아지는 데다, 한국마사회와 서강대의 공동 연구 결과 승마를 정기적으로 한 어린이들의 성적이 상승되는 사실까지 증명되었다니 집중력이 향상되는 것도 물론이다.

나는 6개월 동안 유아 전용 승마장에서 일하다가 최근에 잘렸는데, 뭐 내 잘못이 크니 별 유감은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온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로 들썩거리기 전에 마치 그걸 마치 알기라도 한 듯 지난 반 년 동안 승마장에서 말똥을 치운 내 자신이다. 내가 일했던 곳은 일반인들이 타는 큰 말이 아니라 20개월 이상의 유아들부터 초등학생 이전 연령대까지 탈 수 있는, 염소만큼 조그마한 미니말을 다루는 곳이었지만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말이라는 동물의 특성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기간이었다.

정유라가 30억이나 삼성에서 내 준 비타나V를 소위 똥말로 만들었다고 말이 많던데, 말 돌보는 일만 했을 뿐 말이라고는 딱 한 번 사장 없는 틈에, 조교 시간 있는 틈에 타 본 나로서는 어떤 말이 정말이고 어떤 말이 똥말인지 알 수 없지만 정유라가 고삐를 꽉 틀어쥔 비타나V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주 슬픈 표정이었다. 기사를 검색해 보면 그 명마 비타나V가 어떻게 성적이 엉망진창인 말로 변했는지 알기 쉬운 설명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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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카드뉴스 (전문 링크)

말도 신나고 침울하고 화난 얼굴들이 물론 제각각이다. 흔히 말을 동적인 동물로 알고 있지만 초식동물 답게 말들은 평소에 그냥 멍하니 서 있다. 좀 심심한 동물이다. 서 있다가 지루하면 갑자기 네 다리를 하늘로 뻗고 모래목욕을 한다. 그루밍(빗질이나 목욕 등 총체적인 손질)을 정성껏 해줬는데 그렇게 모래에 구르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때려봤자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닭보다는 똑똑해도 개보다는 좀 모자라다는 게 승마 조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면서도 몸의 생체 시계는 정확해서, 6시에 영업이 끝나는데 다섯 시 반만 되면 이놈들이 무슨 공무원처럼 퇴근 채비를 다 차리고 마사로 향하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여섯 시 넘어도 퇴근을 안 시켜 주면 발굽으로 땅을 쾅쾅 구르니 아주 더럽고 무서워서 열어줄 수밖에.

평화로운 동물처럼 보이지만 서열 구분이 아주 확실해서, 자신이 우위란 걸 보이기 위해 목을 꽉 물어뜯거나 뒷다리로 차는 일 따위는 일상다반사다. 먹이를 먹는 것도, 퇴근하는 것도 순위 1등부터 한다. 비타나V에 비하면 아주 헐값이지만 우리집 전세 보증금 정도 되는 말이 하나 있는데, 그 말이 내가 일하던 곳의 서열 1등이다. 우스운 건 말이 평소에 잘해준다고 그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녀석에게 지금까지 끝없이 설탕과 당근을 갖다바쳤건만 놈이 나를 보는 눈빛은 사탕을 내놓아라, 인간!’ 하는 식으로 자판기 한 대를 보는 데 그쳤다. 눈빛만 봐도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루밍을 하거나 매 놓으려고 하면 건방지게 뒷다리로 뻥뻥 쳐대서 크게 다칠 뻔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집 보증금만한 말이니 매를 때릴 수도 없고, 그저 말이 상전이다.

최유라의 남편인지 애인인지 남친인지 하는 신주평이라는 사람이 말똥을 그렇게 잘 치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승마장의 흙과 섞인 말똥을 치우는 일이 그리 녹록하진 않다. 게다가 400킬로그램이 넘는 서러브레드들의 말똥을 치웠을 테니 신주평의 노동량은 꽤 많았을 것이다. 저번에 어떤 승마협회 관계자가 분노에 차서 정유라는 말똥 한 번 안 치워 봤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는데, 나도 할 수만 있으면 말똥 안 치우고 싶었다. 그러니 그녀는 물론 안 치웠을 것이다. 풀 먹는 동물 답게 한번 싸면 한 양동이씩 싸는데, 그나마 응가 냄새는 단백질이 분해될 때 나는 거라니 초식동물의 응가답게 그리 고약한 남새는 나지 않는다어느 딸기 농자에서 비료로 쓰기 때문에 말똥도 잘 정리해서 그들이 가져가게끔 챙겨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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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말이 밤에 잠을 자는 톱밥은 이불 겸 화장실 역할을 한다. 우리로 치면 요 위에서 잠도 자고 그 위에서 오줌도 싼 다음 그 요를 하루에 한 번씩 갈아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도 조각조각 바스러지는 요를! 다른 승마장은 며칠 된 톱밥을 그대로 쓴다고도 하는데 내가 일했던 곳은 사장이 워낙 깔끔해 직원이 죽어나도록 치웠다. 내 방보다 마방(말의 방)이 깨끗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정유라가 신주평에게 반한 게 말똥을 잘 치우는 이유라면, 말똥 뿐 아니라 오줌을 먹어 바위처럼 단단해진 톱밥을 묵묵히 치우고 그 자리에 새 톱밥을 채워넣고 손수레로 몇 번씩이나 오물을 버리러 오가야 하는, 그리고 커다란 마사를 온통 물청소하면서 생길 수밖에 없었을, 남자의 근육 중 가장 멋지다는 노동근(勞動筋)에 반해 버린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유산 포기 각서까지 쓸 수 있을 리가. 나 같으면 아무리 말똥을 잘 치우는 남자가 있어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 하여튼 그들이 연애를 하건 임신을 하건 출산을 하건 우리와 아무 상관없지만, 이화여대 학생들과 말 한 마리가 나라를 왈칵 들었다 놨다. 최순실이 딸의 미래를 위해 택한 게 왜 하필이면 승마였을까.

아까 위에 줄줄이 늘어놓은 승마의 장점만 해도, 나라도 돈만 있으면 배우고 싶은 운동이다. 하지만 그것을 업으로 삼는 것은 다르다. 여기에서 정유라의 공부 못함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빼돌린 재산도 많은 최순실이, 딸의 성적이 조금만 좋았으면 아예 이대를 사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해외의 아이비리그에도 기부금 입학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 요건을 채웠다면 대한민국의 조그마한 여대에 넣으려고 그렇게 애를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니, 정유라의 공부 못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공부 못함이 틀림없다.

그의 친척인 장시호가 로 도배된 성적표를 가지고도 거뜬하게 연세대에 입학한 것으로 보아 웬만한 공부 못함으로는 나라를 이렇게까지 발칵 뒤집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부 못함은 나라의 초석을 바꾸는 위대한 공부 못함이다. 정유라가 조금만 공부를 잘했더라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여기서 더 큰일 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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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왜 승마였을까로 다시 돌아가면, 마장마술은 남녀의 차이가 없이 겨루는 유일한 운동 종목이다. 실력이 있다면 남녀가 평등한 운동이라 할 수 있겠다. 실은 말의 실력이 많은 것을 가늠하지만, 일단 허우대는 좋다. 정유라보다 훨씬 말을 잘 탄다는 한화 김승연 회장 아들도 있고, 내가 아는 국내 유수의 극작가도 아들에게 자마를 사준 것을 보았는데 이렇게 여건이 되는 부모들이 앞다투어 승마를 시키는 이유는 운동효과나 대학 입학도 물론이겠지만 리더의 훈련이 아닐까, 하는 것이 승마장에서 일하면서 생각해 본 사실이었다.

승마 전문가들의 말로는 말은 결코 애완동물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귀여워한다고 말이 좋아지지 않는다. 말과 친해지기 위해서 먹이를 주거나 쓰다듬어 주는 등 개나 고양이에게 하는 방식으로는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잘 대해 주고 돌봐 준다고 해서 말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며 승마 조교들은 평소에 정성껏 잘 대해 준 말이 기승했을 때라고 말을 들을 것이라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말과는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일까? 말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말은 먹이나 간식을 주는 사람보다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따른다고 한다. 한 마디로 자신이 인정할 수 있고 따를 수 있는 이를 고른다는 것으로, 승마뿐 아니라 경마에서도 그간 경주 성적이 나빴던 말이 자신이 유난히 따르는 기수를 계속 바라보도록 유도하자 다크호스로 활약해 우승을 차지한 경우까지 있다. 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인 승마가 남녀 구분이 없는 이유는 현명하고 섬세한 동물인 말을 따르게끔 하는 능력을 리더십을 겨루는 성별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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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선수의 길로 나서지 않았더라도 한국에서 한다 하는 집안에서 승마를 안 시키는 경우가 드물다. 이것을 서양에서 흔히 마제스틱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상대를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러운 카리스마로 말을 복종시키는 사람에게 있는 능력이라고 소개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병 학교인 <하노버 기병 학교>의 교훈은 지상의 천국은 말의 등 위에 있다라는 알쏭달쏭하면서 로맨틱한 문장이다. 하지만 말의 등 위에서 지상의 천국을 맛보려면 채찍 사용을 규제하고 말에게 신뢰를 주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정유라가 고삐에 자꾸 매달리는 말을 풀어내는 방법을 소개하며 해도해도 않 되는 망할 XX들에게 쓰는 수법. 왠만하면 비추함이라고 썼다는 뉴스를 보니 그는 애초에 리더가 될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필이면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소녀가 얼굴에 야심이라고 써 있는 엄마의 딸로 태어난 것이 모두에게 안쓰러운 일이다. 본인도 물론 괴로웠을 것이고, 비싼 명마는 침울한 똥마가 되고, ‘돈도 실력이다라는 희한한 가치관으로 모두를 화나게 만들고, 함께 대학을 다닌 이화여대 학우들을 바보 천치로 만들어 버리고... 이런 이에게 마제스틱 리더십은 어울리지 않는다. ‘제왕적 리더십에서 리더십을 빼면 그냥 제왕만 남아 버린다. 그것도 민주사회에서 제왕이라니, 그냥 벌거벗은 임금님과 다를 바 없다. 국민들은 화가 나고, 말들은 그저 히힝 아무것도 모르고 건초를 먹고 벌러덩 누웠다 일어났다 할 것이다. 그나저나 지금 비타나V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홀로 그의 안위가 궁금하다





PS

저의 첫 소설이 출간되었습니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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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 때문에 출판시장은 더 망해간답니다. 문화계를 다 쑤셔놓은 최순실도 딱 하나, 출판계 만은 건드리지 않았지요? 왜 그랬게요? 아 눈에 땀이 날라 그래... 광화문 가셨다가 서점에 들르시게 된다면, 관심 가져 주세요!







김현진입니다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