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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엄마. 나 잘지내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나 어디 가든지 잘 적응하고 잘 버티는 거 알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주 전화 할게요..."


전 여친이 엄마에게 말을 전했는지, 아들의 목소리를 들은 엄마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응. 가이버야, 얘기 들었어.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어떻게 되는 건지 엄마한테 꼭 말해줘. 너무 걱정하지 말고.”


수용소라는 얘기는 차마 하지 못하고, 그냥 서류가 잘못 되어서 이민국에 잠시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난 전화를 끊고, 수화기를 제대로 올려놓지도 못한 채로 흐느끼고 있었다. 수용소에 온 지도 며칠이 지났건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을 전화기 앞에 서 있었다.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을 해도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생각은 날 어둡게 만들수 밖에 없었다.


“혹시 변호사한테 물어봤어?"


“어... 형, 형 같은 경우는 무조건 추방이래... 보석금도 최하 만 불 이상이고, 방법이 없을 거 같애. 형, 그래도 최대한 알아볼게. 어디 아프지 말고 잘 있어."


LA에 날 기다리고 있었던 동생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친구에게 전활 걸었다.


“어~ 잘 지내? 아는 변호사 형님한테 물어봤는데, 미국에서 거주하다가 잡히게 되면 변호사 써서 어떻게든 나올 수 있는데, 너 같은 경우는 답이 없단다.”


“어, 그래 고마워... 친구야.”


어떻게든 나가고 싶어하는 나에게 친구들의 말은 날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항상 웃으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너무 힘이 들었다. 내 얼굴은 근심 걱정에 말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답답해지는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나마 내가 실컷 울 수 있는 곳은 화장실 변기 위 였으니...


내가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고 나갈 때마다, 밀리앙은 내 앞에 서 있었다.


“괜찮아? 240?”


“응 괜찮아... 미안, 걱정하게 해서.”


밀리앙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나에게 할 말이 있으니 잠시 앉아 보라고 했다.


"240, 힘들어 한다고 지금 당장 바뀌는 건 없어. 나도 지금  몇 개월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데, 첨엔 나도 너처럼 걱정 많이 했거든."


"… ….”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나 사실 이렇게 갇혀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워. 용기를 내려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아.”


“그래, 240 맘을 내가 모르는 건 아냐, 하지만 널 응원하는 친구들도 있으니 맘 단단하게 먹어.”


고마웠지만, 지쳐있는 나에겐 그렇게 힘이 되지는 않았다. 멍하니 어딜 쳐다보는지도 모른 채,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군가가 어깨 좀 주물러달라고 하면서 과자를 꺼내도 반갑지 않았고, 난 오히려 화를 내기 시작했다. 감정기복이 너무 심했던 때였던 것 같다. 한없이 망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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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인가, 누군가의 침대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있고 '축하한다, 잘가'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궁금해서 그 주변을 어슬렁 거렸다. 그 친구는 재판을 받고 나서 그날 출소를 하는 날이라고 했다. 재판? 출소? 그럼 자기네 나라로 추방을 당하는 건가? 


내 생각과는 달랐다. 그 친구도 나처럼 멕시코를 통해 미국 국경을 가로질러서 밀입국을 시도했던 친구였는데, 재판을 받고 5,000불의 보석금을 내고 출소하는 거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난 바로 밀리앙에게 달려가서 그 일에 대한 얘기를 묻기 시작했다.


“추방을 당하지 않고 여기서, 미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제서야 밀리앙은,


“어? 너 그런 거에 대해서 몰랐어?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다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고, 재판에서 이기는 사람들은 보석금을 내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다고 모든 인원들이 나가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보석금 내고 나가지.”  


하면서 수용소 안내 책자를 박스에서 꺼내어 보여줬다.


“그럼 나도 미국에서 살 수도 있는 거야? 방법이 있기는 해?”


“그건 네가 찾아봐야지? 아무튼 나도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야.”


진흙탕 같은 내 맘속에 단비와도 같은 말이었으며, 그때부터 나가기 위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수용소 한 편에는 큰 게시판이 있었다.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서 그 전에는 관심 있게 보질 않았던 곳. 그곳에 해답이 있는 듯 보였다. 밥을 간단히 먹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낮잠을 청하려는데,


"삐라~~~ 삐라~~~" 하면서 사람들이 소리를 쳤다. 누군가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박스를 들고 철문 앞에 서 있었다. 나 역시 새로온 신입들이 들어올 때마다 쓰레빠를 바닥에 쾅쾅 치면서 침대 봉을 잡고 고개를 높이 쳐 들고 삐라를 크게 외치고 있었다.


“삐라~~~~~~ 삐라~~~~~~~~~~”


삐라라는 말은 그냥 환영한다는 수용소의 은어였다.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지, 하루에도 몇명의 죄수들이 들어왔고 나가기도 했다. 그게 해답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난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야, 글쎄 여기서 나가는 방법이 있대. 재판을 통해서 나가는 건데...”


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 내가 물어 봤다니까. 나가는 방법 없어. 그냥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왜 이렇게까지 해서 미국에 오려고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친구는 짜증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미안했는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짜증내서 미안한데, 니가 거기 갇혀 있으니까 내 맘이 편하지 않아. 나도 여기저기 알아 봤는데... 방법이 없으니까... 짜증내서 미안해.”


당연히 친구의 기분은 이해하지만, 갇힌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맘은 더 무거워지고, 나의 멘탈은 더이상 남아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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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쟁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수용소에 들어오고 난 후부터 난 잠을 제대로 자 보지도 못했고, 밀리앙에게 얻은 수면 유도제로 몇시간 잠시 잠시 눈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고 불안증세까지 올 정도였으니.


수용소에는 2대의 컴퓨터가 있었다.


“240, 저쪽 컴퓨터로 메일을 보내볼래?"


"메일? 무슨메일? 메일도 보낼 수가 있어?"


“응. ICE에 다이렉트로 메일을 보낼 수가 있어. 내가 해줄 테니까 이리로 와 봐.”


하며  컴퓨터를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말했던가,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밀리앙은 영어로 나에 대해서 글을 적기 시작했고 나에게 체크해 보라며 화면을 보여줬다.


“안녕하세요. 'north west detention center'에 수감되어 있는 240이라고 합니다. 여기 온 지는 며칠 되었고, 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물어보고 싶어서 메일을 씁니다. 제가 여기에 얼마나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런글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그냥 SEND 버튼을 눌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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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수용소 안이 시끌벅적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교도관 책상 앞에 키가 엄청 큰 흑인 2명, 백인 여자 2명이 우리 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키가 큰 사람이 얘길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국 이미그레이션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지금 물어보도록 하세요.”


난 재빨리 이민국 직원들 앞에 섰다. 제일 키가 큰 흑인 앞에 가서 물어봤다.


“저기... 제가 미국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라며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잡힌 얘기를 했다.


그 사람은 날 내려다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 방법이 없을 거고, 12~14일 후에 추방이 진행될 거 같은데."라며 말 걸지 말라는 듯이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알게된 거지만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은 망명(exile)신청이 가능했고 망명(exile)신청은 전쟁국가 또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에서만 신청이 되는 것이었다)


그 한 마디에 난 모든 걸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말이 다시 한번 생각 났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 미국에 있으려고 해?”



답답한 마음에 메일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이민국 직원이 했던 말과 틀릴 게 없었다. 조사하고 있으니 답변을 기다리란 얘기였고, 메일의 마지막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단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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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는 항상 죄수들이 여럿 모여서 뭔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적고 있어?”


“나 재판 준비때문에 서류 작성하고 있어.”


서류를 천천히 보니, 망명 신청서와 왜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 자기소개서 같은 게 어설픈 영어로 적혀 있었다.


“이 서류를 변호사에게 보내면, 난 나갈 수 있을 거야. 잘 돼야 하는데...”


이 서류를 보면서 나도 재판을 신청할 수가 있지도 않을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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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넌 내가 나가는 게 싫으냐? 어? 내가 여기에 이러고 있으니까 좋아?”


난 수용소가 떠나갈듯 크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래... 나도 니가 추방을 당하든 말든, 상관없어. 왜 나한테 지랄을 하는 거야?!! 그래, 솔직히 니가 재판을 받아서 보석금을 내고 나갈수 있다고 치자. 너 돈 있어? 너 집에다가 돈 보내 달라고 할 거야? 난 그돈 너한테 빌려줄 수 없어. 알아? 변호사 한테도 물어보니까 방법이 없다는데, 왜 전화해서 사람 힘들게 만들어?!”


예전 미국에서 만나던 여자친구였다. 난 친구들이 재판을 통해서 나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이 친구에게 얘길 했고, 그 친구는 냉정했다.


그랬다. 사실 재판을 받는다고 해도, 브로커 비용을 이미 다 준 나에게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난 화장실에 앉아서 하염없이 울다가 결정 아닌 결정을 내렸다.


'그래... 그냥 한국으로 추방을 당하는 편이 좋겠다. 가서 다시 점프를 하든 뭘 하든지'


사실 내 친구가 나처럼 감옥에 갇혔다고 하면, 첨엔 나도 걱정하면서 이것저것 알아봐 줄 테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이상 괴롭히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난 컴퓨터 앞에 섰다. 로그인을 하고 이민국에 다시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조사고 뭐고 제가 제 돈을 내서라도 한국으로 돌아갈 테니, 다신 미국으로 오지 않을 테니, 그렇게 해주십시요.”


센드 버튼을 누르고 침대로 돌아와서 앉았다. 한참을 고민 고민 하다가 다시 컴퓨터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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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는건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으니까... 한국으로 보내주세요."


처음에 잡혀서 수용소로 왔을 때보다 훨씬 많은 눈물을 흘렸다. 여러가지의 감정이, 여러가지의 생각이 눈물 속에 담긴 채...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로 달려가서 메일을 확인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답변은 커녕, 내가 보낸 메일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헤이 240~ 어디 갔었어? 계속 컴터 앞에 있었던 거야?”


하면서 내어깨를 툭 치는 밀리앙. 밀리앙은 내가 보낸 메일을 슬쩍 보더니,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메일을 보낸 거야? 내가 도움을 줄 수가 없어서 미안해.”


내가 불쌍하고 딱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교도관이 일어나 소리를 쳤다.


“240~!!”


교도관은 멀리서 날 쳐다보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난 힘없이 교도관에게 걸어갔다.


“오늘 너 생일이네? 생일 축하해.”


하면서 음료수 하나와 과자를 챙겨줬다.


내 생일은 X월 XX일. 가지고 다니는 이민국 아이디에도 적혀 있었던 내 생일. 난 생일이고 뭐고도 없었다. 그리 즐겁지도 고맙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런 곳에서 생일을 맞이 한다. 그 생각이 날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참, 내가 선물을 하나 줄까? 며칠 뒤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올 거야. 니 이름을 올려놓을 테니 가서 상담 한번 해봐."


내 죄수번호를 서류에 적으라며 종이를 건네주었다.


밀리앙은 과자를 들고 오는 날 보고, 한번 안아주고 생일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적은 작은 종이와 함께 과자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조촐한 생일 파티가 끝나고, 밀리앙은 날 불렀다.


“240, 잘 들어. 그냥 혹시나 해서 얘기하는 거야. 너 아까전에 변호사 오리엔테이션에 이름 올려놓은 거 봤어. 가서 어떤얘기를 할지는 잘 모르지만, 니가 한국에 갈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 그게 널 도와줄 수도 있을 거야.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너를 죽이려 한다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생각에 그동안 죄수들이 써 놓은 서류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조합해 보기 시작했다. 이민국 책자를 싹 다 읽고,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데이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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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1편 밀입국

2편 국경을 넘어라

3편 미국 감옥에 들어가다

4편 감방 생활

5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6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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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