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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2016년, 인류학자 조한혜정 선생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선망국(先亡國)이라는 개념으로 세상을 보자고 말씀하셨었다. 한국은 이미 굉장히 앞서 있는 선망국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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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선진국 개념도 의미가 없어지는데 언제까지나 선진국 뒤만 쫓을 게 아니라, '선망국'(先亡國) 개념으로 바꿔서 생각합시다. 한국은 이미 굉장히 앞서가는 선망국이죠. 이 선망국에서 청년 문제, 세대 문제와 같은 사회 문제를 푸는 해법을 나름대로 찾는다면 인류에 희망을 제시하는 게 아닐까요?"


허핑턴포스트 기사 발췌 <링크>


 

사실 그 말씀을 하시던 4월까지만 해도 영국의 Brexit, 혹은 미국의 트럼프 당선과 같은 일들이 벌어질지는 몰랐다. 총선 결과에만 신경이 곤두서있던 나는 이 인터뷰를 좀 과한 말씀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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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로이터

 


난민은 120일 미국 입국 제한, 7개 무슬림 국가 출신자들은 90일 간 미국 입국 금지.

 

설 연휴 첫날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의 내용을 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08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트럼프 지지자들 상당수가 대한민국 보수 기독교의 아빠라고 할 수 있는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니, 전임 가카를 지지했던 대한민국 기독교계의 큰 목사님들이 오버랩되는 게 기분 탓은 아닐 게다. 고대 로마의 공화정을 근대에 되살렸다는 자부심으로 사는 분들이 트럼프 같은 돌연변이에는 어떻게 반응하실 지 구경하고 싶은 불온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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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IME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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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BC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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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K 공항을 둘러싼 시위대는 “Let them in”(“그들을 입국시켜라”)을 외쳤다. 힐러리 클린턴은 “I stand with the people gathered across the country tonight defending our values & our Constitution. This is not who we are.”(“나는 오늘 우리의 가치와 헌법을 지키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과 함께 합니다. 이것은 우리 미국이 아닙니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미드 하우스의 배우 칼 펜의 트윗으로 일요일 반나절 동안 국제 구조위원회(International Rescue Commit)에 30만 달러가 모금되었다. 또다른 미드, 빅뱅이론의 사이먼 헬버그는 난민 환영 푯말을 들고 배우조합상(SAG) 시상식에 참여했다. 2008년으로 돌아간 내 타임머신은 곧 우리의 2008년 봄에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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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뻘짓, 그러니까 이민자들이 건설한 나라에 이민을 금지했던 것은 트럼프 이전에도 있었다. 때때로 미국은 특정 그룹의 이민을 제한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돌아봄으로써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맞게 될 결과를 예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알 자지라의 “Six other times the US has banned immigrants”를 통해 과거의 정책들을 들여다보자.<기사 링크>



 

1. 중국인 추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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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1882년 5월 6일, 미국의 21대 대통령 체스터 A. 아서(Chester A. Arthur)는 중국인 추방법에 사인한다. "광산업에 종사중인 숙련 혹은 비숙련 중국인은 10년간 미국 입국을 불허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높은 실업률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던 미국 정부가 중국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법은 1892년에 10년간 연장된 후,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존재하다 1943년 매그너슨 법(워싱턴의 하원의원 워렌 G. 매그너슨이 제출한 이민 규제법. 중국인 추방법 이후 중국인의 이민을 최초로 허용한 법 – 편집자 주)이 발효되면서 철폐되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은 중국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었으니 중국에 줄 당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2. 아나키스트 추방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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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1903년 3월 3일,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아나키스트 추방령에 사인한다. 그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가 폴란드 출신의 아나키스트 레온 촐고츠의 저격에 치명상을 입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903년 이민령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이 법안에 아나키스트와 함께 미국 입국이 불허되었던 이들은 간질환자, 거지, 그리고 매춘부였다.


 

3. 2차대전 중의 유대인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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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2차대전을 이끌었던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는 유대인 난민들이 국가 안보의 잠재적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나치 간첩들이 그들 중에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신박한 이유 때문이었다. 미국은 연간 2만 6천명의 유대인 난민만 받겠다고 했는데,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이후 이 쿼터의 1/4정도만 입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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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악명높은 경우는 세인트 루이스 대서양 정기선의 승객을 돌려보낸 것이었다. 당시 배에 타고 있던 937명의 승객 중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 강제로 유럽으로 되돌려 보내진 승객들 중 1/4는 홀로코스트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트위터 @Stl_Manifest 는 이 배에 탔다가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4. 공산주의자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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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1950년 8월 23일, 미국의 33대 대통령 헤리 트루먼(Harry S. Truman)은 일명 매캐런법, 혹은 전복 행위 방지법으로 알려진 국내안보법에 서명한다. 공산주의적 활동을 하는 단체나 지역 정당에 가입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의 이민을 금지하는 것으로, 이후 공산당 조직원들은 관계 기관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했고 미국 시민권자가 될 수 없었다. 1993년 미국 대법원에 의해 헌법 불일치 판결을 받았으나, 이 법안의 일부분은 아직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남아 있다.

 

 

5. 이란인 입국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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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1979년 이란 혁명 직후 미국 대사관에 갇힌 52명의 미국인들이 444일간 억류되자,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그리고 1980년 4월 7일에는 이란인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2017년, 이란인들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으로 또다시 미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됐다.

 
 

6. HIV 양성 반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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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재임시절, 미국 공중보건국은 위험하고 전염성 있는 질병 목록에 HIV를 추가했다. 미국 상원의원 제시 헬름스(Jesse Helms)는 헬름스 개정안을 통해 HIV 양성 반응자를 입국 금지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1987년 이 법안이 발효되면서 HIV양성 반응을 보인 이들의 미국 입국이 금지된다. 하지만 이것은 HIV가 호흡기로도 감염된다는 잘못된 믿음에 기초했던 것으로, 동성애자와 외국인 혐오의 이론적 토대가 되어버렸다.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는 2009년에 이 법안을 폐기했다.

 

 

특정 집단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법안은 트럼프 이전에도 존재했다. 지금 보면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일이 과연 미국의 '국가 안보'와 얼마나 상관이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큰 교회 목사님들은 다르게 말씀하시겠지만.


 


나가며

 

2017년 1월 29일, 매사추세츠 보스턴의 코플리 광장에서 한 여성 정치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것부터 확실하게 합시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국가안보를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살인자들로부터 도망친 어린 소녀들은 미국에게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공항에 억류된 할아버지들 역시 미국의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이곳 메사추세츠에서 공부하며 일하는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노동자들도 미국의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라크인 통역자들 역시 미국의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명령은 테러리스트의 위협에 대응한 것이 아닙니다. 이 명령은 종교적인 시험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종교적인 시험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 명령은 불법이고 우리의 헌법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주주의 근간에 반하는 것입니다. 전국의 법률가들은 모든 것을 던지고 달려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보스톤에서 우리는 이미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일부 정지시켰습니다. 메사추세츠의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을 위해 박수쳐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 행정명령이 쓰레기통에 들어갈 때까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헌법과, 헌법의 원칙을 위해 계속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트럼프가 민주주의의 핵심을 조금씩 쪼개서 버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곳 보스턴에, 메사추세츠 전역에, 전 미국에, 더 나아가 전세계에, 우리는 난민과 이민자들에게 등돌리지 않겠다고 말합시다. 우리는 ISIS가 종교적 증오에 기반한 모병을 할 더 이상의 자원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메사추세츠의 가치를 옹호할 것이고, 미국의 가치를 옹호할 것이며, 인간의 가치를 옹호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도널드 트럼프의 증오 분할로 나눠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무슬림 형제 자매들과 함께 어깨 걸고, 우리 중 한 명에 대한 공격이 우리들 모두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법원에서, 의회에서, 미국 전역에서 다시 반격할 것입니다.


이곳에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당신들 앞에서 연설할 수 있어서, 여러분과 함께 어깨 걸고 함께 싸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미국은 좋은 나라이며 미국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미국은 모든 인류의 품위를 믿는 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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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Huffington Post



이 분, 메사추세츠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렌이다. 작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명연설을 남겼던 이 분. 트럼프의 난이 본격화된 2017년에 주목해야 할 첫 번째 미국 정치인으로 추천한다. 우리에게 이런 정치인이 2008년에 있었다고 한다면 9년을 끌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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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bc news

 


1964년 셀마 몽고메리 행진을 시작했던 600여명은 흑인이 투표권을 쟁취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나서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장구한 투쟁과 승리의 역사는 사람들의 DNA에 각인되고, 그 누적된 경험은 결연히 싸울 수 있는 동력이 되기 마련이다. 2008년의 촛불이 2016년의 촛불로 진화했던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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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nn


 

선망국의 국민은 트럼프의 난에 휘말린 미국인들의 건투를 빈다. 부디 우리에게까지 불똥이 튀기 전에 정리해주시길.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2017년 설에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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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Samuel Seong

트위터 @ravenclaw69

 

편집: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