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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팅은 자로 님의 세월X를 대상으로 하거나 그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PD수첩>의 명성을 쌓아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 그 프로그램을 망가뜨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모 PD가 있습니다. (본인은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꽤 유능한 PD였습니다. 제 또래라면 아이템 이름만 대면 아! 그때 그 프로! 하면서 능히 아는 체를 할 만한 프로그램을 여럿 만들었고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 가면서 아이템을 파고들던 PD였죠. 그런 그가 어쩌다 본인이 쌓아올린 공든 탑을 스스로 허물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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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취재했지만 방송을 내보내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매우 기이한 사연이 얽혀 있었죠. 다섯 명의 아이들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지 5년이 지났을 때 PD는 한 카이스트 교수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미국에서 ‘실험심리학’을 전공한 심리 전문가였죠. 개구리 소년 사건을 오래 전부터 추적해 왔고 그 결과 중대한 의문을 발견했으니 한 번 만나 보자는 것이었지요. 만남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교수의 말인 즉 “범인은 실종 아동 중 하나인 아무개의 아버지 같다”는 것이었지요. 

 

교수는 문제의 아버지를 비롯해서 개구리 소년들 가족들을 상세히 취재했고 나름의 근거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어? 혹시 영화 <아이들>?'이라고 아는 체 하실 분이 계실 것 같은데 맞습니다. 그 영화는 이 에피소드를 토대로 만든 겁니다.

 

영화 내용을 빌리면 이런 식입니다. 실종 몇 달 뒤 집으로 전화가 걸려 옵니다. 웬 아이가 “엄마”하고 울먹이는 거였지요. 엄마가 전화를 받았는데 “어 00냐?”하고 응대를 하는 게 녹음이 됩니다. 교수가 말하죠, 


“몇 달 만에 전화가 왔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태연하다? 이게 말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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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몇 달 만에 아들로부터 엄마 소리 듣는 엄마의 어조는 아니었습니다. 교수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치밀하게 짜인 근거를 들이밉니다. 사건일지를 비롯해 정리 노트도 꽤 됐다고 합니다. 그 결과 나온 추론이 ‘범인은 실종된 아이 하나의 부모다“였지요. 

 

현실로 돌아와서 MBC의 기린아였던 모 PD는 교수의 추리에 상당 부분 동의한 것 같습니다. 그는 대구에 내려가 부모 앞에서 용감하게도 이렇게 말했다고 하니까요. “아버지께 의문이 많습니다. 혹시 범인 아니세요?” 본인은 어금니를 깨물고 맞을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버지는 교수의 턱에 한 방 날렸고요.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런 짓을 하나? PD 당신은 그렇게 귀가 얇은가?” (<PD수첩 진실의 목격자들>, 지승호 저 중) 하지만 다른 유족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카이스트 교수의 논리적 설명과 근거에 점차 의심을 키우게 됩니다. 교수가 아이들의 시신이 집에 숨겨져 있는 것 같다는 추론을 냈고 급기야 문제의 아버지의 집 마당을 파고 재래식 화장실을 깨끗하게 퍼내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시신은 커녕 나온 건 운동화 한 짝이었지요. 유족들은 난리가 납니다. 돌이 날아들고 교수는 경찰서로 끌려가 구속됩니다. PD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용의자로 몰렸던 부모는 “PD가 더 나쁜 놈이다!”라고 외치기도 했답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 부모에게 PD는 때려죽여도 모자란 상황이죠. 자식 잃은 것만도 미칠 것 같은데 서울 방송사 PD와 카이스트 교수가 들이닥쳐서 “진실을 말하시오. 당신이 죽였지요?”하니 그 속이 얼마나 뒤집혔겠습니까. 

 

용의자로 몰린 부모는 그렇다고 치고, 별안간 들이밀어진 미국 심리학 박사의 정연한 논리와 그에 따른 각종 정황과 증거들 앞에 노출된 다른 실종 아동 부모들의 심경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하는 마음이 '혹시'하는 의심에 지배당하고 '어쩐지 이상하더라'는 주관적 경험이 더해지고 '정말 우리 아이들이 저 집 변소에 묻혀 있는 거 아닌가'하는 사람 미치게 하는 궁금증이 겹쳐졌을 때 그 안달복달이 얼마였을지 말입니다. 

 

그들이 용의자로 몰린 부모에게 가서 “한 번 파 봅시다. 00 아빠가 당당하면 못 팔 게 없잖소!”라고 얘기하던 순간은 양쪽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천 길 낭떠러지 같은 트라우마로 남을 겁니다. 가장 큰 상처야 누명 쓴 이의 가슴에 기나긴 흉터로 드리우겠지만 교수의 논리와 PD의 합리적(?) 의심에 공감하며 “범인은 00아버지가 틀림없어!”라고 가슴을 쳤을 사람의 상처 또한 결코 작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 사단을 만든 교수는 진실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쁜 와중에 대구를 수십 번 방문해 부모들을 취재하고 그를 정리하고 자신의 논리에 따라 추론을 세워 나갔습니다. 이 열정은 '도대체 이 아이들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가 꼭 찾아 내리라'하는 다짐에서 비롯됐고 '내가 아니면 이 비밀은 묻히고 만다'는 사명감까지 추가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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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본적으로 의심병 많은 시사 프로그램 PD도 혹하게 했던 미국 유학파 심리학자의 빈틈없는 추리는 그 자신이 구속되는 것을 포함한 파국으로 귀결됩니다. 과연 이 사건 이후 부모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요. 

 

2년 8개월 전 세월호가 가라앉은 이후, 수많은 얘기들이 나왔습니다. 잠수함은 말할 것도 없고 무슨 핵 폐기물 운반이니 내부 폭발이니 어뢰 공격이니 6천 톤 짜리 배가 닻을 바닥에 내리고 그걸 축으로 자빠졌다는 주장에다가 날짜 맞춘 인신공양설까지 구구전승이 끝이 없었습니다. 매우 합리적인 의심부터 턱도 없는 구라 급까지 저마다 진실을 추구하며, 치밀한 또는 조악한 근거를 내세운 위에 전개되는 주장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 하고 많은 주장들 안에 진실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 만은 기억했으면 합니다. 피해자를 돕고 싶은 선의가 소중한 만큼 그 선의를 조심성 없이 풀어내는 일은 피해자들의 가슴에 산탄총을 난사하는 것처럼 위험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경의 사람이라고 앙상한 지푸라기를 진실이라고 내밀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죠, 

 

세월호 사건 직후 가장 때려 죽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살아 있어요' 거짓 문자를 보냈던 이들이지요. 경찰의 추적으로 발각된 뒤 그들의 변명은 하나 같이 똑같았다고 합니다. '한 명이라도 구하고 싶은 마음에, 구조를 독촉하려는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이 어땠는지와는 별도로 그들의 행동은 오히려 혼선만 가져왔고 희생자 가족들의 가슴에 염산을 뿌린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개구리 소년의 부모가 범인이라고 믿었던 카이스트 교수의 추론은 설득력도 있었고 꽤 치밀했지만 결국 자신의 구미에 맞는 근거들의 조합이었을 뿐입니다. “어떻게 몇 달 만에 듣는 아들 목소리에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어?”라고 묻는 것은 어느 정도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그 동안 장난전화 온 게 몇 갠데? 하는 반문에 간단히 무력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PD는 교수의 논리에 빠졌고 결국 이미 애가 닳아버린 아버지에게 “당신이 범인이지요?”라고 물으며 그 허파를 뒤집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도, 그런 사람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그런 ‘선의’도 줄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산하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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