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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사퇴, 이후의 정국


사실 이번 선거에 제대로 된 여권 후보가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집권여당’이라는 말이 있듯이 청와대 주인장과 그를 배출한 여당은 보통 한 몸으로 간주된다. 그런 상황에서 청와대의 주인장이 동서남북과 상하좌우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를 둘러싼 소위 ‘비선 실세’들은 풀밭에 풀어놓은 강아지 떼처럼 여기저기 똥오줌을 싸놓으면서 국가를 헤집고 다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판이다.


청와대 수석들, 국무위원 장관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유신 때부터 이 땅의 메인 스트림을 유지해온 사우론 김기춘 대마왕까지 수갑 차고 잡혀가는 마당이며, 박근혜 본인은 탄핵 인용만 되면 청와대 정문에서 체포영장 들고 대기하던 검사들과 수인사해야 할 처지이면서도 인터넷 티브이에 나와 “모두 정리해 버리겠다”는 얘기나 늘어놓고 있다. 정신이 빠져도 이렇게 빠지기 힘든 총체적 난장판이라는 얘기다.


여권의 대선주자로 나선다고?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하고 짱 박힌 무성 대장의 판단이 옳았다. 이번 판은 죽는 판이다. 여권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이걸 뒤집을 만한 일은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헌재에서 탄핵을 기각하는 경우인데, 대선이고 뭐고 나라 뒤집어진다. 헌재의 재판관 어르신들이 그걸 모를 사람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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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외국에서 살면서 감을 잃어버린 노인네 한 분이 귀국만 하면 꽃가마 태워서 청와대 데려다 주는 줄 알고 있다가, 어마 뜨거라 하면서 도망쳐 버린 것은 어찌 보면 이미 정해져 있던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모두가 서로서로 반기문의 중도 사퇴는 내가 족집게처럼 맞춘 일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나 보다. 그거 최소한 국민의 절반 이상은 예측한 일이니 민망하게 자랑 너무 많이 하지 마시라. 그만둘 사람이 그만둔 것뿐이다.


문제는 반기문 이후다.



대세론


현재 지지율 1위, 지난 대선에서 무려 48%가 넘는 득표를 한 강력한 야권 대표선수 문재인이 대세론의 주역이다. 본인도 그걸 인정한다. 원래 옆에서 “당신이 대세”라고 얘기하면 손사래 치면서 아니라고 하는 게 보통인데, 쿨하게 인정할 정도로 대세론이다.


이제 반기문이 빠진 레이스에서 문재인의 상대를 할 여권 주자는 찾기 힘들다. 황교안? 아직 출마 선언도 안 했다. 그는 출마하지 않아도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족보에 기록될 것이다. 장관만 해도 족보에 정승판서급이라고 기록되는데 대통령 권한대행은 뭘로 기록되려나. 굳이 위험부담을 지면서 출마하려고 할까. 출마한다고 해도 지지율이 나오기는 할까. 


그 밖에 남경필, 유승민, 원유철….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그럴싸한 후보가 없다.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 출마설까지 나올 정도로 여권에 주자가 없다. 가장 곤란한 처지에 빠진 경우는 나경원이다. 어디에 붙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오세훈도 마찬가지. 잘 다니던 신문사 사직하고 반기문 진영에 합류했다가 한 주일 만에 실업자 신세가 되신 분도 있으니 다들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기 바란다. 아, 사무실 랜 케이블 공사하시던 분들, 시공 공임은 받으셨나 모르겠다. 출마 안 하더라도 낼 돈은 내셔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상대 진영에 경쟁마가 없는 상황이 문재인 후보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얼핏 생각하면 대세론이 굳어지면서 꽃길 열리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문재인은 경쟁자 없는 선두주자가 되어 자신을 추격하는 당내 이인자 지지그룹에게 거센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동안은 ‘같은 편’끼리 너무 험하게 싸우면 이적행위라는 논리가 통했다. 하다못해 기름 장어라도 있으면 그런 논리가 통한다. 정권교체가 제일 중요한데, 지금 왜 같은 편끼리 총질을 하냐는 논리가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독 대세가 되면 자신을 향한 비판의 칼에 맞서야 하는 곤란한 상황을 맞딱드린다.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공약, 그리고 중요한 사회적 안건에 대한 확실한 입장이 없다면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힘들다. 상처를 입게 된다. 지지자들과 똘똘 뭉쳐 정권교체를 위해, 사람 사는 세상의 적들인 새누리 악당들을 처단하기 위해 돌진하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는 이야기이다.


적이 있는 싸움과 적이 없는 싸움은 이렇게 다르다. 문재인 진영은 과연 이런 상황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실 이런 싸움은 문재인 후보가 준비해온 싸움은 아니다. 성격이 많이 다르다.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유권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판을 싫어한다. 아니, 유권자들이 싫어하기 이전에 민주주의의 핵심은 유권자들의 선택권이다. 단독 대세가 주름잡는 선거판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단독 출마는 박정희나 하는 짓이거든.


특히 야권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는 이미 따 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후보를 저울질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 야권에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많은 훌륭한 후보들이 와글거리고 있다. 안희정, 이재명, 김부겸이 있고, 안철수, 정동영, 손학규(풉)가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한 이유는 바로 “사진 : 손학규 제공” 이 떠올라서 그랬다. 이해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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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단독 대세론의 주인공이 되는 상황은 야권 내부의 치열한 다툼을 초래하고, 이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선택권을 넓혀주는 바람직한 상황이 된다는 얘기를 하는 중이다.

매번 선거 때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고르지 못하고, 그놈의 정권교체가 뭔지, 비판적 지지가 뭔지, 힘을 몰아줘야 한다는 호소 아래 맨날 표 몰아주고, 그래 봐야 깨지고 돌아서서 내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고 떨어지건 말건 내가 좋아하는 후보 찍겠다고 피눈물을 삼키던 그런 불행한 유권자들이 더 이상 안 생기게 된다는 얘기이다. 이거 꽤 큰 얘기다. 참정권 강화를 의미한다.


비록 문재인 후보 본인이나 그를 지지하는 그룹에겐 불편하고 난감한 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결선투표 같은 것을 왜 도입하자고 그러겠는가, 좀 마음 놓고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택하고 싶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말이다.


물론 문재인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의 비율이 충분히 많다면 이대로 쭈욱 달려가서 끝까지 문재인 대세론으로 선거가 마무리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오히려 절반이 넘는다. 그렇게 되면 이번 대선은 이명박 vs 정동영 대선만큼이나 맥 빠진 승부가 될 것이다. 심지어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쫓아내고 치르는 선거이면서도 말이다.


대세론은 잘 안 무너져서 대세론이다. 그러나 대세론은 언제나 무너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세론이다.


문재인 지지자들에게는 야속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재인 지지자들도 이면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후보 본인의 입장에서도 그냥 대세론에 올라타 별다른 마찰 없이 순조롭게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보다 당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선거과정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확인하고, 자신의 공약을 재점검하고, 미래에 대한 자신만의 비전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되고, 문재인 본인의 정치적 경력 부족을 메울 연습과정이 될 수도 있다.


지지자들에게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내가 왜 문재인을 지지하는지, 문재인은 다른 후보와 뭐가 다른지, 문재인이 아니라면 왜 아닌 건지, 그에 대한 반론은 뭔지, 무조건 “문재인이 조아요~”를 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문재인 후보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개선해 나갈 사항이 뭔지를 정리해 볼 기회가 생긴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끝이 아니다. 그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당선 이후 어떤 정권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부족하다면 당선 자체가 오히려 국가 차원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노무현의 최대 업적은 2002년 대선 승리였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무현이 역사적이고 기적적인 대선 승리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선된 이후 참여정부의 행보가 생각했던 것만큼 순조롭지 않았고, 당선되기까지의 그 험난한 여정에 비해 당선된 이후의 참여정부의 활동이 백배 천배는 더 어려웠다는 의미까지 담겨 있는 말이기도 하다.


어쨌든, 반기문 이후의 대선 정국이 흘러갈 가장 가능성 높은 경로는 문재인 단독 대세론이다. 이건 현실이다. 하지만 만약 그 대세론이 붕괴한다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까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대세론이 붕괴한다면


앞에서 말했듯이 대세론이 붕괴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지만, 붕괴한다면 훨씬 더 역동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누구는 이런 상황을 슬퍼할 것이며 누구는 더 즐거워할 것이다. 시스템의 붕괴는 새로운 창조 활력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시스템의 붕괴는 항상 극심한 고통과 새로운 활력을 같이 한다는 점, 역사적 진리다.


현재 스코어, 문재인 대세론이 붕괴한다면 아마 안희정에 의해서 일 거다. 많은 사람들이 안희정은 페이스 메이커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페이스 메이커는 이재명 시장일 가능성이 높다. 탄핵 정국 하에서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모은 이재명 시장 본인도 언급한 바 있다. 자신은 페이스 메이커 역할만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당선을 생각하는 후보자의 행보라면 소수파를 파고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재벌 해체를 주장하고, 기본소득의 초기 형태를 주장하는 강성 발언을 이어가는 것은 일부 강성 지지자들에게는 속 시원한 얘기이고 환영할 만한 행동이겠지만, 한국 사회의 유권자 성향 분포를 고려한 선거 전략 차원에서는 자살행동에 가깝다.


초기 인지도 상승을 위해 간혹 사용될 수 있는 전략이지만 전국 선거에서 장기적인 지지율 확보를 이루기 힘들다. 단적인 증거가 초반 급상승세를 이끌던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이 다시 하강하면서 안희정 지사와 유사하거나 그보다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선거 전략에 따른 문재인 후보의 행보로 인해 전통적인 야권 지지자나 강성 좌파 유권자들은 불만을 토해낼 수 있다. 이재명 시장은 그 불만을 틈새시장으로 보고 노리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권자들의 비율은 지극히 적기 때문에 열렬한 충성도를 가진 소수의 지지만 받을 뿐 외연 확대에는 도움이 안 된다.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위험한 후보”라는 이미지만 줄 뿐이다. 이걸 이재명 시장 본인이 몰랐을까?


좌클릭하는 이재명이 있다면 우클릭하는 안희정이 있다는 얘기처럼, 안희정 지사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 왔다. 386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노무현의 정권창출을 바로 옆에서 도왔고, 그 혜택을 온몸으로 누리던 이광재와는 달리, 큰 건에 책임을 지고 죄명도 좋지 않은 뇌물 수수로 징역살이를 하고 온 안희정인데, 이번 대선에서 그가 주장하는 정책들은 매우 우파적이다.


“이재용의 구속영장 기각을 존중한다”거나, “국민들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나한 발언은 새누리 후보가 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이런 부분에서 살짝 티가 나기도 한다.


거기다가 젊다. 실제로는 별로 젊지도 않은 나이이지만, 매우 젊다는 걸 강조한다. 충남 엑소(근데 EXO가 아니라 XO 였다)에 이어 충남 공유, 안유를 외치는 그의 SNS 행보를 보면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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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이 물러나면서 경쟁 상대가 없어져 단독 대세론 물결의 꼭대기에 앉아 일인자의 공허함을 씹고 있는 문재인은 안희정의 입장에서는 아주 공략하기 좋은 상대다. 안희정은 문재인을 마음껏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러지 못한다. 문재인이 발 벗고 나서서 안희정하고 멱살잡이를 하면 그건 동급이 된다는 의미인데, 그게 안희정이 바라던 바다. 답보상태에 빠진 문재인의 지지율과 치솟아 오르는 안희정의 지지율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결정적으로 안희정에 우호적인 가장 강력한 우군은 이쪽 편이 아니라 저쪽 편에 있다.



여권 지지자들의 선택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야 된다. 그들에게도 표는 주어진다. 거기다가 숫자도 많다. 그들의 심리는 어떨까? 탄핵반대 집회하는 사람들은 뭐 논외로 치자. 몇 되지도 않고.


일단 박근혜 생각도 하기 싫어한다. 하지만 나라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이 사회에는 우파도 있고 좌파도 있어야 하지만 종북은 안 된다. 그런데 문재인 씨는 종북인 것 같다.“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 거주하시는 어떤 분의 말씀을 옮겨 본 것이다. 이런 생각하는 사람, 정말로 많다.


문재인이 종북이라고? 좌우의 날개로 날아가는 새가 웃다가 떨어질 소리이다. 그러나 수많은 여권 지지자들은 그걸 사실이라고, 최소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왜 그럴까? 2012년 대선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마타도어의 결과라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개성공단 폐쇄한 걸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빨갱이들과 합작하는 개성공단을 만든 참여정부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을 종북이라고 생각한다는, 해괴한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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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잘못된 사실이 상당히 많은 유권자 대중의 심리에 퍼져 있고, 그게 반문재인 정서로 드러나고 있으며, 이번 대선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빠져 민주당의 지지율을 견인하기는커녕 반대로 민주당의 지지율에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이 논리로 설명이 된다.


“박근혜가 잘못한 거 맞는데, 문재인은 아니야.”라고 외치는 소리, 이번 설 연휴에 무수히 많은 가정에서 울려 퍼졌다.


반기문이 빠지자마자 안희정의 지지율이 급등한 것 역시 설명이 된다. 이제 더 이상 기댈만한 여권 주자가 없으니 문재인보다는 안희정을 밀어줘야 되겠다는 심리적 반응이 드러난 것이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도 해석이 된다. 문재인의 민주당이라면 안 되겠는데 안희정의 민주당이라면 한 번 정권을 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는 심리 말이다.


여기까지는 그저 벌어진 일에 대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반기문 사퇴, 아니 후보로 등록한 적도 없으니 사퇴도 아니지, 그냥 중도포기로 인해 벌어진 상황에 대한 ‘가능한 하나의 해석’일뿐이다. 그러나 이 해석이 맞다면 여권 지지자들의 문재인에 대한 배척 심리로 인해 안희정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으며, 문재인 단독 대세론을 붕괴할 동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하기 힘들다. 그저 가급적 합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노력할 뿐.


안희정이 야권의 대표주자로 올라가는 현상이 관측되면 여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대가 문재인이었을 때, 황교안은 그림이 된다. 전전 정권의 비서실장 대 이 정권의 총리 간의 선거전 말이다. 세대론적 관점에서 봤을 때에도 53년생 문재인과 57년생 황교안의 대결로, 같은 50년대 생들 간의 경쟁이다.


그러나 안희정은 ‘충남 엑소’를 얘기하는 65년생이다. 사오십 년대 태어난 사람들이 보기에는 철모르는 핏덩이가 대통령을 하겠다는 그림으로 보인다. 그러면 여권에서도 황교안으로는 뭔가 걸맞는 그림이 안 나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박근혜 찍었다고 자식들에게 욕을 그렇게 먹던 여권 지지자들도 우리도 뭔가 좀 젊은 이미지로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할 텐데, 그럼 유승민이나 남경필이 전진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유승민이 좀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황교안은 57년생이고 유승민은 58년생이지만, 일반 유권자들은 최소한 십 년은 차이 난다고 느끼고 있다는 믿지 못할 얘기도 있긴 하다)


대선이 갑자기 안희정 vs 유승민이라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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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미터>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 반기문이 빠져나간 대선판은 문재인의 단독 대세론이 유지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 상대역으로는 황교안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단독 대세론이 이어질 경우, 이번 대선은 문재인 vs 황교안의 판이 되고, 문재인의 압승으로 마무리된다. 그럴 가능성이 최소한 절반 이상이다. 세상에 이변은 그리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 너무 오만해 보이지 않게 표정 관리 잘 하시고, 큰 실수 안 하도록, 세상 사람들에게 인심 잃지 않도록 행동에 주의하시면 된다. 제일 나쁜 것은 이미 대통령 되기라도 한 것처럼 거들먹거리거나, 캠프 내에 장관 자리 놓고 벌어지는 싸움이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는 일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빌미를 주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해서, 유권자들 눈살 찌푸릴 일이 없길 바란다.


단독 대세론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안희정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조금은 마이너 한 예상도 곁들여야 한다. 문재인에 대한 비토심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며, 믿을 만한 주자가 없는 여권 지지자들이 안희정을 고르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단독 대세론이 무너지면 대선 판은 급변하면서 안희정 vs 유승민의 판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해본다.


어느 쪽이건 그림은 나쁘지 않다. 내가 겪어본 어떤 대선도 이렇게 낙관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적은 없다. 매우 해피한 상황이다. 그 와중에서도 판이 흔들리는 상황 이후의 그림을 굳이 골라보라 한다면, 안희정 vs 유승민 판을 선택하겠다. 문재인 지지자들 중 다수도 안희정이라면 '뭐 크게 불만이 없다' 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일부 극렬 지지자들이야 펄쩍 뛰겠지만 말이다.


내 이유는 단 하나. 단 한 살이라도 젊은 정치인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길 원한다. 40대 대통령은 못되더라도 70대 대통령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게 전부다.



뱀발


끝으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덧붙이자. 이번 대선에 대한 민심을 알아보려고 나름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는 중인데, 약간은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


조금 강하게 표현하자면, 유권자 대중은 이번 대선에 대한 관심을 이미 잃어버렸다. 그들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염증이다. 탄핵이고 대선이고 지겨워 죽겠으니까 빨리 마무리하고, 누가 잡건 아무나 정권을 잡아서 먹고 살 수 있게 좀 하자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사는 경제다. 조선업의 붕괴, 엄청난 충격이다. 중국의 경제 제재, 만만치 않은 위협이다. 어느 한 구석 잘 돌아가는 곳이 없다. 박근혜 때문이라고? 박근혜만 없어지면 다 잘 풀릴까? 과연 누가 와서 이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차기 대통령은 욕만 먹다가 끝날 수도 있고, 역사에 한국 경제 말아먹은 장본인이라고 김영삼보다 윗줄에 기록될 지도 모른다. 그게 뭐 좋은 일이라고 다들 그렇게 서로 하려고 그러는지….


문제는 경제다. 경제는 지금 빈사상태이며, 우리의 위험한 미래는 이미 우리 옆에 와 있다. ‘경제위기’라는 얼굴을 들이대면서.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