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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한 판의 바둑 같은 것이다. 바둑을 둘 때는 수 싸움에 일희일비하지만, 끝나고 텅 빈 바둑판을 보면 왜 별 거 아닌 거에 고민했나 싶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재임 기간도 한 판의 바둑 같다. 그럼 어떤 바둑으로 봐야 할까? 필자는 ‘대리대국으로 나가리 된 판’이라고 본다. 동네기원에서 두는 바둑이야 대리대국을 둔들 멱살 좀 잡고 말 일이지만 대통령이 대리대국이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더구나 대리대국을 한 사람이 일반인이었으니 말 다한 거다.


그동안 박근혜는 인간고수라면 생각하기 힘든 수를 두었다. “그래도 고수가 둔거니까”라며 수를 해석해보려 했지만 풀리지 않는 신비였다. 그런데 그 수들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둔 수였다니,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다. 북한의 김정은도 정신이 멍했을 것이다. 열심히 바둑을 둔 줄 알았는데 쉐도우 복싱을 한 느낌이랄까?


이제는 대리대국할 일이 없길 바라며, 대한민국의 다음 대국을 책임질 차기 대선주자의 기풍(바둑스타일)에 대해 알아보자. 승리를 추구하는 건 모두 같다. 그러나 그 추구로 가는 길은 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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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재인


요즘 문재인에게서 전성기의 이창호가 느껴진다. 종편의 융단폭격을 받는 모습에서, 초중반에 갖은 공격을 받고도 묵묵히 버티다가 끝내기에서 이기는 이창호의 향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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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행적을 보면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이 떠오른다.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데 옆에서 보기엔 답답하다. 훨훨 날아가거나 하다못해 뛰어가는 느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느리게 한 발자국씩 되새김질하며 걷는 황소. 그런데 이게 무섭다. 날아가면 떨어지고, 뛰면 지치는데 황소의 걸음은 도무지 지칠 줄 모른다. 검으로 따지면 무딘 날의 명검이랄까. 언뜻 보기엔 둔중하다. 날도 제대로 서있지 않다. 풀잎도 못 베는 검이다. 그러나 바위는 벨 수 있다.


지금 대선은 포석을 막 끝낸, 중반의 초입으로 본다. 흐름이 좋다. 집도 많고, 두터운데 모양이 좋다. 확정가가 많고, 미생마(삶이 완전하지 않은 말)가 없다. 상대가 초반에 부분적으로 전투(네거티브)를 걸었으나 간명하게 처리하고 대세점을 차지해 좋은 형세다. 이 판은 큰 변수가 없는 한 무난하게 이길 것으로 본다. 가장 큰 경쟁자가 초반에 ‘뻑’을 여러 번 해준 덕분이다. 바둑 두기 전까지는 가장 두려운 상대였는데 막상 대국에서 자충을 연이어 두었다.


조심해야 할 것은 계가의 묘(妙)다. 바둑은 공배(흑과 백 누가 두어도 집이 안 되는 곳)를 다 메우면 끝난다.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계가란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일 뿐이지만, 여기서 장난질을 칠 수 있다. 내 집과 상대방의 집의 경계를 밀면 안팎으로 2집 차이난다. 2줄 밀면 4집이다. 내용은 이기고 승부는 질 수도 있다. 그러니 독자들은 함부로 내기바둑 두지 말 것을 당부한다.



2. 반기문


동네기원에는 나름 급수체계가 잡혀있다. 가장 잘 두는 사람을 1급으로 하고, 그 사람 치수에 맞게 급을 매긴다. 대한민국 기원에 나름 급수가 잡혀있는데 유엔기원에서 1급 두는 양반이 대한민국 기원짱을 노리고 온다고 한다. 기원의 참새들은 너도 나도 새로운 절정고수의 등장에 노가리를 깐다. 다른 동네 기원 원장들하고 친하다더라, 신수(新手)에 빠삭하더라. 대한민국 기원 원장하고 전 원장이 팍팍 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막상 대국을 시작해보니 초반부터 떡수를 남발한다. 초반 정석에서 실수했는데 우리 집안은 이게 정석이라고 우겨서 찾아보니 예전에는 그렇게 안 두었더라.


반기문의 기풍은 애매한 바둑이다. 집이 많은 것도 아니고 두터운 것도 아니다. 얼마 전 한 기자가 기풍을 물었다. 실리파입니까? 세력파입니까? 반기문의 대답이 걸작이다. 집도 많고 두터운 기풍입니다. 뜨거운 얼음도 아니고…. 바둑은 포석이 중요한데 초반에 떡수를 너무 많이 두었다. 과연 중간에 안 던지고 계속 둘 지 의문이 든다. 으랏차차 반기문 파이팅!



3. 이재명


이재명 시장을 보는 순간 서봉수가 떠올랐다. 서봉수, 그는 누구인가? 그를 칭하는 많은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무사독학(無師獨學). 일본의 선진바둑을 배워 한국바둑을 호령하던 유학파를 자기만의 개싸움으로 물리친 인물. 비록 조훈현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지 못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학벌도, 돈도, 빽도 없이 두 주먹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온 이재명이다. 그의 기풍은 서봉수일까? 필자는 고민했다. 서봉수라 하기엔 이재명은 날카롭고 선명하다. 서봉수의 바둑엔 이런 날카로움은 없다.


그럼 어떤 기풍일까? 이세돌이다. 딱 이세돌 스타일이다. 간명하다. 그리고 선명하다. 수가 나면 끊는다. 재고 이런 거 없다. 이세돌 9단의 경우 바둑 외적으로도 불합리한 것은 못 본다. 이번 기사회 탈퇴 건도 그렇다. 기득권들이 이런 튀는 행동을 싫어하지만 실력이 있으니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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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폐간” 이런 말 막 지른다. 좋다. 다만 약점이 있다면 ‘안정성’이다. 화끈하고 선명한 기풍은 보기엔 즐겁지만 안정성이 떨어진다. 이창호의 전성기에는 믿음이 있었다. 절대 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이세돌의 바둑은 불안하다. 유리한 것 같아도 믿음이 안 간다. 초반 기세에서 한풀 꺾인 것이 바로 이 안정성 부분이 아닐까 한다. 초반 포석의 발빠름으로 판을 주도해가는 느낌이었으나 엷은 느낌이다. 묘수를 기대해본다.



4. 안희정


굉장히 안정적인 느낌이다. 박정환의 바둑을 보는 기분이다. 뚜렷한 강점은 없지만 약점이 없다. 큰 실수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1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유의 강미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을 보면 불꽃의 승부사라는 느낌이 든다. 사카다 에이오의 바둑처럼 치열한 맛이 있다. 위기의 순간마다 역전일발의 묘수가 있다. 그리고 최후까지 승부사처럼 떠났다. 김대중은 어떤가. 대만의 린 하이펑이 떠오른다. 이중허리라는 별명의 린 하이펑은 베어 내도 베어 내도 쓰러지지 않는 거목이었다. 김영삼은 어떤가. 괴물 후지사와처럼 선이 굵지만, 3당 야합은 민주주의 최악의 악수였다. 후지사와는 감각이 좋을 때는 천하무적이지만 뻑이 문제다. 한 번 뻑을 하면 10급도 보는 수를 못 보는 인물이었다. 대신 기세가 좋을 땐 상대를 죽죽 밀어버렸다. 하나회와 금융실명제 같이, 상대는 눈뜨고 당한다. 기복이 심한 게 문제지만.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안희정의 약점은 아직 자기만의 바둑이 뭔지 감을 못 잡는 것이지만, 성장판이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발전시키면 좋은 바둑을 둘 수 있을 것이다.



5. 안철수


가장 고민한 분이다. 과연 이 분의 기풍은 무엇인가? 집도 절도 없는 기풍인가? 처음에는 고바야시 고이치로 생각했다. 고바야시 고이치의 별명은 지하철(바둑에서 실리는 땅 세력은 하늘이라 하는데, 실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땅 밑까지 판다는 의미), 짜디짠 왕소금 바둑 아닌가. 철저한 실리주의자이면서.


하지만 안철수의 행보가 실리와는 거리가 멀다. 여기서 필자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안철수의 기풍은 무엇인가? 필자는 세계최초 퓨전기풍을 떠올렸다. 바로 우주류(宇宙流) 다케미야 마사키와 극실리주의 지하철 고바야시 고이치의 기풍을 합친 기풍이다. 호방할 때는 한없이 호방하게 실리 따위 개나 줘버리고 세력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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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류(宇宙流) 다케미야 마사키


박원순 시장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할 때는 한 없이 우주류(宇宙流)에 가까웠다. 대선 때는 실리와 세력 중간에서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민주당 내에서 당권으로 싸울 때는 고바야시처럼 짜게 느껴졌다. 국민의당 가서 홀대받는 지금은 우주류(宇宙流)를 추구하다가 실리 털리고 집부족 걸린 다케미야 같다.


바둑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기풍을 명확하게 정하길 바란다. 두터운 실리형 기풍은 알파고만 가능하다. 현실의 인간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참고로 처절한 실리형 기풍으로는 이명박 가카가 있다. 땅에 대한 끝없는 사랑 그 분이 바로 가카다.



6. 허경영


IQ 430의 4차원 기풍.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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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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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다음편은 알파고 기사다. 그럼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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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