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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정경대학 신방과에 윤용이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손자라나 조카라나, 하여간 그걸 대단한 프라이드로 가진 양반이었고, 당시 교수들로서는 보기 드물게 학생들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나아가 그에 합류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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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현민 유진오 전 총장이 별세했을 때 학교 안에 분향소 설치를 반대했던 5명의 교수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고요. 이모 전 총장이 무리한 연임을 기도했을 때, 학생들과 함께 본관 앞에 드러누웠을 뿐 아니라 항의 표시로 머리를 박박 깎아버리실 정도의 열혈한이었습니다. 그게 다냐구요? 설마요. 한 번은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유인물 하나를 들고 보여 주더군요. 윤용 교수 수업 시간에 받았다고.


“87년 대통령 선거 개표함을 두고 대치하다가 강제진압된 구로구청에서 70명이 죽었다!!”는 유인물을 손수 찍어 일일이 나눠 줬다는 겁니다. 유인물을 당신의 돈으로 찍어 수업 시간에 배포하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구로구청 사망자 70명설은 썰 많고 헛소문 흔하던 학생운동진영에서도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일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런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정의파에 조국의 민주화에 관심이 지대한 ‘애국 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학생들로부터 그렇게 존경을 받은 편은 못되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외로운 돈키호테였지만, 나쁘게 말하면 음… 굳이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또’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단어로 많이 불렸습니다. 행동은 뜨겁고 거침이 없는데 행동에 수반되어야 할 철학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어느 날 통계학과 친구 녀석이 절 불렀습니다.


“대리출석 좀 해 줄래? 나 2시에 미팅이거든.”
“맨입으론 안 된다. 너는 미팅가고 나는 대출하라고?”
“저녁 사줄게”
“라면 안 먹어.”
“고기 사줄게.”
“무슨 수업이냐?”
“윤용 교수 매스컴론, 정경대 5층 대강의실이다.”


대충 이런 수작이 오고 간 뒤 저는 난생 처음으로 윤용 교수님을 뵈러 갔지요. 학원민주화 싸움 뒤 삭발한 머리는 여지없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수업 시작. 그 분이 강단에 오르시지는 않고 갑자기 빼곡히 들어찬 아이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시네요.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무슨 페이퍼 쯤 되나 싶어서 아이들은 우루루 몰려들어서 가져갑니다. 이럴 때 만큼은 동작 기차게 빠른 저는 이미 한 장을 손에 넣었습니다. 윤용 교수의 자작시였습니다.


제목,


<양키야 가라>


한 대 맞은 듯이 멍한 눈길로 교수님을 올려다보는데, 교수님이 눈을 지그시 감으시더니 한 손을 머리에 얹으십니다. 그리고 비분강개의 어조로 시를 읽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야아아앙키야 가아아아아라… 네 나아아라로 가아라… 네 정액 같은 코카콜라와 해액무기를 가지고…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얼음물을 끼얹은 듯 한 강의실의 맨 앞에서, 교수님은 자아도취에 빠져서는 자작시를 암송하셨습니다.


“양키는 가라! 양키는 가라!”


그게 마지막 소절이었던 모양인데, 한구석에서 큭큭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저 있는 쪽이었는데 절대로 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녀석이 책상에 엎어지면서 웃자 불경스럽게도 강의실은 폭소의 도가니로 화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미제의 각을 뜨자던 아이들까지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습니다. 어찌나 웃었는지. 그날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시 읽은 다음 바로 수업 종료였던가. 하여간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윤용 교수님은 간혹 강의실 성명서를 통해 대단한 반미의식을 선보이셨습니다. 코카콜라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등,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저 양반 미국서 공부할 때 어지간히 데었나보다 농담을 나눌 정도였지요. 그때 성명서 중에 그런 구절이 있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미국은 만악의 근원”


그로부터 한 13년 정도 지났나? 윤용 교수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될 당시인데 온갖 헛소문과 3류소설과 반 김대중 노무현 감정으로 거의 미쳐 버린 듯한 사이트, MBC PD의 양심선언(‘MBC는 전라도 향우회입니다!!’라는 ‘염병’)부터 유명한 국정원 직원의 양심선언까지 없는 사이트, 일베의 할아버지격이라 할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약칭 부추연)>의 대표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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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90년대 초반에 학교에서 쫓겨난 뒤(신방과 학생회가 억지춘향으로 ‘윤용 교수님 해직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긴 했지만 그 누구도 앞장서서 윤용 교수님의 복직을 외치진 않았답니다), 국회의원 한 번 나와서 “윤봉길 의사의 후예이며 나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외쳐대다가 낙선한 뒤 소식을 몰랐다가, 뜻밖에 부추장사(?)를 하고 계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로부터 또 15년 정도가 흘렀는데 이분이 이른바 태극기 집회(태극기를 존중하는 저로서는 욕이 나옵니다)에 나와서 이러고 계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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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군대가 나와야 한다! 죽이자. 죽일 놈들은 죽이자. 군대가 나와서 죽이자.”


태극기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을 이해합니다. 어린 시절 전쟁을 겪거나 포성의 여운 속에 살았고, 전쟁이 언제 다시 일어나서 어린 날의 공포가 재림할 줄 모른다는 불안 속에 평생을 보냈죠. 실제로 당시 군대에서는 졸다가 북한 측 특공대 칼에 목이 잘리는 일도 흔하게 일어났었고(남측도 마찬가지로 북한에 가서 그 일을 했고), 남산 터널이 방공호를 겸하고 광화문에는 화단진지가 놓이는 세상에서 좋은 날 다 보냈죠.


또 악으로 깡으로 일해서 꿀꿀이죽 먹던 나라를 어쨌든 번듯한 반열에 올려 놓았다는 자긍심만큼은 버릴 수가 없기도 하겠죠. 자긍심은 박정희 정도에 투영돼서 신화가 되고 종교가 되고 그를 모독하거나 거역하는 건 신성모독 이상으로 반응하게 되는 거겠죠. 이 공포와 자긍과 신앙이 어우러진 삼위일체를 어떻게 깨겠습니까.


그런데 그 자리에 한때 공포가 허위라고 외치고 민주화의 역사에 자긍을 느끼고 역사의 진보를 신앙했던 이들, 전 경기도지사 김문수나 좀 경우는 다르지만 윤용 교수 같은 양반들이 와서 설치는 걸 보면 좀 다른 생각이 듭니다. 아니 다짐이겠죠.


젊어서 저 사람들만큼 떠들고 다니거나 설친 것도 없지만 적어도 늙어서도 저렇게 추물이 되지는 말자는. 그냥 약이라도 가지고 다니다가 내가 손가락이 길어지거나 송곳니가 돋거나 털이 숭숭 덮이는 조짐이 오면 그냥 콱 먹고 죽어버리자는 다짐 말입니다.





산하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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