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4.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1
이 연재물은 뭐냐?
글타. 음악 관련 글인 기타스토리와 역사물인 유럽이야기 등등을 장기 연재했던 우원이 이제는 과학을 갖고 글을 쓰겠다는 소리다.
갑자기 과학이라니 뜬금없냐덜? 근데 생각해 보면 그닥 엉뚱한 것만도
아닐 거다. 지난 2010년, 과학적 사실과 법칙 등을 도용 활용해 구라논픽션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시리즈를 절찬 연재하기도 했고 벙커에서 매달 과학 토크도 하고 있고 아는 넘은 다 아는
과학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도 만들고 있음에야.
근데 그런 거 왜 하냐고…?
맞다. 열분들 중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우원에게도 과학은 어린 시절의
로망이었던 거다. 그런데 삶에 바빠 과학에서 멀어진 대다수의 열분들과는 달리 우원에게는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진지한 관심사로 늘 가까이에 있다는 점. 하지만 온갖 다른 일들을 직업적으로 하다 보니 나서서 들이밀
입장은 안 됐는데, 어쩌다 이 나이에 과학자들과 함께 요런저런 일을 결국 벌이고 있는 걸 보면 사람
사는 건 참 요지경이다.
암튼, 대충 눈치챘겠지만 이 연재물은 일종의 과학 에세이다. 그래서 과학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오만 가지 썰, 잡담, 비평, 잔소리, 농담, 공상, 뉴스 등을 다 다룬다. 맘
내키면 단편 SF 소설을 쓸지도 모르고, 글 쓰기 귀찮으면
과학자 인터뷰를 따 올 수도 있다. 여하튼 항상 뭔가 과학, 혹은
과학적인 것. 그런 게 나오는 코너다. 오케이?
근데 머 오늘은 첫 시간이고 하니 걍 옛날 이야기나 좀 하자.
요즘은 Why니 머니 해서 얼라들 읽을 과학책이 절라 많다. 하지만 우원이 얼라이던 30여 년 전에 그런 걸 찾기란 조낸 어려운 일이었다. 글타고 그때 그 시절의 우리들이 우주, 로봇 등에 관심이 없던 건 또 아니었는데, 책도 인터넷도 없고 주변에 그런 거 아는 어른도 없고, 도무지 호기심을 충족시킬 방법이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넘쳐흐르는 지적 욕구를 채우기는커녕 다망구니 오징어달구지니 구슬 딱지 등 험한 육체 노동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통과 상실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시기는 참으로 우원 인생의 암흑기라 할 것인데, 특히 지금과는 달리 하얀 얼굴의 말라깽이 키다리로 대부분의 경쟁에서 패배하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원은 우연히 지나치던 서점에서 아래의 서적을 발견하게 된다.
코스모스! 무슨 꽃 이름으로만 알던 것이 자그마치 ‘미지의 세계’라는 것이다. 제목이
‘미지의 세계 코스모스’인 건지, 걍 ‘COSMOS’ 인 건지, 아니면
‘우주의 신비’ 인 건지조차 잘 분간이 안 되는 혼란스런
표지. 허나 우주 어디선가 지구를 찍은 저 사진 하나만으로도 어린 우원의 지적 갈망을 자극하고도 모자람이
없던 것.
게다가 지은이의 이름은 카알 사강. 이 이국적이고 폼 나는 이름만
봐도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박사님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에 아폴로 박사 조경철이 있다면 외국에는
그에 못지 않은 ‘숨은’ 천재 과학자 카알 사강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원은 짜장면 한 그릇이 200원 남짓하던 시절에 380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이 책을 구입하고 만다. 국민학교 4학년에게는 가격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말도 안 되는 물건이었지만, 우주의
신비를 알려준다는데야 장유(長幼)의 구분이 있으며 천금(千金)이 아까우랴.
우주과학자 카알 사강 박사님
우원의 어린 시절 영웅이시다
후일 증언에 따르면, 당시 울 엄니는 한글 뗀지 얼마 되지도 않은
꼬꼬마가 이 책을 들고 온 걸 보고는 실소를 머금으며 조만간 찢어서 딱지나 만들 거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니었다. 놀랍게도 우원은 이 책을 금방 다 읽었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겁먹은 만큼 어렵지도 않았다. 역시 우원은
어려서부터 대 천재였던 것이다.
…그런 게 아니고 숫자 나오고 복잡한 부분은 대충 읽고 건너뛰면서
알아들을 만한 부분들만 집중해서 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얼라들은 물론 문외한이 새로운 분야나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잘난 척하는 지식인스런 사람들도 말을 안 할 뿐 실은 이런 방법을
애용하고 있다.
그리고 요게 실은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코스모스 책에
나오는 아래 페이지의 경우, 우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저 수식에 대해 잘 모르고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머 알면야 좋겠지만 위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그게 꼭 필요한 일일까? 우원이
저걸로 시험치는 것도 아니고 직업 과학자가 될 것도 아니라면 수식에 기죽을 것 없이, 그냥 어떤 옛날
사람이 직각삼각형의 형태와 비례를 통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계산했다는 것만 알면 되잖냐는 거다. 이런
것 하나하나에 겁먹고 머리 싸매면서는 부담스러워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그 결과 되려 대충 넘어갔을
때 얻을 수 있었던 지식과 통찰의 기회마저 잃게 되는 거 아니냐는 말씀이다.
대략 이런 방법으로 겨우 열살의 우원도 저 책을 재미있게, 심지어
여러 번 읽을 수 있었던 거다.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대중과학 팟캐스트를 만들면서도 제일 중요하게
견지하는 철학이 바로 저건데, 실제로 잘 먹혀 들고 있다. 과학에의
로망과 꿈을 까맣게 잊었던 중장년 청취자들이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말은 물론 ‘고맙다’는 인사까지 전해오는 걸 보면 말이다.
결국 과학으로의 왕도는 있었다. 대충하면 된다.
다만 대충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걸 잘 분별해야 되는데, 우리가
접하는 학교 교육 환경이나 사회적 관습 속에서는 이게 뒤집혀 있다는 사실. 이 이야기는 연재 내내 수시로
등장할 테니 오늘은 그렇다는 점만 언급하고 넘어가자.
여하튼 지금 되돌아봤을 때 저 책 코스모스를 어린 나이에 접하고 읽은 것은 우원에게는 큰 행운이다. 어쩌다 보니 최근에야 읽었다는 물리학자 이종필 박사가 ‘이후의 모든
과학 교양 서적은 코스모스의 아류였다’라고 말한 점을 생각해 보면 더 그렇다. 물론 이종필 박사와는 달리 거기 나온 수학이나 상대성이론 같은 것은 당시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광대한 우주,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과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의 자각은 어린 우원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지식도 중요했지만 우원에게 더 강렬했던 것은 그 과정에서 느낀 경이감 자체였다. 우리 주변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이 세상의 다가 아니라는 것, 아니 다가 아니기는 고사하고 그 영역은 티끌보다도 더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점. 그렇다면 이 우주는, 세상은 얼마나 많은 신비함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일까. 한편으로는 이렇게 한정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찮은 인간들이 과학의 힘으로 저런 사실들을 알아냈다니 말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그 경이감의 정체였다.
Before : 와 밤하늘 멋지다 ㅋㅋ
After : 저 불빛 하나하나가 다 세상이란다 씨파…
여하튼 그런 느낌 속에서 어린 우원의 삶의 방향은 분명히 바뀌었다. 물론
거기에 영감을 받아 진짜 과학자가 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과학 관련해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 요즘의
모습을 보면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더 바뀐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원은 어려서 과학을 접하고 그 끈을
놓지 않고 살고 있는 게 좋고 요즘은 다행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치와 사회 모든 것이 거꾸로 가고
있는 세상, 그런데도 그걸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람이 절반을 차지하는 이 나라에서도 과학은 어쨌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걸 숙명적으로 추구하는 분야기 때문에.
그러니 우원과 함께 앞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그 한 걸음씩을, 머 니나
내나 앞서 가지는 못하더라도 들여다 보기라도 하잔 말씀이다. 기분이 좀 나아지실 거다.
…첫 책을 산 지 몇 년이 지난 후 우원은 새로 나온 코스모스를 다시 구입했다. 한층 세련되어진 표지와 커진 판형, 그리고 많은 컬러 사진들이 포함된, 이름도 멋진 완역본. 게다가 아폴로 박사 조경철의 감수라니! 동서양 우주 과학의 기린아가 조우하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원은 그제서야 알게 된다. 이 책을 쓴 세계 최고의 박사님 이름은 카알 사강이 아니라 칼 세이건으로 발음된다는 사실을. 머 시대가 시대가.
다음 시간에 계속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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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