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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민망하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국민학교 1학년, 그러니까 지금처럼 매우 총명해서 앉아만 있어도 눈에서 빛이 나던 1학년 시절, 발표를 하려고 남들보다 조금 늦게 손을 들면 담임선생님은 그랬다. "너는 왜 뒷북이냐." 범인(凡人)이던 친구들을 배려해 먼저 발표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던 것을 몰라주는 담임이란, 훗. 아무튼 오늘까지도 40명 가까운 친구들 앞에서 들었던 "너는 왜 뒷북이냐."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참 쪽팔린 순간이었다.

 

그날을 기준으로 20년도 더 지난 오늘, 나는 다시 뒷북을 쳐야 한다. 2017년 1월 중순이 지난 이 시점에 이제 와서 굳이 쓰는 딴지마켓 결산 기사. 2016년 연말에 딴지일보를 수놓았던 [2016결산] 기사들, 그 막차를 이제야 타다니. 지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진정한 새해를 맞으려면 지난해 정산은 해야 하는 법. 한 해가 지나 뇌세포가 조금 더 죽었으니 기억이 작년보다 더 빠르게 사라져 갈 테다. 내 기억에 있는 것들이 몽땅 사라져 버리기 전에 정산을 하는 게 좋겠다. 판은 벌어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40명보다 훨씬 더 많은 독자들 앞에서 신명 나게 뒷북 플레잉을 시작한다.

 


꽃 피는 춘삼월, 딴지마켓 극딜관 그랜드 오픈(을 하였으나)

- 우리도 잘 될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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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딜관 오픈 당시 공지

 

저 공지를 보라. 흡사 나이트클럽의 호객 의지가 보이지 않는가?

충정로 벙커1 시대를 개막하며 딴지마켓은 야심 차게 극딜이란 것을 준비했었다. 한정된 수량을 대폭 할인해서 불시에 판매하는 것. 안 그래도 은하계 최저가를 지향하는데 이런 범 우주적인 최저가라면 너무 장사가 잘 되는 건 아닐까, 우리 서버 먹통 되면 어쩌지, 우리 전화 불나면 어쩌지 꺄르르르 등등의 설렘을 한 수저씩 마구 퍼먹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퍼먹고 있는 게 김칫국인지는 몰랐다.

 

사람들이 마구마구 반겨줄 줄 알았던 극딜관 앞에 일렬로 쫙 서서 손님맞이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손님들은 놀랍도록 관심이 없었고 딴지마켓은 만덕산에서 내려온 손학규 전 대표처럼 외로워졌다. 몇 가지 상품을 판매하다가 지난해 12월쯤 극딜관 슬며시 영업을 종료했으나 여태까지 왜 극딜관이 없어졌는지 묻는 손님이 없어 극딜관은 딴지마켓에서 일종의 금지어가 되기에 이르렀다. 일부 마켓 요원은 극딜관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고 전해진다.

 

 

사랑의 7시간

- 극한 직업, 소비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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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일곱시간 공지


 

벙커1 이사가 두 달 가까이 계속되었음은 아는 사람만 아는 딴지그룹 극비 사항이다. 게다가 지하 생활을 하던 딴지그룹 가족들은 시도 때도 없이 따라다니는 햇빛에 적응하느라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원래 집안 경사가 있으면 절로 파티를 열고 싶어 지는 법. 먹이를 옮기는 개미들처럼 원스텝 투스텝 열심히 짐을 나르고 옮긴 지 두 달만에 본 그룹은 성대한 집들이 파티, 사랑의 7시간을 열기에 이른다. 1층과 딴지그룹이 사무실로 이용하는 2층, 그리고 막 공사가 끝난  알았지만 안 끝났던 3층까지 개방하기 위해 마켓팀은 전날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또 하나의 가)족같은 회사생활을 맛봤다고 전해진다.

 

미세먼지가 심각했던 날이라 극딜관처럼 우리만의 잔치가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스탠딩 파티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손님들이 벙커1을 방문해 자리를 빛냈다. 좀 더 편한 방법을 강구하다 마련한 일괄 결제 방식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계산하기가 제일 힘든 사랑의 7시간: 극한 직업, 소비자 편'이었지만, 긴 기다림에도 모두가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감동의 도가니를 자아냈다. 물론 눈으로 욕하는 손님들이 있었겠지만, 알아서 눈 피하기의 달인인 딴지그룹 누구도 그런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4월 24일, 7시간을 마무리 한 딴지그룹에게는 활자로만 보던 '하얗게 불태웠다'라는 표현을 온몸으로 체험한 하루이자 정말로 많은 사랑을 받아 마음과 금고가 따뜻했던 날로 남았다.

 

 

ㅎㄷㅎㄷ관

- 뜻밖의 꽃길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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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ㄷㅎㄷ관 오픈 당시 전단지


 

극딜관 폭망 이후 심리적으로 쭈구리가 된 딴지마켓에는 회의주의자들만 넘쳐나고 있었다. 새로운 기획을 할 용기는커녕 손 끝에 이는 에어컨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그때,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와 텐가를 비추었다. 성인인증도 해야 하는데 이거 누가 사겠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 생각하면서도 속는 셈 치고 한번 열어본 ㅎㄷㅎㄷ관(헛둘헛둘이라고 읽습니다)이었다.

 

기대 없이 열었던 ㅎㄷㅎㄷ관은 국민통합을 현빈만큼 좋아하시는 듯한 그분께서도 평생 하지 못한 국민 대통합을 하루 만에 이루어냈으니,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글의 90% 이상이 ㅎㄷㅎㄷ관으로 도배되는 장관이 펼쳐졌다. 딴게이들 사이에는 하루 만에 2만 3천 개가 팔렸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실제 판매량이 그 정도에 미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ㅎㄷㅎㄷ관 오픈으로 인해 딴지마켓에는 정작 춘삼월엔 못 걸었던 뜻밖의 꽃길이 펼쳐진 것만은 분명했다.

 

 

기획전이 나타났다

- 흑역사의 재림인가 새로운 신화의 탄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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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간의 무관심 속에 진행중인 기획전


 

요즘은 너도 나도 기획을 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길래 딴지마켓도 기획이라는 걸 해보았다. 마켓에서 판매 중인 상품을 골라 새롭게 소개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기획전이 생긴 장소다. 동네에 다니다 보면 유독 장사가 안 되는 장소가 있다. 자꾸 뭔가 생겼다 없어지는 그런 장소. 지금 기획전이 들어선 곳은 극딜관이 생겼다가 뜨거운 무관심 속에 사라져 간 그 자리다. 하필이면 딴지마켓 흑역사인 극딜관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기획전이라 마켓팀이 흰머리 날 정도로 걱정 중이라고 한다. 딴지마켓 공식 장사 안 되는 곳의 전설이 이번에도 이어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음, 귀추가 좀 주목됐으면 좋겠다. 진짜. 관심 좀.

 

 

장사랑과 쇼앤침대의 대란

- 자고 싸는 게 중한 와중에 술 끊을 수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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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흡사 장사랑 부흥회라 말하고 싶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검출된 치약이 보도됐을 때 파인프라 치약이 불나게 팔렸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지난해 딴지마켓을 꾸준히 휩쓴 아이템은 쇼앤침대와 장사랑이었다. 2016년부터 판매를 시작했음에도 한 달에 침대를 100대씩 마구 판매해버린 쇼앤침대, 숨어있던 장트러블러들을 죄다 구매후기 작성으로 이끈듯한 장사랑의 위력은 2016년 한 해동안 자고 싸는 문제가 현대인에게 얼마나 중대한 화두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와중에 숙취해소제 술술풀리고가 대박 났다는 사실을 보태면 2016년은 모두 자고 싸는 게 힘들면서도 술을 끊을 수 없는 한 해 정도로 요약 가능하겠다. 2016년에 술 권하고 잠 못 들게 하던 것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지만, 병신년은 가고 새해가 왔으니 특검이 착착 해결해주길 조금 기다려보자.

 


 

굳이 이슈로 정리하지 않았지만, 사실 2016년 딴지마켓에는 신상품이 굉장히 많아졌다. 늘어난 이용자 수만큼 갖춰야지 싶어 특히 반년 정도는 마켓팀이 내달렸다. 돌아보건대, 사랑의 7시간 못지않게 불태워본 시간들이다. 덕분에 딴지마켓 덩치가 조금은 커졌다.

 

새해에는 이렇게까지 내달리지 않는다. 대신 작년에 키운 덩치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대학로에서 충정로로 이사오던 때처럼 원스텝 투스텝 느리게 내실을 다지는 한 해를 보낼 계획이다. 딴지일보 편집부에서 생겨났지만, 덩치가 커진 만큼 마켓팀이 이제 슬슬 독립적인 행보를 이어갈 것이다. 최근 딴지마켓 페이스북(링크)을 만들었고 마켓 자체 영상 콘텐츠를 기획 중이다. 기획전도 그런 과정의 하나다.

 

새로운 장면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신우일신 반기문 선생처럼 마켓도 새롭게 거듭나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단 하나, 그룹의 유구한 전통만은 계속된다.

 

예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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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딴지 편집부 점심시간 사진입니다. 마켓 입점 상품을 주문해 점심을 대신하며 다 같이 검증 중입니다.

 

 

이런 가내수공업 검증 방식은 새해에도 쭉 계속된다. 검증은 딴지마켓의 영혼이다.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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