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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딴지 IT 늬우스 <24>

2013-10-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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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추천9 비추천0

2013. 10. 17. 목요일

물뚝심송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춥다고 발을 동동거리는 날씨가 되고 말았다. 덥다고 헉헉거리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사람의 마음도 간사하고, 날씨도 간사하고 참 간사한 세상이다.


오늘의 딴지 <IT 늬우스>는 늬우스를 빙자한 칼럼이다. 지난 기사가 올라간 다음 발생한 뉴스거리가 부족해서만은 아니고, 최근 들어 우연히 발생한 어떤 사건에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 인상에서부터 연상된 내용을 딴지 IT 늬우스 독자 여러분과 공유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발랄했으며 무시무시할 정도로 도발적이었던 그 도전정신은 모두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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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들


Geek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의미로 덕후라는 단어를 들 수가 있겠다. 어느 시대에나 덕후들은 있었고, 그들은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 사회가 보유한 다양성의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대한민국 사회에 전자계산기나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이 학문적으로 도입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초창기 숭실대학교에 최초로 설치된 전자계산학과가 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 겨우 80년대 초반, 각 유명대학교에 연이어 전산학과가 설치되면서 이후 소프트웨어 관련 인재들을 배출하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의 이야기가 된다.


그 전에는 대부분 수학과 출신들이나 물리학과 출신들이 각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전산인력을 보급하는 형식이었고, 그들은 기업체의 정규 인력으로 주어진 일들을 하기에 바쁜 사람들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부터 몰아친 피씨의 열풍은 그 전에 각각의 분야에서 활동하던 덕후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피씨 이전 세대에도 분명히 덕후들은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의 생업과는 관계 없이 각각의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한계를 넘어서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 자유로운 도전 정신을 발휘해 왔었다.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그랬고, R/C(무선조종)로 작동되는 모형자동차, 모형비행기 등의 동호인들이 그래왔다. 그 밖에도 실험실에서 흔히 사용되는 전자제어 분야에도 덕후들이 존재했고, 그저 LED 한두 개 깜빡 거리는 전자키트를 좋아하던 아이들은 자라서 8080등의 CPU를 이용해 피씨의 전신인 마더보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이런 모든 덕후들이 새롭게 등장한 피씨의 세계로 모두 몰려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피씨 자체에 관심을 쏟는 한 편, 그 피씨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아마추어 무선사들은 피씨를 이용해 원거리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무선모뎀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R/C 팬들은 작은 CPU를 탑재해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소형 로봇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많은 덕후들이 피씨에서 가동되는 다채로운 소프트웨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이 사회에는 피씨와 관련된 일들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 영향력은 파급력을 가지게 되어 모든 기업이 전산화 열풍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찬진의 아래한글이 등장하고, 안철수의 V3도 등장하고, 각종 게임업체들이 줄줄이 명멸하게 되고, IMF를 맞이하여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동네 마다 PC방을 차리게 되고 하는 역사적인 변천 과정을 거쳐오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맥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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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호연지기


덕후의 맥이 완전히 끊겼다고 주장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덕후는 사라질 수가 없다. 이 사회가 존재하는 한 어느 구석엔가는 분명히 자신의 취미에 몰두하고 있는 덕후는 존재한다.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진취적인 도전정신, 내 손으로 너희들이 아직 생각하지도 못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겠다는 덕후들, 호연지기로 무장한 덕후의 맥이 끊겼다는 것이다.


남아있는 덕후들은 무기력하다. 주어진 물건들로, 주어진 작품들로, 주어진 스타들로 즐기기에 바쁘다. 여지껏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남들이 안 해본 일, 남들이 절대 못할 것 같은 일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스스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우주택배비' 1억원을 지불하고 궤도에 올린 송호준씨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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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63012


이런 미친 짓을 성공시켰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저 그런 짓을 하면 나에게 뭐가 떨어지는가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후원자들마저도 광고효과나 생각하지 그 일 자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저런 기괴한 짓을 즐기는 사람들이 없으니, 공동체도 없다. 공동체가 없으니 어쩌다가 한 번씩 가물에 콩 나듯 하는 1인 덕후의 기발한 작업들은 쓰레기로 묻혀 사라져 버린다. 계승 발전되지 않는다.


이 사회가, 대한민국 사회가 왜 이리 왜소해 졌는가? 왜 이리 쫀쫀해졌는가?


먹고사니즘


물론 그 원인은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한눈 팔 사이가 전혀 없이 타이트하게 조여 드는 교육현장도 그 원인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덕후는 중고교 시절에 탄생한다. 그러나 보충학습에 야자에 쉴 틈을 안 주고 몰아치는 학교 생활은 중고교생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관심을 돌릴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기껏 어찌어찌 비비고 대학에 들어가봐야 이제는 취업경쟁이 시작된다. 취업 따위 나 몰라라 하고 온갖 미친 짓을 일삼으며 대학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요즘 대학생들의 살벌한 경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시간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투입된다. 물론 그런 스펙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은 나중에 한 십오 년 지나야 깨닫게 된다. 아니, 스스로 원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런 하찮은 스펙 따위가 입사지원서 내는 순간에는 얼마나 위대한 존재로 부각되는지를 요즘의 젊은이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꼰대는 그깟 스펙 따위 아무 의미 없다고 외치지만, 모든 기업의 인사담당관들은 그깟 하찮은 스펙도 없는 입사지원서들을 휴지통으로 던져 넣고 있기 때문이다. 꼰대의 배반이다.


IMF를 겪고 신자유주의 열풍을 겪은 이 사회의 반덕후 시스템은 입사 이후에도 작동한다. 업무시간에만 회사 일에 열중하고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할 자유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다른 분야는 볼 것도 없다. 덕후 기질을 가진 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든다는 IT 업계에서도 자신이 즐기는 일에 소모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연일 야근이 이어지는 열악한 근무환경도 나름대로 반덕후적이고, 겉보기에는 굉장히 여유로워 보이는 대기업이나 대형 IT 기업의 직장생활 역시 직장 내의 생존을 위해 여유 시간을 모두 투입해야 할 정도로 살벌한 경쟁이 이어진다.


경쟁에 낙오하는 순간 기초생활 보호대상자로 전락하는 이 사회에서 덕후질에 투입할 시간 따위는 없다. '먹고사니즘'이라는 것은 이 시대에 존재하는 개념 중에 가장 처절하고 가장 악마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앉아서 모든 이의 목을 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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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감히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덕후의 호연지기'가 없다고 비웃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이대로 좋은가?


과연 이대로 흘러가도 좋은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먹고사니즘에 매여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일에 모든 인생을 소모하고, 그저 언젠가 돈 많이 벌면 이 모든 속박을 깨고 자유롭게 살아갈 꿈이나 꾸면서 현실은 남이 쓴 여행기나 뒤적거리고 있는 이 상황을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것인가.


개인의 불행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 사회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법을 잊어 가고 있다. 근래 들어 우리가 세계에 보여줄 만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저 남들이 이미 다 한 것을 좀 더 작고 좀 더 빠르고 좀 더 싸게 만들어서 헐값에 시장에 내다팔고 그 돈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새로운 것은 어디 커다란 연구소에 들어가있는 박사, 석사들이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저 다달이 다가오는 스마트폰 할부금이나 갚기 위해 알바를 뛰고 투잡을 뛰고 데이트할 돈이 없어 애인을 만들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잖은가.


더욱 안 좋은 것은 이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는 점점 더 척박해지고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 현대에 입사지원자가 십 만이 넘게 몰렸다고 하고,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거기 들어가 봐야 별달리 나은 삶이 보장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게 되면 그야말로 초천재 덕후가 될만한 인재들은 신림동 고시원 골목에 모두 모여 있다. 정작 능력있는 인재가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IT 업계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가 좋고 코딩이 좋아 코피를 흘려가며 며칠씩 밤새서 작업하던 덕후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저 과중한 야근에 시달리며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지도 못하며 착취당하는 노동자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를 사랑하며, 십 년이 넘게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없다. 아니, 그런 사람들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그런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사회가 내버려 두질 않는다. 누구나 사람이기에 음식을 먹어야 하고 밤에는 누워 잘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생존 비용을 아무도 대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지적 능력이 있는 모두는 신림동 고시원에서 법전을 펼치고 있고, 과학적 재능이 있는 모두는 의대에 입학해서 환자들만 돌보고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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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대로 놔둬도 좋은가?


새로운 희망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누가 이 일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덕후의 문제는 덕후들이 푸는 것이 맞다. 믿고 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초창기 한국 사회의 덕후문화를 이끌며 피씨 산업을 만들어낸 사람들, 지금은 IT 업계라 부르는 그 험난한 정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이제 중년을 넘어 두 번째 인생을 생각해 보고 있을 사람들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비록 대기업이지만, 네이버에서 NEXT라는 대학 형태의 IT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도 하나의 모델일 수 있겠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이미 성공한 사람들, 더 이상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있는 그 사람들의 성공이 결코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맥이 끊어져 버린 도전적 덕후 정신을 후배들에게 다시 이어줄 수 있도록 발벗고 나서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스스로 납땜해서 만든 보드가 예상대로 작동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끓어 넘치는 희열을 생각하며, 그런 느낌을 후배들도 한 번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맨 처음 해냈다는 자부심, 그걸로 엄청난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는 별 관심도 없이 그저 그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즐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때의 그 찬란한 느낌들을 후대에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당신들이 나설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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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