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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지갑, 쉽게 열리지 않는다. 많이 팔리는 물건은 팔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라고 다를 리 없다. 많이 팔리는 책은, 많이 팔리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컨텐츠건 마케팅의 결과이건 이슈를 잘 탄 것 이든, 이름값이든 말이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라면 그중 한 가지 이상의 요소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펴보는 게 취미라면 취미다.


그런데 인상만 봐서는 당췌 어떤 이유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인지 알 수 없는 책이 있다. <지대넓얕>이 그런 경우였다. 무명 작가의, 딱히 시의성도 없고 특별한 마케팅도 없는 것 같은 책이 오래동안 베스트셀러를 지키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100만 부를 넘게 팔았다고 한다. 해괴망측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제목에 '채사장' 이라는 작가명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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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함을 참지 못해 채사장이 낸 모든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그에게는 '특별한 감각'이 있다는 걸. 조금 뜬금 없긴 하지만 신간도 나왔겠다, 탄핵도 됐겠다, 정신없이 흘러갈 대선을 앞두고 채사장을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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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코코아: , 채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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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책이 나왔어요. <지대넓얕>부터 해서 세상 모든 분야에 대해서 다 쓴 거 같아요.

 

: 그렇죠. 큰 범위 내에서 뜨문 뜨문 뜨문.

 

다음 책 계획도 있나요? 더 쓸 수 있는 분야가 없을 거 같은데..

 

매년 12월에 내는 게 목표예요. 이제 박박 긁어서 또 써야죠.

 

주제는요?


이제 계획 들어가 있어요. 그것도 염려스럽거든요. 앞에 책이랑 조금이라도 유사한 점이 있으면 실망하세요. 그것도 신경을 써서 새로운 걸 쓰려고 찾아보고 있습니다.

 

세 권이 조금씩 겹쳐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사실 저는 그래서 좋았거든요. 한 번만 읽어서는 흘러 넘어가 버리는데, 중첩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반복되면서 체화되는 거 같은.

 

: <지대넓얕>이 여러 가지 분야를 다루고 있다 보니까 작가가 진짜로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뭔지, 잘.. 설득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시민의 교양> 때는 일부로 <지대넓얕>에서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을 다시 뽑아서 쓴 거거든요. 반복하면 ‘아, 이게 작가가 하려는 얘기구나’라는 게 선명할 거 같아가지고. 그랬더니 썼던 걸 또 쓴다는 분들이 계셔가지고 <열한계단>에서는 최소화해서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열한계단>은 학교나 군대나 제 경험이랑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서 재밌었어요. 고등학교 때 음모론과 신비, 고대 문명을 열심히 찾아다녔거든요.(웃음) 그런 게 있었는데 까먹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사합니다(웃음).


: 일종의 자전적인 책이잖아요. 근데 이성에 대한 사랑이 없더라고요. 사랑이야말로 자기 밑바닥을 보고 나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계기라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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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계단>은 채사장이 본인을 흔들어 키워준 열한 가지 책을 자신의 경험과 엮어 소개하는 책이다.



팟캐스트에서 <열한계단>에 왜 사랑 얘기가 없냐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같이 진행하는 깡샘이 뭐라고 했냐면, 구차하다고(웃음). 그게 사실이거든요. 사랑과 관련된 게 구차하기 때문에(웃음), 이걸 꼭 써야 하나. 생각이 들어가지고 그랬습니다.


근데 말씀하신 게 맞는 거 같아요. 누군가 만나고 연애를 하면 많이 배우잖아요.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다음책은 아닐 것 같긴 한데, 사랑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사랑 같은 거 구차해!'라고 우선 지르고, '연애를 하면 많이 배워요' 하고 뒤에서 수습하는 것이 그가 구사하는 유우머다(책과 같은 이름인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듣는 이들은 자동 음성지원이 되고 있을 테다).



*지대넓얕은 채사장, 깡샘, 김도인, 이독실이 진행하는 교양 팟캐스트이다.




채사장의 '감각'


: <열한계단>은 어떤 사람들한테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나요?


저는 대중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무리 좋은 책도 많은 사람들한테 안 읽히면 안 좋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벙커1에서 강연할 때도 중위소득에 대한 얘기를 했었거든요. 진짜 우리가 알고 있는 중간이라는 게 뭔가. '한 달에 90만 원 정도 돈을 벌고, 지방 4년제 대학 정도를 나오는 사람, 그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주인공들이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진짜라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소수의 헤비 독자들도 있지만 1년에 한두 권 읽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그분들에게 초점을 맞추려고 해요. 


그런데 오해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러면 쉽게 쉽게 쓰는 건가. 그렇지 않거든요. 어떤 걸 기대하시냐면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고 논쟁이 많은 내용인데 그걸 쉽게 표현해주면 그걸 많이 좋아해 주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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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연에서 경험으로 중간값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라고 얘기했었어요. 쉽게 얻기 힘든 감각인데 어떤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었는지?


그냥 자연스럽게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었어요. 고등학교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대학을 안 간 친구들이 절대적으로 많았거든요? 그 친구들 보면 항상 술자리에 모여서 철학과 예술, 정치 이런 얘기를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뭘 관심이 있어 하는지 알고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인문학이나 교양과 관련된 팟캐스트도 하고 책도 쓰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가방끈이 길거나 대학에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진짜 일을 했던 거죠. 창업도 하고 회사도 다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얻었던 거 같아요. 공부해서 얻은 게 아니고.


아, 또 다른 것도 있구나. 학생들도 가르쳤었거든요. 고3들이나 수험생한테 논술을 가르친 적이 있었어요. 입시를 보면 수치적으로 보여요. 같은 나이 또래가 60만 명 정도 되고, 9등급제로 나눠 있잖아요. 5등급이 가장 인원이 많고. 근데 이상하게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 보거나 선생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3등급을 넘어서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매몰차게 대하는 거에요. 그것도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9등급제에서 5등급이 가장 평범한 학생들인데.


3등급이면 상위 20%죠.


그렇죠. 24%였나 그랬던 거 같아요.


표준분포로 봐도 이쪽이 훨씬 크죠. 중위값이라는 게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아는 거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감각 같아요.


중위값에 대해서 세상이 재밌다고 느끼는 것 중에 뭐가 있냐면, 중립적인 개념은 가치를 담고 있지 않다 보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으로 해석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지대넓얕>에서 생산수단을 획득해 부를 축적하는 부분을 읽고서, 어떤 분은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건 갖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석하시는 거에요. 빨갱이 책이다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고. 또 어떤 분은 '지대넓얕을 읽고 나서 부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한다. 생산수단을 내가 소유해야겠다'라고 생각하셨다는 거에요.


중위값도 마찬가지거든요. 두 가지 사람이 있어요. 진보가 이해하지 못하는 보수의 세계관 중에 뭐가 있냐면, 질서와 계층에 대해서 진짜 신뢰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정말로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거에요.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건 정말 이상한 세상인 거에요. 그런 세상은 있어서는 안돼요. 왜냐면 태어난 조건과 환경, 신체적 조건이 다 다른데 그걸 억지로 동일하게 세운다, 이건 자연스럽지 않다는 거죠. 자연스러운 세계와 질서 있는 세계가 서열화돼 있는 거라고, 그 세계관 자체가 뿌리 깊게 박힌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게 안정감이 있다고?


그게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거죠. 노력하든 운이 좋았든,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체로 태어났든. 부를 획득한 사람들을 인정해줘야 한다. 못 가진 사람들이 그거에 대해서 뺏어 오려고 노력하는 사회는 잘못됐다고 뿌리 깊은 신념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고, 그건 세계관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진보적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처음에 이 얘기를 들으면 놀라워해요. 보수가 형평성이 이루어진 진보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진보도 수직적인 세계를 이해 못 하는 거에요.


재밌는 건, 그 세계관을 논박하기는 힘든 거 같아요. 어떤 게 옳다라고는. 이게 토론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차피 논박할 수 없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라는 걸 인정하면 그때부터 토론이 가능한 것 같거든요. 논박할 수 없는 세계관에서 반영된 제도의 요구가 있다는 걸 이해했기 때문에 조율이 가능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대로 이런 사람들도 있는 거죠. 저 세계관 자체가 잘못됐어. 저 세계관을 논박하기 위해서 애쓰기 시작하면 소모적인 논쟁으로 끝나게 되는 거 같아요.



세계관에 대한 논박. 논쟁의 여지가 있어 잠시 뒤로 미루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요즘 분위기로 봐선 토론이 불가능한 시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냥 물리쳐서 이겨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 같아요. 저는 경제 환원주의자는 아니지만, 경제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먹고 살기 너무 바쁘다 보니까. 사실 <지대넓얕>은 팔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책인데, 썼던 계기가 있었어요. 한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회사원이라고 했을 때,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정치적인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아요. 술 먹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모여서 정치 얘기하다 보면 싸움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보수와 진보의 입장이 다르니까. 그때 시간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이 많으면 충돌해가다 얘기하면서 조율해 갈 텐데. 또 하나는 정치적 논의를 시작할 때 이미 충돌하는 상황에 대해서 알고서 얘기하면 조금 생산적인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었거든요. 그래서 <지대넓얕> 1권을 썼던 거였어요. 보수 진보가 뭔지, 핵심 쟁점이 뭔지에 대해서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니까 그걸 알고서 친구들이 책을 읽고서 같은 자리에 모이면 그 다음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든 거에요. 


근데 토론할 여유가 없다는 게 사실인 거 같아요. 사실 <지대넓얕> 같은 책이 있기 전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건 여유인 거 같아요. 일정 시간 노동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아주 조금이나마 해소된다면 여유 시간이 주어질 거고, 토론하지마~ 라고 해도 심심하니까 같이 보여서 토론도 하고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해요.


: 실제로 <지대넓얕>이 실제로 친구들이랑 토론할 수 있는 토대가 됐나요?


안됐어요. (웃음) 안 읽더라고요. 친구니까 더 안읽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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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대넓얕 팟캐스트는 토론이 된다는 게 좋았거든요. 근데 토론을 하다 보면, 신념을 가지고 얘기하다 보니 감정적으로 튀는 부분이 생기잖아요. 그런 건 어떻게 조율되나요.


예전에는 격하게 토론한 적이 있었거든요. 막 싸울 듯이. 지금은 ‘왜 요즘에는 토론을 격하게 안 하느냐’하는 반응이 있을 정도로 잘 안 하게 돼요.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지치는 거 같아요. 제가 여기서 지친다고 말한 건 부정적인 게 아니라, 어디까지가 제 신념인지가 알겠는 거에요. 독실이가 어느 정도의 신념을 갖고 있는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세계관은 논박할 수 없잖아요. 그 세계관은 어쨌든 논박은 안 되는 거고, 제가 어떤 세계관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너무 3년 동안 이야기하다 보니까, 포기하게 돼요. 응 그래 할 수 없구나. 그리고 계속 얘기하다 보니까 이해하게 되는 거에요. 저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논리가 뭔지.


그러니까 처음에 잘 모를 때는 혐오하거나 거부하게 되는데, 잘 알고 나면 타당하다 느끼잖아요. 태극기 집회에 나와 있는 연세를 많아 가지신 분들은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이니까 멀리서 보니까 혐오스럽거든요. 근데 아니에요. 실제로 만나서 얘기해보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였던 거고. 내적인 논리가 탄탄한 거에요. 우리랑 살아왔던 삶의 양식이, 경험이 달랐을 뿐이고. 또 다른 이유는 토론을 요구하는 사람들 자체가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토론을 하자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자기도 잘 모르니까 토론을 할 수 있는 범위를 어디까지 상정하느냐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상황까지만 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그 공통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이, <지대넓얕>에서 말하는 인문학... 인문학이라고 하면 이게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거 같아요. 인문학이라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는데, 최소 지식.


그렇죠. 최소지식. 사실 제가 의도한 건 아닌데, 출판사의 의도와 미디어의 의도가 만나가지고 제가 인문학이나 교양을 얘기하는 사람으로 꾸며졌는데, 실제로 저는 인문학을 잘 모르기도 하고,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인문학이다 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아니거든요. 저는 사람들이 인문학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먹고 사는 게 사실 더 중요한 문제인 거고. 건강하게 먹고 살고 자신의 취미 생활하고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최소 지식'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 최소 지식이 철학 이런 게 아니라 계급갈등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자신의 노동력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력이 아니라 타인의 노력과 시간을 이용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반대로 그들의 생산수단에 고용돼서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 둘의 이익이 대비되는 거다. 그거 정도만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 최소 지식은 학교에서 충족시켜줘야 되는 건데.


계급 갈등은 얘기를 안 해주죠.


: 사실 학교의 교육의 문제점은 이전 책에서도 나왔지만, 경제체제에서, 직업별 소득 격차에서 기인하는 거고, 그것도 사회의 문제인 거죠.


그렇죠. <시민의 교양>에서 교육 문제의 본질은 소득 격차의 문제다 라고 썼는데 맞는 거 같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모든 걸 좌우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문제 해결인 거고. 정치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민들이 선택해야 되는데, 시민들이 선택해야 되는 기준이 최소 지식이고, 그게 계급 갈등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건 또 학교에서 가르쳐 줘야 하는데.. (웃음)


안 가르쳐주죠.


그런 악순환이.


: <지대넓얕>에 대한 평가 중에, 이거 학교에서 배운 거 아니냐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학교에서 배운 걸 쪼금 비튼 거였거든요. 학교에서는 정부가 개입하는 걸 규제라고 배워요. 그리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건 자유라고 배우니까 학생들이 실제 의미를 이해 못 하는 거에요. 실제로는 정부가 개입하는 것의 본질은 규제가 아니라 세금의 인상이고, 자유가 얘기하는 건 세금 낮추는 거. 세금에 대한 얘기인 거죠. 우리가 학교에서 뭘 배우고 있는지 아니까 그걸 비틀어서 쓴 건데, 그게 자연스럽게 읽히셨나 봐요. 학교에서 그걸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익이라는 것이 세금과 복지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거다.


: 그러면 다시 토론에서, 토론을 통해서 실제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요. 토론 무용론을 들은 적도 있거든요. 토론해서 설득이 되나.


토론으론 설득이 안 되는데(웃음), 사실 팟캐스트 지대넓얕 처음에 시작할 때 그런 얘기 잠깐 했던 거 같은데, 세뇌를 하면 되요. 설득의 가장 좋은 방법은 토론이 아니라 세뇌거든요. 어떻게 세뇌하면 되냐면은, 계속해서 반복하면 되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저희 독실이가 많은 분들이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라고 얘기하거든요.


유해졌다.


: 사실은 처음부터 전략이 있었어요. 얘기를 꺼내면, 독실이가 반대하잖아요. 그냥 넘어가는 거에요. 응, 독실이가 반대할 수 있지. 근데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 얘기를 토론 거리로 꺼내면, 얘가 그동안 생각한 게 있기 때문에 또 반박을 하는데 그전보다는 조금 유해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시간을 오래 두고서 같은 얘기,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서 계속 얘기하면 저 사람이 조금씩 물들어 간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세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세뇌에 필요한 시간이 필요해요. 말할 수 있는 시간. 그게 사실은 토론이겠죠. 한 번의 토론으로는 안 바뀌는데 그와 관련된 토론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상대방이 이해해요. 제 입장에 대해서. 그러면서 설득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세계관을 보는 세계관


: 앞에서 나왔던 세계관 얘기를 좀 더 했으면 좋겠어요. 한편으로는 비합리적으로 세워진 세계관은 합리적으로 이성으로 논박해서 설득해 내거나 세계관을 무너트려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불가능한 거죠. 한 사람의 세계관을 논박할 수 있을 만한, 가장 진리에 가까운 세계관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거에요. 없어요. 유물론인가? 물질에서 시작하자는 유물론이 강력하긴 하거든요? 근데 자기가 볼 수 있는 거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는 허약한 체계이기도 해요.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이라는 거. 현대 사회는 과학적 세계관이 진리의 왕자를 차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진 않거든요. 수학의 역사나 현대 물리학의 성과만 봐도 그렇고, 다분히 물질로 환원하는 게 얼마나 허약한지 알 수 있어요. 기독교적 세계관을 논박하기도 어려운 거고. 그러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들, 민족주의가 옳은 거냐? 실존주의라는 것이 옳은 거냐? 포스트모던이 옳은 거냐? 하는 건, 서로를 논박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소모적일 수 있는 거죠. 합리적인 토론을 갖고 타인의 세계관을 무너트리고 나의 세계관으로 재정립시킬 수 있다, 이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재밌게 읽은 칼럼 중에 어느 박사님이 쓴 게 있는데, 원주민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2차 대전 때 미국이 잠깐 점령했던 지역의 원주민인데... 아, 혹시 이거 아는 얘기인가요?


비행기에 대해서 숭배하고 맞나요? 들어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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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이정모 칼럼] ‘총 균 쇠’, 화물숭배와 500만 명(링크)




그 얘기를 하면서 '박사모나 태극기 집회에 나오시는 분들의 세계관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허황되고 바보 같은 세계관이다'는 의미로 칼럼을 마무리하셨거든요.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사실은 그게 아니고 미국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온 거고 우리를 위해 온 선한 사람들이 아니다, 메시아가 아니다' 라는 얘기로 그 잘못된 관념을 무너트릴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것도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논박할 수 없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그게 문제에요. 어떤 게 있느냐면, 예를 들어 태극기 집회에 오신 분들이요. 진짜 문제는 그분들이 섞여 있다는 거 같아요. 사람들 중에서는 돈 받아서 관제데모로 온 사람도 있을 거에요. 그러면 단순해요. 관제데모로 온 사람이다? 법적으로 처벌해서 없애버리면 되거든요? 근데 문제를 복잡하게 꼬는 게 뭐냐면, 그런 사람들과 자신의 신념 때문에 온 사람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문제인 거 같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서로의 세계관을 논박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어떤 세계관은 신념 일부분과 잘못된 사고방식과 섞여 있을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더 어려워진다고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보이는 비합리적이고 잘못된 진실로 믿고 있는 부분들이 발견된다고 해서, 한 번에 다 완전히 잘못됐다고 매도할 수도 있는가. 그것도 또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그 칼럼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원주민이 비행기에 대해서 자국의 이익 때문에 온 사람인에도 불구하고 그걸 선의로 해석하는 문제인 전형적인 사례를 가지고서, 자기가 비판하려는 대상에 뒤집어씌운 거 같아가지고. 그중에서는 진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일부 있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예컨대 이게 인종차별 문제라고 생각해보면, 우생학에서 근거해서 인종을 차별했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렇죠.


그때 근거로 삼았던 우생학은 잘못된 정보였던 거고,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잘못된 신념을 세우고 있다고 하면 논박해서 무너트릴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어려운 질문을 계속 하셔가지고(웃음). 저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섞여 있는 게 문제인 거 같아요. 우리가 저 사람의 신념 중에서 정말로 잘 못 알고 있는 거야 라고 지적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반면에 우리가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나 드러내지 않는 다른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런데 반대로 신념의 문제로 떠나서 효용성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거에요. A라는 사람이 B쪽에 있는 사람들의 신념이 뭐가 잘못됐는지에 대해서, 완벽하게 "너는 무지하다"라고 얘기했을 경우에, 그 발언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봐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A라는 사람이 무지하다고 얘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가. 만약에 A라는 사람이 A라는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게 목표라고 한다면, 무지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A 라는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반발을 일으킬 거라는 생각하거든요. B가 결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를 무지하다 비난한다고? 니가 더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아까 처음에 했던 얘기가 사실 그런 얘기였는데,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내부 단속용, 내부 결속을 위한 발언을 하는 경우요. 내부로부터 격렬한 환영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근데 그것이 그 사람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내는 데 정말로 효과가 있는가, 고민해 봐야 돼요. <열한계단>에도 그런 얘기를 썼는데, 정의와 신념, 도덕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의심해 봐야 되거든요. 왜 저 사람들은 왜 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는가. 봐야 돼요. 교회에서 목사님은 왜 저렇게 목에 핏대를 세워서, 어차피 신이 모인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가. 왜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국가의 지도자가 애국에 대해서 강조하는가. 왜 내부 결속용 발언을 자꾸만 해대는가에 대해서 사실은 저 얘기를 하는 사람의 의도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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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지지자들이 생각나네요. 인종차별주의자다, 성차별주의자다 얘기 듣다 자기 의견 표출 안 하고 복수심을 쌓다가 투표 때 터트리는.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게 좀 아쉬워요. 사실 진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거든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데, 진보의 역할이 있어요. 진보인 사람들한테 진보의 타당성에 대해서 얘기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들이 해야 하는 건 뭐냐면, 진보의 외연 확대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우리의 외연 밖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 나가야 하고, 그것은 그들이 무지하다 바보 같다, 잘 모른다라는 말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대화를 통해서 끌어들일 수 있는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담고 있는 진보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최근에 그 비슷한 맥락에서 <할배의 탄생>이라는 책이 나왔거든요.


아, 그래요?


: 70대 정도의 어르신 두 분을 인터뷰해서, 어떤 생을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추적하는.


재밌겠네.


저도 읽으려고 시도했었는데, 굉장히 안 읽혀요(웃음). 최근에 회사 앞에 데모하러 오시는 분들이 있었거든요. 한 분을 붙잡고 일주일 동안 얘기를 해봤는데, 


아 그래요?


되게 힘들더라고요. 정말 힘든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일단 전부 수용하자는 마음으로 듣고 있으면, 저를 깔보고 무시하려 하고 가르치려는 게 느껴져서 되게 힘들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세뇌가 필요합니다. (웃음)


(웃음)


주기적으로 해야 돼요. 사실은 누구한테 가장 좋냐면, 부모님이 좋은 거죠. 계속 얼굴을 보니까. 그들의 세계관을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뭐가 있다라는 걸 보여주면 안 바뀔 거 같은데 바껴요. 데모하러 오신 분들이랑 얘기해보는 건 좋은 시도인 거 같아요.


그분은 교회 나가는 분인데 동성애 욕하시고.. 얼마나 잘못됐는지 저한테 한 시간을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북한 얘기도 하고.


민주당 빨갱이고.


네네. 듣다가 어느 순간 튀는 부분이 오더라고요. 제가 몇 번 논박을 했다가 그분이 화내고 해서 결국 잘 안됐어요. 되게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나만 손해 보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세상이 쉽게 안 바뀌는 거겠죠.



내 행동이 내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것에 도움이 되는가, 설득의 대상을 어디까지 삼을 것인가.



: 책으로 같이 얘기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보자 하셨는데, 사실 요즘 책 읽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이런 얘기를 책으로 전달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그렇죠. 반대로 <지대넓얕>에 대해서 영향력을 크게 생각해주시는 분도 계세요. 근데 또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도 100만 부가 넘게 나가서, 현상으로 다뤄질 정도니까..


100만 부면, 사실 2000년 이후에 나왔던 책 판매에서 사실 독보적으로 많이 팔렸다고 얘기를 들었었어요. 생각해보면 국민의 5%인 거에요. 5천만 명 이니까. 아주 쬐에끔의 도움이 됐을 수도 있겠죠. 근데 아주 쪼끔의 도움을 또 반대로 아까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지대넓얕>을 보수적인 측면을 강화하는 데 읽으신 분들도 있을 테니까. 아주 미미한 변화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논술을 학생들한테 가르치면서 많이 배웠는데, 학생들한테 어른들이 논쟁하는 것들을 해요. 정치에 대한 것도 해보고. 그러면 자신들 부모님한테 배운 게 있으니까 얘기를 해요. 토론하다가 막 싸우기도 하고 하거든요. 근데 언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가느냐면, 비난하는 말에는 더 강력한 비난으로 대응하게 되는데, 반대로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거에요. 세상을 우리가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세금을 가지고서 두 가지 세계로. 너무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 걸 수도 있겠지만 두 가지 세계가 있고 이런 결과가 나온다. 장 단점이 있는 거지. 그러면 드디어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고 선택하게 돼요. 처음에는 보수라는 걸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근데 실제적인 장단점을 보게 되면 자신의 신념과 무관하게 다른 선택을 해보기도 하면서 내 세계관을 조금씩 수정해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객관적인 정보 전달이 아주 미묘한 도움을 조금씩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책이라는 것이 세상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는가. 아주 쬐에끔씩 바꿀 수 있을 거에요. 딴지일보가 세상을 바꾸는 것에 비해서 조금 더 미미하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백만 부나 팔렸으니까..


양쪽에서 다 비판하시더라고요. 일베에서 한동안 계속 빨갱이라고. 무서웠어요. 반면에 진보적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이거 너무 자유주의 이념을 타당하게 옹호해 주는 거 아니냐. 현실은 보수라는 게 부정의 하게 작동한 면이 있는데, 그걸 다 배제하고 이론적 측면만 얘기함으로써 마치 보수를 옹호해 주는 거 아니냐 평가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진보와 보수

 

한편으로는 기존 언론의 메시지나 전달방식이 중간값에 있는 분들에게는 친절하지 않았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언론이나 진보진영이나 메시지를 전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역할을 충실히 못하는 거 같거든요. 점점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단순히 뉴스를 카드뉴스로 바꾼다거나 하는 형식으로 해결되지는 않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좋은 노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카드뉴스라는 것이 생긴 것도 신선했어요. 예전에 딴지일보에서 나온 기사 같은데, 뱅뱅 청바지에 대한. 뱅뱅 청바지가..

 

네. 뱅뱅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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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춘심애비, 승리의 필수교양 (1) – 뱅뱅이론 (링크)



 

: 네. 뱅뱅이론. 저는 어떤 생각이 드냐면, 그걸 인지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일반적인 사람들 한테 맞춰야 하는 게 뭔지에 대해서 노력하는 분들이 계시고, 이게 차츰차츰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그분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중간다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계단차가 너무 크니까 중간에서 중간다리를 만들어서 그걸 타고서 넘어갈 수 있게끔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을 거 같고 그걸 하고 있으니까. 딴지일보도 그럴 거고. 카스뉴스를 만드는 분들도 그렇고. 그런 노력이 점차 조금 더 세련돼지고 하면 좋아지겠죠.

 

빈부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면서 경제적인 소득뿐만 아니라 지식을 접하는 것에 대해서도 격차가 더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자기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경제가 곧 시간인데 그게 줄어든 거니까.


경제학자 베블렌이 노동자가 보수화되는 이유가 먹고 살기 위해서 시간을 다 쓰다 보니까 누가 내 이익을 대변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말도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진보의 역할이기도 한 거 같아요. 어떤 걸 보게 되냐면, 내부를 향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진보적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진보적 사람이, 어차피 진보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보의 타당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보수도 마찬가지거든요. 보수로 모인 사람들을 내부를 향해서 보수의 옮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에요. 그것도 내부를 단속하기 위해서 좋은 방안이다는 생각은 들지만, 실제로 세계를 바꾸는 방법은 아닌 거 같아요. 이런 사람이 필요해요. 진보적 세계가 옳다고 믿고 그런 세계가 확장되기를 기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외부를 향해서 얘기를 해야 되거든요? 보수에 있는 사람들 설득시키는 노력이 있어야죠. 반대로 보수도 마찬가지죠. 만약 보수적 세계가 옳다고 믿는다면 진보를 향해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얘기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사회를 바꾼다고 생각이 들어요.


근데 배운 사람들이 있는 거에요. 배운 사람들은 자부심도 있고 배운 사람들 간의 배움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는 경향이 있고. 세상이 나눠져 있어요.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들은 그 사람들만 얘기를 할 수 있는 거라 믿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학벌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만들어놓은 지식이라는 가공품을 소비만 해야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 놓은 것도 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식인이라면 그들을 지식인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말을 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배울수록 큰 사람이 아니라 협소한 사람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다.



지금이야 최순실 특수 때문에 마치 진보가 대세인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는데, 실은 한국에 대다수는 아직도 보수적인 사람들이잖아요.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진보나 보수를 얘기할 때 우리가 두 가지를 얘기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방향성. 상대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진보와 보수를 얘기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이념의 뿌리를 놓고 보수와 진보를 얘기할 수 있는데 방향성을 놓고 본다면 정권이 교체되는 건 진보적인 뱡향으로 가는 거니까 진보 세력의 집권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 뿌리를 놓고 본다면, 까놓고 얘기해서 민주당은 이념적인 보수인 거죠. 자유주의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래서 좀 걱정도 되요. 왜냐면 사람들은 뭘 기대하냐면, 진보적인 세상이 온다, 형평성의 확대, 아니면 빈부 격차의 완화나 복지의 완화 이런 걸 꿈꿀 텐데 이념적인 측면에서 민주당이 그런 역할을 못 해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사람들 또 실망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만약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또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했던 걸 반복하게 될 거거든요? 어떤 걸 깔 거냐면, 민주당의 애매한 입장이 보수로부터 비난받고 진짜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는 분들한테도 비난받고. 입지가 점점 적어질 거 같아가지고.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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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란 무엇인가


*주의: 의식 파트를 읽다보면 의식이 흐릿해지는 체험을 할 수 있으니, 건강하고 맑은 정신의 독자께는 과감하게 패스하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 세계관 얘기를 하다보니 의식이 생각나네요. 이것도 얘기도 간단하게 얘기하면 좋을 거 같아요.


아 의식에 대해서. 근데 이건 안 실으시는 게 좋을 거에요. 다들 재미없어 하기 때문에(웃음).


제가 궁극적으로 관심 있는 사항은 인간의 의식에 대한 건데, 인간의 모든 신비라는 것이 의식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서 너무 신기해요. 아까 세뇌 얘기했잖아요. 저는 정말로 그걸 활용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잘 보면 <지대넓얕> 2권에서부터 시작해서 팟캐스트도 그렇고 <열한계단>도 그렇고 계속 인간의 의식이 뭔지를 반복해서 이야기해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의식에 대해서.



이렇게, 채사장이 세뇌를 시작한다.



너무나 오래전부터 의식의 본질을 이야기해 왔어요. 한 번 가정해 보는 거죠. 인류 70억 인구가 아니라 인류라고 말할 수 있는 인류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인류를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그들이 뭐에 대해서 어떤 신념과 진리관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면, 정말로 절반 정도는 범아일여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가졌어요. 인간 개인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아트만이라는 것과 우주라고 얘기할 수 있는 브라만 이런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가 된다라는 놀라운 내용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믿어 왔거든요. 힌두 문화에서부터 시작해서 베다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관념론 철학이나 현상학이나, 독일의 철학자들이 진짜 무슨 말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궁극적으로 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느냐면 이 물질적 세계가 인간의 의식 안에서 재구성됐다는 얘기를 해왔어요. 그 사람들, 범아일여 얘기와 같은 맥락에서 하는 거에요. 쇼펜하우어도 마찬가지고 하이데거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게 너무 낯설어요.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나 대승불교 문화권 혹은 유물론적 관점에서의 과학적 합리주의에서는 그게 너무 멀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짧은 시간에 의식을 말하다 보니 주를 달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하게 돼어 버렸다. 위 두 문단을 읽고 나서도 의식에 관심이 남아 있는 미ㅊ.. 아니, 분들께는 지대넓얕 팟캐스트 의식편을 권해드린다.



기원전에 이미 그런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지금 이렇게 엄청난 문명을 쌓고, 모두가 생활인이긴 하지만,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도 받고 토대가 마련되고 나서야 조금씩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옛날에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저는 음모론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전에 하나의 문명이 있었지 않나.. (웃음) 이런 생각도 하거든요.


아. 그럴 수도 있죠 (웃음)


이게 첫 번째 문명이 아니라 하나의 문명이 있었고, 거기서 유산이 조금 남아 있던 것이 이번에 리셋되고 새로운 문명에서 이어서 구성해가고 있는 거 아닌가.. 과거가 지금에 비해서 너무 앞서 있다는 생각도 들고.


저도 음모론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음모론을 배제하고서도 쉽게 얘기할 수 있단 생각이 들어요. 마르크스주의는 자생적으로 발생한다는 얘기 많이 하잖아요.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만 읽음으로써 마르크스주의자가 자발적으로 생기거든요? 누가 주입해주지 않아도 책만 있으면 자생하는 거에요. 자기 삶을 매우 섬세하게 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 사람들은 아무 교육도 시키지 않고 내버려 둬도 결국엔 알게 되는 거 같아요. 그냥 내버려 둬도 의심하게 되는 거죠. 내가 보는 이 세계가 실재인가? 아니지, 내가 보고 있다는 건 내 관점의 산물이 아닌가? 그러니까 아주 기원전 5천년부터, 리그베다부터 시작했잖아요. 물질에 앞서서 의식이 존재한다라는 관점을 가졌던 것은 자생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삶을 섬세하게 보는 모든 사람들. 현대에는 그런 말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혼자 끙끙 앓고 있을 텐데, 오래전부터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근데 반대로 오늘날에는 그런 생각을 하기 어려운 거 같아요. 공교육이라는 것이 발전돼 있고, 과학적 합리주의의 성과가 너무 놀라워서 거기에 인간이 도취되기 쉬우니까.


<열한계단>에서도 마지막 챕터에 그 얘기로, 깨우쳤다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거 같고.. 그 화두를 잡은 거잖아요.


그렇죠. <열한계단>에서 열 번째 열한 번째는 진짜로 신중하게 썼어요. 근데 그게 제가 진짜로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고.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 앞에걸 까는.. (웃음)


그렇죠. (웃음) 열번째 열한 번째 읽어라, 그걸 쓰기 시작한 건데, 다들 그것만 안 읽으시더라고요. 아쉬웠어요. 정말로 그런 사고관을 믿고 있고, 열한 번째에서 질문을 던지잖아요. 폐쇄된 자아에 대한 거. 그게 지금 마지막에 도달한 진짜 질문입니다.


실제 삶에서 변한 게 있나요? 마음이 평안해 졌다거나..


아니 그런 건 전혀 없어요. 마음도 불편하고, 욕심도 많이 나고 하는데 질문만. 그런데, 아, 이 얘기는 미친놈처럼 보이니까 빼줬으면 좋겠는데, 세계관 대로 보여요. 저는 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삶을 윤회하면서 여기까지 도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신기해요. 세상은 다채로운 세계관을 가지고서 자신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거 같기도 하고. 제 사고방식이 틀렸을 수도 있죠.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종교적 신화에 제가 도취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습니다.


빼긴 아쉽긴 하네요.


아 그래요? 아니면 미친놈처럼 보이지 않게 잘..


: 네 알겠습니다. (웃음) 그럼 이제 마무리를.. 


: 뭔가 함께 화이팅이라도 하고서 마무리해야 하나요.


잘하자! 막.


: 저는 그걸 여쭤보고 싶어요. 마지막 멘트는 왜 내가 의식 얘길 했지만, 미친놈이 아닌가를 스스로 증명하면 좋을 거 같아요.


아 그래요? 한국에서는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사실 의식 얘기를 잘 못 했거든요. <열한계단>에서 그걸 절절히 쓰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는다. 절절하게..


정말 힘줘 쓴 파트. 힘줬다! 느낌이 오죠.


한국에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전무해요. 실제로.


불교가 꽤 대중적인 종교인데도 그런 걸 보면..


근데 재밌는 건, 불교가 재밌게 나눠져 있어요. 초기불교에서 붓다가 한 얘기가 놀랄 만치 재밌거든요? 근데 우리가 받아들인 불교에서 붓다는 별로 안 중요하잖아요. 싯타르타는 별로 안 중요한 인물이에요. 자기가 깨닫는 게 중요한 종교다 보니까. 그러다보니 붓다 얘기는 빠지고 중국에서 도교와 합해져서 대승까지 왔는데, 너무 대중적인 종교다보니까 재미가 없거든요. 지옥불에 간다 이런 얘기가 나오고.


그런데 초기 싯타르타가 했던 얘기들은 놀랍도록 철학적이고, 막 얘기한 게 아니라 너무 오래된 배다의 전통 안에서 그것이 뭐가 잘못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철학적 분석이니까. 한국사회가 최소한 붓다의 초기에 대한 얘기만 안다고 해도 좋을 거 같은 너무 과학적 합리주의에 매몰돼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워요. 재미가 없어요.


아, 그래서 한국에 합리주의 안에서는 미친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너무 많은 인류가 해왔던 얘기다. (웃음) 제가 미친 거면 인류 전체의 절반이 미친 거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 (웃음) 아직 책을 안 보신 분들께 전하는 말로 마무리 인사를.. 


: 네. <열한계단>은 진짜 존나 재밌는 책이니까, 읽으셔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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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트만과 브라만의 우주 삼라만상과 의식이 눈앞에 펼쳐지며 길고도 짧은 인터뷰가 끝났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구속을 앞둔 박 씨 마냥 모든 걸 내려놓고 이야기한 탓에 정줄도 맥락도 없어보일 수 있으나, 실은 채사장이라는 사람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00만이 넘는 사람들에게 넓고 넓게 자기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보통 사람과 중간값에 대한 그 감각 말이다.


위로만, 앞으로만 나아가려다 너무 멀리 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 '넓고 얕은' 방향으로 세상과 만나는 감각이야 말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것 아닐까?... 는 의문을 붙들고 기사를 마친다. 끄읕.




cocoa


사진: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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