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8.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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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난 3주 동안 어려운 중력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옛날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원이 대학에 들어갔던 80대 말은 노태우 정권 때로 학생 운동의 서슬이 퍼렇던 시대였다.
아 물론 우원도 그쪽에 관심이 없던 게 아니다. 고딩이던 6.10 때 마스크에 치약 바르고 부산 서면 길거리에 나서기도 했고 -그날 우원과 죽마고우
모 교수는 최루탄 내려앉은 아이스크림 사먹었다가 혀를 부여잡고 울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도 나름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학생회 선배들하고 금방 어울렸고 소위 ‘불온서적’도 좀 읽었다. 그러다가 얼마 안가 우원은 그 선배들하고는
뭔가 생각도 접근 방식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단 문제가 된 것은 ‘폭력’이었다. 당시 시위에 좀 나간다고 하면 화염병이나 짱돌을 던지는
건 당연한 거였는데 우원은 그걸 못한 거다. 왜냐.
머 폭력은 안 좋다는 대원칙보다는, 개인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정도의 정당성을 쉽사리 스스로에게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노태우 정권이 훌륭해서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어서 시위도 나가고 6.29 사기극을 벌인 그들 집단의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도
외쳤다. 다른 선배 동기들이 화염병이나 돌을 던지는 걸 비난하지도 않았다. 다만 우원 또래의 친구들에게 불붙은 병과 돌멩이와 보도 블럭을, 내가
직접 던지는 행동을 할 만큼의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는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한두 살 위로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선배들은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학생운동을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처럼 보였고, 그 확신이 화염병이나 짱돌을 거리낌없이 던질 수 있는 배경으로 자리하는 듯 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집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은 몇 권 되지도 않았고 그것도 전부 운동권 사회과학 서적들 뿐이었다. 그 시대에 학교를 다닌 넘들이라면 다 기억할 그
책들 말이다.
지금 바로 생각나고 표지를 찾을 수 있는 책들은 대략 이 정도. 이 외에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원전, 각종 시집과 소설 등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저 책들이 뭐가 어떻다는 게 아니다. 많은 지식을 주고 생각을 하게 해 준 좋은 책들이다.
다만 저 책들 밖에 보지 않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 거였다. 사회과학 서적 여남은 권으로 결론 낼 만큼 세상이 단순하고 일도양단적인 걸까? 시간을 두고 더 깊게 생각한 다음에야 뭔가에 확신을 가질 수도 있고, 자기 행동에
대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지 않냐는 거였다. 하지만 이런 우원의 신중한 모습을 선배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부족한 ‘결의’에 실망감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 실망감은 2학년 들어 우원이 과 내에 ‘물리학 스타디’란 것을 만들던 시점에 극에 달한다.
1,2편에 대충 썼지만 우원은 우연한 계기로 어려서 천문학이나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이론 물리학이 주종인 현대 물리학에 빠져 들게 되는데, 그 계기가 된 게 바로 아래의 책이다.
이 책은 우원이 고3 때쯤 나왔지 싶은데 몇 가지 은근 기묘한 면들이 있었다.
1. 국내 제목은 현대물리학이 드디어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주종인 이론물리학 교양 서적이다.
저자인 폴 데이비스도 유명한 영국의 물리학자인 프레드 호일 경 밑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은 정통 과학자다. 그래서 창조주를 찾기는커녕 되려 (기독교적인);
신은 없어도 그만이라는 결론에 가까웠다.
2. 이렇듯 과학책인데 ‘정신세계사’에서 출간됐다. 정신세계사는 우학도인이라고 불렸던 봉우 권태훈 옹의 일대기를 본인의 구술에 의거해 기록한
80년대의 베스트셀러 ‘단’으로 유명세를 탄 출판사인데 여하튼 과학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진 않았다.
3. 번역이 류시화. 머 다들 알다시피 나중에 인도 관련 책들이나 시집 등으로 유명해진 인물. 우원은 이때 류시화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는데
이 양반도 별반 과학하고 관련깊은 사람은 아니다.
소설 ‘단’
소설이라고 하지만 실존인물인 권태훈 노인의 입을 빌어 독립문을 맨몸으로
뛰어넘던 구한말의 장사들과 집을 손짓 한 번에 없애고 세우는 중국의 왕진인
등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원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우원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환타지 소설일 뿐이다.
이렇듯 80년대 말 울나라에 퍼지기 시작한 ‘교양’으로서의 현대물리학은 과학보다 신비주의에 방점이 찍혔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신비주의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현대물리학의 일면을 드러내는 거긴 한데, 2회에 언급한 경이감과도 깊이 연관돼
있다. 우원도 이 책을 읽고 앞서의 <코스모스>는 물론 <지구최후의 날>마저 넘어서는 경이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물론 이
때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보다 훨씬 과학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 유명한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접했고 이어 관련 분야의 몇몇
서적을 탐독하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대학교 2학년이 되니 후배들을 상대로 현대물리학이 찾아낸 것,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략이라도 전해 줄
준비가 됐던 거다. 물리학 스타디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우원에게는 이 일이 단순히 신기한 과학 이론을 전해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
했는지 모르지만 우원은 철학 전공이다. 그런데 과에서 사회과학에 몰두하는 선배들이나 헤겔, 칸트 등을 전공한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의아한
점들을 발견하게 됐다. 그건 철학이 도구로 삼는 논리와 사변으로 해석한 우주와 20세기 물리학이 수학과 관측으로 찾아내고 검증해 온 우주가 상이한
점이 많다는 거였다. 그냥 다르다기 보다는 특정 부분에 있어서 자연과학의 발견들에 대해 아예 무지한 게 아닌가 싶었다.
머 철학자들을 연구해서 특정 이론의 전문가가 되고 교수가 되려 한다면 그것만 알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원은
애당초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감히 우주와 세상의 진면목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만약 철학이, 아무리 그럴싸한 논리라 한들 이미 자연과학이
일축해 버린 것을 논하고 있거나 반대로 과학이 찾아낸 유력한 개념이나 팩트에 무지하다면 이건 잘못된 게 아니냐는 거다. 그래서 우리 철학도들도
최신 과학의 개가, 특히 신비주의와 연결될 만큼 세계관에 영향을 주는 분야라면 적어도 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통섭 마인드가 좀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나름 열정을 갖고 시작했고 신입생 후배들의 호응도 좋았다. 그러다가 선배들의 방해 공작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회과학이 아닌 무엇이, 즉 ‘운동’이 아닌 것이 과의 스타디그룹으로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래서 가장 많은 신입생들이
참여했음에도 과의 학회에 정식 등록도 불허됐다. 그러던 어느날 개인적으로 절친한 한 학번 선배 학생회장이 우리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다. 허나 그가
자리에 앉으면서 처음으로 한 이야기는 이런 거였다.
“자, 그럼 종우가 어떤 틀린 소리를 하는지 들어보자.”
마, 이런 태도는 너무 비합리적이고 독선적이라 그저 맥이 탁 풀리는 거다. 반대할 수도 있지만 일단 먼 소리를
하는지 들어보고 나서 틀렸던 옳았던 말하는 게 옳다. 게다가 그 세미나에서는 내 주장이라는 것은 없고, 이미 100년 가까이 검증돼 온 과학 원리로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팩트들을 다룰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잘 모르거나 운동권 논리와 부합되지 않는 것은 전부 관념론이요 ‘종교’였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창시하려 한다는 이상한 욕마저 먹었다.
머 그런 편견의 적어도 일부는 저 책,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라는 제목 때문이기도 했을
거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 시대에는 특히 이론물리학과 ‘정신’이 유별나게 결합된 상태로 소개가 됐다. 특히 저 책 이후에 번역되어 나온 프리초프
카프라나 이자크 벤토프 등의 책은 대놓고 그 방향으로 치달은 느낌이 있고, 당시의 뉴에이지 문화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유행과도 결부돼 있었다.
우원은 그런 것들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근거한 주관적 우주 같은 개념은 흥미로운
관점이라고 여기지만 그런 책들을 진짜 과학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틀린 소리’를 하는 종교적인 뭔가로 낙인찍힌 모양인데, 여기에는
정신세계사같은 출판사나 뉴에이지적 관점에 지나치게 경도된 저자의 책임도 있으니 생각해 보면 참 미묘한 상황이었다.
이자크 벤토프의 저서, <우주심과 정신물리학>. 원제와는 아주 다른 제목인데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여 놓으니 우원이 의심을
받지 않냐는 거다. 근데 이 책은
실제로 내용상 우주심과 정신물리학에 가깝다.
역시나 정신세계사 발매고
류시화가 번역에 참여하고 있다(정신세계사나 류시화를 비난하는 것은 아님.
단지 과학의 관점에서 당시의 특정한 문화적 사회상을
이야기는 것 뿐)
암튼 그러다보니 후배들도 결국 빠져나가고, 우원의 스타디 그룹은 한 학기도 못 되어 문을 닫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원은 진짜 운동권이었던 적은 없었다.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떤 방향이든 맹목적이거나 성급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 당시 우원을 사문난적, 쁘띠 부르주아로 몰아간 골수 운동권 선배들의 대부분은 이미
20대 후반에 자신들의 신념을 깨끗이 버린 소시민이 되거나 나아가 노골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우원은
아직도 학생 때나 비슷한 생각과 마음으로 산다. 머, 말하다보니 대학 선배들에 대해 대단한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것 같지만 한이 맺힐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었고 그 와중에도 개인적으로는 잘 놀고 친하게 지냈다.
그저, 우원이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그 당시 운동권 선배 동료들은 ‘과학’이라는 단어를 계명처럼 숭상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지만 그들이 말하는 과학은 오로지 사회과학, 그것도 19세기 결정론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있던 마르크시즘일 뿐이었다. 와중에 그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과학에 대해서는 듣는 것마저 거부했다. 20세기 전반에 걸친 혁명적인
자연과학의 성과는 그들에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거다. 이런 것은 전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이 경험은 우원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과학은 쟝르가 아니라 태도다. 과학의
이름 하에 벌어지는 맹목이 존재한다면 그건 전혀 과학이 아니다. 이런 모습은 역설적으로 과학 지상주의에서도 자주 엿볼 수 있다. 합리적 회의주의자,
혹은 스켑틱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는데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나 마술사 제임스 랜디 같은 사람도 대략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대개의 경우 무신론자고 여하한 형태의 신비주의도 철저하게 배격한다.
머 사실 들여다보면 그들 주장의 디테일은 우원 생각과 별 다르지도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원은 그들 중 적어도 일부에서 지나친 과학 만능주의나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과 비웃음을 느끼곤 한다. 우원은 과학의
열혈 팬이고 중세적 미신과 편견으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 과학적 사고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전부’
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망상일 뿐이라고 한다면 그건 또 다른 맹목이다. 138억 년의 우주 역사 속에서 불과 300여 년 밖에 안된
인류 과학 문명이 알면 뭘 얼마나 알겠냐 말이다. 단언컨대 모르는 게 아는 것 보다 100만 배쯤 많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아무 개념이나
그럴듯하게만 들리면 덥석 물어버리는 우리 속의 몽매함인 건데, 그렇다고 현대 과학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날 것 같은 완벽함으로 무장돼
있지는 않은 거다.
암튼 스타디를 접은 이후로 우원은 자연과학과는 이래저래 관련없는 삶을 20년 넘게 살았다. 아주 가끔 과학과
관련된 글을 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뮤지션,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운동가, 정치사회 필자, 음모론 엔터테이너, 역사책 저자 등이 우원이 그간 가져온
정체성이다. 그러다가 이 나이가 돼서야 이런저런 우연과 필연의 조합 끝에 진짜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직접 하게 됐다. 이젠 주변에 뭐라
하는 선배들 대신 열린 마음으로 도와주는 많은 과학자들이 있다.
사실 우원이나 우원의 팟캐스트를 듣거나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한때나마 과학에의 로망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나이 들어 가면서 돈이나 차나 집, 술, 애들 과외 같은 것들 말고 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는 거, 참 좋은 일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원은 스물 한 살때는 결국 포기했던 과학 나누기의 즐거움을 이제 더 많은 사람들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역설적인 것은, 그런 와중에 막상 이 사회는 어릴적
그 대학 선배들 같은 열정이 다시 필요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라는 건지.
*편집부와의 논의 결과 앞으로는 사회, 시사문제를 이야기하는 ‘호모 소사이어티쿠스’와 매주 번갈아가며
연재합니다. 따라서 담주에는 호모 소사이어티쿠스 1회가 시작되니 참고하시라덜.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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