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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06. 수요일

산하

 

 

 

 


1872년 11월 5일 수전 앤서니의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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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열렬한 노예 해방론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흑인 외에도 해방시켜야 할 또 하나의 노예적 지위의 인간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여성’이었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선거로 뽑힌 이래 여러 명의 대통령들이 투표에 의해 당선됐지만 그 투표 명부 가운데 여성이 포함된 적은 없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흑인들이 미합중국 국민으로서 투표인 명부에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부인부터 공장 여성 노동자들까지 일체의 투표권은 없었다. 수전 앤서니는 이 불합리함 앞에 떨쳐 일어섰다.


“이 나라를 세운 것은 우리 인민들 모두이지 오로지 백인 남성들만 혹은 남성들만이 아니다. 우리들이 나라를 세운 것은 우리들 중 절반에게만 자유를 주거나, 우리 자손들 중 절반에게만 자유를 주거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 남성들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자유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발간한 주간지 ‘혁명’ (The Revolution -한국에서라면 바로 잡혀갈 제호)의 모토는 이러했다. ‘진정한 공화국이란, 남자들에겐 그들의 권리를 그리고 그 이상도 아닌, 여자들에게도 그들의 권리를, 그 이하도 아닌’ 이렇게 공화국과 그를 이루는 시민의 정의를 명징하게 해 버린 문구가 또 있을지도 모르겠다. 존 웨인이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들었지만 음악 외에는 실패한 영화 <알라모>에서 요새 방어의 지도자 데이비 크로켓은 이렇게 말한다. “공화국, 나는 이 낱말의 어감이 좋소. 그것은 마음대로 오고 가고 물건을 사고 팔고 술을 먹어도 되고 취해도 되는 자유를 말하기 때문이지.” 앤서니가 알라모 요새에 있었더라면 크로켓 코앞에서 이렇게 외쳤을 거다. “왜 여자는 공화국을 누리지 못하지?”



1872년 11월 5일이었다. 뉴욕 주 로체스터 시의 투표소에 수전 앤서니가 나타났다. 다른 여성 동지들과 함께 밧줄로 몸을 묶고서. 그녀는 투표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교회는 여성에서 잠잠하라.”는 성경 말씀을 굳고 믿고 되뇌던 선관위원 남정네들은 눈을 부릅떴다. 아니 이 여자들이 미쳤나? 당신들은 지금 불법을 저지르고 있어. 당신들한테는 투표권이 없다고. 법이 우습게 보여? 정말 뜨거운 맛을 봐야 알겠나? 이때 앤서니가 들이민 무기는 미합중국의 헌법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시민이 된 모든 사람은 미합중국의 시민이고 이들의 시민권과 자유는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수정헌법 14조 ) 그리고 “인종, 피부색, 노예 전력을 이유로 투표권이 방해받는 것을 금지한다.” (수정헌법 15조)



남북전쟁 이전 노예제 옹호자들은 미국 독립선언서의 한 대목,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에서 흑인은 ‘사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앤서니 역시 똑같은 대답을 판사에게 듣는다. “당신이 말하는 헌법 조항에는 ‘여자’가 들어 있지 않소.” 그리고 유죄 판결을 받는다 . 다른 동료들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지만 그녀는 보석을 거부하고 감방에 들어앉는다. 법정 투쟁을 벌이려 했지만 변호사의 배려로 (차마 여성을 감옥에 둘 수 없었다는) 보석으로 석방되는데 이건 그녀의 뜻에 반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항소를 제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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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석방된 뒤 30일 동안 스물 아홉 번 연설을 했고 지쳐 쓰러져 죽었다는 소문이 날 때까지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100달러의 벌금이었다. 그러나 앤서니는 준법 정신이 부족(?)했다. 그녀는 평생 이 벌금을 내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이 정부는 민주정이 아닙니다. 또 공화정도 아닙니다. 가증스러운 귀족정이며 성차별적인 소수정입니다.” 그녀는 여든 여섯으로 죽을 때까지 여성 투표권 쟁취를 위해 싸웠다.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마세요. 우리 목표를 계속 추진하세요.”가 그녀의 유언. 1919년 그녀가 죽은 13년 뒤에야 미국 여성들은 투표권을 받아 쥘 수 있었다.



아마 당시의 남자들에게 그녀는 별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얌전히 밥 짓고 아이들 기르면서 정치 얘기가 나오면 얌전히 뒤로 물러서 설거지나 하는 (영화 ‘자이안트’에서 텍사스 남자들이 동부에서 시집온 엘리자베드 테일러에게 요구했던 것처럼) 양순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 여자는 도대체 왜 저렇게 날뛴단 말인가. 무법자로 보였을 것이다. 엄연히 법에 나와 있지도 않은 권리를 행사하려 들고 신성한 선거장에까지 나타나 자격 없는 투표를 하겠다고 시위를 벌이는 ‘떼법’ 행사자이며 사회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불순분자로 보였을 것이다. 미친 여자로 보였을 것이다. 보석같은 것 거부하고 차가운 감방에 들어앉기를 고집하질 않나 목이 쉬어 쓰러질 때까지 별로 귀기울일 것 같지 않은 여성 투표권을 외치질 않나. 그러나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별종에 비정상적이며 헌법 정신을 부정한 것은 다름아닌 미국의 남성들이었다.



역사란 정신이 스스로를 자유라고 의식하는 자유의식의 발전과정과 이 의식에 의해서 산출되는 자유의 실현과정이라는 헤겔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는 억압과 공포, 차별과 고통으로부터의 더 많은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점철돼 있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들은 ‘흑인’이 그들이 말한 ‘인간’에 들어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으나 그들의 평등 선언은 흑인이 인류의 일원으로 서는 중요한 발판 역할을 했고 인류의 절반인 여성들의 권리를 쟁취하는 방패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법은 단순하고도 어려운 단어의 조합에서 벗어나 그 법 정신을 통해 역사의 어둠을 밝히는 등대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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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법무부 홈페이지, 첨부파일 링크



오늘 정부는 통합진보당에게 ‘위헌정당’임을 통고했다. 태스크포스팀까지 꾸려 여러 날 연구했다는 ‘위헌’의 근거를 보다가 그야말로 가가소소 앙천대소 박장대소 포복절도를 골고루 했다. 최고이념으로 내세우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과거 김일성이 주장한 북한의 건국이념으로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이념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전세계 진보(Progressive) 세력은 이른바 종북 세력이 된다는 말인가. '민중주권주의'도 일하는 사람이 주인된 세상을 목표로 한 것으로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우리의 '국민 주권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한다니 <Power to People>을 노래한 존 레논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 아닌가 말이다. 거기다 국무총리는 민중이란 사회주의적 개념의 단어라고까지 했으니 이 어이없음은 19세기 미국의 남정네들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는 8조 4항은 “정당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는 8조 1항의 법 정신 하에서 유효하다. 과연 사법부의 판단이 1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당원들 일부가 벌인 행동에 대하여 한 정당 모두에게 책임을 지우는 정부는 과연 ‘민주적 기본 질서’를 지킨 것인가. 강령에 나오는 말을 빌미로 이 당은 북한 추종자들의 당이라고 낙인찍는 것이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19조에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는가. 저 19세기 미국의 모지리 남성들처럼 “국민에 빨갱이는 포함되지 아니한다.”라고 우길 참인가.



내가 사는 공화국은 헌법에 근거하며 그 헌법은 그들을 향한 비판의 자유를 누리기를 허용할지언정 그들의 사상을 근거로 탄압하고 법으로 옭아매는 일을 부정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나는 앤서니처럼 우리 헌법 법전을 들이밀며 묻는다. 이 헌법 어디에 북한과 같은 주장을 하면 위헌이라는 조항이 있는가. 자신의 양심에 따른 주장이 북한의 주장과 같다고 하여 그 양심을 부정하라는 조항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들에게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조항이 어디에 있는가.



앤서니의 말을 좀 비틀어 빌린다면, 진정한 공화국이라면, 권력을 쥔 자라고 그 이상의 권리가 없고 빨갱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하의 권리가 없어야 한다. 그 어떠한 사상이나 종교도 자유로운 토론과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서 그 생명력을 잃고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탄압이나 봉쇄가, 금지와 억압이 어떤 삶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기도를 저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앤서니 시대의 미국 남자들은 여자들이 우매하고 어리석어서 정치 같은 것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순리이며 오히려 어성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국민이 아둔하고 백치같아서 통진당 같은 정당이 말만 하면 홀딱 넘어가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앤서니에서 보듯, 결국 역사는 누가 아둔한가를 증명한다.



나는 통진당과 그들의 생각과 정견을 지지하지 않는다. 아니 혐오한다. 이석기 일파가 벌인 행각을 경멸하며 두고 두고 잔인하게 물어뜯어줄 생각이다. 그들이 나를 지긋지긋하다는 눈으로 바라볼 때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통진당을 옹호하고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왜.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이므로. 그것이 대한민국이므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나는 통진당을 ‘보위’하자고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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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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