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편집부 주



'찌라시 한국사'는 재미난 역사적 사건을 대화체로 풀고 썰을 마구 첨가하여 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박반박까지 한국사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새 연재입니다.


찌라시만큼 흥미진진하고 쫄깃하여 찌라시인 것이지, 진짜 찌라시와는 무관하니, 맘 편히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어머니 상으로 리빙 레전드 김혜자 씨가 떠오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압도적으로 신사임당을 떠올릴 거야.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율곡 이이를 사상적으로 잇는 조선시대 대표 보수 성리학자 송시열 때부터 만들어 졌다고 해. 송시열은 신사임당을 율곡의 어머니로서 부각 시키기 위해 그녀가 가졌던 뛰어난 예술적 재능이나 다른 인간적인 면모를 최대한 숨겼어. 조선시대 보수 성리학자들이 원하는 어머니 상은 있는 듯 없는 듯 집안 살림을 하며 남편과 자식 시댁 뒷바라지 하는 여자만 원했으니까.


신사임당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유교사회에서 원하는 어머니상으로만 우리에게 기억이 되고 있기 때문에 여성계에서 신사임당의 5만 원권 모델 등재에 격렬한 반대를 했다고 해. 신사임당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잘못된 이미지로 모델로 채택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5만원권벌어짐그림_(11)_dicagallery.jpg


사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여류화가로 손 꼽히고,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왔어. 현모양처라고 하면 왠지 수동적이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 자기의 삶은 다 포기해야 할 것 같잖아.


그럼 그녀의 일생을 되짚어 보며 그녀가 단지 성공한 아들을 둔 현모양처였는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온 여류 화가였는지 생각해 보자고.


120784710.png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기생을 제외하고 여자들의 이름이 알려진 경우가 많지 않아. 신사임당은 예외니까 이런 말을 했겠지만 본명은 신인선 이셔. 이름부터 막 주제적이고 현대적이지 않아?


1504년에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이사온 사이에서 태어나셨어. 딸만 5명인 집안에서 둘 째 였는데 딸 바보 아버지가 특히 둘째인 인선이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고 해. 시집 보내기 싫어할 만큼 말이야. 얼마 전 자기 딸 돌잔치에서 시집 보내기 싫다고 울던 주책바가지 친구 놈이 생각 나는 대목이야.


신사임당의 부모님은 주말 부부였어.


놀라지 마. 조선시대에 신사임당의 어머니의 요청에 의한 거라고 해.


사연인즉슨. 사임당이 3살 무렵의 어느 날


“서방님, 아시다시피 저는 저희 집안의 무남독녀입니다. 특히 저희 어머님과 저는 부모 자식간의 사이를 넘어서는 특별한 관계란 걸 서방님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아이들도 낳을 만큼 낳았으니 저는 어머니가 있는 강릉에서 지내고 서방님은 서울에서 각자의 부모님을 모시면서 주말 부부로 지내고 싶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놀랍지 않아? 요즘 같은 시대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제안 아니야? 우리는 어쩌면 조선시대보다 더 고리타분한 시대에 살면서 명절 때 마다 이혼율을 높이고 있는 건 아닐지...


더 대단한 건 신사임당 아버지의 대답이야.


“부인! 그렇게 합시다. 콜!”


신사임당의 아버지는 쿨하게 부인의 제안을 받아 들이셨다고 해.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랐으니, 신사임당도 결혼 후 마찬가지 요청을 남편에게 해. 나중에는 서울로 올라가게 되지만 상당한 시간을 친정에서 보내게 되었어. 이런 이유로 율곡 이이의 고향이 외가인 강릉 오죽헌이 된 거지.


사실 아무리 지체가 높은 집안이라도 여자는 그림이나 글 공부를 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였어. 하지만 몇 시대를 앞서가는 스티브 잡스 급의 사고를 가진 부모님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그림공부와 글공부를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고 해. 신사임당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현모양처상 보다는 오히려 부모님의 적극적인 후원과 -뒤에 이야기 하게 될- 남편의 외조를 받으며 자신의 역량을 펼친 진취적인 여성상에 가까워. (현모양처를 절대 비하하는 의도가 없음을 현모양처인 저희 어머니를 걸고 맹세합니다.)



herstory_20161020_img06.jpg


herstory_20161020_img07.jpg



이제 그녀의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자고.


그냥 율곡 엄마가 취미로 그림 그려서 아들 덕에 유명해진 게 절대 아냐. 다들 알다시피 사임당께서는 5만 원권 얼굴 모델이시면서, 아들의 5천원 권 배경 화면에 자신의 그림인 초충도를 삽입 시키신 엄청난 화가야.


초충도라 함은 그 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한 번씩 들어봤잖아. 햇볕이 너무도 따사로운 어느 봄 날, 사임당이 그림을 그린 후 햇볕에 말리기 위해 마당에 그림을 펼쳐 놓았는데, 집에서 키우던 닭들이 진짜 벌레인줄 알고 그림을 쪼아 댔다는 이야기 말이야.


사임당께서는 초충도 뿐만 아니라 산수도에서도 능하셔서, 당시 남자 평론가들로부터 안견 다음 가는 화가라는 평을 받았다고 해. 그리고 그림이 워낙 좋으니 위작이 넘쳐 났는데, 숙종임금은 위작 인걸 알면서도, 그림을 감상하면서 예술의 기쁨을 알았다고 하니 남녀를 통틀어서도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라고 할 만 하지.


하지만 그림은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40폭 정도만 전해 진다고 하고, 6편만 전해지는 글씨도 매우 뛰어나 오죽헌에 판각이 되어 있다고 해.


그림들은 국립중앙 박물관에 일부가 전시 되고 있다고 하니 그림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이해들이 가지?


120784710.png


자 이제 신사임당의 영혼의 파트너 남편 이웬수!  아니 이원수에 대해서도 잠시 알아보자고.


신사임당에 대하여 문자로 남아 있는 기록은 많지 않다고 해. 아들인 율곡이 자신의 위대한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선비행장’이란 책으로 만들었어. 대단한 학자 이이가 인정한 어머니야.


그 기록에는 아버지에 대한 기록도 나오는데 내용이 재미있어.


‘아버지는 성품이 활달 하시어,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으셨으며, 집안일에 무신경 하셨다. 또한 아버지가 실수를 하면 어머니가 옳은 길로 잘 이끄셨다.’


난 말이야. 왠지 모자란 아버지란 느낌 보다는 풍류를 즐기시며 스트레스 자체를 별로 받지 않는 성품이었던 거 같아.


생각을 해보자고 부인은 당대 최고의 여류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고, 아들은 사시, 행시, 외무고시까지 패스하고 대학교수들이 존경해 마지 않는 학자야. 내가 이원수라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 같아. 아들이 박지성인 것 까지는 좋은데 부인까지 심상정의원 급이라면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너무 눌리니 마냥 좋지 않을 수도 있지 아니 할 지도?


신사임당-율곡_이이.jpg


하지만 이원수는 부인의 대외활동을 적극 지원했다고 하니 이 분의 인격만큼은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 신사임당의 그림이 집안에서 머물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온 계기가 남편 덕이야.


이원수의 오촌당숙이 당시 영의정과 좌의정이었는데 이들에게 자기 부인의 그림을 보여주었어. 팔불출로 보일 수도 있고 만약 그림이 별로였다면, “어허 자네는 집안 단속을 어찌 하길래 아녀자가 이런 그림이나 그리며 한가롭게 지낸단 말 인가. 쯔쯔.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 세상이 망조가 든 게야.” 이런 비난도 감수해야 했지만, 그림을 본 당대의 실세인 두 사람은,


“좋아! 그림이 어찌 이리 좋단 말인가! 내 혼자 보기 아까우니 이 쪽 업계 사람들에게 좀 보여줘도 괜찮겠는가?”


“아. 예 그리시지요. 사실 이 그림은 그냥 평범한 편인데, 담에 올 때는 진짜 괜찮은 그럼 몇 점 보여 드리겠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실질적으로 데뷔를 시켜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 이원수 아니었다면 아녀자의 그림을 누가 찾아서 봤겠어.


더불어 신사임당과 이원수 사이에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 지는데 둘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줘. (조선시대 문신 정래주가 쓴 ‘동계만록’ 에 나오는 일화임)


주말부부로 지내고 자주 못 보니 가끔씩 술도 한 잔 하고 했나 봐. 술 자리 도중 장난끼가 발동한 속 편한 이원수가 모든 것이 완벽한 부인에게 농담을 시작 해.


“부인. 그거 아시오? 저 유명한 공자께서도 부인을 내치셨다는 사실 말이요?”


다분히 농담조였지만 신사임당은 죽자고 덤벼 들었다고 해.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공자의 부인 쪽에 명백한 실책이 있었기 때문 입니다.”


“네 그렇긴 하지요. 농으로 한 이야기인데 어째 부인 안색이 안 좋소이다. 허 허허허.”


“서방님 그 사실도 알고 계시옵니까? 공자는 부인을 내치시고는 재혼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주자 또한 재혼을 하지 않으셨다고 하니, 서방님께서도 제게 약조를 해주십시오.”


“아니 부인 이 무슨 궤변이요? 어찌하여 결론이 그 쪽으로 납니까? 허 참 이거 농담 한 번 했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남편에게 ‘엄메 기죽어’ 하며 지내는 어머니 상은 확실히 아니지 않아? 그렇지만 어디인지 귀여워 보이시는 게 난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지는데.


이 금술 좋은 부부는 4남3녀를 두었는데, 율곡 외에도 장녀가 뛰어난 화가로 이름을 날렸고 막내인 이우는 율곡이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고 말 할 정도였다고 해. 하지만 장남인 이선은 우등생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고 하니 이런 점도 신사임당의 인간미 지수를 높이는 포인트가 아닐까?


역사저널그날_신사임당.jpg


깊은 학문적 소양과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으로 누구보다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던 신사임당. 어때 들?


단지 율곡의 어머니로만 한정 시키기에는 그 녀의 삶 자체가 대단하지 않아?


자신의 어머니를 누구보다 높게 평가했던 이이도 율곡 엄마 신사임당이 아니라 당당히 여류화가 신인선으로 후세가 기억 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돌발 퀴즈 : 신사임당은 쉰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남편 이원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 이원수는 부인의 귀여운 협박을 존중하여 수절(?)을 했을까요? 재혼을 했을까요?




 


지난 기사


1. 허초희(허난설헌), 못다 핀 꽃 한 송이







편집부 주


이 글은 독자투고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톡투불패 및 자유게시판(그외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독자투고 슈거팩토리공장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