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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옳게 살려면 한 가지 각오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고 정의롭게 살고 인간답게 사는 길은, 지금 봐서는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남보다 더 가지려고 하고 남보다 더 좋은 옷 입고 더 큰 집에 들어가 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남보다 일은 덜 하고 편안하게 지내려고 하지요... ... 농촌사람이 도시로 가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는 편도 있지만,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은 필경 물질적으로 살기 때문이고 물욕에 정신이 마비되었다고 보겠습니다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범죄가 다 그렇습니다. 물욕이란 인간을 악마로 만듭니다.


- 교사와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 이오덕 -





이번 편은 동네 인문학이라는 키워드로 12월 중순부터 준비했다. 공교롭게도 그 사이 송인서적은 부도가 났다. 강화읍에는 전편에 소개한 인문학서점 가망불망과 터줏대감 청운서림이 있다. 청운서림은 강화시민사회의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지역서점이다. 송인서적 사태는 이번 편과 결이 다른 까닭에 다루진 않았다. 잘 모르기도 하고. 조만간에 청운서림을 방문하여 동네책방의 생존 방식을 물어볼 예정이다.


나라 돌아가는 꼬라지도, 강퍅한 살림살이도. 무엇 하나 신통한 게 없다. 이 와중에 인문학, 문화, 예술, 책 어쩌고 하려니 답답하... 지만, 울화와 헛된 망상에 휩쓸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마침 이오덕 선생님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과연 가난하게 살 각오가 되어 있는가. 자신 없다.


이번 편에 등장하는 <자람도서관><바람숲그림책도서관>은 후원과 사비로 운영되는 곳들이다. 자본주의 색안경을 끼고 보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전편에 언급된 독립 책방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같은 세상에 책만 팔다가는 굶어죽는다. 삶의 패러다임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꼴리는 대로 이것저것 주섬주섬 시도할 뿐. 가난과 궁함은 다르다. 그렇다고 자발적 가난이 또 다른 종류의 훈장일 필요도 없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저 좋을 대로 살고 있는 양도면의 <자람도서관>과 불은면의 <바람숲그림책도서관> 운영진들을 만났다.



공간을 대여한다, <자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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쎌러킴(이하 쎌) : 도서관 외관이 무슨 가든 분위기다.

자람도서관(이하 자람) : 원래 갈비집이었다더라. 그 다음 세입자가 전통찻집 하려고 싹 고쳤다. 그것도 잘 안 돼서 한동안 빈집이었다. 3, 4년쯤. 이 근처를 지날 때마다 기도했다. 언젠가는 저 자리에 도서관을 세우게 해주셔요. 도서관 자리로 이만한 곳이 없다. 큰길 가깝고. 초등학교, 중학교 사이에 있고. 근처 길상면만 해도 지역아동센터가 두 곳이나 있는데, 유난히 이 지역은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다. 간절히 바라니까 온 우주가 도왔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우여곡절 후에, 드디어 이 장소를 손에 넣었다. 집주인이 안 빌려 주려고 했는데, 한숨 쉬며 그러더라. 댁이 하도 침을 쎄게 발라서, 다른 사람에게 갈래야 갈 수가 없다고.


쎌 : 어쩌다가 도서관을 세우게 해달라는 기도 같은 걸 하게 되었나.

자람 : 워낙 책을 좋아했지만, 나도 도서관을 세우게 될지는 몰랐다. 그림책 관련 모임에서 어린이도서관 탐방을 다녔다. 그러다 <느티나무도서관>을 방문하고 충격 먹었다. 기존의 도서관 틀을 깨는 도서관이었는데, 출입구가 미끄럼틀로 되어 있더라! 애들이 그네 타며 책을 읽는 광경을 보니 도서관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구나 싶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마을 사랑방이었다. 그걸 보면서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창문 깨고 와서 자고 가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 남편에게 포부를 밝히니까 그러더라.


"넌 참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좋겠다."


쎌 : , 칭찬인가?

자람 : 난 칭찬으로 들었는데.


쎌 :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걸 만드나?

자람 : 사실 <느티나무도서관>은 기업후원이 잘 되어 있었다. 관장님이 그럴만한 인맥이 있었던 거다. 그럼 그렇지... 나처럼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불가능 한 건가, 잠시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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쎌 : 그러니까, 아무리 뜻이 좋아도, 기본 자본금이 없으면 말짱 꽝 아닌가.

자람 : 끔찍하게 고되었던 서울 살이를 끝내고 강화도로 이사 온 게 딱 10년이다. 직장도 강화로 옮겼다. 강화로 이주한 후 생활이 많이 안정되었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까 본격적으로 도서관을 세울 에너지가 생기더라. 선생님이셨던 친정아버지와 함께 6개월 동안 준비해서 <자람도서관>을 개관 했다. 책은 지인들에게 기증 받았다.


쎌 : 기억난다. 강화친구 Y씨가 동네에 도서관 생기니까, 책 기증 입소문 좀 내달라고 부탁했던 것 같다.

자람 : 맞다. 양도면 이웃들 도움을 받아 오백 권으로 시작했다. 현재는 만 권이 넘는다.


쎌 : 지금도 계속 책이 늘고 있나?

자람 : 더는 안 받아도 된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 사고가 비슷하다 보니 겹치는 책이 많다. 중복 도서는 주변에 나눠주기도 한다.


쎌 : 책은 그렇다 치고, 운영자금은 어떻게 감당하나?

자람 : 최소 운영비는 <자람>회원들의 후원금으로 가능한데, 문제는 사서 인건비다. 아직은 사비 충당 중이다. 저 친구에게 늘 미안하다. 시나 군청에 인건비 부분 계속 제기 중인데 해결이 안 된다. ‘지들이 하고 싶어서 만들어 놓고, 왜 우리가 인건비를 줘야 하냐?’는 분위기다.


쎌 : 서울시만 해도 문화 사업 관련 지원금이 많은데.

자람 : 강화는 아직 그런 마인드가 아쉽다. 면사무소에 새마을 문고가 있는데, 상근자가 없으니까 활성화가 안 된다. 아무리 작은 도서관이어도 사서가 꼭 있어야 한다.


쎌 : 듣다 보니, 도서관을 설렁설렁 세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자람 : 큰 고민 없이 걍 저질렀다. ‘책 있는 쉼터콘셉트로.


쎌 : 책 있는 쉼터말은 참 좋은데, 애들에게 도서관이 쉼터는커녕 스트레스 아닐까?

자람 : 동의한다. 도서관 한다니까 대번에 동생이 그러더라. 거기 와이파이는 터지냐고.


쎌 : 와이파이가 왜?

자람 : 너님도 옛날사람이라는 증거다. 도서관 오픈하자마자, 애들 첫 질문이 뭐였는지 아냐. "여기 와이파이 돼요?"였다나의 원대한 꿈은 청소년이 와서 뒹굴 거리다 가는 놀이터였다. 이 지역 애들이 버스정류장 앞 인도 턱에 걸터앉아서 수다 떠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거든. 실상을 몰랐던 거지. 중학생들 하교 시간이 7시다. 주중에는 청소년들이 도서관에 올 물리적 여건이 안 된다. 그래도 초반에는 주말에 애들이 와서 라면도 끓여먹고 놀다 가더라. 근자에는 방문 횟수가 점점 줄고 있다. 읍 피씨방 진출객이 늘었거든문화소외지역 아이들이 으로 넓은 세상을 엿보았으면 하는 열망이 있었는데, 1차적으로는 실패했음을 인정한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뼈아프게 느꼈다.


쎌 : 그래도 청소년들이 꽤 들락 달락 하던데.

자람 : 와이파이가 되니까, 또 있다. 봉사점수 기관으로 등록 되어 있거든. 봉사점수 받으려고 오는 애들도 있다.


쎌 : 책 정리 하며 제목이라도 읽으면 그것도 도움 되지 않을까?

자람 : 책 정리 하러 왔던 중딩 중에 추리소설 광이 있었다. 추리소설 많다고 겁나 좋아하더니, 계속 온다.


쎌 :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 같은 거 하면 많이 찾지 않을까?

자람 : 개관하고 한동안은 요리동아리, 청소년 영화동아리 같은 것도 했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문득 애들이 교육프로그램 홍수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사람들이 하는 사교육이 지방에서는 학교 방과후교실이나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진다. 어느 지역 도서관이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만날 수 있는 교육활동이 다 있다. <자람>까지 프로그램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쎌 : 그래도 다른 교육기관과 차별화 된 <자람>만의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을 텐데.

자람 : 그런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강화에 작가들이 많지 않나. 그분들 도움 받아서 그림책 읽기 수업도 꾸렸다. 그런데 이게 맞나 싶더라. 엄마 욕심으로 온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작가님도 애들도 힘들어 했거든그래서 <자람>은 그 흐름에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처음에 구상했던, 어른, 아이 모두 편안하게 수다 떨다 갈 수 있는 책 있는 쉼터에 더 신경 쓰는 중이다. 외국에서는 공간을 공유하는 쪽으로 도서관이 조금씩 바뀌는 움직임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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쎌 : 공간을 공유하는 도서관이라.

자람 : <정토회>법당 마련 위한 장터도 열리고,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벼룩시장도 하고, 품앗이 교육 장소가 되기도 하고, <자람> 후원 회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영화도 상영하고, 인근 중딩들이 일본어 스터디 모임도 하고. 없는 형편에 무리해서 뭔가를 막 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이 동네는 모임 공간이 없으니까 이렇게 장소 대여만 해도 마을 도서관 의미가 충분하지 않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쎌 : 처음 그렸던 도서관 그림과는 많이 달라진 것인가.

자람 : 동네 도서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진 거지.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더라. 고생은 묵묵히 <자람>을 움직이는 분들 몫인데, 정작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받는 상황도 마음이 편치 않다.


여전히 <자람>은 시행착오 중이다. 개인 몇몇의 열정에 의지하는 것 보다는, 결국은 마을공동체가 이끄는 도서관으로 자리 매김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양도면 일대 뜻 있는 분들이 지역 초, , 고등학교와 손을 잡고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를 건설했는데 어쩌다보니 <자람도서관>이 한 축을 담당했다. 사람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정작 부딪혀 보니 공동체는 어렵더라. 공동체는 질 높은 연대’, , 조건 없이 내어주는 각오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럴 그릇이 안 된다. 대신 상처 받지 않으면서도 서로 도움 될 수 있는 요령은 배워가고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나니, 앞으로 도서관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성급해 하지 않고 느긋하게 바라보려 한다. 집주인이 바뀌어서 이사 문제도 겹쳤는데. 정 안되면 시즌제 도서관으로 진행 해볼까 싶기도 하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쎌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한다.

자람 : 인간관계든 일이든 조금이라도 계획에서 벗어나면 즉시 바로잡지 않으면 못 견디는 캐릭터였다. 강화에 와서 보니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상주의자들이 많았다. ‘나의 이상을 성취하려면 타인의 이상과 마찰이 생긴다. 그런데 관계가 어렵다 보니 대개는 피해 버린다. 그래서 강화의 이상주의자들은 점처럼 존재하더라.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나의 이상으로 <자람>을 만들었지만, 함께하는 이들의 바람이 더해지면서, <자람도서관>은 알아서 성장하고 있다. 이 흐름을 나는 지켜 볼 뿐이다. <자람도서관>이 뜻하지 않게 지역 마을교육공동체에 큰 역할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자람도서관> 시즌 1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시즌 2가 어떤 모습이든 <자람>을 아끼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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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그림책으로 힐링하기 <바람숲그림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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쎌러킴(이하 쎌) : 검색해 보니 <바람숲그램책도서관>이 나름 유명하더라. 최지혜관장님이 부평 기적의 도서관초대 관장이기도 하고. 어쩌다가 이 촌구석에 도서관을 열었나? 본래 강화도에 도서관을 개관할 계획이 있었던 것인가?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이하 바람) : 옛날부터 숲속 도서관 만들고 싶어서, 강원도, 진주, 고령 등등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누군가 강화도를 추천해줬다. 눈 오는 날 왔는데 강화가 참 예쁘더라. 때마침 영혼의 파트너인 안나국장이 예전에 몇 달 강화에 산 적이 있었는데 기억이 좋았다고 해서 결정했다. 우리가 땅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외딴 곳 작은집을 사서 두 배로 증축 했다. 너무 외져서 누가 올까 싶었는데, 또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꾸역꾸역 찾아온다.


쎌 : 가장 궁금한 건, ‘대체 무슨 돈으로..?’.

바람 : 책을 파는 곳도 아니고, 따로 수익사업이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에 놓고 준비했다. 감당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다 보니, 공간이 좀 작긴 하다. 2월이면 개관 3주년인데, 아직은 관장님 사비로 충당하는 형편이다.


쎌 : 지자체나 문체부 지원 사업 같은 것은 안 받는가?

바람 : 공공도서관 관장 할 때부터, 관의 간섭 안 받고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도서관을 꿈꿨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막상 자유를 얻고 나니 장난 아니더라. 도서관 운영은 알지만, 경영이라는 것을 해 봤어야지. 유지비의 벽에 부딪혔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건물 허가라든지, 예상치 못한 지출이라든지, 맨땅에 헤딩할 때 서러움을 톡톡히 맛봤다. 익숙한 룰을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쎌 : 그렇다면 문화선진국은 사설도서관이 어떻게 유지되는가?

바람 : 나라마다 다르다. 프랑스의 경우는 사설도서관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국공립 도서관이 많다. 집 가까운 곳에서 항상 책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잘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도서관이 있긴 한데, 클럽처럼 회원들의 회비로 보충한다. 서가는 국공립 도서관에서 단체 대출 받아 채우더라.


쎌 : 그렇다면 사설 도서관 만든 이유는, 여전히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이 부족해서인가?

바람 : 20년 전 기적의 도서관운동할 때만 해도 그랬다. 이제는 천 개가 넘는다. 공공도서관이 잘 활성화 되어 있고 자료도 많고. 선진국 수준으로 도서관이 건설 되지 않았나 싶다. <바람숲>을 세운 것은 온전히 간섭 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개인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이 도서관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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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쎌 : 재정적으로 힘들다는 느낌이 없다. 두 분 다 표정이 밝다.

바람 : 요사이 잘 놀다 와서 그런다. 얼마 전 라오스 다녀왔다. 인생 목표가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둘 다 여행을 몹시 좋아한다. 이용자들이 안다. 이 집은 여름과 겨울에 한 번씩 문을 길게 닫는 걸. 그걸 우리는 여름 소풍, 겨울 소풍이라고 한다. 이번에 라오스 여행 하면서 루앙프라방 근처 학교 교실 하나를 비워 도서실을 만들어 줬다.


쎌 : 라오스 어린이를 위해 도서관을 지어준 것인가?

바람 : 처음이라서 도서관은 못 지었다. 다음번 방문에는 세워 주고 싶다. 라오스는 책이 많지 않다. 라오스에서 어린이 책을 다 샀는데 340권이더라. 우리나라 책 중에서 글씨 없는 그림책도 잔뜩 가지고 가서 책장에 채워줬다. 도서실에 벽화도 그려주고. 하드커버 책을 난생 처음 본 아이들이 정말 기뻐했다. 주민 전체가 고마워 하니 되게 감동이더라.


쎌 : 솔까, 나도 자녀를 키우지만, 우리나라 애들은 책 선물 안 좋아하는데.

바람 : 집에 책이 넘쳐서 그런다. 라오스는 책이 귀해서, 아이들이 책을 진짜 좋아하더라. 내년에도 두 곳 더 세워줄 예정이다. 이렇게 의미 있는 여행을 통해 앞으로 또 일 년을 버틸 에너지를 얻었다.


쎌 : 어린이도서관도 아니고, 굳이 그림책도서관인 이유는?

바람 : 그림책을 좋아하니까. 문헌정보학을 전공으로 선택해서 도서관에서 일 할 정도면 나도 제법 책을 좋아하는 편일 텐데, 어느날 깨달았다. 글씨 많은 책은 잠도 잘 온다는 것을그러다가 30대에 어린이 도서관에서 근무 하게 되었는데, 어린이책이 재미나더라. 특히 그림책! 그림책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과 같은 감동을 준다. 그림책은 어린이들만 읽는다는 편견은 버려라. 그림책은 어른들이 읽으면 감동이 더 크다.


쎌 : 나 역시 남들 사는 그림책은 다 구입하는 극성맘이다. 무슨 무슨 상 받았거나, 몇몇 인기 작가 그림책은 집집마다 다 있다.

바람 :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 같다.


쎌 : 대한민국 종특인가?

바람 : 각각 좋아하는 그림책 선택 기준이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겠지만, 저 집에 있으니까 나도 사야지, 이건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1가책읽기에 선정된 도서는 엄청 뜬다. 작가들도 메이저 출판사에서 책이 출간 되어야 수준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알게 모르게 있다. 부모들에게 엄청 인기인 모 외국작가가 있다. 어른들이 오랫동안 그림책 안 읽다가 모처럼 감동을 받은 거지. 그런데 정작 그 책을 애들은 별로 안 좋아한다. 그냥 엄마 아빠가 좋아한다니까 좋은가부다 하는 거다.


쎌 : 우리집 애들도 그 작가 책 보면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 책이다."이런다.

바람 : 아이들도 성향 따라 좋아하는 그림책이 다르다. 남들 다 읽는 책 읽히는 것은 우리애를 다른 애랑 똑같이 키우는 거다. 가끔 그림책 모임에서 책 선정 기준을 묻는데, 그런 거 없다. 그때 그때 땡기는 것을 진열한다. 방문한 애들이 막 섞어 놓기도 하고. 도서 목록도 획일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가급적 만들지 않는다.


쎌 : 책읽기도 하나의 스펙이 되어버렸다. 어떤 책 읽었느냐를 확인하는 시대니까.

바람 : 오늘 온 한 어머님도, 3시간 내내 애에게 책을 읽어 주더라. 정성이 갸륵하긴 한데, 궁금한 거지. 과연 저 애는 재미있었을까?


쎌 : 대형서점 어린이책 코너에 가보면 가끔 구연동화 하는 어머님들이 계신다.

바람 : 우리 도서관이 좀 까칠한 편이다. 구연동화처럼 읽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곳만큼은 어머님들이 안 그랬으면 좋겠다. 집 안에서 구연동화든 뭘 하든 상관없는데, 그걸 꼭 공공장소에서 해야 하나? 특히 영어 좀 하는 엄마들은 꼭 영어그림책을 혀 굴리며 읽어준다. 그럴 때는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한다.


쎌 : 용기가 대단하다.

바람 : 공공도서관에서 그랬다가는 바로 청와대 민원 들어가겠지만, 여긴 개인 도서관이니까, 내 맘대로 한다. 우리 도서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만 왔으면 한다. 굳이 이 멀리까지 와서 서로 스트레스 받을 필요 있나. 여기는 문화를 즐기는 곳이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책 읽는 풍경을 보여주라는 거다. 가끔 키즈카페 온 것으로 착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애들에게는 책 읽으라고 하고, 본인들은 커피 마시면서 수다를 떤다. 책에 대한 기본 예의 모르는 부모들에게는 주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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쎌 : 우리 애들 책 읽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산만한 편인데, 데려와도 될랑가 모르겠다.

바람 : 밖에서 놀다가, 책 한 권 읽고 가는 애들 많다. 괜찮다. 달랑 한 권만 읽고 가도 된다. 책도 좋아야 읽는 거다. 또 책 좀 안 읽으면 어떤가. 평생 글을 읽어 본 적 없지만, 삶의 지혜가 풍부한 어르신도 계시지 않나. 그런 면에서는 도서관 운동, 도서 교육이 중요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맞을까 의문은 있다. 다만 여기 온 아이들이 누워서 뒹굴 거리다 가더라도, 왜 때문에, 저들은 저리 신나게 책을 읽을까, 궁금하면 될 것 같다. 한 권이라도 책 속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바람숲>이란 이름도, 바람이 솔솔 부는 숲속에서 책하고 자연을 온전히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것이다.


쎌 : 진입로부터 공기 흐름이 다르긴 하다.

바람 : 바깥에서는 천둥번개 쳐도 이 안은 평온하고 잔잔한 공기가 흘렀으면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 최근에는 주말에 이용객 너무 많아서, 예약제로 바꿨다. 욕 많이 먹었다. 도서관이 무슨 예약제냐고. 유난 떤다고 하는 분도 계셨다. 공간이 작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시장통처럼 사람들이 바글 바글 했던 날에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우리 둘이 밖에 나가 있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예약제를 결정했다. 적어도 같은 시간대에 세 가족 미만일 수 있도록 조정하고 있다. 그래야 오는 분들이 서로 서로 행복할 수 있다.


쎌 : 이곳에 와서 보니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그림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른들도 그림책을 많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바람 : 근래에는 그림책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울려 있는. 0세부터 100세까지 읽는 책이 바로 그림책이다. 한 달에 두 번씩 요양원 어르신들에게 그림책 읽어드리는 봉사를 하고 있는데, 인기짱이다. 글은 입말로 하니까, 그림 보려고 아우성이다. 어르신들께는 새로운 문화충격이랄까애들이나 읽을 책을, 누가 읽어 주는 것도 특이한데, 심지어 감동인 거지가끔 <바람숲>을 방문한 엄마들에게 그림책 읽어 줄 때가 있다. 그러면 가끔 엄마들이 눈물을 글썽인다. 그림책을 읽어주면 어른들도 그림책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다.


쎌 : 어르신들이 읽을 만한 그림책 한 권 추천 부탁한다.

바람 : 그림책은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편견 가득한 어르신들은 어렵고 추상적인 내용이 담긴 걸로 건네는 것도 방법이다시아버지 생신 때 '세상에서 가장 힘쎈 수탉'이란 책을 돈봉투넣어서 선물한 적 있다.


쎌 : 돈봉투!

바람 : 돈봉투 없이 책만 덜렁 드리면 대단한 실례지. 여하튼 전형적인 경상도 싸나이 시아버지께서 뭐 이런 애들 책을 줬냐.’며 그 안의 봉투만 챙기시더니, 나중에 읽으신 모양이더라. 뜬금없이 이 책 참 짠하더라.’고 말씀 하셨다. 그 후에는 당신 서재에서 한 번씩 꺼내 읽으시더라. 안나국장 언니 결혼할 때, PPT로 결혼식장에서 흰토끼와 검은토끼를 읽어줬는데, 프로포즈에 딱인 그림책이다. 썸 탈 때 상대방에게 읽어주면 바로 그린라이트다.


쎌 : 마지막으로 한 말씀

바람 : 우리도서관 좋아하는 몇몇 애들이 있는데, 걔 들은 원체 책 안보고 양껏 우리랑 놀았던 애들이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꼬박 와서 알아서 책 읽다 간다. 누구도 책을 강요한 사람이 없다. 처음에 딱 한마디만 했다. ‘얘야, 끌리는 그림책 한 권만 보고 가렴.’ 읽어 주지도 않았다. 그 애들 중 한명이 글짓기 시간에 '바람숲 그림책 도서관은 천국이라는 시를 썼다. 그림책은 한 권 읽는데 10분도 안 걸린다. 그러니까 글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흥미를 갖는다. 온 가족이 와서 그림책 한 권이라도 편하게 보며 힐링 하도록 이 자리를 오래오래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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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