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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은 대한민국 공무원의 심볼이다. 그 어떤 위험도 회피하는 귀신같은 처세술, 누구보다빠르게남들과는다르게 이뤄낸 고속 승진, 공무원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까지. 마땅히 존경할 만하다. 평생을 업무로 보내며 노오-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그가 다시 조국을 위해 몸을 불사르겠다고 천명한 나이, 무려 74세.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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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반기문(潘基文)

1944년 출생

1963년 충주고등학교 졸업

1970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제3회 외무고시 합격

1976년 주 인도대사관 1등 서기관

1980년 외무부 국제연합과 과장

1985년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 석사

1987년 주 미국 대사관 참사관 겸 총영사

1990년 외무부 미주국 국장

1996년 외무부 제1차관보, 대통령비서실 의전 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1998년 주 오스트리아 대사관 대사

2000년 외교통상부 차관

2001년 제56차 UN총회 의장비서실 실장

2002년 외교부 본부대사

2003년 대통령비서실 외교보좌관

2004년 제33대 외교통상부 장관

2007년 제8대 UN 사무총장



1944년, 광복 1년 전에 음성에서 태어났다. 50년대까지는 제법 유복했단다. 아버지는 한센병 친구를 데려와 같이 살 정도로 선행을 베풀었다는데, 그의 평생 철학인 선행의 철학은 아버지로부터 배웠다고 카더라. 초딩6학년 때는 UN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낭독하는 대표로도 뽑혔다. 깡촌의 참담한 영어교육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비료공장에 살던 미국인들을 찾아다니며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 노오-력의 아이콘답다. 왜 영어를 배우냐는 친구들의 질문에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단다. 고3 때는 대표로 뽑혀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고 왔다. 충주에서는 아직도 어르신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했지만, 외무고시가 사라져 살짝 멘붕. 군사정부였으므로 친구들과 함께 시위도 나갔다고 한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맨 앞에 설 때도 잦았다고. ROTC를 생각하다가 '뜻이 있어' 현역으로 군 입대를 한다. 군 생활 얘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복무 후에도 공부를 계속했는데, 고시도 없어졌는데 왜 공부를 하냐는 질문엔 역시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단다. 1970년, 부활한 외무고시를 차석으로 패스한 후 외무부로 입부한다. 가족들에게 "평생 1등만 하다가 처음 2등을 해봤다"고 얼떨떨했다고 한다. ㅂㄷㅂㄷ..


1972년, 가정형편이 어려워 모두가 바라는 미국 대신 인도를 택한다. 여기서 그의 평생 멘토 중 한 명인 노신영 전 총리를 만난다. 그는 노 전 총리에게서 외교관으로서의 기초적인 자세를 배웠다고 한다. 그 후 탄탄대로. 동기들보다 항상 먼저 승진하여, 승진을 사양하기까지 했다. 공로명 장관 시절에는 "자네는 승진이 너무 빠르니 내가 천천히 승진시키겠다"고 말했다고. 그렇게 가는 곳마다 상사들의 신임을 독차지하며, 외교부의 전설이 되었다는데, 이른바 '반기문의 반 만큼만 해라'라고 해서 '반반'이라 불렸다고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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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94년, 김영삼 정부 때는 제1차 북한 핵위기 때 제네바 협의에 참여하고, 97년 황장엽 망명 때는 필리핀에 밀사로 날아가 활약을 했다. 황장엽의 귀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국과의 외교관계 마찰을 피하기 위해 필리핀이라는 제3국을 경유해서 귀국시키는 작전이었는데 이를 위해 필리핀 대통령을 직접 설득했다고. 또한, 최근 회고록으로 시끌시끌했던 송민순 전 장관과 이때 SOFA 1차 개정에 참여했고, 2000년에도 송 전 장관과 2차 SOFA 개정에 참여했다. 둘은 졸라 친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부 차관으로 발탁되었는데, 이때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위기가 온다. 김대중 정부는 새로 바뀐 부시 행정부에게 햇볕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무리한 방미를 했는데, 이때 부시의 태도가 문제가 된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후 ABM 합의가 시끌시끌해지면서, 결국 짤린다. 공직생활이 쫑 나는 줄 알았는데, 한승수 전 장관이 UN 총회의장에 선임되자 그를 발탁한다. 외교부 차관급에서 국장급으로 내려온 격인데, 또다시 '외교'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단다. 일밖에 모르는 바보...! 


그렇게 반기문 신화가 끝나갈 즈음,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승리 후 그를 외교보좌관으로 선임한다. <반기문과의 대화>라는 책에 의하면, 노 대통령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반 대사는 내 가정교사가 되어주세요. 나는 외교정책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 후 참여정부의 자주외교라인과 은근한 갈등을 빚으며 외교부장관직을 수행한다. 정동영은 그에게 반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동영 이 나쁜 사람! 2006년, 참여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UN사무총장에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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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업자 반기문의 멘붕


평생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만 같은 그도 좌절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2001년, 한-러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 협정을 '준수하고 강화해야'한다는 취지의 발표문을 채택했는데, 이를 불편하게 여겨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결국 외교부 차관이던 반기문이 경질되기에 이른다. 성공 신화를 써내려가던 그가 실업자가 된 것이다. 당시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31년 동안 외교일밖에 모르던 그는 실업자가 된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모범 외교관의 표상이던 그가 매일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셔야 간신히 잠들었다. 불과 두어 달 동안에 10킬로그램의 몸무게가 빠졌다. 그는 "죽고 싶다. 내가 단 1시간도 나를 위해 쓴 적이 없는데..."라며 절망했다. 친구 안영수 씨는 반 총장에게 "이젠 차를 운전해줄 사람도 없으니, 지하철을 타고 다녀라"라며 지하철 정기권을 사줬다.


- <조용한 열정, 반기문> 중에서



반 총장의 입에서 "죽고 싶다"라는 말이 나왔다니, 충격이다. 반인반신인 줄 알았는데... 그도 인간이었던 것이다. "단 1시간도 나를 위해 쓴 적이 없다"는 말에서 보듯, 공직자로서의 자부심이 컸던 만큼 좌절도 컸던 듯싶다. 이는 평생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던 그에게 대단한 충격을 줬을 테다. 그는 이 좌절로 뭘 배웠을까. 든든한 빽의 중요성? 혹은 실력을 넘어서는 처세의 필요성? 궁금하다. 누가 인터뷰 하면 좀 물어봐주길.



2. 두 번째 위기, '김선일 사건'


다시 한번 말하지만, 탄탄대로의 꽃길만 걸은 양반이기 때문에 몇 없던 위기의 시절에 더욱 관심이 간다. 대선후보인 만큼, 특히나 현재 대한민국의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능력인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아, 물론 잘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암, 그렇고말고.


다음의 일화는 '김선일 사건' 때 일화다.


이라크에 선교를 하러 갔던 김선일 씨가 과격 무장단체에 의해 참수된 사건이 발생했다. AP통신이 김선일 씨가 납치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외교부에 전화로 문의했으나, 외교부가 이를 묵살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AP통신이 김 씨 사건에 대해 외교부에 문의했음을 보도하자 외교부는 처음에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교부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하루 만에 "사무관 두 명이 통화한 사실이 있다"라고 인정했다. 당시 외교부 공보관실 직원은 "한국인 실종 사실을 알고 있느냐"라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대해 "영사국이나 아-중동국에 문의를 하라"라고 대응했고, 아-중동국 직원은 같은 전화를 받았으나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았다.


(중략)


반 총장은 2004년 7월 15일 비공개로 열린 외교부 심의관, 과장급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최근 일련의 사태로 인해 대인기피증이 생겨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김선일 씨 사건 등, 외교부가 잘못한 일이 많다. 그런데 잘못의 정도에 비해 너무 과도하게 매도당하다 보니, 언론 기피증도 생겼다"라며 심경을 밝혔다. 그는 외부와의 약속을 모두 취소했고, 대외적인 연설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외부 사람들을 만나면, 최근 외교부 사태와 관련된 인사받기도 두렵고, 면목도 없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김선일 사건으로 인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외교부 청사 1층 로비에는 20여 마리의 말이 그려진 대형 그림이 걸려 있다. 외교부가 김선일 사건으로 극심한 비난을 받자, 이 그림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중략)


반 총장은 2004년 7월에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객담이지만 외교부가 최근 이렇게 장시간 국민의 질타를 받은 적은 공직생활 35년 동안 처음인 것 같다. 이런 와중에 1층에 걸린 말 그림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 신경이 쓰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말들의 방향이 제각각이어서 어디로 갈지 방향을 못 잡는 것 같다"라며 "이 그림 대신에 좀 더 차분하고, 질서정연한 그림을 갖다 놓았어야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그림을 철거할 것을 고려했으나, 행정자치부 소속 재산이라는 이유로 처분하지 못했다.


- <조용한 열정, 반기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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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 그림, <도약>


결국, 반 총장은 노 대통령을 비밀리에 독대한 자리에서 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부담이 갈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사태를 지켜보자"고 말했단다. 그래서 반 총장은 흐트러진 외교부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며, "미국은 이라크에 많은 병력과 정보원이 있으면서도 미국인 두 명이 납치, 참수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등 평소답지 않게 과감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런 일화에서 필자가 느낀 바는 이렇다. 1.반 총장은 멘탈이 단단하지 않은... 않을지도 모른다. 2.외교부의 언론 또는 민간 대응은 예나 지금이다 최악이다. 3.노 대통령은 그를 끝까지 지켰다. 4.예나 지금이나 하여간 그놈의 '말'이 문제다. 다른 건 둘 째 치더라도, 자신에 대한 비판에 민감한 것을 보면, 과연 험난한 대선 일정을, 그리고 정권을 잡은 뒤 쏟아질 온갖 비판들을 감내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든다. 아주 살짝.



3. "일본과 한국은 어른다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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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총장의 "위안부 합의 환영" 발언은 많은 국민들을 열받게 했다. 진심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그가 한일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 볼 수 있는 내용을 찾아보았다. 인터뷰 시점이 2011년이란 것을 감안해서 읽어보자.


반기문은 아시아 국가들이 더이상 사과 카드를 남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동시에 한국 정부는 일본과 (성실하게) 협상해야 합니다. 한국 국민이기도 하지만 유엔 사무총장 입장에서 저는 한국과 일본이 조화롭고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에 도움이 되는 관계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바라는 바입니다."


(중략)


사실 많은 한국 정치인들은 일본 입장에서 '사과 카드'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과거사 문제를 틈만 나면 끄집어낸다. 그러나 반기문은 전쟁 범죄와 보상 문제를 되풀이하는 대신 히로시마 평화기념식에 참석했다.


나는 반기문이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있던 2005년의 만남을 떠올렸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서울 시내에 있는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였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동아시아 외교를 주제로 말씀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 지역 국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옹졸함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일본과 한국은 어른답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외교통상부 장관으로서 일본 외무상에게 문호 개방 정책을 취할 것이다. 외교 사절로 (2005년에) 일본에 가면, 일본 외무상이 반갑게 맞아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반기문과의 대화> 중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해석을 해보면, 큰 틀에서는 맞는 이야기이다. 미우나 고우나 이웃 나라인데 싸워봐야 좋을 게 뭐가 있나. 그렇지만,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아서가 아닌, 사과를 해 놓고 등 돌려서 헛짓거리를 하기 때문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일단 덮어두자. 이 대목의 포인트는 크는 선천적으로 싸움과 갈등을 싫어하는 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니. 평화주의자 반기문!



4. 반기문 or 밴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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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국익이 아니라 미국을 위해 일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나쁜 생각이다. 우리 모두 의심을 내려놓고,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된 버시바우 전 주한 미 대사의 보고서를 보자.


한국 외교통상부의 미국 전문가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인 반기문은 워싱턴에 2차례, 뉴욕에 1차례 등 미국에서 3차례 파견 근무를 했다. 반기문은 외교부와 청와대에서 미국 관련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반기문은 미국인과 미국의 가치, 미국 정부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sympathetic)이라는 것이다.


이는 반기문 세대의 잘 교육받은 한국인들의 전형적 특성이기도 하다. 그들의 의식 발달에서 중요한 경험은 한국전쟁이었고, 그들은 미국이 우호적 강대국이며 지역 및 세계 문제에 있어 (한국과) 이상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에 머물러 있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주한 미군 기지 반환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한국에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 우리는 반기문을 찾았다. 그는 언제나 동조적이었고 도움이 됐다. 우리는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더라도 (그와) 미국 정부와의 관계가 변함없을 것이라는 데 어떠한 의심도 없다.



봐라. 동조적(sympathetic)이라고 했지, 친미라고 하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뼛속까지( to the core) 친미인 분도 대통령 했는데, 동조적일 뿐인데 뭐가 나쁘냐. 빼액!!!!



5. 내부고발자


한국에서 내부고발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일시적으로 주목은 받지만, 그들의 고발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법적인 보호도 미비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고발자들이 탄압받고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 국정원 대선개입을 폭로한 정 모 씨에게 검찰이 오히려 징역 2년을 구형하고, 해군의 방산비리를 폭로한 김영수 소령은 결국 전역해야 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고발한 사람들은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의 반 총장께서 계셨던 UN은 어떨까?


와서스트롬은 이를 고발하기로 결심했다. 내부고발자의 고발을 접수 조사하는 역할은 유엔 내부감찰실(OIOS)이,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역할은 유엔 윤리국이 각각 맡고 있다. 윤리국은 독립기구인 내부감찰실과 달리, 반기문 총장이 있는 유엔 사무국의 통제를 받고 있다. 와서스트롬은 내부감찰실에 소속 기관의 비리를 알렸다. 그런데 윤리국으로부터 해고 명령이 날아왔다.


영국 가디언은 2012년 6월 27일(현지시각) "와서스트롬의 고발 내용이 UNMIK로 새나가자 그의 사무실이 없어져 버렸다"면서 "이후 유엔 경찰이 와서스트롬을 억류했고, 영장 없이 그의 아파트와 자동차를 뒤졌다"고 보도했다.


(중략)


유엔과 내부고발자의 갈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현장관리이사인 앤더스 콤파스(Anders Kompass)도 내부고발자로 나섰다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콤파스 이사는 유엔 평화유지군 스캔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 2014년 말 프랑스 검찰에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2013년 12월부터 2014년 7월까지 프랑스에서 파견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유엔 평화유지군이 8~9살 어린이를 상대로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콤파스는 원래 2014년 여름, 해당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었다. 가디언은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난해 4월 9일에 보도했다. 콤파스는 보고서에서 "유엔이 평화유지군의 만행을 막는 데 실패했다"면서 "유엔 스스로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아 프랑스에 수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유엔은 "콤파스가 내부 기밀문서를 외부로 유출해 외교의례를 어겼다"면서 그의 행동을 비난했다. 결국 유엔은 지난해 4월, 그의 권한을 정지시켰다. 


- 팩트올


 

한 평생을 노오력으로 살아오신 반 총장께서는 당연히 이런 일들의 전모를 모르셨을 거다. 비록 두 내부고발자 모두 반기문 총장을 지목해 비판했지만, 바쁘신 고목, 아 아니 거목 반기문 총장께서 매일 구굴에 ban-ki-moon 쳐보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들까지 챙길 여력이 있으시랴. 이 역시 포인트는 맑은 성심을 소유하신 반 총장께서는 갈등을 원치 않으시다는 것. 이 평화주의자!! 



6. '국가 = 나' vs '외교 = 나'


2016년 5월, 만국 유람을 마치고 잠시 귀국한 인기 있는 대선후보 반기문 총장은, 충청의 '올드스쿨' 김종필을 예방했었다. 그 후 7월엔 김종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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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김종필 총리님께.


금번에 구순(九旬) 생신을 맞으신 것을 감축드리오며, 앞으로도 계속 건안하기시를 기원합니다. 총리님께서 대한민국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평생 남기신 족적은 후세에 기리 남으리라 사료되옵니다.


저는 유엔 사무총장직으로 근무한지 어느덧 9년이 지나 마지막 1년의 임기를 남겨 놓고 있는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계속 아낌없는 지도편달을 부탁드리옵니다."


병신(丙申)년 새해에도 늘 건강하신 가운데 큰 발전 이루시기를 기원드리오며, 훗날 찾아 뵙고 인사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이 편지를 대한민국 외교부의 외교 행낭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외교 행낭이 뭐낭, 했겠지만 최순실의 은덕으로 우리 모두 외교 행낭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나랏일 하라고 만든 주머니이지, 사적으로 쓰라고 만든 게 아니라는 것 말이다.


논란이 일자 외교부는 반 총장이 주 UN대표부에 편지를 전달했고, 주 UN대표부가 외교 행낭으로 이를 발송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전, 현직 고위 인사 앞으로 서한 전달을 요청하면, 외교행낭 편으로 전달하는 것이 관례며 다른 나라도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관례, 고놈의 관례. 말 같지도 않은 해명에 비판이 거세지자 외교부는, "편지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서한 전달 부탁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느냐"며 더욱 개떡 같은 해명을 내놓았다.


전례없는 스케일을 뽐내는 최순실 사태의 본질이 '국가의 사유화'라면, 대인의 풍모가 느껴지는 반 총장의 편지 스캔들은 '외교의 사유화'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단, 여기서 그를 최순실 같은 나쁜 사람과 등치시키지는 말자. 외교에 평생을 바치다 보니 내가 외교인지, 외교가 난지 모르는 외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것일 뿐이니 .



7. 청년 인턴 확대를 주장한 반기문, 그러나 UN의 청년인턴은?


반기문이 UN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2015년, 6개월짜리 UN 인터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이 2주 만에 인턴을 그만두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이데는 지난해 8월 10일 일간지 '트리뷴 드 제니바에 "스위스의 물가와 숙박비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제네바 호수에 텐트를 쳤다. 하이데는 "그 누구도 나에게 텐트에서 자라고 말한 적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을 고려하면 텐트에서 지낸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결국 하이데는 지난해 8월 12일 인턴을 그만뒀다. 겨우 2주만이었다.


하이데가 인턴 중단 신청서를 내려고 유엔에 왔을 때, 그의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록했고 셔츠는 구겨져 있었다고 한다.


- 팩트올



뉴질랜드 출신의 데이비드 하이데(23)가 유엔 인턴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유엔이 '급여, 교통, 주택, 식사, 의료 지원이 없다'는 무급 인턴 조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높은 물가와 숙박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텐트를 치고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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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dailymail>


이 사건이 알려지자, 유엔 인턴과 젊은 직원들이 반기문 총장에게 인턴의 유급 전환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허나 노오-력의 아이콘 반 총장께서는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몇몇 외신에 따르면 추후에 인턴의 재정 문제를 사과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감이다- 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반 총장께서는 귀국 직후 청년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인턴이나 보조사원으로 인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런 면에서 2~3년 같이 일하다가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채용하는 이런 방법을 확대하면 어떻겠나"라고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법으로 노오-력을 제시했다. 평생 노오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그다운 멘트다. 물론 헬조선에서는 인턴을 졸라게 부려먹고 자르는 관행이 있지만 전 지구적 스케일을 관장하시던 반 총장께서 그런 디테일까지 어떻게 챙기시랴. 우리가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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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연일 대권 주자로서 헛발질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반기문 전 총장. 언론에서는 연일 기름장어라느니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이라느니 하는 악평만 쏟아내고 있어, 딴지 내 유일한 반기문 지지자는 필자는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나라도 더렵혀서.. 아 아니, 나서서 그를 입체적으로 정리해봐야겠다는 마음에 나름대로 노력해봤다.


74살에 고국으로 돌아와 '정치 루키' 타이틀을 받은 그는 자신의 무색, 무취, 무능력으로 이어지는 3무 비판을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로 고고하게 받아쳤다. 갈등을 조화롭게, 물 흐르듯 해결하는 동양적 리더쉽이라고.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자, 노련한 프레임 전환이다.


기름장어 같은 노련함으로, 평생을 일군 노오력으로 이제는 대통령에 도전하려 한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계속 지켜보기로 하며, 필자의 최애캐 반기문 편을 이만 마친다.


다음 편은, 이재명 편이다.




[참고문헌]

<반기문과의 대화> 밴 플리트 저, RHK코리아

<조용한 열정, 반기문> 이하원, 안용균 저, 기파랑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신웅진 저, 명진출판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시즌2> 김의석 저, 명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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