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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찌라시 한국사'는 재미난 역사적 사건을 대화체로 풀고 썰을 마구 첨가하여 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박반박까지 한국사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새 연재입니다.


찌라시만큼 흥미진진하고 쫄깃하여 찌라시인 것이지, 진짜 찌라시와는 무관하니, 맘 편히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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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 통일을 꿈꾸던 그 시절, 뛰어난 무기제조 실력으로 삼국은 물론 당나라의 스카웃 제의를 한 몸에 받던 신라인이 있었다. 출생과 사망에 대한 정확한 기록조차 없는 그였으나, 신념과 업적만큼은 누구보다도 선명했던 신라의 하이테크놀러지 기술자, 구진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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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 8월, 신라 문무왕은 당나라로부터 3자 회담에 참가하라는 공문을 받고 완전히 열이 뻗쳐 있는 상태야Why? 문무왕이 참가하는 3자 회담이라면 나머지 사람들도 왕이 참가를 해야 하잖아. 그런데 나머지 2명의 참석자 중 하나는 당나라 장수 유인원이고, 마지막 참석자는 의자왕의 아들 부여 융이야.


신라에서는 왕이 나가는데 당나라에는 장수 나부랭이가 나온다? 이건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이미 5년 전인 660년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서 백제가 멸망했다는 거지또한 회의 주제가 당나라가 주선자로 나서 ‘신라와 백제지역은 친하게 지내도록 하라 해라는 거였어실체도 없어진 나라와 화친을 하라고? 여기에는 당나라의 검은 속내가 숨겨져 있어.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려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가니 당나라는 욕심이 생긴 거야. 이야 이것 봐라? 골치 아픈 고구려나 무릎 꿇리려고 시작한 일인데 이거 잘 하면 백제는 물론이고. 신라 땅까지 다 먹을 수 있게 생겼는데?’ 이런 흑심을 품고 백제 지역에는 웅진 도독부를 설치하고 심지어 신라 지역에도 계림 도독부라는 자치 기구를 두었어. 신라를 더 이상 동등한 전쟁 파트너라고 보는 게 아니었어. 신라 니들은 우리의 동맹이 아니라 하수인에 불과하니 없어진 나라 백제 지역과 우호나 다지면서 깨깽하고 있다가 고구려 침공 때 군사나 원조해, 이런 심산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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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신라의 문무왕이 주관하는 신라의 비상대책 회의 실로 카메라 앵글을 돌려 보자고.


어찌해야 좋겠소? 3자 회담에 참석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오?”


전하. 당나라의 참으로 난감하고 어이없는 제안이지만, 우선은 뒷날을 도모하여 참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신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직 고구려가 남아있는데 현 시점에서 나당 연합을 깨기도 곤란하고 일단은 저들이 하자는 대로 몸을 숙이고, 고구려까지 잡은 후에 다시 생각을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 그럼 일단 취리산으로 내 가도록 하겠소.”


3자 회담이 열릴 장소는 현재 충남 공주에 있는 해발고도 195m의 취리산이었어.


아이고~~ 우리 신라의 문무왕님 어서 오라 해거 인상 좀 피라 해. 이게 다 우리 당나연합군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해! 이게 다 대업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다 해.”


아니오. 유인원 장군! 알지요. 알아. 내 다만 먼 길 오느라 속이 좀 안 좋아 그렇소이다.


알았다 해. 오늘 내가 귀한 손님 한 명 소개 할라고 한다 해. 서로 아마 안면 있지 않나 해? 여기는 이번에 웅진도독부 책임자로 임명된 부여 융이라 해. 자 그럼 두 분 악수도 한 번 하라 해. 그리고 부여 융께서 오늘 회맹식을 위해 백마를 어렵게 구했다 해제물로 바친 백마의 피를 나눠 마시고 세 나라의 우애를 다지는 증표로 삼자 해.”


그... 그럽시다. 유 장군


이봐 거기 사관! 오늘 이 회담을 취리산 회맹식이라고 기록하라 해. 그리고 거기 화공! 이왕이면 우리 세 사람 좀 다정하게 보이도록 신경써서 이쁜 그림 한번 뽑아 달라 해.”


이렇게 똥 씹은 표정의 신라 문무왕과 흑심 품은 당나라 장군, 나라 잃고 벼슬 차지한 후 애매한 표정을 지은 의자왕의 아들까지 포함한 3자간의 취리산 회맹식이 끝났어. 입술에 백마의 피를 찍어 바른 채 각각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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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당 연합군은 668년 마침내 고구려까지 함락을 하였어.


이제 신라는 당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본격적이고 치밀한 장기간의 선제공격 준비를 시작해. 먼저 668년 평양성 함락 직전 왜에 특사를 긴급 파견해당나라와의 전면전이 곧 시작될 텐데 뒤에 있는 왜가 혹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외교적으로 손을 써 놓은 거지. 왜의 조상들과 후손들을 봐도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잖아.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평양성 함락 후 신라는 죄수들의 대대적인 사면정책을 실시해. 로얄패밀리가 돈 받고 재벌들과 형량을 거래하는 추잡한 짓이 아니야. 거대한 상대와 마지막 전면전을 치르기 전 병력확보와 민심을 얻기 위함이지. 죄수 사면 뿐만 아니라 극빈자들에 대한 부채탕감에 전쟁으로 무너진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 식량원조 등의 다양한 구휼정책까지 펼쳐.


"백성 여러분! 맞습니다. 최근 정부가 실시하는 모든 시책은 여러분의 마음을 얻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백성 여러분의 부족한 살림에 턱 없이 부족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삼국통일이 눈 앞에 있습니다. 우리 한 번 온 나라가 힘을 모아 동아시아 최강국 당나라와 멋지게 싸워 봅시다. 우리가 먼저 전선으로 나가겠습니다. 어렵지만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저희를 믿고 따라 주세요."


백성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 높았어. 임금이 도망치고 행정부가 무너져도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게 의병이자나. 헌데 나라가 나서서 백성들을 먼저 위하는 상황이니 우리 백성들이 협조 안 할 수가 없잖아.


그런데, 669년 겨울 당 나라에서 신라 최고의 무기 기술자 구진천의 소환을 강력하게 요구해 와문무왕은 긴급 상황을 맞아 공식일정이 없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각료들을 관저가 아니 긴급상황실로 불러 들여. 기술자 한 명 가지고 무슨 긴급 회의냐고? 모르는 소리 하지 말고 회의나 귀 기울여 들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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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당나라에서 새로 들어온 비단으로 새 용포를 재단 하시기로 한 날인데, 잠시 시간을 내시어 먼저...”


머야? 이런 정신 나간 자를 봤나? 지금 나라의 새싹들이... 아니, 기술자가 당나라로 끌려가게 생겼는데, 왕인 내가 옷 치장에 시간을 내라고? 너 같은 자들 때문에 백제가 망하고 고구려가 망한 것이다. 넌 이따 회의 끝나고 다시 보자.”


장군! 구진천에 대한 브리핑을 빨리 시작 하시오.”


성명 : 구진천

출생 : 국가기밀

작책 : 사찬. 6두품에 해당

핵심보유 기술 : 기계 활인 노() 제작의 달인

구진천 노의 성능 : 사정거리가 천 보 이상.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정거리와 쉬운 사용법. 동아시아 일대에 이미 널리 퍼진 병기이나 구진천의 노는 압도적 위력

구진천 당나라 전향 시 예상피해 규모 : 큰일 남. 전쟁의 성패를 좌우할 걸로 예상

대책 :  없음. 오직 구진천 개인의 성품을 믿고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


김장군! 지금 저걸 대책이라고 내 놓은 거요? 당나라는 온갖 재물과 명예를 보장함은 물론이오. 손가락 까닥하면 그를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오. 헌데 우리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애국심에 호소라... 너무나도 무기력 하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전쟁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력이 약한 우리는 반드시 선제공격을 해야 합니다. 선제공격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이 극비로 진행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구진천을 내놓지 않는다면 당나라는 우리를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구진천은 엄청난 무기제조 기술을 보유하였지만, 고국에서 부귀영화는커녕 적국에 인질로 잡혀가게 되었어. 마치 냉전시대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가진 과학자들이 적국에 납치 되어 고국의 심장을 향해 날아갈 미사일을 제조 하듯이 말이야.


구진천을 떠나 보내고 신라는 고구려 유민들도 받아 들이며 막바지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했어. 구진천이 당나라에 무기를 만들어 주고 대량생산에 성공한다면 신라군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야.


마침내 670년 3월 신라는 설오유 장군과 고구려 부흥군인 고연무 장군에게 각 1만의 병사를 주어 압록강을 횡단하여 당나라에 선제공격을 감행했어치밀한 준비의 결과였는지 대승리로 귀결 되었어. 물론 구진천이 만들어 놓고 간 활이 큰 역할을 담당했지. 하지만 이후로도 당나라를 완전히 우리 영토에서 쫓아내기에는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아! 우리의 구진천은 어떻게 되었냐고당 나라와 7년의 전쟁 동안 당 군이 구진천의 병기를 사용하진 못했어. 신라에서 그의 출생 년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당 나라에 끌려 간 후 사망에 대한 기록도 없어. 다만 아래의 이야기만 전해 진다고 해.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신변에 일어났을 일을 미루어 짐작이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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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간을 잠시 돌려 구진천이 당 황제를 처음 만나는 순간으로 가 보자고.


! 그대가 신라의 보물 구진천이라 해? 진짜 반갑다 해. 쾌적한 환경의 연구실과 숙소로 사용될 펜트하우스, 무기 제작완료 시 지급될 땅 문서와 연급 보장증명서 여기 다 있다 해. 그리고 최고의 요리사와 의료진이 항시 대기 중이니 님은 그저 빨리 그 신묘한 무기를 만들어 짐에게 보여 달라 해.”


... ... 소인 비록 미천한 재주 이지만 성심 성의껏 만들어 황제 폐하가 베풀어 주신 은공에 보답 하겠습니다.”


그 날 오후부터 무기제작에 들어갔고, 당나라 군인들의 감시와 독촉 속에 구진천은 마침내 시제품을 완성했어당 황제는 군사전문가는 물론이고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불러모아 성대한 행사를 준비했어. 마치 천재 무기제조업자 토니 스타크가 새로운 신무기를 공개하는 것처럼 말이야.


자 이제 우리 사람도 드디어 구진천의 노를 전투 현장에서 사용하게 될 수 있다 해. 오늘 그 화려한 데뷔 무대를 같이 즐기자 해. 특별히 무기 제작자인 신라출신 구진천이 첫 발을 쏘겠다 해.”


많은 군중의 박수와 환호 속에 등장한 구진천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어. 한 치의 의심도 필요없이 이 무기는 동포를 향할 테니까 말이야.


구진천이 마침내 힘껏 시위를 당겨 활을 날려 보내자 황제를 비롯한 모든 관중은 침을 삼키며 화살 끝에 눈을 맞췄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화살이 날아가는 육중한 소리를 기대했지만 피용~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30보도 못 가서 비실비실 땅에 떨어지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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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역시... 황제폐하, 제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작업환경이나 부대시설이 아무리 좋으면 뭘 합니까? 누차 말씀 드렸다시피. 신라의 목재로 만들어야 한다니까요? 당나라 목재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신라에서 목재를 구해다 주십시오. 그때까지 저는 지친 심신을 재충전 하겠습니다.”


기술을 가진 갑 구진천의 엄포에 을인 당 황제는 당장 신라에서 목재를 구해 오라고 했어. 저 시대에 신라에서 목재를 베어서 배로 싣고 오면 얼마나 오랜 시일이 걸렸겠어? 신라는 전쟁 준비에 시간상 개이득!


많은 사람들을 불러놓고 개망신을 당한 첫 번째 쇼 케이스에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당 행정부는 이번에는 소수만 모여 두 번째 테스트를 진행했어.


이번에는 힘 좋은 당나라 장군이 시위를 당겼고 모두의 예상대로 화살은 30보를 넘게 날아갔어. 곧 이어 당 황제가 통역을 불러서 구진천에게 자신의 말을 감정을 살려 전달 하라고 이야기를 해.


참으로 큰 일을 해냈구나. 지난번에는 30보 밖에 안 나가더니 이번에는 무려 2배인 60보가 나가게 되었구나. 이대로라면 내 아들 대에 가면 마침내 천 보에 다다를 수 있겠구나. 너는 도대체 머 하는 개xx?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다 제공하였는데 너는 어찌 이런 배은 망덕으로 되갚느냐? 이유나 말해 보거. 넌 어차피 죽은 목숨이다.”


사실 또 속으시면 목재 운반도중 습기가 차서 그렇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헌데 배은망덕 이라니요? 돈과 출세를 버리고 제 나라와 백성을 택한 제가 배은망덕 입니까? 이제 제 굳은 의지는 확인 하셨으니 저를 베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십시오제 손으로 동포의 심장에 겨눌 활을 만드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느냐?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가서 묻는다. 넌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다.”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요. 신라에는 저같은 지식인 기술자들이 차고 넘칩니다. 배운고 가진 놈이 쪽팔리게 돈에 영혼을 팔고 칼 앞에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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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 11월 기벌포 해전을 끝으로 당나라는 우리 영토에서 완전히 물러 나게 돼. 당나라가 신라의 끈질긴 공격에 고전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전략적으로 우리 영토을 포기한 점도 있어. 그 당시 토번(현재의 티베트) 지역이 크게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병력을 그 쪽으로 집중 시킨 거야. 이 지역은 그 유명한 실크로드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돈과 이권이 걸려 있었던 거지. 당나라는 구진천과 달리-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전력이 약한 신라에게 꽁무니를 보였어. 실크로드의 돈을 쫓아 떠난 거야.


최근 신라가 삼국통일을 안 하는 게 나았다는 의견들도 많지만, 인정 할 건 인정해 주자고고구려가 아닌 신라가 삼국을 통일 했다는 것에는 그럴만한 많은 이유가 있었을 거야. 그 중에는 구진천 같은 숨은 인재들의 힘이 크지 않았을까? 신라는 이런 인재를 중시하는 -블랙리스트 대신 문화와 예술을 존중해 주는- 신라였기에 통일신라시대 동안 예술과 문화가 활짝 꽃 피웠겠지.


영화 대사에 그런 말이 있잖아. “오래 살아 남는 놈이 강한 것이여”. 역사를 공부 할수록 느끼는 건데 정말 오래 가고 살아 남는 건, 총 칼을 앞세운 폭력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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