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정보의 힘은 강해지지만, 신문은 수년째 사양산업이다. 독자들은 영상으로, 이미지로, 그리고 기사라기엔 훨씬 짧은 글로 옮겨간다. 신문을 읽지 않는 시대에서 각 신문사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외국 언론사의 혁신적인 사례를 찾고, 새로운 플랫폼을 연구한다. 카드뉴스나 영상화된 기사는 그 고민의 결과다. 독자가 줄어드는 문제의 해답을 인쇄된 신문이 아닌 다른 데서 찾는다.

 

미디어 산업의 이런 흐름 속에서,

 


뉴스.JPG

<조선일보>

 


조선일보도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세간에서는 비록 조중동으로 묶여 타 군소언론들과 함께 다뤄지고 있지만, 조선일보에 대한 딴지의 애정은 여타 군소 언론에 대한 그것과는 남다르다. 민족정론지 타이틀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여온 지 20여 년, 이제 조선일보에 대한 논평은 본지의 운명 같은 것이 되었다.

 


우리사이2.jpg

우린 이런 사이니까(찡긋)


 

조선일보X토익패치

 


성적.JPG

토익의 냄새가 난다

 


조선일보 뉴스테스트(이하 뉴스테스트)를 꼼꼼하게 디벼보자. 뉴스테스트는 정치/경제/사회·정책/산업·과학·IT/국제/문화·스포츠 분야로 나뉘어 있다. 각 분야별로 15문항, 총 90문항이 출제되고 총 990점 만점인 상식시험이다. 한 번 취득한 점수의 유효기간은 2년간 유지된다. 출제자는 무려, 조선일보 기자들이다.

 

성적과 급수, 그리고 백분위를 표시하는 형태는 이미 취업준비의 제1관문인 토익이나 토익스피킹을 닮았다. 스펙 쌓기의 전형인 다른 시험을 꽤 꼼꼼히 벤치마킹을 해서 내놓은 티가 난다. 돈 벌려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이벤트.jpg

 


시사판 토익으로 자리 잡고 싶었던 조선일보는, 뉴스테스트 1회 시험 접수를 독려하며 파격적인 이벤트도 함께 준비했다. 시험 접수 선착순 100명에게 ‘조선일보 시사이슈토론’ 서적과 조선일보 3개월 구독권을 증정한다. 하지만,




 

놀랍도록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크흡.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할 언론고시 준비생들이 모인 다음 카페 ‘아랑’에서조차 몇 개의 댓글이 달리지 않아 잠시 기사 작성 중에 눈물을 훔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의무는 아니지만 의무 같은 그런 느낌

 

아, 내용을 조금 정정해야겠다.

 

뉴스테스트는 놀랍도록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구 프로 언론고시 준비생으로서 덧붙이자면, 소위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언론사 채용에도 성수기가 있다. 언론사들의 채용공고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기간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그러니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일 년 동안 달린 언론고시 준비생들도 전열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하지만 채용 시즌이 된다면 어떨까.

 


채용에 반영.JPG

 


시험 접수 선착순 100명 이벤트를 홍보하던 자리에 슬그머니 자리 잡은 배너. 그렇다. 이 시험, 조선미디어그룹 채용에 반영된다. 조선미디어그룹에 확인한 결과 TV조선과 조선일보 인턴 채용과 수습 채용 동일하게 적용할 계획이며, 의무는 아니지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반영한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여름 인턴기자, 수습 기자, 겨울 인턴기자를 모집하기 위해 총 세 번의 채용 공고를 냈다. 지난해 여름 인턴기자 22명을 선발하는데 685명이 지원했다. 경쟁률 31:1이다. 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기자 모집 경쟁률이 이 정도다. 인턴 지원자들이 3만 원씩 내고 한 번씩만 뉴스테스트에 응시해도 조선일보는 얼마를 벌게 되는 걸까. 지원자격 제한이 없어 수천 명이 지원하는 수습 공개 채용을 생각하면 응시자(=수입)는 훨씬 더 많아질 거다.


게다가 이런 류의 시험을 단 한 번 응시로 마칠 수험생은 거의 없다. 정확히 합격선을 알 수 없는 이런 류의 시험은 누군가 '뉴스테스트 응시 → 조선미디어그룹 지원 → 합격 → 썰 풀기'를 통해 응시자들 사이에서 유의미한 점수의 선이 정해진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응시자들 입장에서는 뉴스테스트 시험 점수로 시사상식에 대한 이해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응시 자체에 의의를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합격선을 넘는, 그 중에서도 좋은 점수가 필요하다. 그러니 조선 시점에서는 많은 응시자들이 매번 몇 점이라도 올려보려고 응시하는 토익이나 KBS한국어능력시험처럼 본격 돈벌이의 신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이렇게 시험이 1회, 2회 쌓이면 기출문제집도 발간할 수 있고 그야말로,

 


돈.jpg

돈이 쏟아져들어온다아아아아아아아!!!

 


언론고시 준비생들은 이력서 한 줄 채우려고 두 달짜리 인턴을 한다. 가산점이 없는 인턴 경험도 마다치 않는 상황에, 채용 시 가산점을 준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올해 조선미디어 채용에 뉴스테스트 점수 없이 응시하는 인원이 대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아아, 물론 시험을 안 볼 사람은 안 봐도 된다. 어디까지나 의무는 아니라고 하니까.


 

조선일보식 창조경제

 

조선사설.JPG

<조선일보>


 

이런 사설을 2년 전에 실어놓고 본인들이 또 하나의 스펙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조선일보에서 싣는 스펙 과잉에 대한 비판 기사는 다소 모양 빠질 수 있겠다.

 

물론 언론사 입사 시험이 간소화될 가능성도 있다. 뉴스테스트를 반영하는 언론사가 늘어난다면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필기시험 과목으로 두고 있던 시사·상식을 대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재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회사가 담당해야 하는 책임을 개인(의 돈)에게 전가하는 것은 여전한 사실이다.

 

게다가 취업과 승진 평가에 활용될 수 있는 시사상식 시험을 한 언론사 기자들이 중요도를 선별해 출제하는 것 자체도 문제가… 아, 이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시험의 본질이 이게 아니었지 참.

 


돈.jpg

다시 뉴스테스트의 본질로 돌아가겠다

 


위 사설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대학생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1년에 소비하는 금액이 207만 원이었다. 조선일보는 여기에 고작 3만 원 밖에 안 얹었으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위에 언급한 사설 역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조선일보 기사가 모양 빠지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니까.

 


샘플문제.JPG 

<뉴스테스트 샘플 문제>

이런 거 내고 3만 원 버는 것쯤, 봐줄 수 있잖아?

 


건투를 빈다

 

신문사의 살길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뉴스테스트는 조선일보에 꽤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빨ㄷ, 아니 수입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나면서 뉴스를 올바르게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사가 ‘뉴스 시사능력 검정시험’을 만들었듯, 조선일보가 뉴스테스트를 만들었다는 명분도 납득할 만하다. 선의의 경쟁 관계의 찬 축으로, 조선일보의 건투를 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방식이, 시험 준비를 하며 돈을 아끼기 위해 시간당 1000원짜리 스터디룸에 대여섯 명이 모여 앉아 공부하는, 그런 언론고시생들 등골을 빼먹는 방식은 아니었으면 참 좋았겠다. 그건 아니지 않나.

 


아 맞다,

 

의무는 아니랬지 참. 그럼 믿어야지.



속아만 보셨어요.jpg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Profile
we are all somewhere in betw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