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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오늘 오후 3시 30분,


반기문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버렸습니다.


그는 스쳐지나간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기록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 기사를 그대로 공개합니다.






법적 자격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하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자격 여부를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이미 2년 전 즈음,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가 선거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분석을 보도한 언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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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위 링크된 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선거법 16조는,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 국민’에게만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이 UN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지금은, 이 조항에 대한 중앙선거관리 위원회와 법조인들의 해석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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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박찬종 변호사와 같이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가 헌법 제 67조와 함께 유엔총회 결의안 11호를 함께 위반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의 법이 힘 있는 이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선관위에서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자격에 태클을 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반 전 총장이 지난 10년간 몸담아 왔던 조직, UN에서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1946년 1월 24일, 제1차 UN총회에서는UN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결의안’(Terms of appointment of the Secretary-General, 결의안 번호 A/RES/11. I)을 발효했다. 


UN공식 홈페이지의 결의안(링크) 4(b)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Because a Secretary-General is a confident of many governments, it is desirable that no Member should offer him, at any rate immediately on retirement, any governmental position in which his confidential information might be a source of embarrassment to other Members, and on his part a Secretary-General should refrain from accepting any such position.” 



위 결의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엔 사무총장은 각 국가의 기밀을 관리하는 단체장으로서 임기가 끝나 본국으로 돌아가면 정부의 어떤 요직도 맞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위 내용 중 해석의 논란이 되는 부분 있다. 1) it is desirable, 2) immediately on retirement, 그리고 3) offer


첫 번째로, “it is desirable…”라고 표현된 부분은 “-하는 게 바람직하다”라는 뜻으로 법적 효력이 없는 권고사항에 사용되는 문구다. 때문에 이를 조금 가볍게 생각해 본다면,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는 규율’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규율’이라는 단어에는 ‘스스로 지켜야 할’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구속력이 없다 하더라고 고위관료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최소한의 직업윤리이며, 그것을 기반으로 한 ‘약속’이라는 뜻이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한 사람이라면 강제력이 없더라도 이를 지킬 정도의 양심과 신의는 있을 거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조항일 것이다.


두 번째로 논란이 되는 부분은, ‘immediately on retirement’(퇴임 직후)라는 단어이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탄핵이 가결될 경우, 60일 내에 대선이 치러져야 한다. 만약 이 기간이 짧아지면 짧아질 수록을, 반 전 총장은 ‘퇴임 직후’라는 단어에 더 많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헌재 판결이 1월에 결정된다면, 2016년 12월 31일 사무총장 임기가 끝난 반 전 총장은 퇴임 직후 1달 만에 대선 출마를 발표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이 들고나온 반론은 세 번째 사항과 관련이 있다. “offer”(제안하다)라고 표현된 부분이다. 반 전 총장은 위 권고사항이 정부의 제안으로 수행하게 되는 ‘임명직’에 한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요직을 맡도록 누군가가 ‘제안’해서도 안 되고, 설사 ‘제안’을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을 문자 그대로 직역하여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대선은 투표를 통한 ‘선출직’이므로 UN결의안과는 크게 연관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문자적인 해석으로는 일리가 있는 반론이다. 


자, 그렇다면 UN 결의안의 4(b) 조항에 담긴 ‘본질’은 무엇일까? 수많은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UN결의안에 위와 같은 조항을 포함시켰던 근본적인 이유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UN 사무총장실은 가입국의 기밀사항을 다루는 핵심 조직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보를 갖고 있는 인물이 한 국가의 정부 요직을 맡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UN은 초국가적 단체이므로 이곳에서 얻은 정보를 어느 한 국가의 이득을 위해 사용할 수 없고, 사용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사무총장이 자신의 출신국으로 돌아가 국가의 대표가 될 수 있다면, 정보획득을 위해 각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자국 출신의 UN 사무총장을 앉히기 위해 혈안이 될 수도 있다. 이 정도의 상식은 굳이 강제하지 않아도 서로 암묵적으로 잘 준수할 것이라는 신의가 가입국들 사이에 존재했고 지금껏 별 탈 없이 지켜져 왔다.



사례들


UN 사무총장은 다음 단계의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써 맡는 요직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안녕과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존재이므로, 퇴임 후의 행보 역시 그에 걸맞길 기대받는다. 역대 UN사무총장들은 퇴임 후의 삶을 어떻게 보냈을까.


7명(반기문 제외) 중, 고국으로 돌아가 대통령 선거에 나간 사람은 총 2명이다. 4대 사무총장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쿠르트 발트하임과 5대 사무총장인 페루 출신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Javier Pérez de Cuéllar)다. 


전직 사무총장 중 대선에 출마한 두 인물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쿠르트 발트하임(임기: 1972년~1981년 12월 31일)의 경우, 사무총장의 퇴임 5년 후인 1986년 오스트리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런데 그는 애초부터 대통령에 뜻이 있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UN 입성 전인 1971년, 오스트리아 대선에 출마해서 낙선한 경력이 있다. 후에 그는 ‘기피 인물’(Persona non grata)로 분류되어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에서 입국 거부를 당하는 치욕을 겪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당에 가입해 활동했던 전력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뻔뻔하고 비양심적인 태도를 보였다.


케야르(임기: 1982년~1991년 12월 31일)는 퇴임 4년 후인 1995년 4월, 페루 대선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대통령의 꿈을 접은 후, 총리를 역임했지만 페루 국민들의 후지모리 독재정권의 부패 타도에 영향에 휩쓸려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뼛속까지 외교관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그였지만, 죽을 때까지 권력을 쫓아다녔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평가도 있다.


7명 중 2명이 UN사무총장 출신으로 본국에 돌아가 대선에 출마했다. 비율이 약 28% 정도 된다. 적어도 이들은 퇴임 직 후가 아닌, 4-5년 정도의 공백기를 갖는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는 보였다.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에 대해, 전임자들의 사례가 있기에 대선 출마가 무리가 없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단순한 숫자나 통계에 의존하기 보다는, 전임자들 중 누구를 본받아야 하는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은 유엔에 어떠한 선례를 남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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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코피 아난 - 유엔 공동수상 (링크)



그런 의미에서 반 전 총장의 전임자인 코피 아난은 반추해볼 만한 인물이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세계평화유지에 이바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 기사 참조). UN사무총장 퇴임 즈음, 그 역시 자신의 모국 가나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다. 지지율이 80%에 육박했고 수많은 정치 러브콜이 이어졌지만, 그는 끝내 출마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가나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였다. 코피 아난도 ‘이 한 몸을 불사르겠다’는 말을 왜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어려운 조국을 위해 헌신 봉사하겠다는 뜻이 그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인 행보는 개인의 출세 욕구 해소와 거리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자국의 유익에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전직 UN사무총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코피 아난은 재단을 설립하고 UN 특사로 국제분쟁의 중재에 나섰다. 각종 인권 이슈들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며, 그는 그렇게 가나를 초월해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유엔의 고귀함을 한 단계 높였고, 퇴임 후에도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삶에서 보여줬다.



반 전 총장에 대한 평가


지난 2016년 6월 4일자 이코노미스트에서, UN 사무총장 대변인실의 'Stephane Dujarric'이 독자투고를 통해 반 전 총장에 대해 평가했다 (링크).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의견 일치를 얻어내는 데 도움을 주었고,
2. 양성평등을 위해 힘썼으며 UN 전반에서도 기록적인 수의 여성 고위직을 임명했고,
3. 유럽의 외국인 혐오와 아프리카의 성 소수자 차별, 이란의 대량학살 부인 등 논란 많은 인권 문제 해결에 앞장서 왔으며,
4. UN군의 평화유지 활동을 강화했고,
5. 관료주의를 철폐하고 IT 시스템을 개편해 UN을 현대화시켰음.


하지만, 반대되는 평가를 하는 언론사들의 기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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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반 전 총장을 역대 최악의 우둔한 유엔 사무총장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영국의 가디언(Guardian)도 유엔의 역할을 축소 약화시켰다는 평가를 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힘이 없고 투명인간과 같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는 유엔을 너무 무능하고 무의미한 단체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한 마디로, 전 세계의 각 나라들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UN이라는 초국가적인 거대 기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손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도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고, 그 결과 전쟁은 나토(NATO)가, 난민 문제는 유럽연합이 해결해 나가고 있다. 반 전 총장에 대해 보다 정확하고 종합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면, 외신들의 반응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주변 문제


1. 장남 반우현의 SK 텔레콤 뉴욕사무소 특혜 건, 

2. 조카 반주현의 2013-2015년 경남기업 소유 베트남 랜드마크 72의 카타르 매각 주선 과정에서 계약서 위조 및 59만 달러 손해배상 판결이 난 것, 뉴욕 연방법원의 뇌물죄 기소 추가

3. 둘째 딸 반현희의 남편 싯타르트 채터지를  UN 고위직인 케냐 상무조정관에 임명한 UN사무총장 사위 정실인사 건, 

4. 마지막으로 친동생 반기상, 반기호 등의 행보에 따라 경남기업, 보성파워텍 등 반기문 테마주의 주가가 급등락한 건 


이처럼 해명해야 할 이슈가 많이 남아 있는 반 전 총장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사상 최악의 총장'이라고 평가를 받으면서도, 선거법 및 UN  결의안 해석에 대한 문제를 지니고 있고, 가족 비리까지 얽혀 있는 반 전 총장이 무슨 이유로 10년 만에 찾은 고국에서 대선 출마를 하겠다고 한 것인지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는 정치적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대선에 나오게 되면 당선 여부를 떠나, 전 세계적으로 국가 이미지 손상은 물론, 이러한 전례 때문에 앞으로 한국인이 UN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는 것은 물 건너간 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인이 UN직원으로 일하는데도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꼭 얘기하고 싶다. 


한때, 한국인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했던 ‘세계 대통령’ 반기문이 ‘욕심쟁이 할베’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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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대한민국 대표가 될 자격에 대하여(1)





BRYAN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