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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28. 목요일

햄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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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일기 #2 - 아이돌 이야기]

[잉여일기 #3 - 그녀들과 나와의 함수관계]

[잉여일기 #4 - 덕후맨]

[잉여일기 #5 - 제목을 디벼보자]

[잉여일기 #6 - 알폰소를 알고 있소?]

[잉여일기 #7 - 전자오락과 아빠와 나]

[잉여일기 #8 - 진짜, 혹은 가짜 사나이]








 

 

지난주 <라디오스타>라는 프로그램에서 MC 김구라가 한 행동이 빈축을 샀다. 게스트였던 가수 케이윌이 가지고 나온 그의 소장품을 함부로 만졌다가 떨어뜨린 것이다. 스태프가 카트에 싣고 온 소장품들을 케이윌이 본인이 테이블에 옮기겠다고 했지만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굳이 거들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김구라는 실수였다고 말하며 이내 사과했지만 케이윌의 기분은 쉽게 풀리지 않은 듯했다. 김구라가 떨어뜨린 케이윌의 소장품은 바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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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이네? 장난감이잖아? 그렇다. 장난감이다. 그깟 장난감 떨어뜨린 것 같고 뭘 화를 내냐고? 김구라의 반응도 처음엔 똑같았다. 겉보기엔 그저 장난감이지만 케이윌의 소장품 아이언맨 에그 어택은 가격이 11만 원에 육박하는 비교적 고가의 물품이다.


‘무슨 장난감이 11만 원이나 해? 돈이 남아도나?’


‘11만 원 밖에 안 하는 걸 떨어뜨렸다고 화를 내? 그까짓 거 하나 사주면 되지!’


당신의 주머니 형편, 혹은 가치관에 따라 이밖에도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겠지만, 만약 당신의 반응이 위의 두 가지 중 하나였다면 애석하게도 당신이 잘못했다. 뭔 소리냐고? 애초에 허락 없이 남의 물건을 건드린 것부터가 김구라의 잘못이었단 얘기다. 그 물건이 천 원짜리건, 1억 원짜리건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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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김구라라는 특정인을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본인이 얘기하고 싶은 건 타인의 물건, 나아가서 타인의 삶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본인도 꽤나 물건을 수집하길 좋아하며 제법 집착하는 성격이라 김구라의 행동에 대한 케이윌의 분노에 꽤 공감이 갔다. 혹시 ‘따조’를 기억하는 분들 계신가? 중학시절 모 제과회사에서 과자마다 부록처럼 동봉돼있던 ‘따조’라는 플라스틱 딱지. 그게 뭐랍시고 그렇게 열을 올려가며 모았는지 모르겠다. 나뿐만이 아니라 당시 학급에서는 절반 이상의 친구들이 따조를 모으기 위해 과자를 사먹을 정도로 따조 열풍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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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조의 앞면에는 만화영화 <루니툰>의 각기 다른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캐릭터의 이름과 함께 1부터 100까지의 번호가 쓰여 있었다. <루니툰>은 내가 굉장히 좋아했던 만화영화였고, 그 캐릭터들이 그려진 따조 100종을 모두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반 아이들이 따조를 모으는 이유는 나와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따조를 날리며 놀거나 종이딱지를 치는 것처럼 따조를 바닥에 놓고 쳐서 뒤집는 놀이를 하곤 했다. 개중엔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상대방의 따조를 가져가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게임을 하기도 했다. 종류와 상관없이 그냥 ‘많은’ 따조를 가지는 게 목적인 아이도 있었고, 그저 갖고 놀기 위해 따조를 갖고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흠이 없는 깨끗한 상태의 따조를 모으고 싶었기 때문에 반 아이들과 교환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따조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혼자 사먹는 과자에서 무작위로 나오는 따조로 100종을 모두 얻기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 게 뻔했다. 나는 막 과자를 산 같은 반 아이의 따조를 내가 갖고 있던 따조 두 개, 혹은 세 개를 주는 조건으로 바꾸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희귀한 따조를 가진 아이에겐 아예 100원, 200원의 돈을 주고 얻어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초리로 봤지만, 나 역시 다른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따조를 모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 따조는 말끔한 상태로 모아서 보관하고 싶은 그 무엇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에겐 그저 당장 갖고 놀기 좋은 소모품이었고, 서로 그 가치관을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어른들의 눈에는 모두 쓰잘데기 없는 짓으로 보였을 뿐이었겠지만.


중학생 무렵엔 당시 유행했던 NBA 카드에 매료되어 거의 한 학기 동안 카드를 수집하는 데에 용돈을 바치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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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카드다.


NBA의 나라 미국에선 사실 야구 카드, 즉 MLB 카드 수집인구가 더 많다는 얘길 들은 것도 같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선 만화 <슬램덩크>의 인기에다가 한국 프로농구 KBL 원년의 열기가 더해지면서 농구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다. 또한 당시 NBA는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 등이 뛰는 시카고 불스 팀이 칼 말론과 존 스탁턴 등의 유타 재즈를 상대로 3년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던 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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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말해 ‘개 쩌는 시즌’이었다.


아무튼, NBA 카드 역시 봉투 안에서 무작위로 나오는 카드를 모아야 한다는 점에선 따조와 비슷했다. 다른 점은 따조는 과자를 사면 부록처럼 들어있는 것이었지만 NBA 카드는 순전히 카드만을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대여섯 장의 카드가 랜덤으로 들어있는 봉투 하나에 3천 원 이상이었다. 따조와는 달리 NBA 카드는 브랜드도 다양했고 그에 따라 가격과 모양도 천차만별이었다. 어퍼덱, 훕스, 스카이박스, 플레어, 주퍼맨, 파이니스트 등등...


처음엔 돈을 주고 카드를 산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아이들이 버리는 카드 몇 장을 받았을 뿐이다. 버린다고? 그렇다. 당시에 큰 가치가 없는 카드는 그냥 버려졌다. 따조와는 달리 NBA 카드는 어떤 선수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는지,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각각 가치가 달랐다. 그리고 그 가치는 베켓이라 불리는 해외잡지를 기준으로 매겨졌다.


베켓.jpeg


이렇게 생겨먹은 잡지다.


월간 잡지인 베켓에는 매 호 잡지 뒤편에 카드 브랜드와 종류에 따른 시세가 매겨져 있었다. 아이들은 잡지에 매겨진 가격을 기준으로 카드 값을 흥정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잡지상의 1달러가 한화로는 100원 정도의 가치였다는 점이었다. 누가, 왜 그렇게 가격을 매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땐 이미 그게 시장의 규칙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엄밀한 기준이었던 것도 아니다. 150달러의 가치를 가진 카드는 만 오천 원이 아닌 2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고, 지금 생각하면 뭔가 좀 애매했다.


아무튼 시세의 기준으로 1달러가량 혹은 그 미만의 카드들은 고가의 카드를 얻기만을 노리는 아이들에게는 그냥 버려졌다. 그중에는 제법 훌륭한 선수들의 이미지가 새겨진 카드도 많았다. 카드회사의 상술 때문이었는지 알 순 없지만, 인기가 많지 않은 선수는 성적과 커리어에 상관없이 가격을 후려치는 경향이 있었다. 그 덕분에 나도 NBA 카드를 접하고 수집에 입문할 수 있었지만.


처음엔 버려진 카드 몇 장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나도 점점 카드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장 저렴한 종류의 팩을 구입했지만 씀씀이는 어느새 커져서 한 팩에 5천 원이 넘는 카드 팩을 사기도 했다. 당시 내가 부모님에게 받던 일주일 용돈은 3천 원 남짓이었고, 달리 말하면 3천 원 이상의 카드 팩을 사기 위해서는 두 주 동안 용돈을 모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카드 한 팩을 사기 위해 두 주 동안 기다리는 일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한 번은 몇 주 동안 용돈을 모아 카드 단 한 장이 들어있는 8천 원짜리 ‘파이니스트’ 카드 팩을 사기도 했다. 심지어 카드를 더 멋지게 보관하겠답시고 만 원이 넘는 돈을 모아서 카드 전용 앨범을 구매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단순히 좋아하는 선수들의 카드를 모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수집이었지만 한 편으론 수백, 혹은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카드를 한 번 뽑아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 학기 용돈을 쏟아 붓는 내내 그런 행운은 없었다. 아마도 당시 시세로 30달러였던 데니스 로드맨의 레어 카드가 내가 뽑아본 카드 중 가장 비싼 것이었으리라.


NBA 카드의 유행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조던이 이끄는 불스가 감독 필 잭슨에게 다섯 번 째 우승반지를 안겨주며 시즌을 마감하고 해가 바뀌자 학교 주변에 있던 두어 곳의 카드 전문 숍들은 어느새 문을 닫아버렸고, 새 학기가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아이들은 카드 수집을 그만두었다. 덩달아 나 역시도 수집을 그만두게 되었다. 주변의 열기가 식자 나 역시 의욕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었고, 카드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사라졌다는 것 또한 원인이었다. 당시엔 인터넷 쇼핑몰 같은 것도 없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NBA 카드 따위를 부모님이 뻔히 보시도록 집으로 배송시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 몰래 카드를 수집했느냐고? 처음엔 그랬다. 그렇지만 저택에라도 살지 않는 한, 그 많은 카드와 커다란 앨범을 들키지 않게 보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카드를 모으기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은 내가 용돈을 카드 수집에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지만, 덮어놓고 수집을 금지하거나 야단치지 않으셨다. 대신 카드 값이 평균 얼마 정도 하는지, 또 내가 용돈에서 얼마를 카드에 쓰는지를 물어보셨고 ‘절제하라’는 요지의 말씀만 하셨을 뿐이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나의 카드 수집은 어떻게 봐도 쓸 데 없는 돈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았겠지만, 덮어놓고 야단치지 않고 스스로 실행착오를 겪도록 유도하셨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무척 감사한 일이다. 이후로도 나는 좋아하는 영화의 DVD나 만화책 등을 꾸준히 구입하고 수집, 감상하는 것을 즐기고 있지만 결코 중학시절 NBA 카드를 모으던 때처럼 무리하게 돈을 들여 무언가를 사는 일은 하지 않는다.


DVD와 만화책을 사는 것 또한 대한민국에선 그다지 인정받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만화책은 IMF 이후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던 대여점 덕분에 ‘사서 볼 필요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이미 뿌리 깊게 박혀있고, 영화 또한 ‘보고 싶을 때 다운 받아 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엄연히 말하면 불법 다운로드는 말 그대로 ‘불법’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들의 자유다. 나는 굳이 타인의 기준과 사고방식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는


“DVD/만화책을 왜 사? 돈 아깝게”


내지는


“본 영화/만화를 왜 또 봐? 시간 아깝게”


따위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가. 내가 얼마를 벌든, 내 취미생활에 얼마를 쏟든, 그것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나와 다른 이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네가 알게 뭐야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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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원사운드 게임만화-몇 번을 되새겨도 그 가치가 있는 짤이다


다시 케이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케이윌의 ‘아이언맨’을 떨어뜨리고 흠집을 낸 김구라는 말로는 사과했지만 얼굴에는 내내 ‘그깟 장난감이 뭐라고’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함께 출연한 로봇 공학자 한재권 씨가 갖고 나온 움직이는 로봇이 개당 수억의 비용이 들었다고 말하자 “저런 것도 아닌데 나한테 화를 냈냐”고 도리어 성을 내는 기색까지 보였다. 딴에는 미안한 감정을 어떻게든 떨치기 위해 취한 제스처였을 수도 있지만, 사과를 받는 입장에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여기서 문제는 내 취미가 어째서 거기에 들어간 비용이나 희귀성, 혹은 실용성에 의해 타인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는 점이다. 함께 출연한 개그맨 이봉원의 수백만 원대를 호가하는 등산장비들은 가치 있는 취미로 여겨지고, 11만 원짜리 케이윌의 아이언맨은 괄시 받아도 되는 기준이 어디 있느냔 얘기다.


케이윌.jpg


정말 중요한 건 그 취미가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점이지, 당신의 기준은 누군가의 취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까짓 게 뭐가 대단하냐고? 돈이 아깝다고? 나라면 그 돈으로 더 값진 일을 하겠다고? 누가 네 돈 빼앗아서 취미생활 했냐? 돈 한 푼이라도 보탠 적이 없다면 닥치고 아래 짤이나 보시라.


페라리.png

씨발 니 페라리 어딨냐고


연말연시가 다가온다. 누군가에겐 설레는 계절이지만 누군가는 또 가족모임, 또는 친구, 직장동료와의 송년회에 끌려가듯 참석해서 끊임없는 오지랖에 시달려야 한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언제쯤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거냐, 그 나이에 아직도 게임이나 하고 있냐 등등... 그들이 겪을 심적 고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내 눈시울이 다 붉어질 지경이다. 물론 나 역시 그러한 오지랖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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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헝헝


그러니 제발 부탁한다. 남이사 하루에 게임을 몇 시간 하든지, 똑같은 영화를 몇 번을 보든 말든, 페이트와 사랑에 빠지든 말든지 간에 그게 당신과 당신 가족의 안녕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부디 신경 꺼주시라. 다들 알아서들 잘 산다. 정 오지랖 떨고 싶다면 직접 페라리를 사서 끌고 와서 보여주시덩가.

 

 

 

 



 





햄촤

트위터 : @hamchwa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