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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06. 수요일

스케치북









11월의 시작과 함께 자동차 횡단보다 앞 정지선 위반과 사거리 꼬리물기에 대한 단속이 시작됐죠. 첫날부터 곳곳에서 경찰관과 단속에 걸린 운전자들 간의 실랑이도 있고 그런 모양입니다. 경찰은 단속을 해보니 효과가 있어서 다시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요. 교통법규를 잘 지키자고 하는 것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보행자나 운전자 모두의 안전을 위한 강요이니 그 필요성은 인식들을 하고 있겠죠. 그런데 저는 여기서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예전에도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정지선 문제를 운전자들의 양식과 벌금에만 의존하는 것이 과연 최우선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말 길게 하는 것보다는 사진을 보여드리는 게 빠를 거 같군요. 우선 우리나라 교차로나 횡단보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부터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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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찍었던 횡단보도 모습입니다. 자연스럽게(?) 횡단 보도 위에 차량 두 대가 서 있죠? 왜 이런 장면이 나오는 걸까요? 우선 책임은 정지선을 지키지 않은 운전자에게 있습니다. 이건 다른 것에 핑계를 댈 문제가 아니에요. 정지선 넘지 말고 보행자를 보호하는 게 운전자의 의무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위반이 가능한 것은 운전자의 부주의로만 돌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국의신호등나쁜예1.jpg


이 사진은 더모터스타 밴드 회원 중 한 분인 '내멋대로'님이 제 부탁으로 보내주신 사진 중 하납니다. 원 안에 있는 것이 우측의 직진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보는 신호등입니다. 화살표 연결된 지점에 보면 바닥에 흰 줄로 정지선이 그어져 있죠. 일단 신호등과 정지선 사이의 거리를 좀 보세요.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차량이 횡단보도 위에까지 올라가는 게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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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역시 더모터스타 밴드 회원 중 한 분인 'saint'님이 딸 아이 산책시키며 찍어 보내준 잠원동 사진 중 하납니다. 스포티지 한 대가 파란 불에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고 대기 중인데 아주 가볍게(?) 횡단보도를 물고 계셔 주십니다. 역시 잘 보시면 알겠지만 신호등과 차량과의 사이가 멀죠. 그 먼 거리만큼 차량은 앞으로 얼마든지 전진을 해서 정차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신호기 위치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조절하는 것으로 상당부분 정지선 위반은 해결이 될 수 있다고 전 확신합니다. 어떤 분들은 물리적으로 정지선을 정확히 지키기 어렵다고 변론도 펴고 그러시는데요. 이런 반론도 신호기 위치가 현재처럼 되어 있기에 나오는 얘기일 겁니다. 자~ 그러면 독일이나 프랑스, 그 외에 유럽은 어떨까요? 제가 살고 있는 독일의 사진들을 몇 장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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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크푸르트 시내 도로 전경입니다. 주말이라 한가하네요. 일단 뭔가가 우리나라 도로 풍경과는 다릅니다. 벌써 답을 찾으셨나요? 아무리 봐도 모르시겠다고요? 그럼 다음 사진을 보십시오.

 

독일시내신호등위치-001.jpg

 

좀 어수선해 보이실 텐데요. 독일의 신호기는 모두 정지선 바로 앞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가 붉은 색으로 동그라미를 친 것들이 신호기입니다. 좌하쪽 점선은 횡단보도 표시예요. 독일은 횡단보도 표시가 아주 불성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점선 하나 찍 그어놓은 곳도 많죠. 그런데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이, 독일의 대다수 신호기는 횡단보도 앞이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런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독일 사진 몇 장 더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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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신호등과차량거리3.jpg



독일신호등과차량거리2.jpg


신호기 위치를 보세요. 저렇게 정지선 코앞에 있으니까 아예 차들이 정지선에서 더 떨어진 상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네요. 그러면 이 정지선을 살짝만 넘어가보면 운전자 입장에선 어떻게 신호등이 보일까요? 이것도 사진으로 확인을 시켜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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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보입니다. 조금만 더 나갔다면 아예 신호등을 볼 수 없게 되죠. 이 신호기를 놓치면 신호가 바뀌는 걸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지선을 안 지킬래야 안 지킬 수가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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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횡단보도, 사진 출처 = adass.um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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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 횡단보도, 사진 출처 = weedingmap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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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원동, 사진 = saint님

 

세 장의 사진을 나란히 놓아 봤습니다. 첫 번째 횡단보도 및 신호등 사진은 프랑스 파리, 두 번째는 스페인 마드리드, 세 번째는 서울 잠원동입니다. 우리나라 신호기가 횡단 보도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군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지선 논란이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울 광화문 일부에서 신호기 위치를 유럽처럼 바꿔 시범 운용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멋대로'님이 추가로 보내주신 사진을 보면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형태의 신호기 운용이 이뤄지고 있더군요.


한국의신호등좋은예.jpg


보시는 것처럼 신호등이 횡단보도 앞에 설치돼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정지선을 지키거나 횡단보도 위에 올라 서는 따위의 운전은 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다만 사진에 보면 횡단 보도와 정지선 사이 폭이 너무 넓은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신호등이 이상하게 되어 있는 곳도 있더군요.


한국신호등이상한예.jpg


역시 '내멋대로'님이 보내준 사진인데 신호기가 중복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횡단보도 앞에 새롭게 설치를 하면서 기존의 것을 없애지 않고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정지선 위반은 물론 자칫 운전자의 방심으로 인해 횡단보도 보행자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빨리 해결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이네요.


잘 보셨나요? 기억하는 분들 많으실 텐데, 양심냉장고로 유명했던 한 오락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운전자가 신호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 몰래 지켜보고, 정확하게 양심에 따라 운전을 한 사람에게 냉장고를 선물하던 그 프로그램, 무척 인기였죠. 우리의 운전자 의식을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방송이 되었든 아니면 경찰력을 통한 강력한 단속이 되었든, 모두의 안전을 위해 법으로 정해놓은 약속을 지키자는 것에는 저 역시 동의합니다. 하지만 말이죠. 국가가 국민에게 일등 시민의식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국가가 국민이 최소한의 것을 지키고 의식을 발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잘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신호등 위치 저렇게 해버리면 운전자들 자신들이 불편해서라도 정지선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합리적 시스템을 갖춘 다음 국민에게 멋진 시민의식을 요구하고, 그걸 지키지 않았을 때 강력한 단속을 하는 것이 저는 순서적으로 맞지 않나 싶어요. 벌써부터 신호등에 숫자로 카운트를 할 수 있게 하자는 등의 좋은 의견들이 나오고 있더군요.


좋은 의견은 빨리 수렴을 해서 제도적으로 최선의 틀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런 다음 양심냉장고를 이야기해도 하고, 단속을 해서 벌금 6만 원을 물리고 벌점을 물려도 물리기 바랍니다. 어쨌든 운전자 여러분들 규정속도 지키고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 줄이는 건 기본인 거 아시죠? 이번 주도 모든 운전자들, 정지선 잘 지키는 한 주 되길 바랍니다. (궂은 날씨에도 형 부탁에 마인츠에서 사진 찍어 보내준 후배와, 한국에서 역시 좋은 사진들 보내주신 saint님, 내멋대로님 세 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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