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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탄핵 직후 주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탄핵 기각 집회에 참석한 것을 보았다. 아마 한동안은 상당규모의 집회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바른 정당으로부터 보수의 주도권을 지켜내야하는 자유당의 이해관계와 노년층의 존재조건이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는 사실상 불복했고 대선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태극기 집회는 그동안 종편이 독점적으로 제공했던 노년층을 위한 정치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집회주최측과 자유당이 오프라인 자영업으로 이어받고 있는 측면이 있다. (태극기 집회보다는 친박집회가 집회 성격을 더 잘보여주는 것이지만 어떤 집회라 불리고 싶은 자유정도는 존중해 주고 싶다.)



2. 이는 기본적으로 자멸적 소기득권 유지전략이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태극기집회는 보수세력 전체를 고립시키고, 자유당의 대구-경북 지역정당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극렬행위와 억지는 보수의 문화적 이미지를 후진 것으로 고착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최적의 선택은 아니지만 이 글에서는 민자당-새누리당 계열의 수구 세력을 현 정치구도에서 통칭하는 말로 사용하겠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개운치가 않은 것은 그들의 폭력성과 반민주성이 부각 될수록 그 속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망각되기 때문이다.


집회 주최측의 이해관계는 저열하지만 충분히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 하지만 집회 참여자들은 다르다. 왜 많은 노인들이 시대착오적이고 후안무치한 주장에 열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이 마음을 괴롭게 했다. 벌써 세 명의 시위대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이는 분명 의미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저들의 열광에는 한국사회에서의 노년이라는 형벌에 대한 실존적 외침이 있다고 본다. 집회 주도 세력에 분노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외침을 철저하게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 역시 무료 효도관광에서 구매해오는 옥장판처럼 알고도 속아주는 측면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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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난 대선 안철수 현상에서 보듯 상당수 중도층의 표심은 어찌보면 패션에 민감한 힙스터 같은 면이 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정치혐오와 적대적 언론에 의해 이루어진 야권에 대한 이념 공세의 결과 사람들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신상에 쉽게 마음을 열었다. 돌이켜보면 이같은 선호는 박찬종, 문국현, 정몽준 같이 어느 시기에나 있어 왔다. 2002년 월드컵으로 인해 정몽준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어메이징하지 않는가? (이것이야 말로 몽 주니어의 100승 아닌가) 군부 및 부도덕한 수구 세력들의 오랜 집권 전략이 정치혐오 조장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은, 이를테면 언론의 편향성과 같은 요소를 보정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탈역사적 기호소비의 성격을 띈다. 미디어에 비친 멋진, 훼손되지 않은 이미지를 선택하는, 혹은 남 보기에 덜 구린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의해 한번 무너진 보수세력의 신화는 자유당과 극우세력들이 세력 내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고삐를 당김으로써 보수와 박근혜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른정당의 지지부진한 행보와 노년층을 집중겨냥한 자유당의 강경한 세력결집으로 인해 보수세력 전체가 박근혜•노인의 이미지를 오랫동안 안고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50대 60대의 온건한 전 새누리당 지지층과 부울경, 수도권의 중도층들을 보수로부터 대거 이탈시킬 것이다.


이명박의 색깔을 걷어내고 빨간 로고의 새누리당을 만든 저들의 민첩성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시사인의 분석처럼 지역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던 친이에 비해 친박은 경쟁이 치열하지 않던 대구, 경북+ 부산, 경남에 쏠려 있음으로 인해 민심의 변화에 둔감해 졌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합당한 분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둔한 박근혜의 옹고집으로 인한 동종교배가 낳은 참사일 것이다. 친박도 모자라 진박이라니... 그렇게 거르고 걸러진 진박들은 탄핵 선고당일 jtbc 특집 토론회에서도 보여주듯 진짜 박근혜 같아졌다. 눈치 없고 뜬금없는 개헌과 문재인 공격이라니.



5. 태극기 집회의 연단에서 소리 높이는 세력들을 자영업자로 부른 것은 그들 역시 그런 방식으로는 정권교체를 막을 수 없다는 것, 그런 강변들이 보수세력의 확장성을 극도로 좁힐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있고 최소한의 권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하물며 국민 15% 내외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은가. 자유당은 태극기 집회를 통해 노년 및 대구 경북의 지지층을 결집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김문수는 집회에 얼굴을 비추며 국회의원이나 도지사를 노릴 것이며 연사들은 책을 팔고 종편에 출연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국가 전체를 운영했던 세력임을 생각하면 옹색하기 그지없지만 자신의 자리는 그렇게 만들고 지켜 나가는 것이 삶이다. 그들에게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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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원론적으로 그들에게도 사상과 집회의 자유가 있으며, 폭력, 협박, 허위사실 유포, 관권 개입이 있었다면 지금에 와서는 개별적으로 수사 처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행태는 권위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이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에 일어나는 촌극일 것이다. 비록 권력의 비호 및 공백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집회가 보호받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분명하다. 그들마저 최소한의 존재를 인정받고 탄압받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시민적 자유는 사회적 상식이 되는 것이다. 미운 사람을 공정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7. 상당수의 노년층들이 태극기 집회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노년층들의 냉전적 사고, 노인빈곤, 박정희 신화에 대한 강렬한 향수등을 들곤 한다. 충분히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노년층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산업사회에서 노인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농경 사회에서 노인은 경험적 지식의 전승자, 제례의 집행자로서 권위가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 탈전통화 되면서 이런 역할은 거의 무의미해지게 된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노년층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해 그 모든 변화를 한 생애를 통해 겪게 된다. 봉건적 문화 속에서 성장했지만 노인이 되어선 어떤 대체 시스템의 보살핌도 없이 개별화, 고립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상가족의 보살핌도 연령적 위계 속에서의 존중도 크게 기대할 수 없어진 것이다. 이를 간단히 꼰대의식이라 뭉개버릴 수도 있지만 봉건적 사고체계에서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감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박정희 박근혜에 대해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 대리전이다. 자신들이 만든 세상에(주로 박정희의 경제개발 신화로 발현되는)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싶다라는 외침은 자신의 삶도 가치가 있다는 항변이며, 지금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고 있다라는 마음의 소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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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노인을 보살펴 주는 것은 오직 종편 뿐이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원룸에 살다보면 하루종일 큰 소리로 종편이 틀어져 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홀로 살고 있는 내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종편은 자신을 소외시킨 시대와 젊은 세대에 대한 반감을 종북 세력에 대한 적대로 잘 우려낸다. 종편은 노인 친화적 방송이다. 박찬종, 한화갑, 김동길과 같은 그들에게 익숙한 올드보이들을 내세워 복잡한 사회시스템에 대한 분석보다는 종북과 같은 단순명료한 언어와 감정적 언사를 통해 노년층들의 마음 속에 맺혀 있는 분노를 특정한 물길로 이끌어 낸다. 노년이라는 운명적, 사회적 형벌에 대한 울분을 풀어내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치는 노년층에게 훌륭한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 전통적 사고는 개인의 행복, 자아실현 보다는 국가나 민족, 가문과 같은 공동체 속에 자신을 위치 지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 행위는 민족과 국가라는 맥락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자신과 거대한 사회를 이어주는 상징적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9. 그런 면에서 태극기 집회는 사회적 역할을 박탈당한 노년층들에게 강력한 사명감과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태극기 집회에는 박탈감과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동료들이 있다. sns의 활용은 집회참여자들 사이의 동료 의식을 강화 시킬 것이다. 그 속에서 정치 자영업자들은 끊임없이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제공한다. 태극기 집회는 마치 솔로대첩처럼 공감대를 가진 다른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오프라인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 선의로 읽어 본다면 그들 역시도 누군가와 공감하고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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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태극기 집회의 규모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나는 적지않게 놀랐던 것 같다. 촛불집회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일당시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었다. 설날에 만난 아버지는 친구들이 jtbc 태블릿이 조작되었다고 이야기해서 친구를 잃을 뻔 했다 말했다. 많이 배우고 훌륭한 친구들인데 왜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망연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버지는 권력에 의한 억지조작은 역사에서보듯 가능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 권력이 고영태라는 일개인에 의해 휘둘려 사태가 여기까지 진행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추론을 했다. 그러자 친구분들은 아버지가 스마트폰을 쓰지도 않고 sns를 하지 않아서 ‘너는 모른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11. 짐작컨대 지금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심리는 정권에 의해 탄압받는 운동권의 그것과 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탄압받는 자로서의 서사가 노인들의 실존적 박해와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탄핵이라는 국면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될까 염려스럽다.



12.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태극기 집회에 대한 반응이 분노와 조롱으로만 끝나는 것이 나는 아쉬웠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저들을 일당을 받고 집회에 나온 시대착오적 집단으로 일축하면 그것으로 되는 것인가? (재미있는 점은 저들도 촛불집회를 일당받고 나온 집단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를 지우는 방식이다.


저들은 왜 광장에 모여있는가? 기껏 종북을 저지하기 위해서인가? 저들의 속내를 알아듣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우리들 스스로도 그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노인의 삶을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칫하면 그런 무관심은 우리들이 은연중 노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유사 인종주의적 태도의 소산일 수도 있다.



13. 노인들이 사기꾼들에게 옥장판을 사는 이유는 그들 말고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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