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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 인용되었습니다. 이제는 민간인이 된 그 분께서 구치소로 퇴갤하실 타이밍입니다. 그동안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만, 학생들 수련회 가기 전에도 선생님들이 답사 다녀오는데, 그 분 가시는 길을 외롭게 놔둘 수가 없어가지고 딴지 편집부가 ‘구치소 가는 길’ 가이드를 해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까짓 거 대충 가면 안 되냐고 하시겠지만, 그 분만 가실 것도 아니고 병우라든가 병우라든가 병우 같은 친구들도 갈 거잖아요. 그걸 생각하면 여러 가지 안을 드리는 게 낫겠죠. 하여 세 가지 루트로 구치소 가는 길을 구성해보았습니다.

 

도보, 버스, 택시

 

여기서 버스는 대중교통을 의미하나 법무부 버스로 바꿔 보아도 무방하고 택시는 경찰차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헌법을 수호하는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해석은 자유니까요.



도보 : 걷는 자에게 길이 보이나니

 

도보입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걸어야 합니다. 자기 두 발로 당당하게 땅을 딛고 걸어야 제대로 갔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 점 부끄럼 없는 대통령께서는 서울구치소까지 당당하게 걸어가셔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걸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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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전날 청와대 앞입니다. 보안 문제로 더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군요.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서 시작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걷습니다. 서울구치소까지요. 찍어보니 5시간 21분 걸린다고 합니다. 당황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네비의 안내에 따라 당당하게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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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맵 뚜벅이 네비를 따라 조금 걸었더니, 금방 광화문이 나왔습니다. 날씨도 좋고,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15분 정도 걸었는데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광화문엔 오늘도 세월호 천막이 있습니다. 박근혜 전임 대통령께서 이곳을 지나갈 때는 지나치지 말고 잠깐 들러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서울시청 앞엔 광장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무서운 으르신들이 있습니다. 물론 전임 대통령께서는 무섭지 않으시겠지만, 갑자기 팬미팅을 하면 체력소모가 클 것입니다. 이제 막 출발했으니 에너지를 아껴두는 게 좋습니다. 자연스럽게 계속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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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코스 1. 남산


걷습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조금 걸으니 남산타워가 보입니다. 네비는 남산을 넘어가라고 안내해 줄 겁니다. 안내에 따라 계속 걸으면, 이렇게 생긴 계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씩씩하게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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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막다른 길입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다들 잘 알다시피, 애플맵은 바보입니다. 분명 도보로 설정해뒀는데 자꾸만 터널을 지나가라고 하는군요.


당황하지 않고 맞은편으로 건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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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레베이터가 있습니다. 타고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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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기 그지없는 새끼 애플맵이 새로운 경로를 알려주는군요. 조금 돌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따라갑니다. 다행히 내리막길입니다.


산길을 신나게 내려가면, 요즘 핫하다는 해방촌에 도착합니다. 한 시간쯤 걸었으니 이쯤에서 커피나 쥬스나 주사를 한 잔 때리면 좋습니다.



난코스 2.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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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의 해방도 잠시, 용산에서 길고 긴 미군 부대 길을 지나면 두 번째 난코스인 한강에 도착합니다. 대략 출발 후 2시간 정도 지났을 겁니다. 부지런히 걸었음에도 예상 도착시간은 자꾸만 늘어나는 지랄같은 마법을 경험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애플맵은 바보인지라, 한강에서 또 한 번 말썽을 피웁니다. 이럴 땐 네비를 이탈하는 구국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대강 눈으로 이케이케 보면 길이 보입니다. 말은 쉽게 하지만, 저는 여기서 30분 넘게 소비했습니다. 전임 대통령님께 꿀팁을 알려드리자면 서빙고역을 넘어서 한강 쪽으로 가며 간절히 바라면, 기적같이 길이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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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다리로 올라가면 차도밖에 안나옵니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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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건너야 할 다리는 동작대교입니다. 다리가 높아서 조금 무섭지만 계속 당당하게 걸어 봅니다. 여담입니다만, 제가 지나가는 도중 구명보트가 한 대 출동했다가 돌아가더군요. 사진 찍으면 혼날 거 같아서 못 본 척 했습니다. 한강 구조대분들, 죄송합니다.


아참, 이미 출발해서 늦었긴 했지만 한강 다리를 건너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이 좋습니다. 맞은편에 있는 동작역에는 화장실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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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가는 것이 좋으니, 부지런히 걸고 또 걸었습니다. 서울구치소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멉니다. 전임 대통령께서는 되도록 일찍, 오전 중에 출발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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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3시간, 슬슬 다리가 아파옵니다. 난코스인 한강에서 헤메는 바람에 도착 예상 시간이 9시 18분으로 늘어나 버렸습니다. 쿨하게 저녁은 패스하고 걷기로 합니다.


다행히 한강을 지나면 한동안 직선 코스가 이어집니다. 방배동이라고 하더군요. 쉬운 길이라 코스를 이탈해 주택가로 걸어갔습니다. 자동차 소리를 너무 들어서 귀가 멍멍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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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키로로 걸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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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 생각도 하면서 걸으면 시간이 금방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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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가 졌습니다. 여태 삽질만 했던 애플 지도가 밤 모드로 변했습니다. 제법 운치 있군요. 하지만 도착 예정 시간은 자꾸만 늘어나는데...


직진으로 걷고 또 걸었습니다. 상가도 많고 번화가도 간혹 나오지만 길이 단순해서 조금 심심한 코스입니다. 몰랐습니다. 이때가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걸.. 



난코스 3. 여우고개


강남을 걷고 또 걷다 보면, 교외로 접어들게 됩니다. 여기가 레알 x 되는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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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대통령님께 감히 말씀드리자면, 이 사자상을 만나 서울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거든, 너님도 끝났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밤에 지나서 더 그렇긴 했지만, 저는 가장 힘들었던 코스입니다. 진짜 유배 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조선시대에 여길 지나서 유배 가는 죄인들은 진짜 많이 무서웠을 겁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렇게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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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는 차가 쌩쌩 달리고, 왼쪽에는 야산이 있습니다. 들짐승이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4시간 넘게 걸어서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고, 멘탈도 흔들리기 시작할 시점입니다. 고라니가 튀어나와서 몸통박치기 한 번만 해도 기절할 것 같았습니다.


발바닥에 물집이 대여섯 개 생겼지만, 뛰어 내려갔습니다. 무서워서요. 아마 전임 대통령님도 여길 지나실 때면 '순실아!' 소리가 절로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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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고개를 거의 다 내려올 때쯤 밝은 불빛이 보입니다. 거기가 과천입니다. 길이 잘 닦여 있어 특별한 어려움은 없지만, 계속 걷다 보니 인간이 왜 바퀴를 만들었는지, 바퀴가 얼마나 위대한 발명품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구치소로 가는 길은 멀고도 또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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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5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아무리 전임 대통령이라 한들, 걷기를 선택했다면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계속 걷습니다. 그냥 존나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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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코스 4. 안양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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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최후의 시련만이 남았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과천 시내를 지나면 다시 허허벌판이 나옵니다. 쌩쌩 달리는 광역버스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아픕니다. 다리뿐 아니라 온 몸이 성치 않습니다. 빡침이 서서히 차올라, 서울구치소고 나발이고.. 하는 생각을 할 때쯤, '그것'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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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미칠 것 같은 냄새를요. 여긴, 양계장입니다. 맡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몸도 정신도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코를 찌르는 그 냄새를요. 전임 대통령께 '하루 동안 여기 있을래, 구치소에 갈래?' 물으면 100% 서울구치소로 들어갈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정말 어마어마 하거든요.


그 죽음의 코스를 15분간 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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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과 서울구치소가 있는 안양에 도착합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구치소는 의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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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구간을 돌파하느라 너무나 지쳤던 저는, 카페에 들러서 20분간 회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6시간 만에 처음으로 앉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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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도 잠시, 고지가 눈앞이니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망할 애플맵이 또 길 안내를 엉망으로 해줍니다. 20분간 같은 자리를 뱅뱅 돌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이 새퀴가..


결국 한참을 헤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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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덕만 오르면, 이곳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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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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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


이렇게, 청와대에서 서울 구치소까지 걸어보았습니다. 정확하게 3시 13분에 출발했는데, 10시 13분쯤 도착했습니다. 7시간 걸렸네요. 걸음으로는 4만 걸음입니다. 핳하하하ㅏ핳ㅎ하하하하핳ㅎ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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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서 서울구치소까지 - 도보>


순례자: cocoa


소요시간: 7시간 (쉬지 않고 걸어야)


비용: 0원


총평 : 조선시대 유배 가는 운치를 즐길 수 있으나 4번의 고비를 넘기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버스를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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