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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1.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근데 (시)공간이 구부러졌다는 건 대체 무슨 소리냐...? (시간 이야기로 들어가면 너무 복잡하니 오늘은 공간 중심으로만 이야기하자.) 요렇게 이해하면 빠르다. 우원과 열분 중 몇이 힘을 합쳐 담요 귀퉁이를 잡아당기며 서 있다. 이 상태에서 담요는 대체로 평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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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제 그 위에 묵직한 볼링공을 얹어보자. 당연히 공과 그 주변은 무게만큼 아래로 푹 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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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상태에서 몇 가지 실험을 해 보자. 만약 비슷한 크기의 볼링공을 옆에 하나 더 얹는다면 어떻게 될까? 담요 위의 곡면이 크게 바뀌면서 두 볼링공이 대략 비슷한 거리를 움직여 쿵 하고 가운데서 부딪힐 거다. 그럼 훨씬 가벼운 당구공을 얹으면 어떨까? 볼링공은 별로 움직이지 않고 당구공이 또르르... 굴러서 볼링공에 부딪히게 된다. 아주 가벼운 탁구공을 올려 놓으면? 볼링공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탁구공만 굴러 떨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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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저 공들 사이에 서로 끌어당기는 자력이나 기타 신비한 힘 같은 것은 작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벼운 넘이 무거운 넘쪽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보이고, 멀리 떨어질수록 영향을 덜 받는 등 크고 작은 공들 서로 간에 질량에 의거한 중력, 혹은 만유인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실제 공들을 움직이는 힘은 그런 게 아니고 지구가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그 중력이 무거운 공 주변의 담요를 휘게 하고, 가벼운 공들은 실은 그 ‘구부러진 면’을 따라 굴러 떨어지는 것이지만 마치 볼링공에 끌려오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기왕 시작한 거니 좀 더 해 보자. 볼링공만 올려 놓은 상태에서 당구공을 적당한 힘으로 그 옆으로 휙 굴린다고 가정하자. 이때 너무 세게 굴리면 그냥 지나쳐 버릴 거고 너무 느리게 굴리면 힘없이 굴러 떨어지겠지만, 적당한 힘을 사용하면 아래 그림처럼 담요의 곡면을 따라 회전하게 된다. 이런 원리가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 더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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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에서는 담요의 마찰이 있기 때문에 조금 돌다가 떨어지지만 우주 공간처럼 그런 방해물이 없다면 사실상 무한정 회전하게 된다. 아래는 담요보다 마찰이 약해서 훨 잘 도는 실례다.



그럼 이번엔 어디서 수박 만한 납덩어리를 하나 가져와 본다. 이걸 담요 위에 얹어 놓으면, 붙잡고 있는 우리들이 손을 놓치지 않는 한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질 거다.


- 담요에 아주 깊고 큰 굴곡이 생기면서 볼링공, 당구공 등이 전부 납 덩어리 쪽으로 굴러 떨어진다

- 이어 담요의 섬유가 파손되면서 아래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 결국 담요는 찢어지고 아래로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이제 주변으로 무엇을 굴리던 다 그 구멍으로 떨어져 내린다

- 그 구멍 ‘속’ 인 담요 ‘바깥’은 담요 위의 법칙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다른 세상이다




자, 방금 우리는 2차원의 담요 우주에서 블랙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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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지만 진짜 사진 아님.


중요한 건 우리 우주 속에서, 천체들 사이에서 중력이 작용하는 방식이 이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거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모든 주변의 공간을 저 담요처럼 휘게 만든다. 물론 담요는 2차원 평면이고 실제 우주는 3차원 공간이기 때문에 똑같은 모양은 아니지만, 원리적으로는 대략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우리는 한 단계 낮은 2차원적 상황은 상상할 수 있지만 우리가 포함된 3차원 공간이 휜 모습은 시각적으로 그려낼 수 없다. 따라서 구부러진 공간을 상상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으니 얼른 포기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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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듯 수학으로는 잘 정리된다.

그냥 그렇다구.


근데 중력은 열라 약한 힘이기 때문에 우원이나 열분, 자동차, 건물 정도로는 주변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허나 무거운 행성이나 항성의 수준이 되면 거대하고 깊은 곡면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마치 다른 물체들을 ‘끌어 당기는’ 모습처럼 보여지는 거다. 이게 대략 일반상대성 이론이 설명하는 중력의 모습이다.(더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중 ‘과학같은 소리하네 Ep4-1, 4-2 를 참고하시라.)


그러면 궁금해진다. 담요 위에서 공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처럼 보이던 게 실은 지구 중심을 향하는 힘이 변화된 거라면, 실제 우주의 천체 간에 작용하는 중력의 배경에도 무언가 다른 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그런 와중에 가속도 운동으로 존재한다는 중력의 실체는 대체 뭘까?



모른다.



질량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 파동 형태로 광속으로 전파된다는 점, 그리고 아마 중력자라는 입자의 교환에 의해 전달될 거라는 점 외에 중력의 실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중력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확인하기 위해 이론과 관측 양면에서 나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적인 소득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 노력 중 관측 쪽 분야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래의 거대 중력파 검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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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에 설치된 비고 Virgo 중력파 검출기.


중력파 검출기는 중력으로 공간이 휘어지는 점에 착안한 장비다. 긴 터널 속에서 레이저 광선을 쏴서 반사돼 오는 시간을 측정해 정확한 거리를 확인한다. 이때 측정된 거리가 원래의 거리와 비교해 미묘하게 변하면 강한 중력파가 지나갔다는 의미가 되는 거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중력이 원체 약한 힘이라 웬만한 중력은 아예 포착도 안 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같은 아주 중력이 강한 천체들이 충돌한 힘 정도가 돼야 희망을 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니 말이다.


위의 비고 검출기는 각 3km씩 뻗은 90도의 진공 터널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울로 레이저를 여러 번 반사해 100km 정도 거리의 효과를 얻는다. 사실 이 장비도 정밀도가 엄청나서 태양 반지름 만한 물체가 수소원자 크기만큼 변하는 것까지 측정할 정도지만 아직 중력파의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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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A (Laser Interferometer Space Antenna) 상상도


그래서 현재 유럽우주기구 ESA 는 우주 공간에 세 개의 우주선을 띄워 중력파를 검출해 내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우주선들은 각 변의 길이가 장장 5백만 킬로미터인 등변삼각형 구조를 만들어 서로 레이저를 쏘면서 공간의 휘어짐을 찾아낼 계획이다. 지구상에서 만들 수 있는 구조물보다 수십만 배나 크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빅뱅 후 1조분의 1초 후에 발생한 우주 초기 중력파도 검출 가능하다.


돈이 원체 많이 들어서 원래 참여했던 미국 NASA 가 빠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얘네들은 우리가 4대강 막으며 삽질하고 있을 때 이런 걸 만들어 우주의 깊은 신비에 도전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비용도 4대강보다 싸다...


그건 그렇고, 중력으로 공간이 휘어진다는 개념은 상당히 흥미로운 가능성 하나를 또 던져준다. 바로 웜홀을 통한 장거리 우주여행. 웜홀은 블랙홀의 개념에서 부수적으로 나온 건데, 회전하는 블랙홀로 인해 고차원 공간을 지나는 지름길 통로가 생겨나고 그곳을 지나면 블랙홀의 반대 개념인 화이트홀을 통해 우주 먼 곳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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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서 널찍하게 구부러진 평면을 아까의 담요를 갠 거라고 생각해 보자. 이때 저 담요 표면의 양 끝에 사는 두 마리의 개미가 만나고 싶다면 일반적인 상황에서 최단 경로는 오른쪽으로 빙 돌아 먼 길을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만약 납덩어리가 떨어져 저런 구멍이 만들어 졌다면 똑똑한 개미는 훨씬 빠르게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원리상으로는, 우리도 강한 중력을 만들고 운용할 수 있다면 언젠가 저런 것을 만들어 우주 여행에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개미가 수박 만한 납덩어리를 들어올려 떨어뜨리는 것에 비견될 정도의 과학기술과 에너지를 먼저 얻어야겠지만. 뭐 언젠가는.


자... 그럼 어쩌다 보니 3번에 걸쳐 계속된 이 <중력의 임무> 편을 마무리 지어보자. 별 관련은 없었지만 중력의 임무라는 제목은 할 클레멘트가 지은 유명한 SF 소설에서 따온 거다. 거기에 등장하는 행성은 지구보다 중력이 3백배나 강해 20cm 높이에서 떨어져도 죽을 정도다. 그런 데서 안 태어나길 참 다행이다.


생각해 보면 중력이라는 것은 두 측면이 있다. 하나는 영화 <그래비티>에서 묘사된 것처럼 인간이 돌아올 곳, 자신을 붙들어 맬 곳, 혹은 고향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다른 차원 속에 감춰진 듯한 신비의 힘이자 항성간 여행을 가능케 해 줄지도 모를 피안의 무엇이다. 머 이 두 모습의 묘한 상반됨에 대해 이런저런 미사여구나 의미들을 갖다 붙일 수 있겠지만 생략하자. 우리들은 그런 중력 속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 그 의미를 찾아볼 시간은 우주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으니.


근데, 우원이 요 한마디는 예언처럼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중력을 지배하는 자가 우주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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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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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