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3. 12. 02. 월요일

글: 이동현

사진: 김하나, 노완호













사진 2.JPG

노완호 그림

도회지에서 온 어린 벗들을 만나러 나오시는 밀양 할머니들 눈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사진 2.JPG


1. 범죄 없는 마을


2013년 11월 30일 아침, 밀양으로 가는 희망버스를 탔다. 경기도 남부에서 출발하는 우리 버스에 함께 탄 일행은 모두 32명이었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다른 버스보다 먼저 밀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전날 경찰에서 언론사에 돌린 보도자료에서는 마을로 들어가는 11개 길목에서 교통통제를 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늬들이 버스를 막으면 걸어서라도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가지고 있는 신발 중 가장 편한 등산화를 챙겨 신었다. 우리 버스가 밀양에 도착하자 네 차례나 경찰의 검문을 받으며 멈춰섰다. 하지만 마을 근처로 가까이 가기까지 통행을 제지당하지는 않았다. 전국에서 수천 명이 몰려드는 판국에 합법적인 근거 없는 차량통제가 얼마나 쪽팔리는 짓인지 경찰도 깨달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109기 송전탑 공사현장 옆에 있는 상동면 도곡마을이었다. 마을에서 희망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를 했다. 나를 비롯해 우리 일행 중에는 여자가 많았다. 우리가 할머니들 모여 계신 천막으로 가자 할머니들이 다가와 손을 잡고 끌어 안으며 반겨주셨다. 어데 안아 보제이, 우리 손주 손부같데이. 팔순이 넘어 보이는 꼬부랑 할머니, 주름진 마른 손, 두꺼운 옷을 껴 입어도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몸피. 할아버지들은 둑 위에 불을 피우고 따로 모여 계셨다. 할아버지들은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십니데이, 고맙심데이, 이런 인사를 하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할아버지 중에 여자에게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분은 없었다.


도곡저수지 둑 위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할머니는 할머니끼리,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끼리 나뉘어 앉았다. 남녀칠세 부동석의 규칙이 아직도 지켜지는 현장을 보자 새삼 실감이 났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구나.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작은 기념비가 서 있었다. 2002년 5월 1일, 밀양시 상동면 도곡리 도곡마을, 범죄 없는 마을. 법 없이도 살아가던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취조당하고 법정에 서게 되었다. 한국전력 직원들이 들이 닥치고 송전탑이 세워지면서, 범죄가 범람하는 대도시에 전기를 끌어 대기 위해 범죄 없는 마을 어른들이 범법자가 되어버렸다.


사진 5.JPG

범죄 없는 마을


2. 외부세력의 개입


밀양에서 일어나는 일에 왜 늬덜이 참견이나고, 외부세력은 개입하지 말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물어보자. 공사현장에 상주하는 경찰병력과 한전직원은 밀양의 내부세력인가? 밀양경찰서에서 경찰과 의경이 주렁주렁 열리는 포돌이 나무 농사라도 짓고 있단 말인가?


송전탑 건립에 반대하는 밀양의 4개면 16개 마을 주민을 탄압하기 위해 외부에서 투입된 경찰병력은 어마어마한 숫자로, 지난 10월 공사가 재개된 후에는 무려 3000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여기에 더해 한국전력에서 파견한 용역 인력도 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11월 30일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모인 시민은 2000여 명(경찰추산 1400명), 이를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은 4000명이었다.


주민들의 협조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새빨간 거짓말, 경찰력을 투입해서 저항하는 주민들의 발목을 잡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동안 한전에서는 헬기로 자재를 운송하며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공사현장 인근에 있는 마을로 향하는 도로에는 경찰 검문이 계속되고 마을 주민이든 외부인이든 그들을 거치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밀양으로 시집을 와서 평생 살아온 여든 두 살 할머니의 말씀, 쟈들이 우리를 말려 죽일라꼬 그런갑다. 외부세력인 경찰과 한전이 이들을 완전히 고립시키지 못하도록 외부세력인 희망버스 시민들이 그곳으로 갔다.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한 폭압을 그만두라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대화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밀양의 일부 시민단체에서 희망버스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도곡마을의 칠순 할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시내에 나갔다가 욕을 얻어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밀양 시내에 거주하는 시민이나 송전탑이 지나지 않는 남부 지역 주민들 중에는 송전탑이 지나는 북부 산골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저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밀양 사람들 중에도 내부의 희생을 강요하는 세력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 중에 군부독재를 지지하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독재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송전탑이 필요하다는 한전의 주장 때문에 평생 농사를 짓고 살던 노인들이 희생당할 정당성이 생기지는 않는다.


사진 1.JPG

밀양시 사회봉사단체협의회에서 내건 현수막

"희망버스 탈 회비가 있거든 연말 불우 이웃 돕기에 쓰십시요"

이웃돕기 성금은 연말만이 아니라 매 달 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


3. 님비는 개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국가 전체를 위한 지역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송전탑 건립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에게 지역이기주의라는 낙인을 찍는다. 지역에서 전기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엄청난 양을 소비하고 있는 도시민의 이기주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만약 한수원의 주장대로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면 여의도에 건립하면 될 것이다. 국회 앞에 넓은 국유지가 있으니 토지보상 문제도 없고 한강이 지나가니 용수로도 충분하겠다 딱 좋은 입지다. 여의도에 핵발전소를 지으면 송전탑을 세워서 전기를 끌어다 쓸 일도 없다. 대기업에 싼 값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농촌지역 사람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본의 탐욕일 뿐이다.


송전탑은 가장 땅값이 싼 동네를 골라 세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밀양 북부 농촌지역은 땅값이 싸다. 여기 땅을 팔아봐야 딴 데 가서 농사지을 땅을 살 수가 없다. 송전탑이 세워지면 그렇잖아도 싼 땅 값이 더 내려간다. 토지의 가치가 떨어져서 은행담보로 받아주지도 않는다. 농부에게서 땅을 빼앗는 건 굶어 죽으라는 소리 밖에 더 되나? 아버지 박통이 너무나 그리워 새마을운동 시즌2를 굳이 재개하고 싶다면 발암물질 석면으로 뒤덮인 지붕을 교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지 잘 살고 있는 마을의 지붕 위로 고압선이 지나가게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밀양 주민들의 투쟁이 보상금을 더 많이 받으려는 알박기라고 단정 짓는 이들도 있다. 지역에 개발사업이 시작되면 언제나 보상금 문제가 쟁점이 된다. 이번에도 한전에서 제시한 보상금은 지역민을 분열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심지어 연말까지 보상금을 받아가지 않으면 한 푼도 받지 못할 거라며 비열한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한편으로는 토지강제수용 절차를 밟고 주민들을 고소고발하며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투쟁하고 있는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요구사항은 더 많은 보상금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송전탑 중에 마을에서 가까운 곳은 우회하거나 송전선을 지중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상을 요구했던 다른 지역은 이미 보상금을 받고 투쟁을 포기했다. 지금까지 투쟁하는 지역의 주민들, 8년 넘게 송전탑 반대 투쟁을 계속해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상금을 더 받자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 3.JPG

이치우 할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에 설치한 조형물

우리가 연대해서 할아버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진 4.JPG

분향소


작년 1월에 보라마을 이치우 할아버지는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자결하셨다. 그리고 3월 첫 탈핵희망버스가 밀양으로 향한 뒤 송전탑 문제가 이슈가 되자 공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0월이 되어 공사가 재개되면서 더 많은 경찰병력과 한전인력이 마을로 투입되었다. 연로한 주민들만으로 맞서기는 물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어려운 싸움이었다. 이번 희망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52명의 주민들이 다치고 20여 명이 연행되었으며 1명이 구속되었다.


이들이 이렇게 송전탑에 반대하며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만난 고답마을 할아버지의 말씀, 우리 집에서 송전선로가 이백오십미터 뿐이 안 떨어졌는데 그래가 우에 사노? 도곡마을 할머니의 말씀, 철탑이 들어서믄 시어른 산소가 거서 지척인기라. 마을 주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이대로 살다 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도곡저수지 둑 위에 둘러 앉아 다른 희망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마을 할아버지들이 앰프를 가져오셨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 할아버지 힘내시라고 돌아가며 연대발언을 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기도 했고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아가자고 다짐하는 노래도 불렀다. 더 부를 노래도 없고 할 이야기도 없고 심심하니 그럼 구호라도 외쳐볼까 하며 누군가 시작했다.


송전탑을 짓지마라. 여러 번 외치고서 다른 구호를 찾다가 한 희망버스 참가자가 외쳤다. 한국전력 개놈들은 물러가라.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여든이 넘은 꼬부랑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이고 내는 욕 모린데이, 욕허지 마래이. 개놈이란 표현이 욕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들은 조금 부끄러워졌다.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다른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는 욕 잘 한데이, 요넘들 좆방맹이를 뽀사뿔라. 우리들은 차마 그 어휘를 따라 외치지는 못했지만 주먹을 치켜세우며 함께 웃었다.


도곡마을에는 평생 욕이라곤 모르고 살았던 할머니도, 욕을 능숙하게 하는 할머니도 살고 계신다. 커다란 양은주전자에 완벽한 비율로 50인분 커피를 끓여낼 수 있는 할머니도 계시고, 밀감을 쥐어주며 농갈라 먹으라고 신신당부하는 할머니도 계신다. 외지에서 온 젊은이들을 상대하기 어색해서 뒤쪽에 조용히 있다 누군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발견하고 달려가 알려주는 할아버지도 계신다.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지금처럼 한 마을에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그것이 이분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이다.


사진 7.JPG

농성장에서 쉬고 계신 할머니들 

이곳은 할머니 구역으로 할아버지들은 함께 앉지 않습니다.


사진 8.JPG

할매가 간다.


6.JPG

트럭을 타고 이동! 할배 달려~


4. 송전탑을 향해서


희망버스 일정이 바뀌었다. 탈핵집회가 무산되면서 각자 도착한 마을에서 송전탑 공사현장을 향해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도곡마을에는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 홍성, 강원도 등지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150명 정도, 뒤에 합세한 이들을 합하면 200명 쯤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산길은 경찰과 의경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경찰병력은 600명 정도 된다고 들었다. 이 정도 숫자로 경찰의 저지를 뚫고 올라갈 수 있을까 겁이 났다.


할머니들이 앞장을 섰지만 체력 좋은 젊은이들이 금방 따라잡았다. 산세가 험하고 가파른 길이었다. 할매할배들이 이런 산을 매일 다니다니 무슨 고생인지, 게다가 길목마다 경찰이 막아서기 때문에 길이 아닌 곳을 돌아가느라 더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팡이를 짚은 꼬부랑 할매가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일정 때 시집와 갖고 돼지 두 마리 끌고 맨발로 산을 뛰어 댕겼재, 순사놈들이 얼매나 못살게 굴었는가. 그래도 여서 살았는기라. 손톱이 닳도록 흙파면서 살았는기라. 이제는 고마 한전놈들이 산길을 막고 올라가도 몬하게 가로막고... 할머니는 설움이 북받혀 울먹이셨다.


사진 9.JPG

산길을 가로막은 경찰부대


사진 10.JPG

저지선 통과, 이것은 무혈혁명


산 중턱에서 스크럼을 짜고 있는 경찰병력과 마주쳤다. 다해봐야 서른 명 정도의 인원이었지만 좁은 길을 가로막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그만 내려가세요. 우리가 공사현장을 파괴하려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들이 우리를 저지할 권리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투쟁 경험이 많은 노동조합 아저씨들이 맨 앞에 서서 경찰과 대치했다. 일부는 산기슭을 돌아서 올라갔다. 우리 쪽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결국 시민들이 경찰을 에워 싼 형국이 되었다. 그렇게 1차 저지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저지선에는 더 많은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백 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체력이 좋은 아저씨들이 주로 앞에 서서 경찰을 몸으로 막았고 여자들과 노인들은 산을 타고 경찰의 등 뒤로 돌아갔다. 경찰들은 뒤로 들어온 시민들을 막으려고 뛰어다녔다. 몸이 날랜 시민들이 산비탈을 뛰어다니자 경찰을 그쪽을 잡으려고 했고 결국 경찰의 저지선이 느슨해져서 우리는 산길을 올라갈 수 있었다. 시위현장에 많이 가 본 어떤 아저씨가 말했다. 산이라서 뚫었지 도시에서는 이 정도로 못 뚫는다고. 만약 가두시위였다면 도로를 가로막은 전경버스를 쓰러뜨리지 않는 한 나갈 길이 없었을 것이다.


공사현장 앞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뚫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병력이 가로막고 있었다. 가파른 비탈이라 뒤로 돌아갈 길도 없었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비탈에서 여러 번 미끄러졌다. 상황이 위험해지자 경찰도 희망버스 참가자도 서로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나는 앞에서 미끄러질 것 같은 의경의 등을 붙잡았다. 어느 여경은 내가 떨어질까봐 나무 둥치에 발을 딛으라며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라간 우리들과 겨울산에서 명분 없는 공사현장을 지키기 위해 버텨야 했던 경찰들 모두 가엽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은 한국전력 나빠요.


사진 11.JPG

이 추위에 늬덜도 고생이 많다.

하지만 공무수행 중에 얼굴을 가리는 건 좀...


5. 한국전력이 송전탑을 세우는 이유


765kV 송전탑은 우리나라에 세워진 송전탑 중 가장 전압이 높다. 높이만 140미터, 이제까지 우리들이 봤던 송전탑과는 사이즈가 다르다. 미국, 캐나다, 중국 같이 국토가 넓은 나라에서 장거리 송전을 위해 짓는 것이다. 자연경관이 파괴되고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뒤로 하고, 일단 사람의 삶에 미치는 악영향만 살펴보자. 초고압 송전탑의 전자파에 노출되면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수 없이 많다.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에 76만 5천볼트 초고압 송전로를 짓겠다는 것은 생존과 건강에 직접 위협을 가하는 것과 같다.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와중에도 한국전력이 76만 5천볼트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는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옮기기 위해서이다. 밀양 지역을 지나가는 송전선로는 신고리 원전에서 북경남 변전소로 향한다. 송전탑과 핵발전은 한 몸이나 다름 없는 연장선에 있다. 전기를 만들었으니 어딘가 옮겨서 써야하지 않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고리원전 5~8호기는 아직 건립되지도 않았다. 국회에 건설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제출된 상황. 그러니까 아직 짓지도 않은 핵발전소 때문에 송전탑을 짓는다고 이 난리가 난 것이다.


사진 12.JPG

109호 송전탑 건설현장


사진 13.JPG

경찰은 한전만 지켜주고 할매할배들은 안 지켜줘?


원자력은 깨끗하고 값싼 에너지라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후쿠시마 원전 터지고 나서 지금 일본 전역과 태평양이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있다. 원자력은 깨끗하지 않다. 더럽고 위험하더라도 아주 저렴하다면 싼 맛에 써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2900원짜리 티셔츠 골라 입을 땐 그래도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핵발전은 안전하지도 않은 데다 싸지도 않다. 얼마 전 고리원전 1호기가 재가동하고 50일만에 작동을 멈췄다. 왜냐고? 모른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발전소에서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자꾸 고장나는 발전소는 전기를 싸게 생산하는 발전소가 아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전국에 전력난 비상이 걸린 이유는 전력수급이 일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핵발전이 되다 말다 지랄이라 공장 회사 가정에서 손해본 비용은 누가 책임지나?


물론 우리가 언제나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건 아니다. 내가 쓰는 고물 노트북도 가끔 작동이 되다 말다 해서 이 길지도 않은 글 쓰는데 몇 번을 쉬어 갔다. 이 노트북이 지금 당장 작동을 멈춰봐야 지금 쓰는 글과 그동안 엄선해둔 야구동영상이 날아가는 정도의 피해가 있을 뿐이다. 헌데 핵발전소가 그따위로 돌아가면 어떤 피해가 일어날지, 후쿠시마에서 다들 보지 않았나?


문제의 고리원전. 고리고리 멀리멀리 떨어진 외진 동네 같지만 부산에 있다. 원전에서 부산시청까지 거리는 고작 25km. 핵발전소 터지면 부산에서 폴싹 주저앉고 마는 거 아니다. 울산, 포항, 경주, 대구까지 바람이 어디로 불 지 바닷물이 어디로 흐를 지 누가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데? 부산이 제2의 후쿠시마가 되어버리면 그 뒤의 일은 정부가 책임질 것인가? 원전사고는 기업이나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의 범주가 아니다. 그러니까 핵발전 그만하고 송전탑 그만짓고 평화롭게 살자. 이렇게 주장하기 위해 우리는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갔다.


사진14.JPG

무대에 오른 밀양 투쟁 합창단 할머니 할아버지들


6.


저녁 7시가 넘어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밀양역으로 모였다. 낮 동안 각기 다른 마을에 도착해 송전탑을 향해 올라간 뒤 마무리로 한 자리에 모이는 문화제였다. 내가 함께 했던 도곡마을 쪽에서는 큰 부상자와 연행자가 없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피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두 모이느라 시간이 늦어졌지만 행사는 예정대로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문화공연 중 투쟁하는 어르신들이 직접 꾸민 무대가 있었다. 대중음악의 노랫말을 개사해서 합창을 하신 것이다. 여러 노래 중 한 대목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야이 야이 야~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 평생 묵묵히 흙을 일구며 살아오신 분들이 노년이 되어 정부에 반대하는 투쟁을 시작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의 삶은 너무나 연약한 기반 위에 서 있다. 국민이 건강하게 살 권리, 사유재산을 소유할 권리, 노동을 할 권리를 정부는 지켜주지 않는다. 반대로 기업의 편에 서 우리의 건강권, 재산권, 노동권을 침해하는 데 공권력을 투입했다. 밀양에서, 강정에서, 용산에서, 영광에서, 새만금에서, 대추리에서, 대한문 앞에서, 각지의 투쟁현장에서, 국가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 모든 곳에서 우리는 자기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연대한 우리, 버스를 타고 밀양에 모인 우리,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사진 1.JPG





 


관련 글 & 사진 (편집부 주)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다녀오신 

또다른 분의 사진과 글은 

독투불패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독투불패 관련 게시글 바로가기]


 




이동현
트위터 : @Leetreeart

편집 : 홀짝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