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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1. 월요일

옥상땐스







요 며칠 모든 언론이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한 춘천출신 한 초선 국회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옮겨보도록 하자.


"이번에 파리에서 시위한 사람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채증 사진 등 관련 증거를 법무부를 시켜 헌재(헌법재판소)에 제출하겠습니다"

"그것을 보고 피가 끓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닐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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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는 두고 보자는 양반 무섭다


전임 엠비가카께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통치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로 기억한다. 독투라는 아주 조그만 커뮤니티에 모여 가카를 모욕하던 시절 한 딴지스가 나에게 남긴 인상적이었던 댓글 하나. “가카 욕하는 것 무섭지 않으세요?”


아주 소심한 성정을 가진 나로서 솔직히 전혀 꺼림칙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허나 직업 운동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걍 일반 시민인 나는 결코 나에게 무서운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아주 그럴 듯하고 논리적인 근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설마 나 잡아가겠어? 나 같은 하찮은 사람 잡아가서 뭐하게?’라는 일종의 정신승리였다. 그리고 여전히 욕 몇 번 했다고 잡혀가지는 않았으니 크게 나쁜 논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고라에 글을 썼다는 이유로 혹은 누군가의 트위터를 RT했다는 이유로 또는 시위에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그것도 유명인도 아닌 시민들이 잡혀가고 소송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안전할 것이라는 내 정신 승리적 근거가 그리 썩 훌륭치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고 싶은 말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세태에 발 맞춰 좀 더 세련된 근거를 가져야 했음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설마 욕하는 수십 수백만 명의 사람 중 나 하나 잡아가서 뭐하겠냐?’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기간 중 파리에서 시위를 한 사람들의 숫자는 보도된 언론에 따라 수십 명부터 이백 명까지 차이가 있다. 몇 명이든 좋다. 분명한 사실은 맥시멈으로 잡아도 이들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의 인적사항 정도야 지난 대선 자취방에서 신출귀몰한 멀티닉 운용 능력을 과시한 바 있는 국정원 직원들의 한 시간 구글질 노동이면 A4 한 장에 보기 좋게 정리해서 수사기관 혹은 정보기관 혹은 대통령 앞에 직접 제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시위대는 내가 엄청난 다수에 속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익명에 대한 정신 승리적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소수인 거다.


그리고 이 소수의 집단을 향한 한 정치인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발언은 그동안 쉽게 들을 수 있었던 수 많은 정치인들의 ‘일부 국민’ ‘종북’ ‘좌파세력’ 같은 불명확하고 일반적인 정치적 수사와 굉장히 다르게 사진 한 장으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특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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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체적이고 특정적인 적은 수의 시위대를 향한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가진 정치인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라는 날선 발언은 분명히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 정도의 협박 수준이 아닐까 싶지만 발언의 당사자가 검사 출신이라고 하니 ‘협박’이라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나는 검사 출신 국회의원에게 지금도 그리고 나중에도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하여튼 이 국회의원의 말을 처음 들었던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제발 이들이 모두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교민’이 아니라 모두 프랑스 국적의 ‘프랑스인’이었으면 하는 아주 소심하고 현실 도피적인 바람이었다.


이런 한심한 생각을 떠올린 나를 비난할 수 있겠지만 국회의원이 자국민에게 대가 운운하는 현실 앞에서 어찌 나의 소심함만을 탓할 수 있으랴?



2. 헌법재판소는 엄마가 아닙니다


이어 "채증 사진 등 관련 증거를 법무부를 시켜 헌재(헌법재판소)에 제출하겠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프랑스에서 한 시위와 헌법재판소는 무슨 상관이 있지?’


초딩 때 나 두들겨 팬 놈을 형한테 혹은 엄마한테 일러 혼내달라 징징대던 나의 지질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저 문장이 주던 의문은 여러 지면에 보도된 다음과 같은 공식을 접함으로써 비로서 해소될 수 있었는데


- 다 음 -


불법(?)시위=통진당=프랑스파리=시위대=통진당=종북세력=북괴지령=통진당=간첩=통진당=정당해산심판=통진당


∴헌법재판소에 ‘이르겠다’


언제부터 의원님께서 문학에만 있는 줄 알았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정치에 적용하려고 마음 두셨는지 모르겠으나 그 기교가 가히 세련되지 못하다.


국내에서 집회를 해도 기껏 수백 명 모여 하는 수준의 소수 야당인 통진당이 자칭 정통 야당인 민주당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한 해외 지부를 운영할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몹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김진태 국회의원의 발언 후 재불 한인들은 “통진당은 물론, 그 어떤 정당도, 단체도 우리와 무관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제 배턴은 넘겨졌다. 검사출신 국회의원이시니 너무도 잘 알 것 아닌가? 사실을 적시했으면 그 입증 책임은 말한 사람이 져야하는 아주 평범한 원칙 말이다. 불행하게도 국회 내에서 직무상 한 발언이 아니니 면책특권을 누릴 수도 없어보이는데 말이다. 입증할 수 있기 바란다.


더군다나 심지어 직접 자료를 제작, 정리하지 않고 무려 법무부 따위에게 ‘시켜’ 제출토록 명하겠다니 나 같은 도시 영세민으로서는 꿈도 못 꿀 권세이다. 괜히 서로 국회의원 하겠다고 난리인 건 아닌가 보다. 헛웃음 난다.


역대 대통령 해외 순방 중 해외 교민의 항의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 시위 자체가 춘천시 출신 한 초선 국회의원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것은 아닐 테고 무엇이 그토록 그의 분을 돋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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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한국의 합법적 대통령이 아닙니다.”

 

위 플래카드에 적혀있는 말 중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가치판단이 필요한 단어가 두 개 있다.


‘박근혜’는 누가 뭐래도 ‘박근혜’고 그가 ‘한국’ 국적을 가진 것은 외교부가 적절히 검증했을 것이니 일단 의심의 눈초리를 풀도록 하자. 또한 그녀는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프랑스에 갔으니 이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된다. 설마 대통령이 아닌데 전용기 내줬을까? 대통령 맞다. 그럼 나머지 단어는 ‘합법’과 ‘아니다’라는 말이 남게 되며 이 두 단어가 김진태 의원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3. 피 끓는 대한민국의 국민


과연 현재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인 박근혜는 ‘합법적인 대통령’인가? 물론 ‘그렇다’. 부정할 수 없다.


비록 그 선출 과정에서 비밀 댓글 요원들이 행한 사소한 암약이 그 정통성을 계속하여 약화하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현재까지는 여전히 대통령이고 개인적으로는 진심으로 임기를 마칠 때까지 대통령이었으면 한다. 그게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견의 존재는 얼마든지 당연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도 임기 중 수많은 사람들에게 탄핵까지 당하는 등 대통령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비록 엿 같지만 그 엿 또한 너무도 당연하게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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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거 결과에 따라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지위 획득의 합법성 뿐 아니라 선출의 과정 그리고 선출된 후 대통령으로 재직시 모든 공적인 행위에 대하여 ‘국민’들은 당연히 계속하여 합법성을 의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과연 그것을 의심하면 공화국의 신민이 될 수 없는가?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고 또한 그것도 민주주의다.


더군다나 지금 지금 당연한 선거 결과의 ‘합법성’임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다름 아닌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이라면 현 정부가 혹은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은 이들에 대한 협박이 아니라 이들의 의혹을 진심으로 해소하고 납득할 만한 수준의 불법에 대한 철저한 수사 뿐이다.


수사기관의 수사가 진행되는 사안에 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행동이라는 정도의 상식이야 수많은 장관 님과 나라의 녹을 먹는 지체 높으신 양반들이 수차례 텔레비젼에서 강조하신 덕에 나 같은 도시 영세 애국시민도 충분히 배울 기회가 있었으므로 그만토록 하겠다.


그러나 ‘불법’이라는 말에 화를 낼 수는 있으나 정색하며 법무부까지 들먹이면 나 같은 일반 시민들은 오히려 ‘진짜 뭔가 알지 못하는 불법이 있었나?’라고 생각한다는 점만은 짚고 넘어가자.


그럼 이 나라의 엘리트 출신인 김진태 의원이 이 정도도 생각 못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런 정치인의 입에서 흔히 듣기 힘든, 적절치 않은 발언을 한 진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직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나지 않은, 정부가 위헌 정당으로 제소했을 뿐인 통합진보당은 북한의 지령을 받는 종북 성향의 정당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합법성을 의심하는 시위대는 통진당 당원들의 시위이며 따라서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견해라 할 수 없고 결론적으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 간첩 내지 흔히 말하는 종북 좌빨이라는 너무 뻔한 주장을 다시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이들의 가당치 않은 선동에 피 끓어하지 않으면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4. 교민들도 두고 볼 것이다


홍세화씨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프랑스는 우리에게 관용이라는 말로 상징된다.


그 관용하면 생각나는(사실은 개인적으로 이것 뿐이 모른다), 정치인이 관련된 것으로 너무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드골에게 보좌관들이 당시 드골의 눈에 가시 같았던 ‘샤르트르를 손 좀 보자’ 하니 드골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다시 돌아가, 비싼 국민의 세금 들여 공짜 비행기타고 프랑스까지 간 대통령 당사자도 아닌 수행 국회의원이 프랑스 교민들의 시위에 대하여 피를 펄펄 끓이면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 비싼 돈 들여 프랑스까지 가서 나라 망신시키는 시위 불허 요구나 할 게 아니라 위와 같은 프랑스 정치인의 멋진 배포 혹은 관용 혹은 위트를 배워 올 시간과 여유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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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자신이 속한 정치적 집단에 반대하는 또 다른 집단 혹은 개인에 대하여 그의 국적을 부정하거나 두고 보자는 협박 대신 그도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없었을까?


기껏해야 피켓이나 들고 시위나 하는 교민들에게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만한 현실적인 힘이 없다. 시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 더 그들에게는 4년 혹은 5년마다 주어지는 투표권이 있으며 그들 역시 다음 선거를 기다리고 대가를 치르게하겠다고 벼를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그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권력이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들에게 사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계속 피가 끓는 느낌이 나면 가까운 병원에 가보던가 본인한테 연락하시라. 뇌졸중 올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 내 혈압약이라도 기꺼이 나눠줄 용의는 있다.


*참 그리고 혹시 그 '대가'가 국정원 요원들을 동원한 악플이라면 무조건 잘못했으니 재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트잉여에게 악플은 참을 수 없는 형벌이니까요.







옥상땐스

트위터 : @oksangddance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