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홍준호 추천2 비추천0







1.jpg


감독: 한재림
주연: 조인성, 정우성, 배성우, 김아중, 김소진, 류준열, 김민재, 정성모, 정은채, 오대환, 정인기, 박정민, 김의성, 고아성, 한수연, 성동일, 남명렬, 최귀화
촬영: 김우형
음악: 모그
15세 관람가 / Color / 137분




실물패권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얕든 깊든 간에 한국의 현대 사회 / 정치를 소재로 한 작품은 어느새 정점을 찍고 말았다.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 속 이야기가 현실임이 밝혀지면서 '극사실주의 흥행작'으로 남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계에는 푸념 같은 이야기가 돌았다. 정치판이 더 영화 같아서 뭘 어떻게 영화 만들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처음엔 영화인들이 했다는 이런 말이 언론 등을 통해서 공공연히 나오길래 관객으로서는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만들기 힘드니까 못 만든 작품들 나오더라도, 감안하고 봐 달라 그 소린가? 애초부터 현실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


2.gif


시상식에서 보여준 리스펙트
'...대한민국의 왕은 결국 이경영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영화인들의 저런 발언들을 조금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강우석 감독이 신작 제작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을 때였다. 강우석 감독은 평소 자기 작품의 소재를 신문과 여러 매체의 뉴스를 통해서 찾아낸다고 얘기한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현재 시국은 영화화할 거리가 차고 넘친다. 좋아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 그가 신작 제작 취소를 했다. 현재의 상황을 영화라는 세계 안으로 도저히 끌어들일 수가 없음을 인정하는 비참한 패배선언인 셈이다. 한재림 감독의 <더 킹>은 딱 그런 시점에서 개봉했다. <더 킹>은 신참 검사 박태수(조인성)가, 검사이자 권력의 핵심이라 불리는 한강식(정우성) 밑으로 들어가면서 권력의 단 맛을 본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는 양아치같은 매력으로 부잣집 딸인 임상희(김아중)를 사로잡아 결혼까지 하고, 재력과 권력에 업힌 채로 승승장구한다. 이야기는 동시에 전두환부터 이명박 정부까지의 한국을 정리해서 훑고 지나간다.


3.jpg

 

4.jpg



작품에서는 영화 찍고 있는 현실 정치판을 견제하는 영화판의 고뇌가 아주 깊게 느껴진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 끝까지 가는 현재 한국 사회와 정치 이야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감히' 끼워 넣어서 승부수를 띄워보려 무진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더 킹>이 걸작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쉬웠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의 기본 장르는 블랙 코미디인데, <검사외전>이나 <베테랑> 정도를 제외하면 사회 / 정치물에서 이런 장르적 시도는 분명 그 수가 적어서 금방 눈에 띈다. 게다가 관계자들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작품 본편에서 한강식의 대사로 구현되기까지 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면" 될 일이었다. 실제로 <더 킹>의 대부분은 그렇게 진행된다. 현대 정치사를 반영한 부분들의 연속이며, 이를 한 편의 영화에 맞게끔 엑기스만 골라 요약정리 해 놓아서 굉장히 재미있다. 이런 재미를 깎아먹는 원흉이,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다. 좀 과하게 유치하다.


어쩌면 의도일 수 있다. 태수라는 인물이 성공하는 과정도, 시끄러운 롤러장 소음을 화이트 노이즈로 인식하고 공부하다 보니 성적이 좋아져서 전교 순위권 안에 든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초장부터 이런 전개를 보여주니, 허풍으로 웃겨서 그나마 넘어가줄 수는 있다. 그러나 태수가 아내인 상희를 재우려고 테니스 6세트를 한 직후에 바로 섹스를 4번을 한다는 식의 설정은 30년 전 토속물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같잖은 아이디어이며 (이두용 감독의 <뽕> 에서 이미숙을 만나러 가기 위해 마누라가 기절하다시피 할 때까지 섹스를 하는 마을 남정네의 이야기가 나온다. <뽕>에서는 참 재밌었는데...), 태수가 들개파의 조직원으로 시작해 점점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가는 친구인 두일과 얽히게 되면 작품이 급 '홍콩영화'스러워 진다. 한국 현대사를 조망하다 갑자기 뜨거운 우정을 나누는 두 남자의 이야기라니. <더 킹> 보는데 난데없이 <응답하라 1988> 이라든지, 아니면 80년대 오우삼 감독 작품의 감수성이 묻어 나오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잇속만 챙기기 위해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다 보니 가끔 진심어린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좀 우습다.

 

12.JPG

정우성이 그래도 웃긴다


작품이 순간순간 나쁜 의미로 보기 우스워지는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아마 <더 킹>이 태수라는 인물에게 감상 중에 몰입할 여지를 준 점이 가장 크지 않을까. 이 작품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영향이 꽤 묻어나온다. 그 작품이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감독 당사자가 1990년에 감독한 갱스터 장르물, <좋은 친구들>의 구성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갱스터가 주인공이 아닌데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두 작품은 등장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게끔 말초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나 동시에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함부로 동정심을 주거나 몰입할 여지는 주지 않는다. 간단하다. <좋은친구들>의 주인공들은 위에서 설명했듯 모두 갱스터였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주인공들은 모두 증권 사기범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인간 말종들이란 얘기인데, 그래서인지 어느 시점에서부터 거리를 둔다.


5.jpg


<더 킹> 은 동일한 방법을 쓸 경우 마틴 스콜세지 감독 작품의 영향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했는지 현재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두환부터 시작해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까지. 간간히 씁쓸한 상황이 펼쳐지지만 이 작품의 분위기는 우습고 유치하고 발랄하다 못해 흥겹기까지 하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시점은 노무현과 이명박 정부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부터다. 작품은 김영삼의 문민정부에서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로 이어지는 순간까지는, 이전까지 한국을 좌지우지 했던 세력들이 정권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내준 것' 의 관점에 동의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준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출현은 그들의 계산과 완전히 어긋나 있다. 그래서 '주류 세력'들이 어둠 속에서 실루엣으로 처리된 채로 참여정부의 집권을 바라보며 비하와 저주의 말을 내뱉는 순간을 보여준다.


7.jpg

언젠가 뉴스에서 봤던 모습


만약 한국의 현대사와 실화적 관점으로 본다면 분위기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기적인 악인들이며, 주인공들을 만드는데 영감을 준 존재들이 실제로 위기감과 불쾌감을 느꼈던 시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였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로서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될 경우, 이런 흐름은 어느샌가 의미가 규정된 '한국 상업 영화'의 이야기 전개가 되고 만다. 처음엔 웃기다가 뒤에서는 심각해 지거나 눈물 짜게 만드는 형태로 말이다. 문제는 <더 킹>의 형태가 현대사와 실화적 관점의 비중을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큰 원인 중 하나는 역시 태수와 두일이 서로 만나는 신들 때문이다), 참여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완전히 '한국 상업 영화' 관점으로 이동해 버린다는 점이다. 작품을 위해 창작된 인물인 태수에게 몰입을 하게 만들고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구축했던 정서는 급작스럽게 개인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로 좁아진다. 근데 이 영화판에서 야심차게 직조해낸 이 복수의 이야기가 별로 좋지 않다.


6.JPG

 

10.jpg

 

8.jpg


과거 한국의 정치적 역사는 정말 요정정치, 환락의 정치, 검찰의 정치, 라인 타기 정치, 그리고 (표면적으로만) 의리의 정치였을 것이다. 모두 유치하고 한심한 정서를 품고있다. 이를 한국사의 개념으로 설명됐다면 태수의 복수는 팽 당하고, 친구의 죽음을 겪고 나서야 자신이 몸통이 아니라 꼬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시작되는 이야기가 됐겠지. 냉소가 담긴 풍자와 조롱의 정서로 받아들여 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의 정서가 '지극히 활극적이고 영화적인' 방식으로 바뀌면서, 가장 중요하게 비춰져야 할 태수의 복수는 '친구의 죽음을 겪고 급 개과천선하여 너무나 쉽게 정의를 논하고 구현하려 드는 이야기'로 결론맺는다. 인물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운 거지. 99%의 검사들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듯한 그의 모습을 두고 작품이 진심이라 밀어주는 모습인데, 이게 뜬금없게 보이는 거라. 특히나 요즘의 한국에서 검사들이나 검찰이라는 집단이 그렇게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우병우 GO>를 만들었다고.


9.jpg

작품 속 검찰 

 

우병우 GO.jpg

그래봐야 대다수 사람들한테 검찰은 이런 이미지


어차피 현재 한국 현대사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그 역사를 정리하는 수준 선에서 끝내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뻔한 이야기가 주는 아쉬움은, <더 킹>이 가진 다른 장점을 외면하게 만든다. 사실 이 작품은 이미 현실에 맞서서 영화로서의 가치를 증명할 커다란 무기를 갖고 있다. 바로 시각적 측면이다. 이 작품은 내가 본 한국영화들 중에서도 상당히 주목할만한 촬영과 편집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작품의 속도감은 거의 원신연 감독의 <세븐 데이즈> 수준이다. 그러나 파괴적이고 난폭하다 싶을만큼의 속도감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세븐 데이즈> 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특히 전두환 정권을 배경으로 한 태수의 학창 시절부터 노태우 정권 하에서 검사에 합격하는 이야기를 담은 초반 20여분의 압축적인 전개가 놀랄만하다.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정적으로 전개되는 순간이 별로 없을 정도인데 전혀 혼란스럽지가 않다. 몇 분의 분량에서도 상당히 많은 공간들을 이동하는데도 하나의 숏에서 이뤄진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다. 180도 상상선을 어기며 영화적 문법들을 무시하는 순간에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지는 화면 분할로 돌파해 버린다.


이 난폭한 매력의 속도감은 욕도 좀 써줘야 할 것 같은데도 끝까지 나긋나긋한 조인성의 나레이션과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그의 나레이션은 세파에 찌들은 남자라기 보다는 마치 정체불명의 '사나이 다움' 등을 동경하는 철없는 고등학생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혼자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그의 나레이션이 (실제로 작품 속에서 태수가 1%의 검사들의 무리에 속해 있었으니 '딴 세상' 에 있다고도 하겠지만) 오히려 폭주기관차처럼 흘러가는 작품의 상황들을 명확하게 정리해준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명확하여 서로를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나레이션에는 이런 작품들에서 자주 드러나는 명대사 제조에 대한 강박 또한 적다. TV 드라마라면 매 회 필요하겠지만, 사실 영화에서 그런 펀치라인은 아껴뒀다가 한 번씩 써먹을 때 인상깊은 법이다. 작품은 이야기 연출에 비해 영상에 대한 연출에서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 작품은 영상에 대한 부분이 진짜 보여주고 싶은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11.jpg


<더 킹>을 감독한 한재림은 장편 데뷔작인 <연애의 목적> 부터 현재까지 총 네 편의 작품을 감독했다. 데뷔작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고 이후 만든 세 작품은 모두 15세 관람가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그의 모든 감독작들이 심의 받은 등급의 선을 절묘하게 줄타기하는 노골성과 과격성을 갖고 있다고 느껴진다. 난 그 때문에 한재림 감독이 잘만하면 훗날 한국의 오토 프레밍거 감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오토 프레밍거는 1906년에 태어나 1986년에 사망한 영화감독으로, 프랭크 시나트라가 마약중독자로 나오는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 성폭행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법정물 <살인의 해부> 등 당시 헐리우드에서 언제나 논쟁적인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던 감독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감독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헐리우드에서는 항상 그와의 작업에 난감해 했지만, 동시에 버릴 수 없는 감독이기도 했다. 왜냐면 그에겐 표면적으로는 작가의 자의식을 감춘 채 내러티브를 통해 특유의 스타일을 철저하게 주류라 불리는 시스템과 동기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관객들에게도 큰 거부감 없이 통할 수 있었다. 한재림 감독도 그렇게 한다. 그렇게는...


<더 킹>은 어쩌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보다 더 높은 평가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편집, 촬영 등으로 다듬어진 영상미임이 분명한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이야기보다 눈에 덜 띌 수 밖에 없다. 무속인 등이 등장해서 정치에 관여하는 등, 지금 현재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더 받을 수 밖에 없는 지점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킹>은, 그 지점때문에 현재 한국에서 대규모로 개봉되는 영화들, '한국 상업 영화'라 부르고 있는 작품들이 기획하는 이야기의 질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나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그것과 동기화해서 자신의 스타일을 감춘 셈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감독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그 배우들과 설정 가지고 이렇게밖에 못 만드나 싶었던 전작 <관상> 보다는 낫다는 점이다. <더 킹>은 훗날 다시 거론해도 될 정도로 스타일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13.jpg


한재림 감독이 오토 프레밍거 감독처럼 되려면 아직 갈 길 멀어 보이지만, 최소한 그 가능성만은 계속 갖고 있다고 해둘 수 있겠다. 그가 언젠가 위 사진 속의 남자처럼 될 날을 기대해본다. 참고로 머리 빠지라는 얘기는 아니다.




p.s. 


1) <더 킹>의 음악은 현재 한국에서 잘 나가는 음악가 중 한 사람인 모그가 담당했다. 작품에서 그의 선곡이나 스코어는 들을만 하다. 그러나 나는 뭔지 모르게 특색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선곡 부분이 그렇다. 자자의 '버스 안에서' 나 클론의 '난'이 정우성과 만났을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실험한 것은 보기 좋았다. 그러나 루도비코 아인아우디의 'Experience'가 흘러나오는 순간, 머리 속에서 '....자비에 돌란?' 하고 떠오른 건 어쩔 수가 없겠다.


모그라고 그 곡 쓰지 말라는 법 없지만, 예전 그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영화음악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데이비드 샤이어, 랄로 쉬프린 얘기한 게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더 킹>에서 그들의 음악이 좀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듣지 못했던 것 같다. 혹시 선곡됐었는데 내가 무지한지라 몰라서 그러는 걸수도 있고, 뭐. 그래서 따로 음악에 대해 얘기는 하지 않는 걸로.


다만 항상 모그가 음악을 맡으면 계속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사운드트랙 반이라도 해주면 참 좋을텐데, 그렇게 요 몇 년간 한국영화계에서 음악은 도맡으면서 인상적인 결과물이 별로 없단 말이지...



2) 오토 프레밍거 감독에 대한 표현은 안시환 평론가의 글, <장르의 외투를 입은 작가, 오토 플레밍거 회고전>에서 인용했다.



3)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깡다구는 제이 로치 감독의 영화인 <트럼보>에서 잘 볼 수 있다. 배우 크리스찬 버켈이 오토 프레밍거 감독을 연기하는데 (아래 사진), 닮기도 상당히 닮았다. 감독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영화 촬영장의 독재자' 에 대한 모습이 나오지는 않지만, 최소한 당대 시스템에서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잘 알 수 있다. 블랙리스트 오른 사람을 각본가로 고용했으니.


14.JPG

 






홍준호


편집: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