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3. 11. 07.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앞에 두 편에 걸쳐 서론을 펼쳤으니 오늘은 과학 이야기를 해 보자. 오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중력. 그래비티. Gravity. 

 

1.jpg


요즘 위 영화 때문에 뜬금없이 중력, 그래비티라는 단어가 급 대중화됐다. 와중에 우주에 중력이 있네없네 하면서 모 영화잡지 기자와 에스에프 작가 등이 논쟁을 벌이기도 하면서 일종의 화두로 부상하기도 하더라.

 

그 논쟁이 드러낸 바 있듯이 사실 우리, 중력이 뭔지 잘 모른다. 꼬꼬마 때부터 수천 번은 더 읽고 들은 이 단어. 중력과 더불어 자연계의 열라 중요한 힘인 ‘약한 핵력’ 같은 건 일상에서 거의 들어본 적 없다는 점과 비교하면 중력이 얼마나 흔해 빠진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정체가 뭔지 아는 게 잘 없다는 말이다. 실은 열분들 뿐 아니라 깊이 들어가면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머 모르는 것의 차원은 다르겠지만(요건 나중에).

 

이래서 제일 흔하면서도 가장 미스터리어스한 힘이 바로 중력이라는 소린데, 김에 질문 하나 던져보자. 우리는 뉴튼의 사과 운운하는 에피소드와 함께 그가 발견했다는 ‘만유인력’이라는 단어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이건 대체 중력하고 무슨 관계냐?

 

답부터 말하면 걍 같은 거다.

 

엄밀하게 말하면 개념상의 문제들이 좀 있긴 하다. 중력이라는 말은 중(重), 즉 질량에 중점을 둔 표현이고 만유인력은 인(引), 즉 ‘끌어당김’에 방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중력은 지구나 태양 등 무거운 천체의 강한 인력에 국한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허나 만유인력의 영어 표현을 보면 universal gravity니, 우리가 중력으로 번역하는 그 단어가 속에 또 들어앉아 있다. 이 상태에서 뭐가 옳네 그르네 따지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뉴튼의 사과를 떨어뜨린 그 힘은 그냥 중력으로 통일해서 쓴다.

 

2.jpg

떨어지는 사과로 깨달음을 얻는 아이작 뉴튼

 

이렇게 중력은 ‘질량이 있는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이 말은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기듯 사과도 지구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떨어지는 쪽은 사과냐고? 당근 지구가 사과보다 수천조 배 더 무겁기 때문 아니겠냐. 암튼 이 중력은 질량과 거리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데,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단다. 물론 열분들은 그냥 무거울수록 세지고 멀수록 약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이 중력이 하는 일은 뭐냐.


열라 많은데 큰 규모부터 함 이야기해 보자. 중력은 천체의 운행을 관장한다. 달이 지구를 27일에 한 바퀴 돌고 지구가 태양을 시속 10만 8천킬로미터로 돈다. 그리고 태양계의 나머지 7개 행성이 또 태양을 돈다(명왕성은 몇 년 전에 행성 지위를 잃고 퇴출돼서 태양계 행성은 이제 9개가 아닌 8개라는). 그런데 태양계 전체도 우리 은하의 중심을 돌고 있다. 한 바퀴 도는데 2억 2천만 년이 넘게 걸리지만 은하계가 원체 커서 그런 거고 속도는 엄청나서 시속 80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이렇게 우리 태양계와 은하는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을 돌며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이게 다 중력이 하는 짓이다.

 

그럼 여기서 끝이냐. 아니다. 태양 같은 항성만 2천억개를 거느린 이 거대한 은하도 뭔가를 돌고 있다. 지금까지 관측한 바에 의하면 처녀자리 은하단에 속한 은하 열 개 정도가 모인 국부 은하단의 질량 중심을 공전하고 있단다. 우리가 잘 아는 안드로메다 은하도 여기에 속해 있는데, 한 바퀴 도는 데 300억 년이나 걸린다고 하니 우주가 생겨난 이래로 아직 반 바퀴도 못 돈 셈이다.

 

말 나왔으니 말이지만 방금 등장한 처녀자리 은하단은 우리에게서 5천만 광년 이상 떨어져 있는 2,500개의 은하가 모인 거대한 집단이다. 이런 은하단들이 모여서 초은하단을 형성하고, 초은하단들이 모여 다시 초초은하단을 형성한다. '단'이라는 말은 각각의 은하는 물론 수천 개의 은하로 구성된 은하 집단들이 하나씩 흩어져 있는 게 아니고 나름 모여 극초거대 군락을 형성한다는 의미인데, 이것도 물론 중력 땜에 생기는 현상이다.


3.jpg

페르세우스 은하단. 빛나는 하나하나가 전부 지름 수만 광년에 달하는

은하라는 사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만 지구형 행성이 80억개

이상 존재할 거라고 하니, 지금 이 사진 안에 얼마나 많은 세상과 생명이

존재할지 상상들 해 보시라. 얘네들이 이렇게 무리를 짓는 것도 중력 때문이다.

 

그럼 중력은 이런 천체들이 서로 돌고 모이고 하는 게 주된 역할이냐. 딱히 그렇지도 않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태양이 은하 중심을 돌고 은하가 국부 은하단을 돌려면 일단 이 넘들이 '존재'해야 되는 거고, 그걸 가능케 하는 게 또한 중력이기 때문이다.

 

성간 구름이 뭉쳐서 별, 즉 항성이 되고 이 넘이 나이 들면서 변하고 내부에 다양한 원소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결국 터지면서 우주 공간에 많은 종류의 원소를 퍼트린다. 그럼 이것들이 기나긴 세월 동안 조금씩 뭉쳐서 다시 항성이 되거나 목성이나 지구 같은 행성이 되는 거다. 이렇게 우주의 허공을 떠도는 이런저런 원소들을 주먹밥처럼 꽁꽁 뭉쳐 덩어리지게 하는 힘, 이게 바로 중력이다.

 

물론 중력은 좀 더 생활 밀착적인 부분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일단 우리가 지상에 발을 딛고 돌아다닐 수 있는 것 자체가 중력의 힘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지구의 중력, 혹은 지구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만유인력이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는 곧 중심을 잃고 공중에 둥둥 떠다니게 된다. 처음 잠깐 동안은 재미있겠지만 조금 지나고 나면 열라 불편하고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말 나온 김에 영화 그래비티의 첨부터 끝까지를 장식하는 '무중력 상태'와 연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력은 우주 어디에나 퍼져 있는 만큼 무중력 상태라는 말은 어폐가 있고 이것 때문에 논쟁이 생기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걍 넘어간다. 암튼 중력이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제일 큰 어려움은 '중심'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 때의 중심은 과학적인 용어라기 보다는 상식적인 의미다. 우리가 길을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이유는 지구가 중력으로 당겨줘서 발바닥이 땅으로 내려가 붙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움직일 때마다 빙글빙글 돌거나 대책 없이 뒤뚱거리지 않으면서 안정되게 걸을 수 있다. 반대로 보면 중력이 없으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걸을 수 조차 없다는 소리다.

 

우원은 이 비슷한 역설적인 느낌을 사해에서 받았다. 우리는 옛날부터 사해 하면 뚱뚱한 대머리 아저씨가 물 위에 둥둥 떠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으로 접해 왔고, 이것이 사실이라는 점에 추호의 의심도 가진 적이 없다.

 4.jpg

오늘은 뚱뚱한 아저씨 대신 이 분으로 대체하자.

 

하지만 막상 진짜 들어가보니, 위의 사진 같은 평화로운 상태는 잠깐의 사진 촬영을 위해 연출된 거라는 점을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사해의 물은 바닷물보다 염분이 10배나 높아서 정말로 사람이 둥둥 뜨긴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라앉거나 잠수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으로 뜬다. 근데 왜 저렇게 오래 못 있냐고? 바로 ‘중심’을 잡기가 넘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 바닷물은 부력이 별로 안 크기 때문에 물 속에 하반신을 잠기게 하고 서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사해에서는 그게 안 된다. 서는 것도, 적당한 각도로 비스듬히 있을 수도 없기 때문에 자세를 바꾸는 게 아주 어렵고 마치 수면 위에 얹혀져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표면이 고체인 건 아니니 몸이 조금만 움직여도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게다가 짠 물이 얼굴에 닿으면 따갑기 때문에 - 눈에 들어가면 거의 죽음 - 물을 젓거나 해서 자세를 잡는 것도 어렵다. 이런 상태가 따지고 보면 무중력 상태의 곤란함과 좀 비슷한 거다.


5.jpg

무중력을 즐기는 스티븐 호킹. 근육의 힘이 전혀 없는 그에게

몸무게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주는 감회는 남달랐겠다.

 

(이 아래에는 영화 그래비티의 스포일러성 내용이 있으니 주의하시라덜)


물론 우주선이나 인위적으로 무중력을 만들어 놓은 곳에서 사람들이 날아 다니는 영상을 보면 열라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건 우주선이 6면에 벽이 있는 좁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자연스럽게 원위치로 귀환해 멈출 곳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 시작된 움직임을 멈추려면 벽이나, 손으로 잡을 고정된 뭔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비티 영화 초반부에 둘이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개고생을 하고 조지 클루니가 결국 떠내려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6.jpg

이 양반(의 시체)는 아주 운 좋게 어떤 천체의 중력권

안에 들거나 외계인 등이 거둬주지 않는 한 우주가 끝나는

날까지 자세조차 바꾸지 못한 채 한 방향으로 계속 날아가게 된다.

속도가 원체 느리기 때문에 태양계를 벗어나는 데만 수억 년이 걸리겠지만.

 

따라서 영화 그래비티의 제목은 실은 반어적이고, 그래서 다소간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인 영화 작명 방식을 생각하면 재앙의 원인이 중력이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게 테마일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난 후에도 은연중에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정 반대라는 점이다. 지구를 빠른 속도로 공전하는 파편들과 마지막에 추락해 가는 우주정거장의 상황 정도를 제외하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구체적인 문제는 중력 때문이 아니라 중력을 느낄 수 없음으로 해서 - 공기도 없긴 하다만 -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첫 부분 충돌 직후 산드라 블록의 무한 회전 씬과, 그걸 멈추고 아틀란티스 호와 국제 우주정거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나아가 위 사진에 보이는 조지 클루니의 비극 등은 전형적인 무중력 상태에서의 고난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돌아가 발 붙이고 설 곳을 잃은 인간 존재의 무력함과 나약함이라는 정서를 깔고 있고, 중력은 주인공이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니라 도로 찾아가야 하는 무엇이다. 여기에 사고로 어린 딸을 잃은 여주인공의 공허한 삶에 대한 간결한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주체적 인간으로 중심을 잡고 홀로 서는 삶의 자세에 대한 메타포로도 작용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산드라 블록이 지구로 돌아와 혼자 힘으로 일어서는 라스트 씬이 바로 그 상징적인 장면이다. 일반 헐리우드 영화라면 이때 수십 대의 헬기, F-16, 항공모함 등이 등장하고 구조된 여주인공이 담요를 뒤집어 쓰고 휴스턴에서 주인공과 교신하며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된 남자 과학자와 키스하면서 끝날 거다.


7.jpg

천체물리학자이자 유명 과학칼럼니스트인 닐 디그레스 타이슨의 트위터 코멘트.

미안하지만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하다.

이 영화가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에서 벗어나 특유의 우아함을 갖는 이유가

바로 반어적인 제목 덕인데.


암튼 그래서, 이 중력이라는 넘은 우주의 구조에서부터 우리 인간의 영과 육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것들을 지탱하고 붙들어 매는 힘이다. 이렇게 보면 중력이야말로 우주 전체에서 제일 강한 힘임에 분명하다. 행성과 별, 은하를 만들고 또 엮는 이 장대무비한 스케일. 가히 ‘신의 손’ 그 자체로 여겨도 부족하지 않을 압도적인 위용!

 



…은 개뿔. 중력은 실은 우주에서 제일 약한 힘이라는 사실. 어찌 된 거냐 이게.

 

 

 

다음 시간에 계속.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