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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실시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후, 영국 정부는 국민의 결정에 따라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난 7개월간 영국 정부는 교육 및 연구기관 그리고 ‘싱크탱크’(thinktank) 등에 주문하여 각종 조사를 진행해 왔다. 영국 의회도 이 문제를 놓고 긴 시간 토론을 하기도 했다. 특히, PMQ(Prime Minister’s Questions: 매주 수요일마다 하는 국정운영토론 방송으로, 전 국민에게 생중계됨)에서는 여야 대표들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국민투표 후 여러 검증의 과정이 지나고 반년이 조금 넘은 지난 1월17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랑카스터 하우스에서 외교관들을 만나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를 선언하며 영국의 새로운 통상·외교전략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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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브렉시트’(Soft Brexit)냐 ‘하드브렉시트’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선 지 6개월만에 영국 정부가 ‘하드 브렉시트’로 결정을 지은 것이다. ‘소프트’와 ‘하드’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이민자 수용 문제이고, 두 번째는 유럽 단일 시장 유지와 관련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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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은 탈퇴하되 '제한적'으로 이민자를 통제하고 유럽단일시장권은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이다. 반대로, ‘하드 브렉시트’는 이민자도 '완전히' 통제하고 유럽단일시장권에서도 '빠지겠다'는 것. 여러가지 변수들이 많이 있지만 단순하게 결론을 내린다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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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링크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이번 하드 브렉시트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고 평가받는다. 국민투표를 통해 기정사실화 된 사안을 정부가 동의 반복한 셈이라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스스로 내뱉은 정책들에 대해 국민들이 투표로 결정을 해주었고, 때문에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필자는 메이 총리의 이번 선언이 단순히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손익 계산을 넘어선, 글로벌 리더로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연설을 통해 “We are leaving the European Union, but we are NOT leaving Europe.”라는 말로 포문을 연 뒤, 유럽과 영국의 새로운 관계, ‘New equal partnership’이라는 독창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유럽연합에서는 탈퇴를 하지만 여전히 유럽’이라는 의제를 걸어놓고 그 안에서 누가 주도를 하고 따르는 관계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김남국 박사는,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질서’라는 칼럼을 통해 향후 영국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날카로운 분석으로  쏟아내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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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메이 총리가 제시한 ‘파트너쉽’은 또 다른 형식의 이념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런데, 영국이 이러한 세계 질서의 선두주자로 자리 매김을 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영국은 이러한 시류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을 거슬러 1534년, 당시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는 로마교황청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그리고  수장령을 내려 로마교황청에 의해 집행되어 왔던 영국 내의 행정권을 영국국교회에 포함시켰다. 영국교회의 모든 권한은 영국 국왕에게 있음을 선포한 것이다.


당시 로마천주교회는 전 유럽을 통합하고 있던 정치·종교의 결정체였다. ‘수장령’은 당시만 해도 작은 섬나라 였던 영국의 국왕이 유럽대륙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 교황에게 도전장을 내민 사건이다. 잉글랜드 왕의 법률 보좌관이었던 ‘토마스 모어’는 영국의 이와 같은 결정은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평할 만큼, 당시 영국의 결정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물론, 수장령 자체는 헨리8세가 자신의 여성편력 때문에 만들어낸 ‘미친 짓’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대의 영국인들에게 헨리8세는 자신들의 고고한(?) 정체성과 자부심을 드러내 주었던 위대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수장령 외에도 역사 속에서 영국은 대륙과는 다른 입장을 취해왔다. ‘마그나 카르타’부터 17세기 ‘청교도 혁명’, ‘명예혁명’(권리장전) 등만 보더라도 영국은 종교와 정치에 있어서 유럽 대륙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즈라는 경제학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영국은 세계 최초로 복지국가를 탄생시켰다. 석유파동 이후에는 대처리즘을 통해 신자유주의 모델을 만들어 세계 정치·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21세기의 영국은 선박의 키를 돌리듯, 또 한번 유럽의 다수가 가는 방향을 등지고 ‘프론티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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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왜 이와 같이 끊임없는 모험과 도전정신을 발휘해 내는 걸까. 역사속에서도 등장하듯 반복적으로 세계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원인은 영국이 오래전부터 고수하고 있던 자신들만의 외교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Critical Engagement’다. 뭔가 복잡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사실, 내용은 간단하게 요약이 가능하다.


‘한 발짝 앞서가는 외교’ 


2차 세계대전으로 많은 것을 잃었던 영국은,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이 겪을 피해와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문제 자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국 외교전략은 영국의 주요 진보언론 중 하나인 ‘가디언’(The Guardian)에 자세히 보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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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북한과 영국과의 관계이다. 영국은 현재, 평양에 대사관을 두어 외교관을 파견하고 있다. 물론 통제 속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부 관계자와 만나 지속적으로 협상을 체결하고 인력을 파견하여 정보를 취득한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문화 개혁을 꿈꾸며 공식적으로 BBC라디오 송출을 시작할 예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북한과의 긴밀한 관계 유지를 통해서 혹시나 발생될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한다.


그렇다. 외교란, 단순히 다른 나라와 관계를 유지하고 정보를 얻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 맞는 원리와 원칙을 통해 적합하고 유연한 모델을 제시해 나가야 한다. ‘하드 브렉시트’를 선언한 영국 총리의 연설을 보면서 새로운 글로벌 리더로 발돋움을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저들이 걱정도 됐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러웠다.


잠시 방향을 돌려,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보자.


한국의 외교부.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 하지만, 여전히 국제적으로는 영향력이 미비하다. 북한과 일본과의 문제로 여전히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된 위안부 문제만 하더라고, 한국의 외교부가 어느 나라를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는 평가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입신양명’이라는 가치관이 뚜렷하여 국익보다는 개인의 성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외교관 개개인에게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개혁과 국가의 미래를 향한 계획보다는 출세를 위해 자리에 연연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종종 외교관들을 상대하면서 자주 듣던 말이 있었다.


“본부에서 내려오지 않는 안건을 관철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키지 않은 짓 하다가 괜히 고생만 한다는 뉘앙스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에는 ‘군대 문화’가 있다. 군대에 가면 선임들이 가장 먼저 알려주는 생활 원칙이 두 가지가 있다. “튀지 말고 중간만 해라” 그리고 “지시한 일만 하라”.


이러한 원리에 딱 들어맞게 운영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키지 않으면 할 필요 없다’는 마인드가 결국 생각의 자율성을 파괴한다. 한국의 조직문화를 보면 뭔가 바쁘게 돌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생산성과 독창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 새로운 정책을 모색하면, 모든 일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한때, 대사관에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외교관이 있었다.  대사관에 부임한 3년 남짓의 기간 동안 주말도 없이 늦게까지 야근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 잘하면 결국 ‘몰빵’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가 그렇게 고생하면서 일하겠는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가닥이 잡힐 지는 미지수이나, 지금까지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질긴 생명력을 가져왔던 것처럼 영국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다시 한 번 세계적인 리더로 우뚝 설 것이라 예상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아주 오래전부터 유럽연합 탈퇴를 대비해 약 £2500억 (한화 약 400조)에 가까운 예산을 준비해 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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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내다보고, 철저히 대비하는 ‘Critical Engagement’ 라는 외교 전략이 지금의 영국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영국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될 수 없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발 앞서는 전략은 배워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


번외로, ‘조그마한 섬 나라가 왜 그리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걸까?’라는 물음을 가지실 분들을 위해 제공한다. 영국에 직간접적으로 속해 있는 나라들. 한 번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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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155013056794418&set=a.10150138649419418.342990.788059417&type=3&theater


제국주의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제국주의 이후의 영국의 처신은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식민지를 구축했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랐다는 것이 골자다. 제국주의가 막을 내리고, 수많은 국가들이 피지배국들의 저항에 못 이겨 독립과 동시에 남남이 되었지만, 영국은 식민지배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국가관을 형성해 나갔다. (영국에서는 IOC에서 주최하는 올림픽보다 ‘Commonwealth Game’s가 시청률이 더 높고 인기가 많다.)


여전히 서로 논쟁하고 비판도 하고 지지고 볶기도 하지만. 그 기저에도 역시 영국의 ‘Critical engagement’ 외교 전략이 있다. 시대가 변하고 세계질서가 변화함에 따라, 상대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 예상되는 대안책을 제시하며 관계를 진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상대국과의 유대관계를 갖고 동시에, 자국에 이익이 되는 외교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는 것이다. 영향력이 클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BRYAN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