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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19. 금요일

정치불패 돌아온피아골






편집부 주


아래 글은 정치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독투불패(독자투고 게시판 및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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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밀었다. 주님께서 밤새도록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내시니, 바다가 말라서 바닥이 드러났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한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다. 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    


-출애굽기 20장 21~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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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음 환자분.

 

지난 14일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병원장은 원내에서 일어난 메르스 3차 감염 사태에 대해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24일까지 부분폐쇄를 선언했다. 외래진료 및 입원을 한시적으로 제한하기로 했으며, 기존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응급수술을 제외하고는 모든 응급진료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하루 외래 9000명, 응급실 200명 진료를 모두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병원의 2014년 매출액은 1조를 조금 웃돈다. 대충 1일당 30억 조금되지 않는 돈, 열흘간 300억 정도의 잠정적 손실을 보기로 한 셈이다. 사실 삼성서울 정도의 굴지의 병원이 300억 적자를 본다해서 큰일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 삼성이 이 정도 손해를 두고 볼 기업인가. 뭔가 다른 꼼꼼함을 가진 이들은 부분폐쇄를 선언한지 채 3일도 되기 전에 기적을 연출해 낸다. 바로 한시적 '원격의료' 시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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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대응 관련 처방 추가지침'이라는 공문을 대한병원협회를 비롯한 의약단체에 통보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기존에 삼성의료원에서 정기적으로 외래진료를 받던 환자들은 구차하게 집밖으로 나올 필요 없이 담당의사와 핸드폰 통화만 하면 팩스로 처방전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배달의 민족답게 드디어 진료도 안방까지 배달되는 세상을 삼성이 최초로, 아니 샘숭의료원이 최초로 열었다. 물론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삼성병원을 다니는 외래 환자를 다른 의료기관에서 받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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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강북 한 대학병원의 격리외래 진료소, 진료 받을 곳이 없다니? 

유령이랑 쎄쎄쎄 할라고 땀복 입고 염병중이란 말인가?

 

응? 무슨 소린지 나는 잘모르겠다. 환자들 얼굴에 삼성의료원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아니겠고, 삼성과 아무 관계없는 동네병원 원무과에다 나는 삼성의료원 다니는 환자예요, 자랑스럽게 밝힐 것도 아닐 텐데. 혹시 이미 접수가 된 환자를 문진 과정에서 삼성의료원 경유라고 해서 거부한다는 건가? 물론 정말 규모가 작은 개인의원이나 몇몇 원장님들은 안면몰수하고 혹은 면전에서 욕 먹을 각오하고 그런 선택을 내리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허나 대다수 평범한 의사들은 삼성의료원에서 치료 받았던 환자라고 해서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진료 건수가 절대적으로 줄어서 경영에 압박이 되는 판국에 무조건적 거부라니 당치도 않다. 열과 기침, 가래 등 호흡기 증상만 없다면 큰 문제없이 진료해주는 게 보통이다.

 

물론 지금 시국에서 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환자를 소규모의 동네병의원에서 진료하기는 꽤 부담이 된다. 최근 삼성의료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면 더욱 말이다. 그런 경우에는 격리외래가 운영되는 규모있는 주변 준종합병원이나 보건소를 이용하면 된다. 삼성의료원이 외래를 100년 폐쇄하는 것도 아니고 100일 폐쇄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열흘이다. 그 열흘, 삼성의료원이라는 특정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들의 불편을 덜어 주기 위해 대면(얼굴보고)진료라는 의료법상의 대원칙을 뭣도 아니게 만들어 버린 삼성의료원 수뇌부(그래, 어딜가나 수뇌부가 문제다, 딴지수뇌부 보고있나?)와 복지부 장관의 궁휼스런 심뽀에 본 필자, 목이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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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하실거면 멋하러 입원하셨어요~!!!

 

아직도 대화가 안 통하는 환자나 보호자 분들을 대할 때면 욱하는 기운이 먼저 올라오는 필자같은 쪼랩의사에게는 여전히 멀고 먼 경지다. 만일 본인이 내일부터 열흘정도 아파 주어진 환자들을 핸드폰으로 진료하겠다고 해보자, 당장 내과부장님이 '김XX, 배가 불렀네'라고 타박할 것이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꿋꿋히 진료를 본 후 처방전을 팩스로 쏴준다면? 몇 주 뒤에 경찰서에 소환장이 날라올 것이고 종국에는 법원으로 출두해야 할 것이다. 운 좋으면 3개월간 면허정지 운 나쁘면 면허취소, 설마 실형까지 떨어지진 않겠지? 보니까 만리타향 상국(어버이의 나라)의 공항에서 출발한 뱅기를 뒤로 돌려도 금세풀려나드만. 그렇지만 법이야 모르는 거다. 판사님들 마음속에 있는 거니까. 한갖 풋내기 의사가 뭘 알 수 있겠나. 아무튼 대한민국의 보통 의사들에게는 금과옥조와도 같고 언감생심 어길 꿈조차 꾸지 못하는 대면진료의 원칙이 샘숭병원 수뇌부에게는 우습나보., 우습겠지, 저렇듯 쉽게 허용해주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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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이 바뀌어도 여전히 한 집안처럼 화목한 청와대와 샘숭, 

용과 혜의 표졍 봐라. 사귀는 사람들의 그것 같지 않나?

 

전부터 어떻게든 원격의료를 관철하려는 보건복지부와 오매불망 이를 바라고 있는 샘숭의 수뇌부들의 합은 착 맞아 떨어졌다. 진즉에 이렇듯 양측이 지극한 마음으로 협조해 대처했다면 한갓 바이러스 따위야 문제일으킬 깜냥도 안 됐을 텐데! 물론 그랬다해도 모를 일이긴 하다. 이 환상의 하모니를 연주케 하기 위해 유일신 하나님이 퀵으로 쏘신 게 바로 메르스일지도! (식민지도 축복이고 6.25도 축복인데 메르스는 뭐, 받아줄 수 있자나?) 이런 논지를 펴고 보니 조국이 해방된 불운(?)한 시대에 태어난 관계로 영의정이 될 기회를 간발의 차로 놓치고만 어떤 분의 존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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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로 불려가도 마음이 무거운데 예비군 통지서 받으면 어떨지 생각해본 적 있음?

 

간만에 뵈어도 이렇듯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심난해지는 분을 선뜻 총리로 모시지 못한 것은 민족의 큰 죄임이 분명하다. 무간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도 시원찮을 우리의 죄과를 저분께서 모두 떠안고 골고다 언덕에서 못박히시면 오죽 좋으련만, 십자가는 원래 선지자들이 지는 거 아닌가? (뭐, 아니라면 말고) 


다시 원격의료로 돌아와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자료나 동영상을 수집하던 중 참극대인을 잇는 또 한분의 대인을 발견했다면 쬐끔 오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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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인, 우선 사진


사진보다는 위 동영상이 지대다, 톤이나 시선처리가 왠만한 배우들 뺨치신다.

 

꽉 다문 입술에 좌중을 쏘아보는 매서운 눈매, 배냇저고리의 아해부터 망백(91세)의 노인까지 전국민을 대상으로 형식적이긴 하지만 사과하는 자리에 섰어도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잔잔한 음,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내가 중년여성이라면 밤잠을 설칠 정도의 꽃중년이시다. 허나 단지 이정도 가지고 대인배라고 평하기엔 다소 모자란 것이 사실. 은혜로운 주님의 축복에 꽃같은 삶을 사는 우리는 이런 종류의 대인을 최근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도무지 지칠줄 모르는 자기확신과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말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정신세계, 그리고 사과회견장에서도 풍겨나오는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치자면 조현아 부방장의 내공이 더 높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이는 그냥 먹는게 아니고 업계 넘버 원투를 다투는 샘숭병원의 수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무릇 진정한 대인은 때와 상황에 맞게 젖절히 자신을 낮출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아래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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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분이 3일 만에 전혀 다른 기도가 풍기는 사람이 되었다, 놀라울 뿐이다.

 

사극에서만 듣고 보던 '황공무지로소이다'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지 않나? 사진 속 병원장님의 황송함이 스크린을 뚫고 보는 이의 뼛속까지 사무친다. 단언컨데 나는 황송하다는 단어가 이보다 더 어울리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언제였는지 가물거리지만 하루 밤 열 번도 끄덕없던 시절(뭘?), 지인과 논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필자가 논어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랬나보다, 논어를 읽으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고운 손이 어쩌다가 토렌트를 뒤지며 바지춤을, 아니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쨌든 저 장면을 보니 마치 논어를 읽은 것처럼, 간만에 경건한 마음으로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단 얘기다. 

 

우리 손으로 뽑아서 댓통으로 추대해 올린 그 분, 최소 지금보다 몇 세기는 앞서 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선진문법을 구사하시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학자에게는 연구거리를, 잉여들에게는 소소한 웃음을 주시는 그 분, 그 분을 면전에 뵈었을 때 나도 저렇듯 뼈가 녹고 관절은 분해되는 것 같은 절대적 겸손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없다. 진정 자신이 없다. 복지부의 샘숭의료원 '원격의료' 허용 방침은 바로 같은 날에 공표되었다, 시간의 선후는 알 수 없다. 저 황송함이 '원격의료' 허용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존경과 신뢰, 사랑을 담은 것인지, 황송함에 대한 답례로 '성은'을 하사한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날고 긴다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혼자서 1년 사이에만 논문 200편에 이름을 올린다는, 괴수같은 선생님들이 즐비한 샘숭의료원의 수장도 댓통을 만나면 저리 되는가보다 하며 나도 모르게 남자의 삶과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시나트라의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듯 도 하다.

 

싸나이는 왜 사는가? 그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자신일 수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냐.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느끼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야 하고, 쉽게 무릎을 꿇는 그런 자가 되면 안된다네.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이렇게 복지부, 일부새누리당 의원, 몇몇 매머드 종합병원을을 제외하고는 모든 국민과 집단이 반대했던 원격의료가 샘숭의료원 환자들에게만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다. 이 작은 시작이 또 다른 비극의 새로운 장을 열지, 잠깐의 헤프닝을 끝날지 현재로써는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문뜩 떠오른 싯구절로 글을 마치겠다, 혹여 오해를 살까바 드리는 말씀인데 국민들은 윤동주가 누군지 그가 어떤 작품을 썼는지 모를  도 있고 우리가 이거다 하는 마음으로 시를 읽어 나다가 보면 우주가 나서서 정신을 분산시킬 것이다.

 

퇴임하는 날까지 기와집을 우러러

한 점 바이러스도 없기를

응급실에 이는 바람에도

대한민국이 괴로워 했다.

삼성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지?

그리고 이제 원격진료권은 주었으니

나의 길을 걸어야 겠다.

 

오늘 밤도 불어터진 국수는 우주에 스치운다.






정치불패 돌아온피아골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