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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대사관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에 이어, 중동 지역의 한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대사가 여직원을 성희롱한 사건이 보도돼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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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BS>

 

 

 

 

하지만 이 사건은 발각 후 '3개월 감봉'이라는 경징계 솜방망이 처벌로 유야무야 넘어갔던 사건이다. 그게 이제서야 재조명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간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외교부 내에서만 한 해 평균 2건 이상의 성폭력 사건이 징계 처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징계 처분이 되었다’는 뜻은, 성폭력 피해자인 누군가가 자신의 직을 내 걸고 끝까지 싸웠다는 걸 의미한다. 즉, 이와 같은 통계는 ‘후폭풍을 감당해 낼 자신이 있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외부에 알린 경우만을 포함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은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SBS가 보도했던 것처럼, 외교부가 엄중한 문책과 재발 방지를 다짐해 왔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교부 장관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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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2004년 7월로 돌아가 보자. 지난 기사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외교부 소속  A 외교관은 자신의 대학 후배인 여기자를 성추행했고, 여기자가 속한 언론사의 간부가 당시 외교부 장관을 찾아가 정식 항의해 그는 결국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2004년 10월, 언론을 통해 해당 외교관의 징계 여부를 재확인했지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반기문 장관의 초기 입장과는 달리, 외교부의 처벌은 감봉 3개월의 경징계에 그친다. 

 

 

그렇게 해당 외교관 A는 직무정지 기간 동안 경징계(감봉 3개월) 처분을 받은 후, 외교관들이 비선호 지역이라고 하는 모 대사관으로 발령된다. 대의명분을 만들어 놓고, 사건이 일단락된 것이다. 

 

 

 

이와 같은 전례가 남겨진 탓일까? 이번에 중동 지역 대사관에서 벌어진 여직원 성희롱 사건은, 10여 년 전, A 외교관을 경징계 처리한 반기문 전 외교부 장관의 대처 방법과 일치했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조직은 이를 경징계로 무마하는 방식이다.

 

 

 

결국 피해를 입은 누군가는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고, 또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직을 떠나야만 했다. 인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전 유엔 사무총장이, 왜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의 전례를 만들어 더 많은 피해를 막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제 식구 감싸기

 

 

 

스스로 엘리트 집단이라 자부하는 조직은, 소속된 동료의 잘못에 대해 관대하다는 특징이 있다. 국가의 지원 하에 교육받고 고위관직에 오른 사람에게는 그 투자 비용을 생각해서라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관대함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공정성 위에 선 특유의 폐쇄적인 조직문화는, 정당한 사회적 비판도 듣지 못하는 습성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잘못을 하면 스스로 인정하기보단,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일, 혹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잘못이 밝혀지면 단호하게 대처하기보단, 관대함을 발휘해 기회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선배가 잘못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타산지석을 삼을 후배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칠레 대사관의 박모 참사관의 파면 조치는 고무적인 처사이다. 그러나 언론에 공개되기 전, 칠레 대사관에서 박참사관의 행적을 알면서도 무시했던 것을 감안하면, ‘틀키지 말라’ 정신에 위배된 사람을 제거한 것일 뿐일 수도 있다.

 

 

 

이것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본다면, 2016년의 대미를 장식한 외교부 김모 서기관의 몰카 사건에 대해서도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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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위 기사의 내용처럼, 이번에도 현장에서 경찰에게 검거되었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가 되었지, 외교부 내에서 조치를 취하게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도 있다. 따라서 외교부 내에서 조사한 사건들에 대한 처벌과, 외부의 고발로 적발된 사안에 대한 처벌의 기준이 다르다는 특징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경징계 vs 파면 및 형사 고발

 

 

 

이러한 편향된 처벌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 장, 단기적으로 대안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이번 칠레 사건을 계기 삼아 언론에 공개된, 혹은 외교부 내에서 통계로 수치화된 사건들 이외에 그동안 숨겨져 왔던 사건들을 파헤쳐봐야 한다. 특히 ‘뒷감당’이 두려워 말하지 못한 직원들과 전직 직원들의 제보를 받아 성폭력 관련 사건을 전면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반적인 제도적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조직이 내부에서 스스로를 감사하는 감사관실을 운영하는 것은 모순이다. 성폭력이나 각종 비리들이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이러한 조직 구조상에 기인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나라로 손꼽히는데, 이러한 사회문화 속에서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동기나 선후배에게 호의적인 행동과 심리를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견제 기구를 통해 ‘봐주기 식’의 감사를 미연에 차단해야 한다(영국 정부의 경우, 독립된 기관이 각 부처를 감사하는 일을 맡고 있으며, 그 기관은 정부와 관계없는 직업군을 가진 일반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외교부 혹은 대사관 내에서 전문 상담사가 아닌 일반직원들이 성폭력 상담원으로 선정되어 문제 해결을 하는 것도 매우 비합리적인 시스템이다. 각 지역에 있는 대사관은 큰 조직이 아니고 직원도 많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서로가 다 아는 공관 내부에 내밀한 성 관련 이슈가 제기되면 결국 인사부서에서 그 내용을 모두 알게 되기 때문에, 어떤 직원도 쉽게 상담을 요청하지 못한다. 현재의 구조를 가지고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확한 조사와 공정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없다.

 

 

 

성폭력 문제는 일년에 한 두 차례씩 직원을 모아놓고 성교육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제도가 개선이 된다 해도 의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도 크다. 의식의 전환의 가장 첫 단계는, ‘자기 반성’이다. 누군가가 잘못을 지적했을 때, 변명과 방어를 하기보단, 겨우 살아 숨 쉬고 있는 양심과 인간성을 회복해야 가능하다. 정당한 비판에 대해, “좋은 게 좋은 거지”,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자비를 가장한 게으른 생각이 든다면, 의식이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다. 누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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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YAN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