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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무리를 하러 나는 항상 도쿄에 간다. 코미케라는 세계 최대의 서브컬쳐 헬게이트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수많은 동인지와 코스프레 플레이어들, 공식&비공식 굿즈들이 모여있는 그야말로 덕후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이벤트이다. 하루 참가인원이 20만명을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가끔 유명인도 볼 수 있는데 이번엔 한국에서도 유명한 니시노 쇼와 츠나마요씨를 뵙고 올 수 있었다. 코미케에서 돌아오는 길은 수많은 동인지로 인해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종이라는 게 엄청 무거운 물건이란 걸 새삼 느꼈다).


그리고 이 날, 치바현 마쿠하리에서는 카운트다운 재팬이라는 락페스티벌이 열렸다. 여기도 하루 4만 5천명이 모이는 큰 이벤트로 일본 내의 인기 락밴드들이 총출동한다. 이벤트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공연은 1월 1일 새벽 5시까지 공연을 하는데 자정 시간, 메인스테이지에서 새해의 카운트다운을 하는 밴드는 그 시기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16/17공연에서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음악과 주제가를 담당한 Radwimps가 그 무대에 서게 되었고 나의 2017년은 전전전세(original ver.)의 떼창과 함께 시작되었다(난 당당하게 콘서트 장에서 따라 불렀다. 극장에서 따라 부른 적은 없다. 난 혼모노 아니다).


이렇게 덕후스러운 2016년을 마무리하고 1월 1일 아침,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내 가방안에는 당연하게도 ‘그것’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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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바로 '텐가'였다

(혹시나 구입처(링크)입니다)



아무래도 일본 상품인 만큼 한국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일본에 갈 때면 항상 주변에 선물할 겸 해서 텐가를 여러 개 사오고 있다.


(팁을 드리자면 파는 곳 마다 가격이 제각각이다. 예전에 확인해 본 결과, 기본형인 딥 스롯 컵 기준, 외국인이 많이 오는 돈키호테는 780엔, 아키하바라 구석에 있는 에로게임 전문점 카미후센에선 444엔에 팔고 있었다.)


이번 여정에서도 아키하바라에서 플립 제로와 신제품인 MOOVA, 선물로 돌릴 컵 시리즈 6개를 사들고 오는 길이었다. 평소엔 급하지 않으면 무조건 전철을 이용하지만 당일 감기기운이 있던 나는 수화물이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오고 있는 내 가방에 이상한 노란색 자물쇠가 붙어있었고 순간 감기기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오싹함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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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방안에는 텐가 이외에 나의 심연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엄청난 수의 성인물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참고로 저는 성인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성인이지요).

 

‘아... 아직 펼쳐 보지도 못 한 작품들이 한 가득인데...’


내 짐에 태그가 달려있는 걸 본 세관원은 날 검사대로 안내했고 하필이면 검사대에서 나를 담당하게 된 세관원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귀여운 외모의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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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X칸 사건 당시 뉴스데스크 보도 캡처>


몇 년 전 모X칸 사건으로 경찰서에 조서 쓰러 가서 30대 남성형사에게 나의 이상성욕, 아니 심연을 싸그리 공개 했을 때도 쪽팔려 죽을 거 같았는데... 아무리 내가 도엠(ドM, 진성 마조)이라도 이런 공개수치 플레이는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여성세관원은 모니터를 잠시 보더니 난감하단 표정을 지으며 “ㅇㅇ님~(정확한 직급이 생각안남) 제가 성인용품은 해 본 적이 없어서...”라며 나이 지긋하신 다른 세관원에게 헬프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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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노란색 태그가 붙어있었다. 사진출처: 관세청 블로그>


순간 ‘성인용품’이란 단어에 반응한 나는 ‘아, 노란색 태그가 달린 이유는 텐가 때문이었구나... 최대한 짐 내용을 안보이게 하고 텐가는 포기해야겠다.’ 라는 계획을 세웠다.


한편으론 ‘그런데 왜 텐가가 통관에 걸리는 거지? 이때까지 한 번도 문제된 적이 없었는데? 판례상 통과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일단 당시엔 그 자리를 빨리 뜨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기로 판단했다.


남성세관원은 나에게 “성인용품 사온 거 있어요?” 라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니 전부 꺼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행히 진짜 보물들은 옷가지에 가려져 표지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텐가를 꺼냈다. 그 과정에서 속옷이 끌려나와 옆에 여성 세관원도 보게 되었지만 내 이상성욕, 아니 심연이 공개 될 위기에서 이 정도 수치 플레이야 가벼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이거 참 서로에게 할 짓이 못 되네’라는 감상이 들었다.


나는 이 것 말곤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어? 이거 제가 알기론 통과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거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판매되는 건데...”라고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세관원 아저씨는 "개인이 쓸 거 한 두개는 통과시켜 줄 수 있는데 나머지는 안 된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음란물이다." 라고 하였고 속으론 ‘잠시만요. 텐가가 미풍양속을 해치다뇨? 선생님 우리 잠시 토론을 나눠 볼까요?’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미풍양속을 완벽하게 해칠 수 있는 물건을 아주 많이 소지하고 있었던 나는 “아~ 그렇군요. ㅎㅎ 이게 문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네요”라며 깔끔하게 포기를 선언했다.


그 남성세관원은 약간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는지 텐가 컵 두 개를 다시 나한테 챙겨주며 "이건 가지고 가도 됩니다." 라고 말했고 “이거 말고 비싼 걸로 가져가면 안되나요?”하니 아~ 그렇게 하라면서 "어떤 게 비싼 모델이예요?" 하며 내가 가리키는 모델로 바꿔 주었다.


그러면서도 텐가를 처음 보셨는지 “근데 이건 대체 어떻게 쓰는 거예요?”라고 물으셨고 내가 포장까지 뜯어 친절하게 설명해주니 재밌는 걸 봤다는 듯이 껄껄 웃으시면서 “젊은이들한테는 이거 필요하겠네, 흠 그냥 하나 더 가져가요”하며 텐가 컵 하나를 더 챙겨주었다.


이후 남성세관원은 자리로 돌아가고 여성세관원이 여권을 달라고 한 후, 서류를 프린트해서 오더니 표시한 곳에 싸인을 하라고 했다. 나는 순순히 싸인을 한 후 다시 짐 정리를 하는데 마지막까지 진짜 보물들을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짐을 챙겼다. 짐을 챙기는 도중 여성세관원이 속옷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가르쳐주었는데 다시 한번 참, 서로에서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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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류를 떼어준다>


결국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됐고 택시를 타려던 나는 왠지 빼앗긴 텐가의 금액이 아까워져 전철을 탔고 집에 도착한 후 감기가 심해져 3일 밤낮을 앓아누워야 했다.


공항에서 텐가를 빼앗겼다는 것을 안 친구들은 친구가 험한 꼴을 당했다는 기쁨보다 사실상 자신들의 선물이 빼앗겼다는 사실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시했고 몇몇은 제2대 텐익점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참고로 몇달 전 인천공항 세관에서 오나홀을 걸렸다는 디씨인의 글이 퍼진 적이 있었는데 참고로 그 오나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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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니아나 DX 모델>


내부가 이런 구조로 되어있다. 세관에서 인공 골격을 보고 검사를 한 건지 성인용품이라 판단해 검사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디씨인의 오나홀은 압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디씨인의 글에서도 세관에서 한 두개는 통과 된다고 했다는 걸 보니 이번 일은 반입 수량의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2013년 관세청에선 텐가 플립홀 모델을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 판단해 통관보류처분한 건에 대해 “풍속을 해치는 기타 이에 준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취소 처분한 선례가 있으며 2008년엔 여성용 자위기구가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수입통관을 보류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한 인천지방법원 2007구합5725 같은 판례(참고로 이 재판의 원고 측이 딴지에서 텐가 팔고 있는 그 업체다)들도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해외에서 성인용품을 사올 계획이 있는 분들은 이런 사실을 숙지하고 가기로 하자.


오나홀을 빼앗긴 유명사건 중에 “히토츠 히토츠”란 명대사로 알려진 엠팍의 ‘텐익점’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 같은 경우는 국내 반입하다 압수 당한게 아니라 일본 공항에서 비행기 내 반입금지물품에 걸려 압수당한 케이스이다. 1회용인 텐가 컵 시리즈 같은 경우 제품 안에 미리 젤이 도포되어 있어 X검사때 액체 및 젤류로 판단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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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공항에서 빼앗긴 오나홀 모델>


그렇다고 해서 젤이 도포되지 않은 모델이라고 안심하면 안 된다. 필자가 나리타 공항에서 기내반입물 검사 중 오나홀을 압수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압수당한 모델은 KMP 오니페라 홀 미즈나 레이 모델로 공항직원에게 제품을 직접 꺼내어 보여주면서 액체가 아닌 고체임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끝내 압수당하고 말았다. 뜯지도 않은 새제품이라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러니 오나홀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땐 꼭 위탁수화물로 붙이도록 하자! (압수당한 오나홀은 이후 같은 제품으로 다시 구입했으며 미즈나 레이 본인과 만나 위로받았습니다)






마사오닷컴 미래전략실장

미노루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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