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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 금요일

제이슨






덕수궁 정문에서 서울광장으로 걷다 보면 환구단(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이 보입니다.


옆에는 재능교육 을지로 사옥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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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은 2013년 8월 26일에 현안 노사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4천명의 재능선생님과 함께 해직자 여러분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라고 적힌 플랜카드가 펄럭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금도 재능교육 건물 앞에는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복직을 외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많은 분들이 오랜 노사문제가 극적 타결되어 잘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을 그렇지가 않습니다.


재능교육 선생님의 투쟁 시작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보너스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불합리한 수수료 삭감에 반대하였고, 이에 해고 협박을 하는 사측에 맞서 소수 인원이 모여 시작 했던 게 혜화동 본사 앞 천막 농성입니다.


재능교육 유명자 지부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나오신 지 무척 오래 되셨어요. 2100일이 넘었죠? (2013년 10월 15일 월요일)


오늘이 2124일 이에요.


-99년부터 노조 활동이 있었는데 몸 상태는 어떠세요?


중간 중간 저뿐만이 아니라 다들 크게 아팠죠. 버티고 있습니다.


-단식도 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11년 3월에 했는데 위가 안 좋으니 쉽지 않더라고요. 물만 마시며 했었고, 한 달은 우습게 할 줄 알았더니 만만한 게 아니더라고요. 투쟁 단식은 건강한 사람들이 해야 해요.


-처음 시작하신 후,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처음 시작은 99년에 노동조합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려고 나온 거예요. 33일간 파업하면서 노동부로부터 합법적인 노조 필증이 나왔는데 그래도 회사는 인정 못 한다며 보름 정도 버텼어요. 처음에 회사랑 2000년 5월에 단협(임금 단체협약)을 체결했어요. 단협의 유효기간이 2년이니까 2002년에 다시 단협을 체결했어야 했는데 회사가 그때부터 노조를 없애려고 작정을 한 거죠. 한 번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나서 계속 현장에서 노조 탄압을 시작했고, 단협도 자주 위반했어요. 3년 투쟁 후에야 갱신을 했는데 그게 2004년 9월이에요.

 


1.노조결성 단계


1999. 

노동조합 결성 33일 파업


2000. 5. 

첫 단체협약 체결


2001. 

임금협약 체결


2002. 

단체협약 2년 유효기간 만료, 갱신필요

회사측 노조탄압 시작, 협약위반 빈번


2004. 9. 

단체협약 2년 갱신



-지금까지 이어지는 농성 투쟁은 2007년에 시작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7년에 새롭게 단협이 체결 됐는데 그 단체협약이 문제가 심각했어요. 임금이 삭감되는 수수료제도 조항이 있어요. 저희는 임금이라고 못 부르고 ‘수수료’라고 불러요. 저희는 특수고동노용자에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회원을 관리하고, 받은 회비 전체에서 일정 %를 실적에 따라 수수료로 받기에 고정 급여가 아니에요. 바뀐 수수료 제도의 문제는 전 월과 동일한 회원 수를 가지고 일했는데도 변경 제도를 적용하니까 현장에서 2-30만 원 많게는 100만 원까지 임금이 삭감되는 불합리한 제도에요. 그것도 교섭 석상에서 논의하며 만들어진 게 아니라, 회사가 교섭을 지연하고 회피하다가 일 년 만에 노조에 던진, 회사 일방에 의해 만들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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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문제는 그걸 노조가 잘 모르고 받은 거죠. 2007년 5월 17일 날 체결했는데 한 달 후 6월 17일 날 봤더니 반대했던 저희가 예상했던 수치보다 급여가 심각할 정도로 대폭 삭감이 된 거에요. 2007년 6월부터 지도부 사퇴를 요구했고, 새 집행부가 2007년 11월에 들어섰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뭘 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저희 새 집행부 맡은 사람들이 '우리가 본사 앞 천막이라도 치자' 그러면서 처음으로 농성 시작한 게 2007년 12월 21일이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왔어요.

 


2. 본격 투쟁 주요일지와 내용


2007. 5. 17.

단체협약 당시 수수료 삭감 제도 일방적 통보 받음

노조는 부당한 조항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총투표 후 계약 체결

 

2007. 6. 17.

한 달 후 예상보다 급여 대폭삭감 인식, 지도부 사퇴 요구

 

2007. 11.

노조 새 지도부 선출

 

2007. 12. 21.

농성 시작,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



처음에는 단체협약 전체가 아니라 '단체협약 내에 있는 수수료 제도 전면 재개정' 단지 그게 요구였어요. "현저히 노동 여건이 저하됐을 경우에 재교섭을 통한 보충 협약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니까 그걸 하자는 것이었는데 회사는 일방적으로 악선전을 했죠. 노사의 교섭에 의해 합법적으로 타결이 된건데(전 집행부 때 체결한 단협을 말한다.), 권력 침탈에 야욕을 갖는 불순 세력들이 전 집행부를 쫓아냈다며 현 집행부에 대한 악선전을 했어요. 우리는 전체 조합원 선거 총회를 통해서 선출된 지도부거든요. 그럼에도 회사는 교섭에 응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보충협약 대상 아니다, 재교섭 할 수 없다"면서. 그러다가 회사가 2008년 10월에 일방적으로 단협 해지 통보를 하죠. 그때 당시에 노동조합 활동을 전적으로 하는 전임자 두 명도 해고 시켰어요. 그러면서 2008년 말부터는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복직'으로 투쟁의 요구가 확대 된 거죠. 


회사가 2008 10 2일부터 2009년, 2010년 등 매년 단계적으로 해고를 했어요. 농성 투쟁을 집중적으로 하는 간부들이 표적 해고를 당하여 마지막에 생긴 해고자가 11명, 10년 전에 노조 활동으로 인한 해고자 1명, 이렇게 해고자 총 12명의 전원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걸고 지금까지 이렇게 온 거에요. 


 

뉴스타파 201202월 인터뷰, 투쟁 1500일 즈음이다.

 

 

-최근 재능교육 사측은 끝났다며 커다란 플랜카드를 걸고 있어요. 언론에도 대부분 끝난 걸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

 

회사가 2008년에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하고 나서 노동조합과 대화를 하지 않았어요. 불법 임의 단체고 불법 농성을 하는 사람들이니, 현 노조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며 저희 상급단체를 통해서 자신들의 요구안을 불쑥 던지는 일들이 있었거든요. 회사가 2011년, 2012년 구체적으로 던졌어요. 그 내용은 단체협약은 절대 불가. 그리고 해고자들 중에서도 재능지부 임원이었던 저랑 사무국장 두 명은 복직 불가, 10년 된 해고자도 복직 불가. '대신 생활 기금으로 월 50만 원 정도는 주겠다'였습니다. 복직하는 직원들은 3년 간의 유예기간을 둬서 6개월 후 몇 명, 1년 6개월에 몇 명, 이런 구체적인 안이 상급노조 통해서 들어왔어요.


1000일 넘어가는 장기투쟁이 되다보니 회사도 압박을 받기 때문일거고, 관심 갖지 않던 정치권에서도 조금씩 반응이 왔죠. 국감할 때나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비정규직 장기 투쟁으로 가면서 그랬는데, 문제는 그들이 권고하는 것도 사측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우리는 99년 싸울 때부터 특수고용 노동자였고, 회사와 단체 협약 속에서 네 번이나 체결했었는데 갑자기 이제 노조법을 들면서 노조법상에 노조도 아니기 때문에 회사가 단체협약을 들어줄 리가 없다며 회사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어요.


2012년 5월 저희들에게 처음으로 회사측에서 직접 교섭요청이 왔어요. 내용은, 단협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신분이 계약해지기 때문에 재능교육 교사의 신분을 갖고 있지 않으니 먼저 복직을 시켜 줄 테니 복직하고 들어와서 추후에 단체협약을 위한 교섭을 해보자, 선 복직 후 교섭 이였어요. 결국은 거기에 그 부분에 가장 큰 이견이 있어서 교섭이 결렬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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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다시 2012년 8월에 최종으로 던진 건, '단체 협약은 추후에 하고 12명 전원 복직 시키겠다'였어요. 근데 문제가 됐던건 투쟁 중에 암투병 하다가 돌아가신 이지현 조합원을 복직자에서 뺀 거에요. 이지현 조합원은 해고자로 불명예를 안고 회사 구사대에게 집단폭행 당하고 회사로부터 형사고소, 고발당했습니다. 명예 복직을 시켜야 하는데, 해고자 전체가 그 안을 받지 않은 이유는 회사가 노동조합 조직원이 3000명 이상일 때도 임단협 투쟁을 3년씩 해야 했고, 위원장이 단식을 한 이후에 위암 발병으로 죽기까지 했을 때도 꼼짝 안하더니, 이제는 보기 싫은 농성장 집회 하지 말고 다 마무리 하고 회사로 들어와서 논의 하자고 하는거죠.

 



2008. 10.

사측 단체협약 해지통보, 이후 단협 없었음. 노조간부 2명 해고.

요구사항: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복직

 

2009. 10. ~2010.

표적해고 총 12명

요구사항: 총 12명의 전원복직, 단체협약 원상복귀

 

2010. 3.

사측 용역투입 시작, 노조원들에게 폭행, 고소고발

 

2012.

이지현 조합원 암투병중 사망

 

2012. 8.

사측에서 최종한 제시- 선 복직 후 교섭

노조 측 제시안 거부

 

2013. 2. 6.

노조 내 일부 혜화동 종탑 올라감

 

2013. 8. 26.

여전히 불합리한 회사즉 제안, 종탑 노조원이 받고 체결

사측은 노사문제 해결되었다고 기사 나감



재능교육 지부 투쟁와중에 조합원들이 협박 때문에 거의 다 퇴사를 하고, 생계 때문에 퇴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탈퇴서 쓰고. 결국은 마지막에 재능지부 조합원은 해고자 이름 있는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어요. 그래서 작년 8월 최종안을 안 받은거에요. 하지만 내부에 갈등이 많았어요. 투쟁을 접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와중에 내부적으로 아주 극한으로 달리면서 문제를 제기하며 회의를 파행시키고 그런 갈등이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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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올해 2월 6일, 자기들끼리 모여서 한 결정이 종탑으로 올라가는 거였죠. 다른 투쟁 사업장들은 고공 농성이 있으면 의심의 여지가 없지 지지와 연대를 보내잖아요. 그런데 재능지부 종탑 농성은 처음 잠깐 빼놓고 지지를 못 받았어요. 그 와중에 종탑에 올라간 조합원끼리 비상대책위를 꾸렸어요. 저들이 종탑에 올라갔을 때가 투쟁한지 1800일 지나서였는데, 그때까지 천막농성을 하루도 안 했던 사람들이 종탑 위에 다수가 있었어요. 게다가 8명 중에 4명은 2007년에 우리의 이 싸움을 있게 한 단협을 체결하게 했던 대표자들이 4명이나 거기 있어요. 그들과 손잡고 투쟁을 이딴 식으로 마무리 짓게 만들었어요.


그쪽은 종탑에 올라가고 저희는 대한문하고 연대하면서 분향소 똑같이 침탈 당하면서, 늘 같은 요구사항을 말하고 있어요. 종탑에 오른 측은 우리도 기존에 다 함께 요구했던 요구안과 다르지 않다, 우리 요구도 단체협약 원상회복이고 해고자 전원복직인데 왜 우리보고 타협적이라고 하냐며 갈등이 심화됐죠. 비대위 꾸리면서 트윗과 영향력을 갖고 계신 하종강 선생님이 언급을 종탑 쪽을 타협파로 규정지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구체적인 입장들을 많이 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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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전문 읽기

 

지금은 결국, 작년 8월에 회사가 내밀었던 최종안과 거의 다르지 않은 합의안에 저들이 8월 26일 날 도장을 찍은 거죠. 저쪽은 2076일로 투쟁이 마무리 된 거고, 저희는 지금까지 온 거에요.

 

결과적으로 말하면 선 복직 후 논의로 해준 건데, 단체협약에 저희가 86개 조항이 있는데 현장에 일하는 노동자에게 적용 돼야 하는 거잖아요. 그 단체협약이 시스템 문제나 회사가 회원들을 관리하기 위해 적용하는 것 이외 실제로는 교사들에게 돌아갈 처우 복직 임금 이거 관련해서는 하나도 적용이 안 되고 있어요. 우리는 해고가 돼서 싸운 게 아니고 단체협약에 저하된 노동 조건의 개선을 위해 싸운 거거든요. 이런 합의안을 가져올 거면 지난 6년 동안 왜 싸웠냐 이거죠. 그럴거면 작년 8월에 그걸 안 받아 들일 이유가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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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현장에 가면 항상 묻는 질문이 있어요. 지금까지 지속해서 관심 보여주는 정치인이 있는지?

 

전혀 없어요. 이슈 타고 다니시죠. 특수고용 노동자가 너무 먼 이야기인 거에요. 우리 같은 경우는 우리 실력으로 우리 힘으로 노동조합 따내서 우리가 노동부에 파업 들어가고 쟁의 찬반투표 끝나면 그걸로 쟁의 신청하고 근로 감독관도 다 받고 그랬던 노조에요. 갑자기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적용을 시키면서 기존에 적용되던 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법이 없었을 때도 노동 삼권을 갖고 있었던 사업장이거든요. 우리 학습지 교사는 노조법상의 노동자로서 회사와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이 끝까지 막은 게 우리는 노동조합으로서 파업쟁의 활동 다 했으니 이 선례가 있으니까 경총의 압박으로 단협 체결을 안 하려고 했던 거죠. 저희는 지금 최장기 비정규직 사업장이라는 거, 다른 곳처럼 가압류까지는 했어도 다른 사업장에서 안 하는, 집안 살림에 압류딱지 붙이고, 임금 100% 압류는 지금도 되고 있어요. 합의한 이후에도 100% 압류 되고 있어요. 계속 이러니 다른 곳과는 정말 다른, 누가 봐도 악덕 자본가인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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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CJ시큐리티 용역 깡패들 시끄러울 때 진보정당 국회의원들 거기에 다 쏠려 갔어요. 지금은 쌍차, 이런 게 큰 문제잖아요. 처음에는 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다 손 떼고 있어요. 국정조사 못 한다고, 국정조사 안 될 거라고. 다 하겠다고 했지만 환노위 가서 안건 조차 안 붙이는데요.


특수고용 노동자는 국가에서 권고해서 만든 그런 게 아니잖아요. 사업자들이 고용비용을 줄이고 노사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만든 거에요. 그러면 정권의 입법자들이 그게 노동자들에게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거면 자기들이 바꿔가야 하는 거잖아요. 그들 조차도 무슨 세상이 개벽해야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거고,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는 사회가 온다는데, 그거 그냥 자기들이 입법 처리만 해주면 돼요. 자기들이 자본가와 유착 고리를 못 벗어 나는 거에요. 그 사람들에게 당연히 신뢰가 안 가죠. 비정규직 악법 통과 되면서 2004년에 일들에 아픈 일들이 많았죠.


(특수고용 노동자란 현재 법상, 정규직/비정규직에도 들지않는 노동자이다. 개인사업자 등록을 가지고 회사와 계약으로 수수료를 받아 일하는 직종으로, 화물차, 컨테이터기사, 철도홍익회 판매원, 간병인, 퀵서비스, 대리기사, 방송작가와 자동차판매원들이 이 직종에 속한다. 미화해서 말하면 프리랜서이지만, 현실에서는 노동법 보호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이다. 계약맺은 회사가 불합리한 계약이나 횡포를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 아픈 예가 여기 재능교육인 것이다)

 

 

3. 현재

 

2013. 9.

환구단 시위 측,

2007년 불합리한 협약 보다 더 악화된 현재 단협을 불인정하고 있음

요구사항: 단체협약 원상회복/ 복직/ 밀린임금 지급

계속 시위중




 

-해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듣기에도 문제가 복잡한데.

 

(한숨을 쉬시고) 해결이 되려면, 단체협약 원상회복이 아닌 합의에 도장 찍은 게 잘못된 체결이라는 걸 각인 시켜야죠. 지금 사측과 비대위측은 환구단 3인 때문에 합의 이행이 안 되고 있다는 핑계를 대고 있어요. 그나마 합의서에 있는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믿지도 않았지만, 합의금 주는 거, 민형사상 소 취하하는 거, 그리고 법원에 계류 중인 건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탄원서 내는 거. 이거 하나도 이행 안 되고 있고, 합의하고도 8월, 9월 임금 계속 압류하고 있어요. 이행 안 되면 회사 가서 싸워야죠. 다수가 찬성해서 도장까지 찍었는데 왜 합의 안 되냐고 회사 가서 따져야 하는데 전혀 안 하고 있어요. 최소한 회사하고 체결하겠다는 마지노선인 12월 31일까지라도 싸워라. 쟁의 기간이니까. 그렇게 해야죠.


-마지막으로 기사를 읽는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릴게요.


투쟁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어요. 일반 분들, 이런 분들이 보시기에는 저희가 천막도 없이 이렇게 생활 몇 년씩 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거에요. 지나가는 어르신들도 딴 직장 찾아서 가지, 무슨 대단한 회사냐고 하세요. 만약 제가 다른 사업장 간다면, 혹 거기서도 이런 일들을 똑같이 당할 텐데 그때는 내가 지금처럼 싸우자고 나설 수 있을까? 안 나설까? 이런 걸 스스로 되씹어봐요. 그래서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고민하죠. 일 년이 되고 천 일이 되고 이럴 때마다 내가 이걸 지금 그만두고 중단한다면 내가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저는 다른 건 둘째 치고 내가 부끄러워서 숨어 살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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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것들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란 거에요. 지금도 100일, 200일, 300일 투쟁하는 조합원들이 이야기해요. 자기들은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지부장님 같은 사람들 보면 말 그대로 꾼들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싸우면서 탄압을 받아보니, 더구나 재능 같은 경우는 용역 깡패 사주를 만난 거였으니 '사람이 저렇게 독해져서 싸우겠구나' 하구요. 결코 특수고용 노동자나 비정규직이 남의 일이 아니거든요. 900만 넘는 비정규직에 특수 고용 노동자가 300만 넘거든요. 비정규직 전체수의 30%가 되는 건 심각한 문제거든요. 1500만 노동자 중에 900만이 비정규직이면 반 수를 훨씬 넘는 거잖아요. 이게 남의 일이 아닌데 그냥 순응하면서, 특별한 뭔가 불순한 세력에 의해서 배후조종으로 움직인다는 인식을 안 해주셨으면 좋겠고,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받게 되는 권리는 없다는 것을 막상 본인이 겪지 않으면 쉽게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살겠어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조금은 고집 센 사람들이 바꿔 나가려고 하고 있구나. 이렇게 봐주시는 게 가장 크게 바라는 인식 전환이면서 가장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인 것 같아요.



두 시간이 조금 모자란 인터뷰가 끝나고 취재사진 찍느라 미처 끄지 못했던 휴대폰 녹취록에는 지부장님의 전화 통화와 주변에 계신 사무국장님의 대화가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지부장님이 허리 통증으로 아파하는 내용과, 고소, 고발로 경찰 측과 통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파업 현장에 갈 때, 될 수 있으면 그분들의 말씀을 편집 없이 모두 담아 올려 드리고 싶어 합니다.

지금 재능교육의 모습은 어찌 보면 89년 정규직 교사 신분이 위탁계약자로 바뀌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한국 노동계의 단편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사업계약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던 선생님들이 1999년에 먼저 파업을 시작했던 것이, 그리고 재능교육 정규직 직원을 도우려고 연대했던 파업이 지금까지 흘러왔습니다. 당시 회사의 첫 번째 목표는 노조 가입률을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인사 고과에도 반영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노조를 깨기 위해 노력했던 그 회사로 다시 돌아가 그곳을 바꾸려 분들. 재능교육 해고자 분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찬바람을 맞으며 싸우고 계십니다.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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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슨


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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