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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던 부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진행되어야 한다는 전투체육은 바쁜 일과 덕분에 생략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일단 훈련이니 교육이니 제독트럭과 닷지트럭을 타고 산너머 교장으로 뿔뿔이 흩어진 중대원들을 일과시간에 한자리에 모으기도 쉽지 않았으며 경계근무돌릴 인원 빼는 것도 빠듯했거든요.


이런 와중에 정훈교육은 연중행사로 밀려나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명색이 군바리인데 자기가 담당한 교육 과목 외에는 젬병이라 논산훈련소 갓 수료한 이등병한병공통과목을 물어보는 게 보통인 곳에서 그깟 비디오 시청이나 하는 일과가 대수롭지 않게 생략되곤 했습니다.


그래도 북한에서 뻘짓한 이후면 '투철한 대적관 확립'이니 뭐니 그런 얘기가 일직사관의 입에서 아침점호시간에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대충 그 즈음에 연중행사로 전락한 정훈교육이 실시되긴 했죠.


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대장이라면 나름 철저하게 교육준비를 해서 만사가 귀찮은 말년병장에게 당치않을 질의문답을 시도하다가 좌절하고 결국 리액션이 화끈해서 만족스러운 이등병하고 만담을 나누는 식으로 두시간까지 교육을 꽉채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무반에서 두 시간짜리 비디오 시청이 보통이었죠. 그리고 그 나른하고 별 거 없던 비디오 시청에 별 다른 감상이야 있겠냐만은 전역한 지 이 십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별거없던 비디오 하나가 묘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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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특수부대가 이런 무지막지한 훈련을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대적관 교육비디오였는데 비디오 한 편을 시청하고 십 분간의 휴식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며 나누던 대화는 대략 이런식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뭐야?"


"아까 붕붕 날아다니면서 도끼 던지는거 봤어? 그거 막 다 꽂히던데?"


"원래 철조망 돌파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막 철조망에 한 놈 으아아아 비명지르고 누워버리니까 딴 놈들이 걔 타고 막 넘던데?"


"우리 전쟁나면 지겠다. 저런 미친놈들 뭔 수로 이겨?"


그 별 거 없는 비디오가 북한군 특수부대의 똘기를 영상에 담는 순간 대적관이라는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한 순간이었습니다. 쬐깐해 보이는 놈들이 끼요오옷~ 사람같지도 않은 비명을 지르며 콘크리트 블럭을 격파하고 칼을 집어던지는 광경은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병공통과목을 보이스카웃처럼 흉내내던 후반기교육부대 병사들에게 있어 인외마경의 풍경이었거든요.


비디오를 시청한 그 보이스카웃이 위치한 곳은 전라남도 장성, 동해에 꽁치그물에 걸린 잠수함이 떠도 휴가일정에는 변함이 없던 최후방이었으니 그런 현실감없던 감상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이를테면 군대에서도 북한군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없진않더라는 얘기죠. 나름 교육부대라서 주특기와 관련된 것이라면 전군에서 가장 먼저 최신의 장비를 수령하고 또한 주특기와 관련한 것이라면 적의 역량에 대해서도 모르지는 않는 집단이 이러했습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군대가 아닌 곳은 어떻겠습니까?


* * *


매년 국방부에서는 국방백서라는 책을 발간합니다. 2016년 4월 5일 시점에서 2015년 판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이며 2014년 버전은 국방부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그리고 각 언론사는 국방백서를 근거로 하여 남북한의 전력에 대한 기사를 작성합니다. 남북한의 갈등상황이 고조될 때 흔히 언론사에서 나오는 이미지는 대부분 국방백서를 기초로 한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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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 가릴것 없이 절대적인 수적열세는 그래프의 모양으로 견고해집니다. 잊을만하면 뉴스에선 굵직한 무기도입 사업소식이 전해지는데 저 처참한 열세는 도무지 극복되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 비참한 차이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과 같은 처지를 비관해야 맞을까요?


밀리터리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저 그래프를 그대로 읽으면 안 된다는 거 알고 계실겁니다. 병력의 차이는 극명하지만 북한군의 경우 실제로 전투에 투입 가능한 숫자는 얼마 되지 않고 전차와 전투기는 세대(generation)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며 특히 항공기쪽은 세대가 차이가 나면 숫자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 계실테죠. 함선의 경우 척 수로 세는 것이 아니라 톤 수로 헤아려야 전력차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헤아릴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죠.


그런 의미로, 저런 그래프는 다분히 선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력차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북측에 유리하게 작성된 내용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실 밀덕이 아니라면 남북한의 전력차를 언론사가 제공하는 정보 외에 획득할 방법도 많지 않고 그저 저런식으로 시각화시킨 자료가 신뢰성 있게 받아들여 집니다. 저거 제대로 논파 하려면 무기시스템과 항공기와 전차의 세대 구분 기준과 해당 하는 전력이 남북한이 어떤 구성으로 획득하였는가, 훈련의 수준과 지원병과의 역량, 총력전을 수행할 수 있는 국가적인 레벨의 수준 등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거 생업으로 할 거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저런 정보 중에는 국가기관 아니면 획득할 수 없는 정보도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군 전력에 대한 정보는 다분히 독점적이고 전력에 대한 평가는 그래서 제한적입니다. 그 제한적인 정보 대부분은 국방부에서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한 평가도 ‘국방백서’의 형태로 제공되고 있구요. 언론사는 그것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하는 거죠.


사실 밀덕이라면 북한의 전력에 대해 별다른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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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뉴스에 나온 노동적위대의 훈련모습에 나름 탱크 좀 봤다는 덕후들은 북한군의 노인학대에 만감이 교차했다고 하더군요. 저게 T-34라는 2차세계대전 당시의 탱크인데 흔한 T-34/85가 아니라 76mm 포탑이 달린 T-34/76으로 보였거든요. 화질과 각도가 좋지않아 정확한 결론이 나지않은 상황입니다만, T-34/76이 맞다면 전세계 군사박물관에서 돈을 주고 사와야 할 유물이거든요. 졸 레어아이템이에요, 76mm 포탑 달린 초기형은 대전당시 대부분 격파되어서 실물이 얼마 없다 합니다. 저게 그 레어템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지만 박물관에 귀하게 전시해야할 분을 북한은 노동적위대이나마 현역으로 굴리고 있다는 거에요. 사실 그게 비교적 흔하다는 85mm 버전이라 해도 노인학대의 측면으로 보면 안타까운 광경이긴 하지만요.


국방백서에 근거한 저 그래프는 다분히 앓는 소리입니다. 뭐 따지고 보면 저런 앓는 소리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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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링크)

 

인도의 SU-30이 미공군의 F-15를 훈련 상황에서 압도적으로 발라버렸다는 내용인데 저런 굴욕적인 훈련내용이 언론에 뿌려지는 이유는 기사에서 보다시피 갈수록 심화되어가는 유인기 무용론을 잠식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수호이 시리즈를 제압하려면 F-15로는 어림도 없고 F-22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여론을 형성하려는거죠(저 기사가 작성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무인기의 영역은 아직은 공격기나 정찰기 정도이고 본격적인 공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기체는 여전히 유인기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종일관 북한과 비교하며 전력에서 열세라는 주장을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방부에서 제공하는 국방백서에 근거해서 말이죠. 심지어 "우리가 북한하고 일대일로 붙으면 진다."라는 얘기가 무려 국방정보본부장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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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링크)


아니, 군인 입에서 싸우지도 않았는데 진다 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도 어이가 없지만 하여간 국방백서에 근거한 그래프를 보면 왠지 저 소리가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있단 말이죠. 장사정포니 화학무기니 그런 거 북한군이 잔뜩 쟁여 놓고 있다는 배경지식도 곁들여지면 말이죠.


말했다시피 저런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려면 전력을 단순한 숫자로 평가할 게 아니라 질로 평가하는 과정이 우선시 돼야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거 결코 쉽지않아요.


그럼 그런 거 다 때려 치우고 걍 돈이 얼마나 들어갔냐로 평가하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국방비가 얼마나 투입되었는가 확인하는 거죠. 뭐 북한의 경우는 냉전시절에 거의 무상으로 무기를 도입하기도 했고 무상에 가까운 노동비 항목도 고려해야겠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무상원조 많이 받고 군인 월급도 안습한 거 도찐개찐이니 그거 감안하고 보면 어떨까요?


사실 이렇게 경제라는 앵글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북한의 경제지표는 폐쇄성에 기인해서 추산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거죠. 그나마 북한이 제시하는 숫자는 신뢰성이 없는 경우도 많고 그저 주변국과의 교역 수준 등을 고려해서 숫자를 추산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식으로 연구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별로 없다고 했지 없다고는 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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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료집 - 링크


세종연구소에서 2011년에 발간한 ‘통계로 보는 남북한 변화상의 연구’라는 보고서입니다. 언론에서 깊이 다루지 않았던 남북한의 주요 경제지표에 대해 해설되어 있으니 시간 나시면 찬찬히 읽어보셔도 좋겠네요. 시간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봐야할 페이지는 150쪽입니다.


 

남한

북한

(공식발표자료 기준)

연도

국방비

GNI대비

국방비

(%)

정부재정

대비

국방비

(%)

국방비

GNI대비

국방비

(%)

정부재정

대비

국방비

(%)

1970

3.23

3.62

22.5

7.31

22.7

37

1975

9.48

4.38

28.9

9.1

14

17.2

1980

37

5.74

34.7

16.2

12

15.4

1985

42.4

4.3

29.4

16.2

9.3

14.4

1990

93.76

3.47

24.2

19.91

11.65

12

1995

143.63

2.7

21.4

-

-

-

2000

128.04

2.3

16.3

13.7

8.2

14.3

2005

206.01

2.44

15.6

4.6

1.9

15.9

2010

255.675

2.52

14.7

8.1

3.1

15.8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1975년 드디어 북한의 국방비를 따라잡았으며, 이후 단 한 번도 그 위치가 변한 적 없으며, 2010년도 기준으로 보면 그 차이가 31배가 됩니다. 2005년에는 44배구요. 자료가 2010년도가 끝이긴 하지만 저런 격차의 폭은 2017년 현 시점에도 벌어지면 벌어졌지 줄어들진 않았을 것 같네요.


물론 북한의 전력은 우습게 봐서는 안 됩니다. 골동품이나마나 T-34는 여전히 탱크고 백년전 소총에 맞아도 사람은 죽습니다. 북한은 이미 예전부터 통상전력으로 우리군을 압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으며 그에 따라 통상전력의 확충, 유지보다는 비대칭전력에 국방비를 투자해 왔습니다. 물론 통상적인 전력으로도 남침이 가능하다고 주장은 합니다만은 그 수준이라는 게 대략 저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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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1차 걸프전 때도 알려진 바지만 공중을 장악하지 못한 세력이 쫄래쫄래 고속도로로 기동하다가는 간단하게 학살당합니다. 휴게소 핫바 맛도 못 보고 클러스터탄의 뜨거운 맛을 보게 됩니다.


자그만치 41년입니다. 누적된 국방비의 격차가 41년이에요. 이런 차이를 두고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느니 진다느니 얘기하면 그게 바로 직무유기죠.


https://youtu.be/s0X2hVxfD04

 

노대통령의 그 연설은 그런 의미입니다. 우린 안 져요. 북한상대로는 겨텰로도 이길 수 있어요.


설마 군수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겠습니까? 뭐 예산을 더 타내기 위해 앓는 소리하는 건 이해하겠습니다. 그래서 전력의 질이 반영되지 않은 숫자 뿐인 그래프로 사람 겁주고 그러는 거겠죠.


글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군은 이처럼 정규군이라 이름붙이기도 민망한 거적떼기 집단인 북한한테 가당치도 않은 라이벌 의식을 내세우고 있으며 군납비리sms 왜 생기는가에 대한 글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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