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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3. 수요일

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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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매 맞은 여자


강남대로로 이어진 좁은 골목에 사무실과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일대의 유동인구는 하루에 100만에 가까웠으니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로 거리가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파가 반으로 갈라졌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가르듯 한 남자가 여자의 머리채를 쥐고 수많은 행인을 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눈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중년의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앞장 서 걸었고 여자는 앓는 소리를 내며 비틀대며 끌려왔다. 남자와 여자 모두 옷차림이 허술했다. 와이캐피탈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상가 앞에서 남자가 여자를 내던지듯 놓아주었다. 남자의 손가락에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걸려 남아 있었다. 남자는 그 손으로 와이캐피탈 간판을 가리키더니 여자를 향해 물었다.

 

 

“여기야?”

 

 

“저도 몰라요.”

 

 

여자는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두 손을 쓸어내리며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 대답이 남자의 화를 더욱 돋우었다.

 

 

“돈을 빌린 데가 어딘지도 몰라?”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함을 들은 여자는 반사적으로 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가리며 몸을 웅크렸다. 남자가 씩씩대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도 느린 걸음으로 남자의 뒤를 따랐다.


이 둘을 지켜보던 철수와 오진성, 고현지도 서둘러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철수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와이캐피탈에 오셨습니까?”

 

 

남자가 철수를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움찔 놀라며 철수의 눈치를 살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철수는 두 사람을 사무실 안으로 안내했다. 남자는 사무실에 들어와서도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씨근거렸다. 오진성이 재빨리 컴퓨터로 와이어넷에 접속한 뒤 채무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다. 남자가 여자의 신분증을 꺼내 탁 소리가 나게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퉁퉁 부어 있던 여자의 얼굴이 순간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철수는 일단 두 사람을 떼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자 되십니까?”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수는 오진성과 시선을 맞춘 뒤 남자에게 다시 말했다.

 

 

“채무자 본인과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배우자 분은 여기서 상담을 받으십시오.”

 

 

오진성이 철수의 의도를 눈치 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의 얼굴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폭력적인 남편이 사무실 안에서 난동을 부리기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었다. 철수가 옆 자리의 의자를 끌어다 오진성 옆에 놓았다. 남자가 자리에 앉은 뒤 철수는 여자를 데리고 탕비실로 향했다. 얼결에 따라 들어온 현지가 비틀거리는 여자를 부축했다. 탕비실에 들어가자마자 여자는 기운이 빠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현지가 종이컵에 물을 따라서 여자 앞에 밀어 놓았다.


여자는 우두커니 종이컵에 담긴 물을 바라보았다. 시퍼렇게 멍이 든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철수는 아무 말 않고 맞은편에 앉아 기다렸다.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던 여자가 고개를 들고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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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좀 해주지 그랬어요. 빚 없다고... 전화로 그렇게 한 마디만 해 주면 되는 걸...”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철수는 일단 미안하다고 말했다. 여자가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

 

 

“다음 주에는 갚을 수 있는데. 이번 주말까지 둘째가 해준다고 그랬거든요.”

 

 

법무과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현지는 채권추심과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몰랐다. 엉망이 되도록 얻어맞은 여자를 실제로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 상황이 두려웠지만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 자리에 자기가 있어도 되는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현지가 조심스럽게 철수의 눈치를 살폈다. 철수는 현지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현지가 여자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중년 여자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지친 목소리로 사연을 털어 놓았다.


착하고 똑똑했던 큰 아들이 고등학교 때 나쁜 친구를 사귀는 바람에 사고를 치고 수감되었다고 했다. 아들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켰다. 폭행과 강간사건의 합의금을 물어주기 위해 집안의 재산이 투입되었다. 서른이 되도록 변변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화수분이었다.


아들은 휴대폰 사업을 시작하겠다며 사업자금을 요구했다. 더 이상 줄 것이 없는 어머니는 신용을 팔아주었다. 캐시앤머니에서 돈을 빌린 뒤 아들은 자기가 그 빚을 갚아 나겠다고 했지만 그런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어머니 명의로 돈을 빌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채무는 연체되었고 부실채권으로 분류되어 와이캐피탈로 매각되었다. 그리고 채권양도통지서가 집으로 발송되었다.


여자는 내용증명 우편물을 받아들고 속을 태우다가 결국 둘째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고뭉치 첫째와는 달리 착실한 아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자는 와이캐피탈에 전화를 해서 추심원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혹시라도 남편한테 전화가 오면 빚을 다 갚았다고 거짓말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여자에게는 큰 아들만큼 두려운 남편이었다.


그렇지만 추심원 입장에서 제삼자에게 그런 거짓말을 해줄 수는 없었다. 채무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은 불법이었다. 유능한 추심원이라면 남편에게 삼자고지는 불법이라고 답하면서 여자의 빚이 상당한 액수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대신 빚을 갚아줄 가능성이 있는지 떠보았을 것이었다. 그 결과 여자는 남편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고 이곳까지 개처럼 끌려 왔다.


이 가족의 사연을 들으며 철수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회사에서 상대하는 채무자들 중에 가정형편이 좋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과 이미 몰락할 대로 몰락해 버린 집안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대부회사의 문을 두드리게 되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에는 언제나 돈 문제가 중심에 있었다. 무기력한 가장이 마지막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아내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자주 있었다.


쿵 소리가 나며 탕비실 문이 열렸다. 눈에 핏발이 선 중년남자가 성큼 안으로 들어와 여자의 팔을 낚아채더니 거칠게 윽박질렀다.

 

 

“그 새끼는 자식 새끼도 아니고 사람 새끼도 아니야. 이따위 짓거리 한 번만 더 하면 너랑 나랑 남남이야.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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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그 자리에 같이 있는 철수와 현지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면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보란 듯이 더욱 기세등등하게 굴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여자는 찍 소리도 하지 못하고 남자에게 끌려갔다. 철수와 현지는 남자의 기세에 눌려 얼이 빠졌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 현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철수에게 물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철수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채권추심원인데 우리 회사에 빚을 진 채무자가 남편에게 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한다면 가정폭력 사건으로 접수가 되기는 할까 모르겠다.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철수는 현지의 시선을 피했다. 탕비실 밖으로 나와서 오진성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선배님. 어떻게 됐습니까?”

 

 

“오늘 350 입금하기로 했고 다음 달에 350 추가로 넣는다고 했는데.”

 

 

오진성은 심드렁했다. 그가 담당하는 채권이 아니라 자기 실적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로서는 처음 보는 일도 아니었다. 그 때 사장과 박치훈 과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진성이 박치훈을 향해 반갑게 말했다.

 

 

“과장님. 방금 자진납부 채무자 하나 들어왔습니다. 오늘 중으로 350만원 넣는답니다.”

 

 

“어. 그래.”

 

 

과장이 기분 좋은 소식에 싱긋 웃으며 지나쳤다. 현지가 팔짱을 끼고 곁에 서서 오진성을 지켜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금 일어난 사건이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행동하는 오진성에게 괜스레 화가 났다. 현지가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철수를 찾았다. 어떻게든 해보라고 말 한 마디라 해보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철수는 현지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장이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다.


사장과 박치훈 과장은 탕비실에 들어가 종이컵을 하나 씩 들고 나왔다. 커피믹스 브랜드 맥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남성잡지 맥심으로 화제를 돌렸다. 두 사람은 낄낄대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철수는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현지는 탕비실로 들어가 버렸고 오진성은 인터넷으로 새로 나온 휴대전화 정보를 검색해보고 있었다. 철수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채권추심 부서의 사무실에는 벽을 빙 둘러서 레일이 달린 이중의 철제 서고가 설치되어 있었다. 서고에는 채권에 관련된 각종 서류가 보관되어 있었다. 대출 당시의 계약서와 대출심사 서류, 주민등록초본, 인감증명서, 재직증명서, 재산증명 관련 문서를 채무자에게 부여된 회원번호에 따라 정리해 놓았다. 부실채권의 수는 분기 별로 늘어났는데 변제된 채무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 언제나 서고의 여유가 부족했다.


그래서 새로 매입해온 채권은 박스 채로 사무실의 빈 공간에 쌓아두었다. 상자에는 대출을 해준 지점의 이름과 채권이 매각된 시기만이 적혀 있었기 때문에 분류되지 않은 채권의 관련 서류를 찾으려면 번거롭게 이 상자 저 상자를 들었다 놓았다 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서는 스캔해서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해두었으므로 신규매각채권 정리는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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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넥타이를 풀어놓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서류박스를 하나 집어 들었다. 오진성이 흘끔 철수를 보았지만 아무 말 않고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이전에는 오진성과 이민호가 서류정리 업무를 했으나 철수가 입사한 뒤로는 막내 철수가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남들은 귀찮아하는 일이라도 철수는 서류상자 정리를 좋아했다. 몸을 쓰는 일이니만큼 공식적으로 넥타이를 풀어놓아도 되었다. 철수가 서류상자를 열고 서고를 오가며 파일을 끼워 넣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창가의 서고로 향했다. 사장의 자리가 있는 쪽이었다.


사장의 등 뒤에 놓인 서고에는 회원번호가 107번으로 시작하는 파일이 들어있었다. 107은 영등포 지점을 의미했다. 수아의 회원번호는 107-18973이었다. 묵직한 철제 서고가 열리며 드르르 소리가 났다. 철수는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찾았다. 18930... 18961... 18973. 파일을 열고 이름을 확인한 뒤 다시 접어 움켜쥐었다. 마침내 철수의 손에 수아의 대출 서류 원본이 담긴 파일이 들어왔다.


철수는 수아의 파일을 들고 아무렇지 않은 듯 제자리로 돌아왔다. 책상의 가장 아래 큰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에서 서류가방을 반쯤 꺼내 재빨리 가방 안에 수아의 파일을 밀어 넣었다. 서류가방을 잠가서 서랍에 눌러 넣고 서랍을 밀어 닫고 나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었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철수가 태연한 척 주위를 바라보았다. 건너편에서 사장과 과장이 마주 보고 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두 사람의 화제는 프로야구 리그에 진입한 NC 다이노스의 성적이었다. 고개를 들어 맞은편을 살피니 오진성은 모니터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아마도 사장과 과장의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 프로야구 관련 내용을 검색해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철수가 뒤를 돌아보자 바로 등 뒤에 고현지가 서 있었다.


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철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손에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두 개 들려 있었다.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현지의 입술이 달싹 열렸다. 그 모습이 영화의 슬로우 모션 같이 천천히 철수의 시야에 들어왔다. 철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간절하고 절박한 시선이 꿰뚫을 듯 현지에게 향했다. 현지의 표정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철수가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세워 제 입술에 대었다가 떼었다. 현지가 벌어진 분홍빛 입술을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는 한 손을 뻗어 철수에게 종이컵을 건넸다. 철수가 떨리는 손으로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고현지. 오, 오빠도 커피 마실 줄 안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오진성이 이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철수의 심장이 더욱 격하게 뛰었다. 목젖이 떨릴 것 같고 내장이 튀나올 것 같았다. 현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오진성에게 다가갔다.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현지는 오진성이 열어놓은 검색화면에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었다.


철수는 자리에 앉은 채 양 손으로 종이컵을 감싸 쥐었다. 따듯한 기운이 전해지자 떨림이 멈추었다.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곁눈으로 책상서랍을 흘끔흘끔 바라보면서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커피가 입가로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뺨을 닦아냈다. 그리고 철수는 넥타이를 찾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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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가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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